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2화 〉 위험한 인간2
* * *
무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의 무리.
레이시는 그 모습을 보고 나비를 부르면서 여관의 앞으로 나와 그냥 그대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애초에 레이시를 해하려고 온 건지 칼을 들고 달려들었고, 레이시는 그 모습에 그대로 채찍을 휘두르며 사람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쩍하는 소리와 함께 갈라지는 사람의 몸통.
레이시는 순간 역함에 헛구역질했지만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메우면서 칼을 휘두르자 칼날을 피하면서 나비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그러자 나비는 초록색의 마력을 휘감은 팔로 칼을 휘두르는 사람의 몸통을 후려쳤고, 그 자리를 메운 사람은 그대로 파리처럼 짓이겨졌다.
보통 사람들이 본다면 겁내는 게 정상인 일.
하지만 레이시에게 달려드는 사람들은 정상이 아닌 건지 크게 소리를 지르며 레이시를 계속해서 공격하려고 했고, 레이시는 그 모습에 주춤거리면서 뒤로 물러났다.
“죽어!”
“그건 안 돼요.”
내가 죽으면 에일렌과 미르, 레아를 누가 돌본다고…….
그렇게 생각을 한 레이시는 입술을 꽉 깨물고 자기를 죽이려는 병사에게 사과했고, 병사는 레이시의 사과에 죽으라며 다시 소리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레이시의 주먹이 입에 꽂히면서 병사의 머리가 터졌고, 레이시의 공격을 본 나비도 흥분했는지 레이시의 옆을 노리던 사람을 밟아 죽인 다음 크게 소리를 질렀다.
“커허어어어엉!”
낮게 울리는 큰 고함.
음파만으로 장기가 울릴 정도로 커다란 나비의 고함에 병사들은 일순 멈췄고, 그와 동시에 은색의 형상이 레이시의 등 뒤에서 뛰쳐나왔다.
“코코!”
은색의 주인은 에일렌의 강아지로 입양한 코코.
어지간한 기사단은 피해 없이 잡는 것이 무리라고 알려진 실버 스콜이라는 종답게 코코는 사람들 사이를 헤집으면서 사람들을 물고 찢었고, 병사들은 한 마리만 있어도 대단한 맹수를 두 마리 씩이나 데리고 다니는 레이시의 모습에 입술을 깨물다가 검성을 위해서라며 소리를 지른 다음 레이시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이미 스위치가 켜진 레이시는 아샤와 미스트의 스킬을 복사하면서 전투할 준비를 끝낸 상태였고, 야차 특유의 신체는 제대로 소화하지 않은 스킬도 사용하며 병사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레이시가 손을 휘두를 때마다 갈리는 병사의 몸.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린 나비는 레이시의 옆에서 레이시를 호위하듯 레이시에게 날아오는 무기를 쳐내면서 병사들을 죽였고, 속도와 지구력이 뛰어난 코코는 계속해서 진영을 헤집으면서 병사를 죽였다.
반대로 병사들은 레이시에게는 상처를 남기지 못하고 나비와 코코의 몸에 생체기만 남기며 죽어갔고, 레이시는 그런 병사들을 착잡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마지막 한 명을 처리한 다음 눈을파르르 떨었다.
“후우우…….”
“크릉.”
“괜찮아요. 나비, 코코. 크게는 안 다쳤죠?”
미스트의 스킬을 흉내내서 나비와 코코를 치료해주는 레이시.
나비와 코코는 레이시의 치료에 몸을 부대끼다가 이내 동시에 고개를 틀면서 한 곳을 쳐다봤고, 레이시는 그런 그들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뭔가 번쩍거리자 곧바로 고개를 틀었다.
그러자 레이시의 뺨을 가르고 지나가는 무언가.
레이시는 뺨을 붙잡고 부르르 떨다가 이내 천천히 흘러내리는 핏물에 침을 삼키면서 뭔가 날라온 곳을 바라봤다.
“후우, 후우.”
“……윽.”
부하들이 다 죽자 나타나는 검성.
레이시는 검성이 이를 갈면서 나타나자 마른 침을 삼키면서 채찍을 쥐었고, 나비와 코코는 검성의 등장에 이를 드러내며 다시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레이시는 눈에 핏발이 제대로 선 검성을 보고는 눈을 찌푸리다가 여관을 힐끗 쳐다보다가 여관으로는 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여관으로 갔다가 에일렌이나 미르, 레아가 다치면 안 되니까.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눈을 이리저리 돌다가 숨을 깊게 들이내쉬고 소리를 질렀다.
“미네르바아아아아아아! 엘라아아아아아아! 아샤아아아아아아아아!”
레이시의 고함에 달려오는 검성.
검성은 레이시를 죽이겠다면서 칼을 크게 휘둘렀고, 레이시는 그 칼을 바라보다가 채찍을 겹쳐서 칼날을 막아냈다.
“으으윽!”
채찍을 잘라내지 못하고 레이시의 코 앞에서 멈추는 칼날.
레이시는 곧바로 검성의 배를 걷어차면서 거리를 벌렸고, 검성은 다시 칼을 휘두르며 레이시에게 들러붙었다.
레이시는 흉내 낼 수 없는 회복 속도.
레이시는 중심을 회복하는 검성의 모습에 입술을 깨물다가 채찍을 휘둘러 돌진을 막으려고 했고, 검성이 채찍을 검면으로 쳐낸 다음 다시 달려들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비가 마력을 잔뜩 감은 다리를 휘둘러 검성을 후려쳤고, 검성은 나비의 다리에 반격을 가하면서도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데굴데굴 굴렀다.
“나비야!”
“크릉!”
“회복! 코코는 대기!”
정말 다행인게 나는 마력이 많구나.
레이시는 나비와 코코가 마력을 빨아먹고 있어도 충분히 남아있다는 걸 직감할 수 있자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검성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
돌려보내는 건 무리니까 최대한 상처없이 상대방을 제압해야 한다.
미스트는 아이를 돌보고 있으니까 안 된다.
아니, 그것보다 아까부터 여관 안에서도 피냄새가 나는 걸 보면 여관 안으로도 적이 들어간 상태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에서 검성을 쓰러트리지 않으면 안 된다.
미네르바가 내 목소리를 들었다면, 금방 날아올 테니까…….
아니, 마을 안에서도 피 냄새가 나는 걸 보면 지금 억지로 붙잡고 있구나.
아샤가 말하길 벽천화 기사단의 사람들이 죽는 걸 각오하고 막는다면 미네르바와 미스트에게서도 시간을 벌 수 있다고 했으니 그런 사람들은 미네르바와 미스트에게 보내고 내게는 약한 사람을 보내고 나를 죽이려는 거겠지.
레이시는 이상하게 팽팽히 돌아가는 머리에 숨을 깊게 내쉬다가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첫 번째, 미스트와 미네르바는 지금 정예에게 붙들려 나를 도와줄 수 없다.
두 번째, 하지만 두 사람을 해치우는 건 불가능하기에 검성은 병사들이 희생하는 나를 인질로 만들던지, 죽이던지 그 두 개 중 하나는 해내야 한다.
세 번째, 그러니 나는 시간을 벌어서 시간을 최대한 벌어야 한다.
시간을 버는 데 가장 좋은 방법…….
그건 상대방을 단순히 만드는 거라고 했던가?
아샤의 말을 떠올린 레이시는 어떻게 하면 검성을 도발할 수 있을지 생각하다가 이내 엘라가 검성과 척을 졌을 때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그대로 따라말했다.
“좆도 작아서 검성이라고 불리는 주제에 유부녀를 겁탈하려는 건가요? 하지만 아무리 유부녀라고 해도 그렇게 작은 좆을 무식하게 들이미는 사람에게는 자애롭게 대할 수 없답니다?”
“……!? 너어어어어!”
“정말로 낭심 보호대를 안 하네요? 여자들도 낭심보호대는 하고 있는데……, 혹시 그거보다 작은 거 아니겠죠?”
입술을 비틀고 비아냥거리는 레이시.
레이시는 엘라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면서 검성의 아랫도리를 봤고, 이내 피식 비웃으면서 새끼손가락을 들어 크기를 가늠하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검성은 곧바로 눈이 돌아가 레이시를 죽일 듯이 달려들었고, 레이시는 검성이 자기에게 칼을 찌르는 것과 동시에 하양이를 소환했다.
“크헉!?”
냉정하게 있었다면 반격했을지도 모르는 공격.
하지만 레이시의 도발에 눈이 완전히 돌아간 검성은 하양이의 박치기에 그대로 맞고 허공을 빙글빙글 돌았고, 레이시는 그 모습을 보고 채찍을 휘둘렀다.
굳이 결정타는 날리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시간만 벌면 미네르바가 됐든 미스트가 됐든, 아샤가 됐든, 엘라가 됐든 구하러 온다.
그런 생각에 견제만 하자 검성은 이를 꽉 깨물면서 그러고도 전사냐며 레이시를 도발했지만, 저런 종류의 도발은 전생에서도 겪어봤을 수준의 질낮은 것이라 레이시는 태연하게 웃어넘기며 역으로 도발해줬다.
“그게 작은 사람들이 인내심도 짧다더니 정말이네요. 자신감이 없어서 화부터 내고 보는 건가요?”
“이 새끼가아아아!”
“전 당신의 딸이 아닌 걸요? 뭐, 애초에 강간으로 낳은 자식들이 당신을 아버지라 여겨줄 지는 의문이지만요.”
도발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상대방이 냉정해질 틈을 주지 않을 것.
그렇다고 해서 너무 과하게 짜내서 하는 도발은 피할 것.
어디까지나 천천히 비아냥거리면서 툭툭 건드는 것이 가장 짜증난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검성이 하는 말을 일일이 받아치기 시작했다.
“너를 찢어 죽여주겠다!”
“응~ 어떻게요?”
“아아악!”
“소리밖에 못 지르네요? 하긴 하반신을 놀리는 걸 보면 유인원 이하의 지능이라고 늘 생각했어요.”
“죽이겠어!”
“네, 그래보세요. 어떻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나비와 코코가 길을 막으면 반격을 가하며 레이시에게 쫓아오는 검성이었지만, 작정하고 시간만 벌기로 한 레이시는 자신의 애완동물들에게 죽일 필요는 없다고 말한 다음 가까이 오면 밀어내고 멀어지면 접근을 막는 것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검성은 점점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시간을 끌면 불리해지는 건 자신이었다.
자기가 들고 있는 숏소드는 나비와 코코처럼 커다란 동물을 상대로는 아무래도 효율이 떨어져서 돌파하기가 힘들고, 그렇게 시간을 끌리다 보면 누가 됐든 엘라의 측근이 날아와서 자기를 죽일 거다.
그나마 가장 약한 사람이 레이시인데…….
“후우, 후우.”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처음 기습에 성공한 걸 제외하면 레이시에게도 제대로 된 상처를 내지 못하고 있다.
약자 주제에, 자신에게 맞먹으려고 들고 있다.
“기껏해야 엘라의 성노예 주제에!”
“당신 아내들이 성노예지 저랑 엘라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요?”
“웃기는 군! 기껏해야 야차 주제에! 평민 이하의 인간 언저리가!”
“그렇게 말씀하셔도……. 사랑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할 따름이네요.”
“죽여주마!”
“아직 전 살아 있잖아요?”
“크아악!”
나비와 코코 중 한 마리만 없었어도 이미 크게 다쳤을 레이시.
하지만 지금 레이시는 세 마리의 맹수를 다루고 있었고, 검성은 좀처럼 뚫리지 않는 방어에 도망치려고 남겨뒀던 마력도 끄집어내면서 레이시를 공격했다.
“윽!”
곧바로 튀는 피.
나비와 코코의 덩치를 생각해보면 커터칼에 팔뚝을 베인 수준의 상처지만, 레이시는 나비와 코코에게 상처가 생겼다는 사실에 움찔 떨면서 망설였고, 검성은 그 틈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자신에게 저항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레이시는 전투에 적합한 성격이 아니다.
생사와 연결된 상처가 아닌데도 애완동물에게 상처가 생겼다는 것만으로 틈을 보이니까.
그렇게 생각한 검성은 나비와 코코, 하양이의 몸에서 최대한 많은 피가 튀어나오게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검성의 예상대로 당황하면서 빈틈을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빈틈에 검성은 놓치지 않고 레이시를 공격했고, 레이시는 날아오는 칼날에 입술을 꽉 깨물다가 팔뚝에 채찍을 감고 그대로 칼날을 받아냈다.
찌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채찍이 찢어지고 팔에도 긴 상흔이 남고 마는 레이시.
검성은 그런 레이시를 보며 이제 죽여주겠다며 소리를 지르며 칼을 휘둘렀고, 레이시는 상처를 입은 팔로 칼날을 막아내다가 피가 줄줄 흐르기 시작하자 입술을 꽉 깨물고 엘라의 마법을 흉내내서 사용했다.
워낙 가까운 거리에서 사용한 것 때문인지 후폭풍에 그대로 몸이 날아가는 레이시.
나비와 코코, 그리고 하양이는 날아가는 레이시의 모습에 레이시를 지키려고 했지만, 그보다는 검성이 조금 더 빨랐고, 검성은 레이시의 앞으로 다가가 칼을 내려쳤다.
“흐읏! 아, 아파아아아앗!”
“흐흐! 뼈로 칼을 막다니 동물을 아낀 것치고는 꽤 하는군! 하지만 거기까지. 아까부터 이상한 기분이 드니 널 죽이겠다!”
연정의 야차 스킬도 안 먹히네.
검성의 말에 그렇게 생각하면서 레이시는 점점 다가오는 칼에 이를 꽉 깨물었고 이내 검성을 비웃었다.
“크흐으응! 그래도 제가이겼어요.”
“무슨?”
“개새끼가 나한테 못 이겨서 레이시를 건들여? 그래도 검성이라고 자존심은 있을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까 순 개새끼네?”
시간을 벌었고, 엘라가 왔다.
따라서 내가 이겼다.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피가 흐르는 팔을 부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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