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5화 〉 떠나기 전 다시 짧은 만남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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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떠나시겠군요.”
“응, 왕궁에 가서 작전을 짜고 그것에 맞춰서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아.”
“그럼 준비를 해두겠습니다.”
“고마워. 미스트, 엘레오놀을 조금 도와줄래?”
“알겠습니다.”
“레이시랑 미네르바, 아샤는 애들이랑 같이 마차에 들어가서 대기하고.”
“네에.”
불확실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도로 가기로 한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명령대로 애들을 데리고 마차 안으로 들어갔고, 엘라는 레이시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어떻게 하면 아무런 문제 없이 수도로 돌아갈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
“사실 어떻게 돌아가든 별 문제는 안 될 거예요. 공주님은 공주님이시니까요.”
“저도 미스트 씨의 의견에 동의해요.”
“그럼 엘레오놀이 쉽게 일할 수 있게 권위를 넘겨주는 걸 생각해봐.”
“그런 거라면 좀 고민해봐야겠네요.”
엘라의 말에 난처하다는 듯 뺨을 긁는 엘레오놀.
엘라는 자기가 힘을 주겠다는 데도 망설이는 엘레오놀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왜 고민해야하는 거냐고 물어봤고, 엘레오놀은 갑자기 자기가 권력을 얻어도 주변 귀족들의 견제가 들어올 뿐이지 않냐며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스트라이크 가문보다 영향력이 강해지면 안 돼요. 그러면 사람들이 저랑 스트라이크 가문 사이에서 줄타기하느라 서로 협력하지 않을 거예요.”
“끄응, 그런 거야?”
“네, 제 의견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엘레오놀 공작님께는 정말 죄송한 이야기지만, 공작님께서는 조금 힘들게 일하셔야 해요.”
“그렇게 해놓고 가기에는 양심이 조금 찔리는데.”
“스트라이크 가문의 사람을 부르는 건 어떨까요?”
“으응? 있나?”
“흑창 기사단에 한 명 있습니다. 현 당주의 8촌쯤 되는 관계지만, 당주와는 자주 이야기하면서 사이가 나름 괜찮다고 하네요. 그를 임시 당주로 만든 다음에 스트라이크 공작이 환상으로라도 엘레오놀 공작님께 협력을 요청하면 어떨까요?”
보통은 협력을 먼저 요청하는 쪽이 숙이고 들어간다는 이미지지만,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에 따라서 그 정도 위 아래는 어떻게든 뒤엎을 수 있다.
미스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엘레오놀을 바라봤고, 엘레오놀은 미스트의 시선에 싱긋 웃으면서 그 정도는 확실히 할 수 있다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엘라는 그렇게 하기로 하고 미스트에게 일을 맡겼고, 미스트는 엘라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면서도 엘라는 뭘 할 거냐고 물어봤다.
“나?”
“네, 어디 나가시려던 거 아니었나요?”
“뭐, 맞기는 한데…….”
지금 여기에서 말하기는 곤란하다는 듯 눈짓하는 엘라.
엘레오놀은 엘라의 시선에 사용인들을 물렸고, 엘라는 엘레오놀의 배려에 한숨을 내쉬면서 평원을 가리켰다.
아직 수복이 끝나지 않은 전투의 흔적이 남은 땅.
엘레오놀은 엘라의 시선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말뚝 같은 건 전부 파괴되었다고 엘라가 말하지 않았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한 번 확인할 뿐이라고 말했다.
“확인이요?”
“뭔가 찝찝해서. 미스트, 사교도의 특징이 뭐지?”
“음, 마약 중독자와는 다른 의미로 미쳤다는 거죠?”
“그래. 그런데 이것만 하고 갔다기에는 조금 안 믿겨서 그래.”
“그래서 마차에 두 사람을 둔 거군요?”
“응, 하여튼 한 번 둘러보고 올 테니까 일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그럴게요.”
엘레오놀과 미스트의 대답에 엘라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서 복구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쓸모없는 짓이라는 건 알지만…….
“사교도는 다 그런 녀석들밖에 없으니까.”
마약중독자가 광견병 걸린 똥개라면 사교도는 바퀴벌레.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고 대체 어디서 그러는 건지 몰라도 어떻게든 번식한다.
없애려면 그냥 초가삼간을 태우듯이 태워야 하는데, 지금 이 방식은 너무나 쉽게 퇴치당한 느낌이 없잖아 있다.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원래라면 말뚝이 박혀 있을 장소를 더듬어가면서 멍하니 평야를 돌아다니며 탐색 마법을 쓰기 시작했다.
“으음, 있다고 한다면 여기에 있을 텐데.”
그렇게 싸움이 시작된 곳으로 간 엘라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발로 땅바닥을 두어 번 걷어찼고, 그래도 반응이 없자 한숨을 내쉬면서 착각이었나 싶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드래곤하고 기간테스 같은 자연재해에 가까운 몬스터끼리 싸웠는데 거기에서 뭔가를 해보겠다면서 숨어있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하지.
엘라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미약하게 남은 불안함을 떨쳐낸 다음 몸을 돌렸지만, 그 순간 들리는 소리에 몸을 돌린 뒤 소리가 난 곳으로 손바닥을 펼쳤다.
“심연의 제 4위계, 피로 가중.”
평범한 사람이라면 단숨에 혼절해버릴 정도의 마법.
하지만 엘라는 마법을 사용하는데 망설이지 않았다.
어차피 여기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공작 가문의 방계 정도일 텐데 그런 사람들이라면 어떻게든 무마할 수 있으니까.
그렇기에 엘라는 마력을 좀 더 불어넣은 다음 소리가 난 곳에서 무언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나자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고, 이내 사람들이 쓰러져 있는 모습에 씩 웃었다.
이 사람들은 여기에 토박이의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상인이나 공무원 같아 보이지도 않으니…….
“역시 사교도였네.”
옷을 들추자 드러나는 문신.
엘라는 발견된 사람들을 정리한 다음 하늘로 마탄을 쏘면서 미스트를 불러냈고, 3분 뒤 미스트가 나타나자 미스트에게 자신이 붙잡은 사람들의 정체를 알려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로 바퀴벌레가 있을 줄은 몰랐어.”
“그러네요. 그럼 대충 정리하고 오겠습니다. 공주님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글쎄. 오랜만에 미스트가 작업하는 걸 직접 구경해볼까?”
“후후, 열심히 해볼게요.”
엘라의 말에 단검과 집게, 그리고 화로를 꺼내며 웃는 미스트.
피로에 절여진 사교도들은 그런 미스트의 모습에 몸을 비틀면서 어떻게든 저항하려고 애썼지만, 미스트는 그런 사교도들의 저항을 보고 비웃으면서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10분 뒤 미스트는 사교도들의 뇌에서 온갖 지령을 뽑아낸 다음 엘라에게 보고하기 시작했다.
“음, 지나가는 길에 정리하는 수밖에 없겠네.”
“네, 그러도록 하죠. 아, 참. 시체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그냥 녹여.”
“알겠습니다.”
엘라의 말에 시체를 한 곳으로 모은 미스트는 산성 계열의 독극물을 잔뜩 뿌려 정리한 다음 엘라에게 청결 마법을 사용해주었고, 엘라는 미스트의 봉사를 받으면서 정보를 정리하며 앞으로의 일정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정이 끝나자 엘라는 레이시와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며 투덜거렸고, 미스트는 엘라의 투덜거림에 어울려주면서 이번 일이 끝나면 에일렌이 다 자랄 때까지는 큰일이 없을 테니 힘내서 하자면서 엘라를 다독였다.
“그나저나 이 정보대로라면 불굴의 장군은 수도를 직접 공격하려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음, 하긴 그러는 게 그 양반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수이긴 하지.”
“그런데 불멸대대도 없는데 수도에 처들어와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혹시 모르지 다른 병사들이 있을 지도.”
“그럼 왕궁에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응. 그나저나 미네르바를 어떻게 하지?”
“네?”
“전쟁터에 레이시를 데리고 갈 수 없으니 수도에 머물게 할 텐데 수도에 불굴의 장군이 처들어오면 레이시가 안전하다고 100% 확신할 수 없잖아.”
“으음, 그건 그렇지만 다른 지역에 데려다 놓기도 조금 그렇죠.”
“그건……, 그렇지만.”
“뭐, 그때쯤이면 흑창, 백순, 진은, 벽천화, 지복룡 기사단 등등 여러 기사단이 모이니 믿는 수밖에 없죠. 레이시가 약한 것도 아니고요.”
“그러네…….”
미스트의 말에 한숨을 푹 내쉬면서 엘레오놀이 머무는 저택으로 돌아가는 엘라.
엘라는 엘레오놀이 어떻게 됐냐고 물어보자 사교도가 있어서 처리했다고 말해주었고, 엘레오놀은 엘라의 보고에 진지한 얼굴을 하더니 기사단에게 미리 알려주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거수자를 발견하면 체포하던지 즉결처형하던지 마음대로 하게 해야겠어요.”
“그래, 그러는 게 낫겠어.”
“그럼 그렇게 하도록하고 언제 떠나실 건가요?”
“오늘 저녁까지는 떠날 거야.”
“알겠습니다. 흑창 기사단 내 스트라이크 가문 방계 출신의 기사는 찾아뒀답니다.”
“수고했어.”
엘레오놀의 말에 이건 좀 편하겠다면서 아래로 내려가서 기사를 부르는 엘라.
엘레오놀이 불렀다던 기사는 엘라를 보자 자기소개를 시작했고, 확실히 멀기는 하지만 스트라이크 가문의 핏줄인 걸 확인한 엘라는 미스트의 도움을 받아 스트라이크 가문 당주와 통화한 다음 내일 행사를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럼 우리는 가볼게.”
“네. 조심해서 가세요.”
“흑창 기사단, 벽천화가 사라지면서 부담이 늘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쿨리아 공작을 잘 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믿는다.”
“넵! 파우스트 공주님! 흑창 기사단은 최선을 다해 쿨리아 공작님을 보좌하겠습니다!”
“그래, 믿는다.”
엘라는 미스트에게서 받은 왕가의 칼을 단장에게 건네주며 흑찬 기사단 단장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주었고, 단장은 엘라의 다독임에 눈을 빛내다가 허리를 90도로 숙여 마차를 배웅해주었다.
그러자 레이시는 조금은 부담스럽다며 어색하게 웃었고, 엘라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저 사람들은 오라토리엄 왕가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니까.”
“으응, 그건 뭐, 그렇지만요. 그래도 조금 무섭네요. 저렇게 열정적인 사람은.”
“아하하, 뭐, 레이시랑 마주하는 사람은 벽천화 기사단밖에 없으니까 안심해.”
“아,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나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풉.”
레이시의 말에 작게 웃다가 기지개를 켜면서 아샤에게 다음 목적지를 알려주는 엘라.
아샤는 엘라의 종이를 받고는 그대로 하양이에게 길을 알려주면서 왜 원래 가려던 곳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가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아샤의 질문에 그냥 그러려고 간다고 말해주었다.
“곰탱이 사냥 좀 할 겸.”
“네? 가, 갑자기 곰을요? 곰 고기를 먹고 싶은 거예요?”
“아니, 저번에 내기 한 거. 밤에 힘 써주겠다고 했잖아.”
“우우웃……!”
엘라의 능글맞은 웃음에 레이시는 얼굴을 붉히다가 농담인 거 아니였냐며 투덜거렸고,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자기는 잠자리로 농담할 정도로 레이시를 애매하게 사랑하는 게 아니라고 대답해주었다.
“몸으로 말해줄까?”
“돼, 됐어요! 지금은 애들도 있는데 무슨 말이에요?”
“다 자잖아.”
“그래도요, 혹시 모르니까 안 돼요. 그런 종류의 스릴을 즐기기는 싫다구요…….”
얼굴을 붉히면서 투정을 부리는 레이시.
안 그래도 에일렌이 빨리 크면서 언젠가 성교육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부끄러워 죽겠는데, 그런 종류의 스릴을 즐기다가 에일렌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진짜 그때는 부끄러움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레이시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좌우로 저었고, 엘라는 레이시의 반응에 소리를 죽여서 웃다가 레이시의 볼을 가볍게 꼬집었다.
“그렇다면 다른 마을에 가서는, 받아줄래?”
“으응, 다른 마을에 도착하면요.”
“약속?”
“야, 약속까지 해야해요?”
“응.”
“그, 그럼……. 약속.”
레이시의 약속에 키득 웃으면서 가볍게 입을 맞추는 엘라.
그러자 미스트도 레이시에게 자기와 약속을 하자며 조르기 시작했고, 미네르바도 질 수 없다는 듯 레이시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거기 다 좋은데, 여관에서 저녁 먹으면서 정해.”
“으, 으읏!”
“그럼 여관에 갈까?”
“으으, 잔소리를 들었는데도…….”
“뭐 어때.”
엘라의 웃음에 한숨을 내쉬면서 몸을 파묻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등을 토닥여주다가 이내 미스트와 함께 시선을 주고받으며 다음 목적지에서 할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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