소설리스트

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515화 (515/542)

〈 515화 〉 결전­1

* * *

나비의 주먹질.

평소에 레이시가 나비와 놀면서 맞았었던 나비의 주먹질은 애교에 육구가 부드러운 주먹질이었지만, 지금 휘두른 나비의 주먹질은 그런 게 아니었다.

가장 처음 레이시가 느낀 건 블루드의 몸이 엉망으로 부서지는 것.

팔, 다리, 어깨, 목, 가슴, 등…….

뼈란 뼈는 가리지 않고 으스러진 블루드는 온몸에서 피를 내뿜으면서 빙글 돌았다.

그리고 천천히 떠오르는 소리.

뼈와 근육, 핏줄이 모조리 으스러지는 소리.

사람을 죽인 적이 있긴 했지만, 분노나 어미로서의 사명감이 아닌 공포심으로 죽인 탓인지 블루드가 죽으면서 남긴 소리는 레이시의 뇌리 깊숙하게 박혔다.

섬찟하고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 흉악한 소리.

고기를 자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소리에 레이시는 침을 삼키면서 전신이 망가져서 인형처럼 땅바닥을 뒹구는 블루드를 바라봤고, 이내 블루드의 몸이 경련을 일으키다 멈추자 그대로 허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그르릉.”

“괘, 괜찮아요. 나비, 나비는 괜찮아요?”

“갸아아~.”

나비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나비의 발을 잡고 일어나는 레이시.

레이시는 이걸로 정말 끝난 거냐는 듯 죽은 블루드를 바라보다가 성벽에서 환호성 같은 소리가 들리자 몸을 돌려서 어색하게 웃다가 성문이 열리는 걸 보고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그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끼면서 그대로 옆으로 굴렀고, 레이시가 옆으로 구르자 엘라의 것과 비슷한 마탄이 지나가 성벽에 꽂혔다.

전생에 들었었던 폭탄 터지는 소리.

군부대에 있을 때 들은 거 외에는 들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소리가……, 아니, 충격파가 폐와 고막을 때리자 레이시는 침을 삼키면서 천천히 몸을 돌렸고 거기에는 블루드의 시체가 기괴한 포즈로 서있었다.

“커흑! 크흠! 하하! 이거 참 불쾌한 감각이군! 이게 언데드, 리치가 된다는 감각인가? 아니, 신성한 존재이니 언데드라고 하기에도 뭣하군. 홀리 리치라고 할까?”

“리, 리치요……?”

“별거 아니야. 그랑메르 강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엘라를 흉내 내는 거지. 사신의 생명까지 포함하면 한 10만쯤 죽었으려나? 그걸 고대의 신물을 사용해서 내 몸에 강림시킨 거다. 참 신기하지, 신의 위엄을 달성하지 않으면 이 신물을 사용할 수 없어서 반신반의했는데.”

신이 사신을 죽이기 위해서 사신과 동등한 힘을 지닐 수 있게 한 도구.

사용시간은 30분이며 죽은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생명연장 장치.

블루드가 그렇게 설명하자 레이시는 움찔 떨면서 블루드를 쳐다봤고, 블루드는 레이시의 시선에 한 번쯤은 자기가 직접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죽여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네는 자네가 사랑하고 자네를 사랑하는 사람의 스킬을 흉내낼 수 있다지? 어디 엘라의 스킬로 한번 싸워볼까?”

히죽 웃으면서 손가락에 마탄을 장전하는 블루드.

레이시는 그런 블루드의 모습에 반사적으로 손바닥을 펼쳐서 엘라의 스킬을 복사했고,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의 마탄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크흥! 하양아!”

후폭풍과 함께 날아가는 레이시.

레이시는 순간 시야가 빙빙 돌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가 이내 하양이의 털을 붙잡고 하양이의 등에 올라탔고, 하양이는 곧바로 블루드에게 돌진하며 몸으로 블루드를 들이박았다.

“흑마법 제 4위계, 충격발산.”

“윽!?”

아니, 들이박으려고 했다.

거리가 약 1m 정도 남았을 때 블루드는 엘라의 마법을 사용했고, 레이시는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스킬의 정보에 하양이에게 몸을 파묻고 마력을 쏟아부었다.

그러자 하양이의 몸이 크게 한 번 들썩이더니 그대로 멈춰졌고, 레이시는 충격이 등을 타고 지나가는 걸 느끼면서 곧바로 채찍을 휘둘렀다.

쌔애액­거리는 소리와 함께 블루드의 머리를 향해 날아가는 채찍.

블루드는 그 채찍을 보고는 전이라면 반응하지 못했을 거라면서 고개를 가볍게 뒤로 젖혔고, 레이시는 허공을 가르는 채찍을 보고는 눈을 크게 뜨다가 블루드가 자기를 보자마자 곧바로 나비를 불렀다.

“크하앙!”

레이시의 명령에 곧바로 손에 초록색 마력을 휘감고 휘두르는 나비.

땅이 뒤엎어질 정도로 거세게 나아가던 나비의 공격이었지만, 블루드는 레이시에 하려던 공격을 나비에게 하는 것으로 나비의 공격을 무효화시켰고, 레이시는 나비가 밀리자 곧바로 블루드에게 손을 내밀어 엘라의 스킬을 사용했다.

“흑마법의 5위계­대폭발!”

“흑마법의 5위계­대폭발.”

마탄끼리 맞부딪쳤을 때보다 후폭풍이 강했지만, 이번에는 서로 인식하는 상태에서 폭풍이 일어나서인지 레이시는 하양이에게 마력을 부여하면서 자기도 허벅지에 힘을 주고 후폭풍을 이겨냈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곧바로 채찍을 휘둘러 블루드가 있는 곳을 공격했고, 블루드는 직접 몸으로 싸우는 건 처음이라 영 어색하다면서 채찍을 피했다.

“엘라나 아샤는 어떻게 그렇게 잘 싸우는 건지 모르겠군. 나는 지금 엘라의 마력을 가지고 엘라의 마법을 사용하는데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잖아.”

“후웃……, 후웃…….”

“오, 아니군, 우리 올케는 좀 많이 힘든가?”

“으, 으읏!”

“그럼 조금 힘내게 해볼까? 이제는 꽤 익숙해졌으니까 말이야.”

“……네?”

“흑마법 제 9위계, 심판의 눈동자.”

블루드의 말이 끝나자마자 느껴지는 섬찟함.

언젠가 한 번 요새도시에 갔을 때 엘라가 고블린들을 학살하면서 보여줬었던 마법.

태양에서 빔을 쏴재끼는 미친 스킬에 레이시는 반사적으로 하늘 위를 쳐다봤다가 태양의 색이 블루드의 눈동자 색으로 변해있자 다급하게 모두 피하라고 소리를 질렀고, 레이시의 외침에 사람들은 하늘 위를 쳐다보고는 각자 펼칠 수 있는 최선의 방어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쏟아지는 폭격.

태양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미적지근한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인간을 죽이기에는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빛줄기가 떨어졌고, 레이시는 열심히 피하다가 하양이가 피할 수 없는 위치에 떨어지자 하양이의 몸을 걷어차 멀리 떨어진 다음 하양이를 소환해 하양이를 폭격에서 피하게 만들었다.

땅에 남는 코로나 문양.

일식이 일어났을 때 태양 근처에 일렁이는 문양처럼 녹아내리는 땅바닥에 레이시는 마른침을 삼키다가 블루드가 자기를 보자 어떻게 회피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옆으로 구른다?

그런 건 곧바로 블루드가 조준해서 막을 것이다.

나비와 코코에게 명령을 내려서 블루드의 마법을 취소시킨다?

그러다가 나비와 코코가 다치면 미안한 건 둘째치고 이 이후에 블루드를 어떻게 억제할 수가 없다.

엘라의 마법을 사용하는 리치가 30분 동안 날뛰면 이 왕궁 자체가 지워지겠지.

그러니 블루드가 노리는 나만 사라지는 게 맞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미스트의 스킬을 복사해서 그림자로 사라졌고, 블루드는 사라진 레이시를 눈으로 쫓다가 이내 등 뒤에서 생기는 인기척에 몸을 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레이시의 손톱이 블루드의 옆구리를 찔렀고 블루드는 옆구리가 찢어지자 웃음을 터트리면서 마탄을 쐈다.

“케흑!”

“시체라고 하지만 아직은 움직이는 몸이니 조금 봐주면 좋겠군.”

“으그윽!”

머리에서 울리는 고통에 그대로 발을 걷어차 올리는 레이시.

블루드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와중에도 전의를 불태우는 레이시의 모습에 전투 센스는 확실히 자기보다는 레이시가 더 낫다고 생각하면서 팔을 들어 마력방패를 만들었다.

퉁­하는 소리와 함께 막히는 발차기.

레이시는 발바닥에서 올라오는 고통에 이를 꽉 깨물다가 이번에는 아샤의 스킬을 뺏어서 주먹질을 하기 시작했다.

“으으윽!”

마력방패로 막힐 때마다 역으로 고통이 몰려오는 주먹.

하지만 레이시는 블루드의 정신을 빼놓기 위해서 멈추지 않고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블루드는 지금 사용하고 있는 마법으로는 어떻게 하기 힘들다는 걸 깨닫고 마법을 취소했다.

그러자 하늘이 맑아지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자신의 몸에 평범한 햇빛이 닿자 그대로 떨어지면서 다시금 나비를 불렀다.

“후려쳐!”

처음 블루드를 죽였을 때와는 다르게 망설임이 없는 레이시.

하지만 블루드도 처음 죽었을 때와 전혀 다르게 나비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자신의 등 뒤로 달려드는 코코에게 마탄을 날렸고, 나비에 비해 가벼운 코코는 그대로 궤도를 잃고 쓰러졌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거칠게 떨어지는 코코.

레이시는 그 소리에 그림자에 숨어들며 하양이에게 돌진을 명령했고, 블루드는 하양이를 힐끗 보더니 레이시만 쓰러트리면 된다고 생각하고 자기 등뒤를 노려 마력을 방출했다.

하지만 레이시는 손만 빠져나온 채 블루드의 발목을 꽉 잡았고, 블루드는 레이시의 행동에 헛웃음을 들이키며 당했다고 생각했다.

“역시 나보다는 자넼­!”

“메에에에에!”

부딪치는 순간 딸려가지 않도록 손을 떼는 레이시.

그 결과 블루드의 몸은 수수깡처럼 저 멀리 날아갔고, 레이시는 그 모습을 보고 추가타를 날렸다.

“흑마법 제 5위계, 대폭발!”

공기를 매개체로 한 폭발.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대로 시체가 사라질 정도의 폭발이었지만 엘라의 마법을 사용하는 리치라는 말답게 블루드는 멀쩡하게 살아남아 자리에서 일어났고, 레이시는 그런 블루드의 모습에 기겁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방금 그 공격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이었다.

무리를 해서 엘라의 9위계 마법, 원자융해를 사용한다면…….

말뚝을 제거할 때 보여줬었던 원자단위로 물질을 분해하는 마법이라면 어떻게든 블루드를 막을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자기 마력을 가늠해보다가 이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한 번 사용하면 분명 자기는 땅바닥을 뒹굴면서 일어설 수 없으리라.

회복 포션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만능이 아니니까.

애초에 5분 정도는 지나야 회복을 할 수 있을 테니 그건 마지막 수단.

차라리 30분을 버티는 게 나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숨을 고르면서 천천히 전의를 불태우기 시작했고, 블루드는 전혀 꺾이지 않는 레이시의 반응에 재미있다는 듯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엘라의 스킬을 배껴왔다고는 하지만 와전하게 배끼지는 못했는지 엘라보다 조금은 약한 마력.

엘라가 화났을 때 뿜어댔던 마력과 살기를 떠올린 레이시는 블루드가 은근히 약하다고 생각하며 기합을 넣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우……!”

“하하, 아직 할 수 있겠나?”

“왜 안 죽는 건가요?”

“아직 30분이 안 지났으니까, 신물이 그렇게 허접한 물건이 아니라네.”

블루드의 말에 레이시는 이를 꽉 깨물더니 앞으로 30분간 제대로 놀아줄 테니 놀고 나면 얌전히 죽어달라고 부탁했고, 블루드는 레이시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더니 심연마법을 사용했다.

“심연마법 제 7위계­끔찍한 피조물.”

“끄에에엑!”

“우욱……! 나비야! 쳐내! 코코는 나비 보조하고! 하양아! 날 옮겨줘!”

바닥에 손바닥을 대고 집중하는 블루드.

레이시는 눈앞의 괴물보다는 그 블루드가 더 위험한 것 같아 하양이의 등 뒤에 올라타나 마력을 끌어올리면서 각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각도가 나오자 마자 레이시는 채찍을 휘둘렀고, 블루드는 그 채찍을 보고 히죽 웃더니 채찍을 낚아챘다.

“아……?”

레이시의 채찍을 잡고 씩 웃는 블루드.

레이시는 그 순간 전신의 피부가 바싹 돋아나는 걸 느끼며 채찍에서 손을 떼려고 했다.

하지만 레이시가 손을 놓는 것보다 빠르게 채찍을 타고 전기가 흘러와 손을 놓을 수가 없었고, 블루드는 그대로 채찍을 잡아당기면서 마법을 사용했다.

“심연마법 제 9위계, 근원회귀.”

뭔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레이시.

블루드와 레이시를 감싸던 어둠이 사라지자 레이시와 블루드가 싸우던 곳에는 나비와 코코, 하양이만 덩그러니 남아 당황해하고 있었고, 외각 성벽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멍하니 레이시가 있었던 자리를 바라보면서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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