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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503화 (503/542)

〈 503화 〉 케톤증­4

* * *

“여기서부터는 싸움에 휘말렸네.”

“네?”

“드래곤과 기간테스의 싸움에 휘말렸어. 브레스에 의해서 타버리고, 기간테스의 주먹질에 부서졌어. 말뚝은 재질 자체가 그렇게 강하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신에게 적용되는 마법인데요?”

“신에게 적용된 게 아니야. 신이 뱉어놓은 것에 작용되는 주문. 그런 거라면 평범한 궁정 마법사가 쓰는 5위계만 되도 할 수 있어. 중형 마법부터는 그런 식으로 작동되니까.”

“그래요?”

“응, 안 그러면 평범한 인간이 사람보다 커다란 불덩이나 얼음덩이를 소환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건 신의 사랑이라고 부르는 자연계의 법칙을 증폭시킨 거야.”

“엘라는 되잖아요.”

“나는 인간의 몸인데도 고룡 이상의 마력을 지닐 정도로 마법에게 편애받는 존재니까.”

“어음. 으응, 그러네요.”

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레이시는 그럼 여기서부터는 말뚝을 직접 찾지 않는 거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아무래도 그럴 것 같다고 말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휘말렸는지도 모르니 이제 사람을 시켜서 말뚝을 찾아야지. 재건 사업을 하다보면 땅에 박힌 말뚝도 발견될 테니까 공사인원에게 미리 말해줘야지. 그리고 3교대로 돌린 흑창 기사단에게도 알려주고. 이번 일은 레이시에게 신세를 졌네.”

“부부인데 신세라뇨.”

“후후, 그러네. 고마워. 도와줘서. 이번 일은 레이시가 안 해도 되는 일인데.”

“헤헤헤…….”

레이시는 엘라의 입맞춤에 작게 웃다가 이번 일은 이걸로 해결됐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질문에 적어도 신관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 회복되었으니 작업 속도가 빨라지긴 할 거라고 대답해주었다.

“미스트를 수도에서 볼 수도 있겠는걸.”

“정말요?”

“빠르게 일이 진행된다면 말이야. 그래도 대공사니까 쉽지만은 않을 거야.”

스트라이크 공작 가문에다가 물어볼 말도 존재하고…….

스트라이크 공작이 직접 다스리는 땅은 아니더라도 이런 대규모 공작을 할 정도라면 뭔가 이상징후를 발견했을 텐데 왜 말하지 않은 걸까?

말하지 못한 걸까?

그렇다면 그런 이유는?

그런 생각을 반복하던 엘라는 눈가를 찌푸리면서 스트라이크 공작이 하는 일을 떠올리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단순히 바빴던 건가?”

“네?”

“아, 스트라이크 공작은 갈리아 공작과 다르게 군부에서 일하거든. 드래곤과 기간테스가 싸운 건 몇 달 전이니까 신성 왕국과 도스토 연맹국이 한참 신경전을 벌일 때였네. 바빠서 사소한 수작은 몰랐겠어.”

“아하…….”

그 때쯤이면 한참 베스티아 왕국이니 어디니 돌아다니면서 국가 회의를 위한 장소를 만들 때니까 군부의 스트라이크 공작이 세세한 장난질을 파악할 수 없었으리라.

국내의 사람만 위험한 게 아니라 타국의 사람이 위험해지니까 더더욱.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이래서 좀 더 실력 있는 사람들을 갈아야 한다면서 투덜거리며 조사단 기지로 발걸음을 옮겼고, 레이시는 엘라의 투덜거림에 어색하게 웃다가 엘라를 달래주었다.

“스트라이크 공작 그 꼰대새끼, 전쟁 말고도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많은데 굳이 무리하려고 지랄이야.”

“그 사람도 나라를 아껴서 그런 거겠죠.”

“그건 아는데 등신 같잖아.”

“공주님! 수고하셨습니다.”

“스트라이크 공작에게 전서응을 보내라. 편지는 오면서 썼으니 이걸 보내면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공사 현황은?”

“공주님께서 발견하신 말뚝 덕분에 작업 속도가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뭐?”

“시민들이 필요 이상으로 겁을 먹고 있습니다.”

“왜? 마수가 무섭대?”

“네. 이들은 마수를 보지 못했으니까요.”

“대규모 곡창지니까.”

마수나 몬스터가 있으면 농사에 방해가 되니까 쓸어버리고 적당히 멧돼지 같은 것만 살려둔 거겠지.

왕국의 영지 운영 교육학에도 적혀있는 정석적인 판단이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이 소형 마수에도 겁을 먹고 경비에게 호들갑을 떤다는 건 스트라이크 공작 가문과 그 봉신이 일을 잘했단 것이고.

그렇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자기가 처리해야 한다.

“일단 젊은 남자에게 창을 주고 수레를 개조해서 이동형 바리케이드로 만들어, 그런 다음 간이 격벽 뒤에서 사람들을 지키라고 명령을 내려. 보상으로는 위험수당을 주도록.”

“손수레는 어디서 공수하겠습니까?”

“상인들에게 받도록. 어차피 망가지던 수레는 창고에 쌓여 있을 테니 땅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내주겠지.”

“망가진 수레로도 괜찮겠습니까?”

“그래, 어차피 구역을 나눠 회복시킨 다음에는 울타리를 치고 자리를 이동할 테니 쉽게 이동시킬 수 있는 바리케이드가 필요하지, 좋은 수레가 필요한 게 아니다.”

“네, 알겠습니다. 쿨리아 공작님께 전하겠습니다.”

엘라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빠르게 움직이는 기사들.

레이시는 그 기사들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엘라에게 어떻게 복구하려고 그런 명령을 내렸냐고 물어봤다.

“원래는 하나의 대 곡창지였잖아요? 이러면 구역이 좀 더 작아질 건데…….”

“괜찮아. 어차피 소작농들이고. 농장 사이사이로 걸어다니는 길이 생겼다는 셈치지.”

“으응, 수확량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그건 스트라이크 공작 가문이 신경 써야 할 일이야. 그리고 길이 생겼다고 수확량이 떨어지면 안 되지.”

“으음, 하긴 그건 그러네요. 오히려 수로나 이런 시설이 더 잘 정비되서 수확량이 늘어날지도 모르겠어요.”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수확량을 생각해보는 레이시.

레이시는 처음에는 미국의 콘벨트를 떠올렸지만, 그건 아무리 그래도 너무 나갔다면서 고개를 좌우로 저은 다음 할아버지랑 같이 갔었던 농업박람회를 떠올렸다.

헬기나 대형 트랙터 같은 중장비를 쓸 게 아니라면 적당히 규모를 낮추는 게 수확에 도움이 된다던가?

별 이유는 아니고 단순 노동력 문제로.

그렇게 생각하던 레이시는 사람들의 수를 떠올리다가 어깨를 으쓱이면서 확실히 자기가 알 일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고, 엘라는 레이시의 반응을 살피다가 기분이 나쁜 건 어떠냐고 물어보며 레이시의 몸상태를 살폈다.

“그러고 보니 불쾌한 게 조금 줄었어요.”

“그래? 그럼 한동안은 조사단에서 나랑 잘까?”

“아이를 보러 가야죠.”

“아이도 여기에 데리고 와서 캠핑하듯이 하자.”

“위험하지 않을까요?”

“흑창 기사단하고 벽천화 기사단이 상주하는데? 그리고 나도 있고. 여기가 더 안전할 수도 있어. 그리고 여기에 있으면 산책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그럼 여기서 잘까요?”

“응, 요양도 할 겸 그러자. 거기! 벽천화!”

엘라의 호출에 다급하게 뛰어오는 기사.

기사는 엘라의 명령을 듣더니 아연실색하면서 지금부터 곧바로 장소를 옮길 거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기사는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로 야근을 해서라도 준비하겠다고 말했고, 레이시는 기사에게 미안하다면서 사과했다.

“아, 아닙니다. 아, 아하하……. 왕가의 여성을 지키는 게 저희의 일인 걸요.”

“그래도 요즘 너무 저희만 신경 쓰잖아요.”

“여성분만으로 이루어진 가족이시니까요. 그래도 저희는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으응, 네에.”

기사의 말에 한숨을 내쉬며 보내주는 레이시.

레이시는 헐레벌떡 뛰어가는 기사들을 보며 자기가 도와줄 일은 없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미리 모두와 지낼 텐트를 짓자면서 마차로 돌아갔다.

그리고 마차 안에 있는 아공간 박스에서 거대한 텐트를 들고 내렸고, 레이시는 엘라가 장비를 꺼내는 걸 보고는 하양이를 달래 텐트를 짊어지고 가게 했다.

“왜 또 장소를 옮기는 건데?”

“아, 아샤.”

“레이시의 요양이야. 그리고 거기에 있으면 산책 정도는 마음껏 할 수 있으니까.”

“아하, 하긴 그렇겠네. 쯧. 그래도 미리 말해줘. 에일렌은 혼자 걸을 수 있어도 미르와 레아는 아니니까.”

“근데 너 포대기 안 어울린다.”

“알고 있으니까 닥쳐.”

“킥킥!”

하양이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아이들을 안고 나타나는 미네르바와 아샤.

아샤는 엘라의 설명에 이사를 이해하면서도 다음부터는 미리 말하라며 한숨을 내쉬었고, 엘라는 자기도 지금 결정했다면서 어깨를 으쓱이면서 에일렌을 안아들었다.

“밖에서 캠핑하는 거 어때?”

“캠피이이잉!? 진짜!?”

“응, 밤에는 별 보고 자고 조사단이 작업하는 곳에는 산책도 마음대로 가도 괜찮아.”

“엄마, 좋아아아아!”

“풋. 그래그래.”

자기 품에 안긴 에일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웃는 엘라.

레이시는 그 모습을 보고 작게 웃다가 벽천화 기사단이 정한 곳에 텐트를 펼치기 시작했고, 아샤는 자기가 조립하겠다더니 16인용 텐트를 3분만에 친 다음 저녁은 마수 고기 바비큐로 하겠냐고 물어봤다.

“먹을 수 있어요?”

“신관이 정화하면 먹을 수 있어. 아이가 없었으면 그냥 먹었을걸?”

“아하…….”

“애들은 마력이 있다고 해도 약하니까.”

아샤는 에일렌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활을 들고 고기를 가져오겠다고 나갔고, 엘라는 그런 아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500하랑 동전을 던지면서 10분에 고기를 들고 올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8분으로 하지.”

“내기하는 거예요?”

“심심하잖아. 안에 가구도 다 깔았고, 바비큐용 화로도 설치했고…….”

“으으응. 그래도요.”

“레이시도 걸어. 레이시가 이기면 특별히 다른 것도 줄게.”

“뭘 주게요?”

“밤일. 힘내서 해줄게.”

“……변태. 애들도 듣잖아요.”

“에일렌은 지금 미르랑 레아랑 모빌 놀이 하는데?”

“아, 저거 처남께서 주신 핸드벨이네요.”

“응. 마차에 있길래 줬어.”

마력을 조절해서 소리를 조절할 수 있는 핸드벨.

미르와 레아는 영 신기하다는 듯 에일렌이 흔드는 핸드벨을 봤고, 에일렌은 동생에게 자랑하듯이 핸드벨에 집중한 채 꺄르륵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 레이시는 엘라의 음담을 못 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엘라를 노려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시선에 어떻게 하겠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레이시는 잠시 고민하다가 5분이면 올 것 같다고 말했고,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2분 뒤에 5분이 지난다고 말했다.

“그래도 5분?”

“네. 왜냐면 지금 돌아왔거든요.”

“무슨 소리야?”

“와, 어떻게 맞췄어?”

“그야, 여기에 오기 전에 사람들이 무서워했었잖아요. 그래서 마수가 꽤 가까이 있구나 싶어서요.”

“아, 음, 그런가?”

레이시의 말에 엘라는 미네르바를 보면서 알고 있었냐고 물어봤고, 미네르바는 그런 약자들까지 신경쓸 정도로 자신은 예민하지 않다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러자 엘라는 역시 그렇지 않냐며 웃음을 터트리다가 레이시에게 돈을 주었고, 레이시는 뒤의 부상은 필요 없다며 먼저 말한 다음 아샤에게 수고했다면서 아샤의 겉옷을 받아주었다.

“힘들진 않았어요?”

“응, 돼지가 돌아다녀서 금방 처리하고 왔어. 아무래도 멧돼지는 과식은 안 해도 식량 욕심은 많으니까. 거기다 잡식성이고 마수가 됐으니까 사람이 있든 말든 덤볐겠지.”

“그렇구나…….”

“됐고, 저녁부터 먹자. 신관에게 정화 받고 왔어. 도축하고 올 테니까 레이시는 불 붙여줘. 숯 쌓는 방법은 알지?”

“네, 대충은요.”

“그럼 부탁할게.”

레이시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떠나는 아샤.

엘라는 그런 아샤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도와주겠다면서 레이시와 함께 화로의 준비를 했고, 미네르바는 두 사람이 일하는 걸 보면서 에일렌과 함께 미르, 레아와 놀아주었다.

“미네르바 엄마! 엄마는 이거!”

“으응?”

“미네르바 엄마는 캐스터네츠! 나는 이거!”

“……이게 좋나?”

“웅! 에일렌은 핸드벨이 좋아!”

귀엽게 애교를 부리는 모습에 미네르바는 피식 웃으면서 미르와 레아를 자기 허벅지에 앉힌 다음 에일렌의 움직임에 맞춰서 캐스터네츠를 연주했고, 도축을 끝내고 돌아온 아샤는 그런 미네르바의 모습에 피식 웃더니 고기와 과일을 굽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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