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3화 〉 위험한 인간3
* * *
엘라의 목소리에 다급하게 뒤로 돌며 칼을 휘두르는 검성.
레이시라면 어떻게든 상처를 남길 정도로 빠르고 강한 검격이었지만, 엘라는 가소롭다는 듯 마탄을 날렸다.
“어……?”
마법의 위계로 따지자면 1위계에 속하는 기초 중의 기초.
하지만 엘라가 쏘아낸 마탄은 평범한 마탄이 아니라는 듯 단번에 검성의 팔꿈치 아래로 지워버렸고, 검성은 사라진 자기 팔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악!”
“일어나.”
말 한 마디에 그대로 얼어붙는 공기.
물리적으로 숨결에 서리가 끼기 시작하자 검성은 사라진 팔을 붙잡고 일어나 레이시의 머리를 노리고 발을 놀렸다.
“새끼가 정신을 못 차리네?”
“꺅!”
“으아악!”
발차기를 다친 팔로 막으려는 레이시.
하지만 발차기의 충격이 팔에 닿는 일은 없었다.
발차기를 뻗는 순간 엘라는 검성의 다리를 꽈배기처럼 만들면서 검성의 발차기가 허공을 가르게 만들었고, 검성은 뒤늦게 찾아오는 고통에 그대로 주저 앉으면서 엘라를 쳐다봤다.
“등신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했어도 이성은 있는 줄 알았는데……,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지 않았나봐?”
“으, 으으으윽!”
“왜 레이시를 노렸을까? 내가 그렇게 못된 말을 했나? 응? 아샤보다 한참은 약한 주제에 지 좆만한 칼을 휘두르면서 검성이라고 말하면서 아샤의 도끼는 만병지왕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까댔으니 너도 그런 욕을 들을만 했을 텐데?”
“하악! 하악! 불공평하다아아! 왜! 왜 너만 그런 힘을 가지고 있지!?”
“응? 아, 뭐, 너도 죽음의 위기에서 몇 번이나 빠져나오면서 힘을 길렀다 이거지? 그런데 네가 약한 걸 어떻게 하라고, 이 등신아. 그리고 일 대 일로 싸우는 상황이라면 미스트나 아샤가 나보다 더 강해. 나는 순수 마법사니까.”
아직 멀쩡한 반대쪽 무릎을 세게 짓밟으면서 비웃는 엘라.
엘라는 남은 팔다리를 전부 망가트리더니 레이시에게 다가가서 포션을 뿌리면서 잘 견뎠다고 말했고, 레이시는 그제야 몰려오는 고통에 펑펑 울면서 엘라에게 안겼다.
“괜찮아, 괜찮아. 다 죽였어.”
“흐끙! 흐끄윽!”
“자, 괜찮아. 레이시……. 다 괜찮아.”
레이시를 달래던 엘라는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자책했다.
어째서 이럴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걸까?
처음에는 불굴의 장군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야 두 사람이 움직일 때는 언제나 장군이 계획을 세우고 검성은 현장에서 그 계획을 실현하는 역할이었으니까.
그래서 불굴의 장군의 염원인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 움직인다고 생각했고, 불굴의 장군이 자기를 미끼 삼아서 자신과 아샤를 빼돌렸을 때, 국왕을 죽이러 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검성은 자신의 예상보다 비이성적이었다.
성불구자가 되고 자신에게 무력으로 비웃음을 당한 게 그렇게 억울했었던 걸까?
그게 아니라면 자신이 그렇게나 미웠던 걸까?
아니, 어느쪽이든 레이시가 다쳤다는 건 변함이 없다.
“많이 아파?”
“아파요오……!”
“미안해, 응, 이제 괜찮아.”
억지로 기어오는 검성을 염력으로 들었다가 바위에 처박고선 레이시의 팔을 쓰다듬는 엘라.
솔직히 말하자면 레이시가 이렇게 견뎠다는 게 안 믿겼다.
아무리 신체의 힘이 강하고 마력도 왕궁 마법사보다 많다고 해도 강한 사람을 상대해본 경험이 없는 데다가 성격 자체가 싸움에서 악독하게 버티고 살아남을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니까.
그리고 아마도의 이야기지만, 레이시가 아이가 없었다면 레이시는 그대로 도망쳤을 것이다.
자기가 설령 자기나 미스트에게 불리한 일이 생겨도 그냥 도망치라고 가르쳤었으니까,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건 에일렌과 미르, 레아 때문이겠지…….
엘라는 그 생각에 괜히 더 마음이 아파서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다가 레이시의 이마에 입을 맞춘 다음 안으로 들어가 미스트의 보호를 받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레이시가 안에 들어가자 엘라는 조용히 손을 뻗어 바위 채로 검성을 염력으로 들고 왔고, 검성이 마력으로 몸을 감싸자 헛웃음을 들이키다가 그대로 주먹을 쥐고 손목을 아래로 내렸다.
“너, 중력이 40~50배까지 올라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끄으으!?”
“아무리 마력으로 강화해도 동맥과 정맥 같은 큰 혈맥 외의 모세혈관들이 터지기 시작하더라고. 물론 아샤처럼 정도를 벗어난 인간이라거나 혈관 정도는 파열되어도 어떻게든 피를 몸에 보내는 미스트처럼 정신 나간 개조 인간 같은 경우에는 버티지만……, 너는 못 버티는 거 같네?”
칠공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 엘라를 노려보는 검성.
엘라는 그런 검성의 근성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손끝 하나 쉬이 움직이지 못하는 녀석 주제에 노려보면 뭘 어떻게 할 수 있냐면서 손을 다시금 휘둘렀다.
그러자 몸이 번쩍 뜨더니 그대로 아래로 내다 꽂히는 검성.
중력은 중력대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가속도까지 몸에 꽂히자 검성은 그대로 피와 위액을 토해내면서 버둥거렸고, 엘라는 망가진 팔다리를 열심히 휘적거리는 검성의 발악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계속해서 검성을 괴롭혔다.
화풀이도 하고 검성의 정신력을 깎아낼 겸.
그렇게 계속 마법을 써재끼자 검성은 이내 각오를 다졌는지 큰 고함과 함께 마력을 폭발시키면서 엘라에게 달려들었다.
한쪽 팔은 없고, 다리는 다 망가져서 제대로 달리지 못하지만, 마력으로 억지로 몸을 고정시키고 어떻게든 공격을 가하는 검성.
엘라는 그런 검성을 싸늘하게 내려다보다가 몸을 돌렸다.
방어나 회피가 아닌 무시.
검성은 그런 엘라의 행동에 자기를 언제까지 무시할 수 있겠냐면서 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뻗었다.
아니, 뻗으려고 했다.
카드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자신의 가슴에서 튀어나오는 손.
인간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손톱이 너무나 튀어나온 손에 검성은 미스트냐면서 부들부들 떨었지만, 등 뒤에서 나온 목소리는 증오해 마지 않는 적의 것이 아니었다.
“미스트는 안에 있다. 그리고 너 같은 벌레는 미스트가 나서지 않아도 된다.”
자신의 기억에 있는 목소리.
하지만 엘라나 미스트, 아샤와 다르게 공적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그저 강한 것 같다는 보고만 한 줄 적혀있는 존재.
“미, 네르바!?”
돌연변이 하피.
자기의 목숨을 앗아가는 게 마법의 공주도, 전설의 암살자도, 전장의 야차도 아니라 강하다고는 하지만 일개 몬스터에 불과한 하피 때문이라는 걸 깨달은 검성은 크게 비명을 지르면서 이럴 순 없다고 발악하기 시작했고, 미네르바는 심장을 뽑았어야 했냐며 입술을 비틀다가 검성의 말에 손을 멈췄다.
“블루드으으으!”
분명 레이시의 숙적의 이름이었지?
미네르바는 머릿속에서 그 사실을 떠올리고는 검성을 가만히 바라봤고, 엘라는 머릿속으로 뭔가 생각하다가 이내 경악한 얼굴로 미네르바에게 그냥 찢어 죽이라고 했다.
“미스트! 떠날 채비를 해!”
“네?”
“블루드가 아빠 죽이러 갔어! 여기에 있는 건 미끼야!”
“네! 정리하겠습니다!”
“레이시, 미안하지만 동물들에게 포션을 뿌려준 다음 애들을 마차로 데려다줘. 그런 다음 애들이랑 같이 방에 들어가서 애들을 달래.”
엘라의 다급한 명령.
레이시는 치료를 받았음에도 저릿거리는 팔을 부여잡고 고개를 끄덕거렸고, 미네르바는 레이시가 하양이와 다른 동물들을 치료하기 시작하자 검성의 가슴에 뚫린 구멍에 다른 손을 집어넣고 양쪽으로 쭉 잡아당겼다.
그러자 양쪽으로 찢어져서 죽는 검성.
엘라는 그런 검성을 보고 욕설을 퍼붓다가 시체를 불태우고는 뒤늦게 따라온 아샤를 보고 자기와 아샤는 코코를 타고 가자면서 코코의 등 뒤에 올라탔다.
“미스트! 미네르바, 레이시랑 같이 수도로 돌아가! 나랑 아샤는 일직선으로 수도로 간다!”
“알겠습니다!”
“뭔데? 왜 그러는데? 왜 애들 털에는 피가……. ……저건 검성? 설마…….”
“여기 이 녀석들은 미끼야! 가자! 시간을 계산하면 아슬아슬해! 잘못하면 블루드랑 수도에 있는 인간이랑 싸워야 해!”
엘라의 말에 안색을 굳히는 아샤.
아샤는 코코의 등 뒤에 올라타더니 마차를 힐끗 보고는 말에게 해주듯 코코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길은 내가 지도해줄 테니까 달리렴, 다른 건 엘라가 처리해줄 거야. 그냥 달려.”
아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달리는 코코.
실버 스콜, 혹은 실버스 콜이라고 불리는 맹수답게 코코는 은빛의 털을 휘날리며 말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고, 엘라는 말과 다른 방향으로 흔들리는 코코의 몸에 허벅지를 꽉 조이면서 생각에 잠겼다.
블루드가 언제부터 수도로 달렸을까?
미스트와 함께 같이 그랑메르 강을 건너서 달려왔다고 한다면, 아마 아슬아슬하게 동시에 도착하려나?
숨어서 오고 있다면 수도로 오는 길 네 개에 각자 한 명씩 찾아가서 죽이면 되는데…….
블루드가 뛰어난 건 정치질과 사람을 충동질시키는 거지 전투력이 아니니까.
하지만 수도로 간다면 수도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 내분을 일으킬 거고 실력이 있는 암살자라면 국왕을 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결과 목숨을 잃겠지만, 블루드의 수하들은 전부 목숨을 개똥으로 아는 쓰레기 새끼들이고 죽이는 대상이 애초에 국왕이니 다들 그 정도는 각오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엘라는 입술을 깨물면서 아샤에게 국왕이 암살당하면 어떨 거 같냐고 물어봤다.
“혼란해지겠지. 지금 국왕 후계자가 2명인데도 귀족들끼리 싸우지 않는 게 지금 국왕 덕분이니까. 슈레이랑 아이야트가 사이좋게 지내겠다고 발악을 해도, 귀족끼리 싸우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 그리고 두 사람은 귀족을 통합할 실력이 안 돼.”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빠가 똑같은 상황에 처해도 그런 상황은 이루어지지 않겠지.”
“엘레오놀이라면 할 수 있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무리겠지.”
“더 개판이 되겠지.”
“그리고 그 사이에 블루드가 사람을 심어 넣을 수도 있고.”
“좆됐네.”
“씨발.”
짧게 욕설을 주고받는 엘라와 아샤.
두 사람은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다가 이내 그렇게 되지 않을 방도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한 가지 수단을 떠올리고는 동시에 자신의 수단을 말해봤다.
“왕궁이 좆되더라도 블루드만은 반드시 죽인다.”
“역시 그 수밖에 없나?”
왕궁의 피해를 감수해서라도 죽이자.
엘라와 아샤는 동시에 그 결론에 도달하고는 코코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코코는 엘라의 말에 더더욱 빠르게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각 마차를 미네르바에게 맡긴 미스트는 마차 안에서 수정구로 왕실과 통화하기 시작했다.
“네, 블루드가 수도를 노릴지도 모릅니다. 지금 저희는 검성과 불굴의 장군을 처리하고 올라가는 길입니다.”
“으, 으음……!”
“새로운 인원이 보이면 그대로 자택 감금시키시고 자백마법의 활용을 적극 수용해주세요.”
“그 마법은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으면 뇌에 심각한 데미지를 입지 않나요?”
“오라토리엄 왕국을 위해서라면 사상 검증 정도는 할만하죠.”
“그, 그렇게 하겠습니다.”
“일단 제가 훈련시킨 사람들을 사용하시죠. 그들 정도라면 기억이 사라졌는지 자백마법에 대항하는 세뇌 마법을 사용하는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상대쪽 마법사의 말에 한숨을 내쉬면서 연락을 끊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한숨에 많이 심각하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질문에 최악을 말해줄지 최선을 말해줄지 물어봤다.
그러자 레이시는 침을 삼키면서 최악의 상황을 말해달라고 부탁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부탁에 숨을 크게 내쉬면서 자기라면 그 조그마한 틈 사이에 국왕과 왕비들을 전부 죽이고 나라를 혼란에 빠트릴 수 있다고 말했다.
“호위를 받는 고위급 인사를 죽이는 데는 큰 틈이 필요하지 않아요. 오히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야말로 작은 틈에 의해서 죽으니까요. 이렇게 혼란이 생겼을 때 그릇에 독을 묻히고 잠자리에 향을 피우면 그만이에요.”
“그, 런…….”
“전면전에서는 기사가 더 강할 거예요. 하지만 뭔가를 죽이는데 꼭 강한 힘이 필요한 건 아니에요.”
“……모두 무사하면 좋겠어요.”
“저희가 얼마나 빨리 도착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미네르바, 하양이에게 조금 무리시켜도 좋으니까 최대한 먼 거리를 이동해주세요. 그런 다음 하양이가 지치면 나비로 바꾸고요.”
“그럼 하양이가 못 쫓아오지 않나? 산양이든 호랑이든 체력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
“그 부분은 레이시의 마력으로 해소할 거예요. 테이머의 마력이라면 나비도 하양이도 양껏 먹어도 견딜 수 있으니까. 레이시, 다쳤었는데 미안하지만, 힘내줘요.”
“네!”
지금은 우는 소리를 할 때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력을 내뿜기 시작했고, 레이시의 마력을 받은 하양이와 나비는 크게 울면서 힘차게 땅을 박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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