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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502화 (502/542)

〈 502화 〉 케톤증­3

* * *

진지한 얼굴을 한 아샤.

아샤는 레이시에게 연기를 보게 된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하면서 레이시에게 미리 말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너는 사랑과 관련된 야차니까 웬만하면 이런 일을 안 겪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이 땅에는 신의 사랑이 있으니까.”

“으으응…….”

“블루드가 사교도를 모은다고 했을 때 눈치 챘어야 했는데.”

“그럼 이거도 사교도들이 한 거예요?”

“음, 꼭 그렇다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이딴 짓을 할 사람은 사교도급으로 미친 녀석들이 아니라면 안 하거든. 우리에겐 나쁜 인간이라도 신에게는 공평하게 보일 테니까 굳이 이런 짓을 하지는 않거든.”

굳이 신의 사랑을 없애서 자신에게도 쏟아지던 버프를 치울 필요가 있을까?

자살하고 싶은 사람이나 신 자체를 증오하는 사교도가 아니라면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단순히 운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치부했었는데……, 생각해보면 지금 자기는 블루드와의 전쟁을 목전에 둔 상황.

오라토리엄 왕국 안에서도 수작을 부리고 있다고 예상했어야 했다.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한숨을 내쉬면서 레이시를 바라봤지만, 레이시는 자기가 아프지 않다는 것에 만족하는지 괜찮다고 말하면서 안개가 가장 짙은 곳으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저기에요. 저기는 연기 때문에 아예 앞도 안 보여요.”

“그래? 고마워, 수고했어.”

레이시의 말에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레이시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는 엘라.

엘라의 눈에는 연기라고는 보이지 않았기에 엘라는 계속해서 레이시에게 정확한 위치를 물어보면서 신의 사랑을 없애기 위한 주물을 찾기 시작했고, 아샤는 레이시의 곁에서 누군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지는 않는지 확인했다.

“아, 찾았다. 사교도들이네.”

“그럼 다른 나라의 작전이 아니라 블루드의 수작이라는 거네?”

“그렇겠지.”

신성왕국은 사교도의 머리를 깨는 것으로는 모자라서 산채로 바퀴에 매달아서 태울 정도로 사교도를 혐오하는 쪽이고 연맹국은 사교도를 사용하면 안 그래도 봉합하기 힘든 내부 균일이 커질 테니 쓰지 않을 것이다.

즉, 블루드 외에는 이런 짓을 할 사람이 없다.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땅 깊숙이 박힌 말뚝을 뽑아냈고, 아샤는 눈을 찌푸리더니 지금 당장 부수면 되는 거냐고 물어봤다.

“흐음, 일단 다 모으고 나서 한 번에 부수는 게 나을 거 같네. 레이시, 미안한데 조금만 더 돌아다니자.”

“으응, 알았어요.”

엘라의 말에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리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하양이의 등 뒤에 먼저 올려 태운 다음 자기도 하양이에게 타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 종일 해가 질 때까지 돌아다녀서 획득한 말뚝은 3개.

엘라는 말뚝을 한 곳에 모은 다음 말뚝을 뽑은 땅에서 아직도 연기가 올라오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그러지는 않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말뚝에만 마법이 걸린 건가? 예상 외로 시간이 별로 없었나보네.”

“네?”

“시간만 충분하면 말뚝을 전부 뽑기 전에는 효과가 점점 강해지는 형식의 저주도 있거든. 다행히 그런 건 아닌 모양이야. 하긴, 그렇게 하려면 몇 년 단위의 작업을 해야 하니까 힘들겠네.”

엘라의 말에 혹시 그런 것도 상대해본 적도 있냐고 물어보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한참 돌아다닐 땐 그랬었다고 말해주었다.

“아버지가 은퇴하고 나서 제대로 된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황금기를 몇 년 앞당기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내가 캘러미티 가문을 멸망시키고 화풀이로 이런저런 범죄조직을 다 망가트려서 그렇게 됐다는 것도 있거든.”

“에, 에에에…….”

“몇 년 동안 숨어 있던 것도 다 부쉈더니 이 나라의 암흑가는 저번에 내가 왕가의 부하로 구워 삶은 데이 드렁커 수준의 녀석들 밖에 안 남았어. 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백성들은 더 살만해졌겠지만.”

“에…….”

“여하튼 그러니까 우리나라 안에서는 이러한 공작을 펼치기 어려웠겠지. 다행이네.”

엘라의 말에 레이시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전생에서 종종 들었었던 범죄와의 전쟁.

전생과 다르게 혼자서 군단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세상이라지만, 정말로 그걸 혼자서 해내버리다니…….

그리고 그 일 덕분에 지금 편하게 사태를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는 걱정해야 하는데 마냥 걱정할 수만은 없어서 레이시는 한참을 어색하게 웃다가 엘라에게 안기면서 뺨을 부비적거렸다.

그러자 엘라는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이제 실험이나 해보자면서 조사단에 들어가 신관과 정령사를 불렀고, 말뚝이 사라진 곳에서 신성 마법을 써보라고 말했다.

“어?”

“뭔가 다른가?”

“네……, 뭔가 쓰기가 편하네요. 똑같이 오염된 땅일 텐데 왜 이런 걸까요?”

“레이시가 찾은 것 때문에 그래. 사교도들이 밑작업을 했더군. 아무래도 드래곤이나 기간테스 중 한 마리는 사교도가 이곳으로 유도한 거겠지.”

“그, 그런……! 그런 자들은 공주님께서 모두 처단하시지 않았습니까!?”

“내가 대륙 전체를 정리할 수 있는 인간도 아니고 우리나라 안에 있는 벌레만 정리한 거야. 타국에서 넘어온 녀석들이라면 정리할 수 없지.”

“타국의 사보타주입니까!?”

“확실하진 않아. 일단 수작질한 사람들은 다 떠난 거 같으니 우선 땅의 정리부터다. 조사는 계속 진행하는 대신 조사 시간을 줄이고 2교대로 돌아가는 걸 3교대로 바꿔. 앞으로 조사대는 조사와 정화, 그리고 휴식조로 나눈다!”

“알겠습니다!”

“그럼 레이시,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돌아가자.”

“으, 으응. 네.”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엘라를 빤히 바라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왜 그러냐고 물어봤다.

“일할 때의 엘라는 정말 적응이 안 된다 싶어서요…….”

“아하하, 이제 좀 익숙해져야지.”

“하지만 엘라는 공무 중인 모습은 거의 안 보여주시잖아요? 엘레오놀 공작님이나 루룬 씨에게는 좀 편하게 대하고.”

“아버지도 친근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식으로 대화를 주고받아. 계속 몸에 힘을 주면 아무래도 스트레스 때문에 위가 맛이 가니까.”

“아아아……. 하긴 그럴 거 같아요.”

“그나저나 내일부터는 일을 도와주면 좋겠어. 이런 게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땅을 회복시키는 게 훨씬 수월해질 테니까.”

“네, 그럴게요.”

안 그래도 가만히 있으면 갑갑하고 화가 났는데 이렇게 일이라도 생기니 다행이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미르와 레아의 밥은 미리 짜놓고 가는 게 좋겠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아샤와 미네르바에게 일을 그만하라고 명령을 내려야겠다고 말했다.

“미르와 레아를 돌보도록 시켜야겠어. 사교도가 있다는 걸 안 이상 엘레오놀만으로는 아무래도 불안해.”

“사람이 없다고 했잖아요?”

“그래도. 공작가 내부라도 못 믿어.”

“아하하하…….”

“너는 내가 옆에서 지켜주면 된다지만, 애들은 그게 아니잖아. 거기에다가 두 명은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러니까 거기에 두 명이 가고 너는 나랑 움직이는 게 맞아.”

“그러네요.”

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이마를 톡톡 건들더니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미네르바와 아샤를 불렀고, 레이시는 그 모습을 보고 먼저 욕실에 들어가서 몸을 씻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을 전부 씻고 나오자 레이시는 이야기가 끝난 듯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고, 레이시는 착유기를 꺼내 미르와 레아의 밥을 짜내면서 내일부터는 자기가 밖에 나갈 거 같다고 말했다.

“으, 으으으, 코코도 데리고 가라. 그 녀석도 약하지만, 고기 방패는 된다.”

“아, 아하하하……. 알았어요. 꼭 그럴게요.”

미네르바의 걱정에 레이시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대답이 못 미더운지 한참을 레이시를 걱정하다가 엘라를 노려보며 엘라와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아하하, 애들 깨요.”

“으으으……. 왜 주인이……. 위치만 알려주면 안 되나?”

“저도 일하고 싶으니까요. 그것보다 저걸 내버려 두면 제가 이상해질 거 같아서 싫어요.”

“으응. 알겠다.”

레이시의 의지가 견고하자 미네르바는 한숨을 내쉬면서 엘라를 다시 한번 흘겨보았고, 엘라는 미네르바의 시선에 어깨를 으쓱인 다음 레이시에 대한 건 걱정하지 말고 에일렌과 미르, 레아를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 날, 레이시는 미네르바에게 어젯밤에 양껏 짜놓았던 모유를 맡기면서 하양이의 등 뒤에 탔다.

“나비의 등 뒤에 타면 좋을 텐데.”

“엘라가 만약의 사태 때에는 하양이는 도주만 신경 쓰게 하고 나비와 코코는 경호에 신경 쓰게 하는 게 나을 거라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흐음, 그런가?”

“네. 그렇대요.”

“나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조심해라.”

“그럴게요.”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대답에 한숨을 푹 내쉬다가 에일렌과 함께 레이시를 배웅해주었고, 레이시는 자기를 걱정하는 미네르바의 시선에 어색하게 웃으면서도 엘라와 함께 도시 밖으로 나갔다.

“으음, 지도로 보면 어제 찾은 지역은 여기랑 여기, 그리고 여기야. 그리고 3개의 말뚝의 규칙성을 봤을 땐 말뚝은 10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박혀 있었어. 각도로 보면 육각형 같으니까 오늘은 여기랑 여기, 그리고 여기를 살펴볼거야.”

“육각형……, 벌집인가요?”

“응, 주술적으로나 뭐라노 벌집 구조는 꽤 안정적이거든. 그러니까 우선 벌집 구조형으로 한 번 훑어보고 그게 아니라면 그 땐 그냥 막 돌아다녀보자. 안개가 보이면 말해줘.”

“네.”

엘라의 말에 레이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피식 웃으면서 지금부터 기운을 뺄 필요는 없다고 말하면서 하양이를 몰기 시작했다.

다행히 말뚝은 육각형의 모양으로 깔려 있었고, 엘라와 레이시는 어제보다 몇 배는 빨라진 속도로 말뚝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되게 많이도 박았네요.”

그렇게 늦은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말뚝을 찾은 결과, 엘라와 레이시는 30개가 넘는 말뚝을 뽑아냈고, 엘라는 한 손으로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계속해서 말뚝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음, 아무래도 한꺼번에 전부 다 지워야하는 타입은 아닌가보네.”

“그런 걸 알 수 있어요?”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사교도들을 한, 두 번 상대한 게 아니니까. 200년 역사를 지닌 사교도 집단도 혼자서 쓸어버렸는데 이런 거에 익숙해지지 않겠어?”

“아, 아하하하……. 정말 일인군단이네요.”

“군단 3개쯤은 되지. 만약 전면으로 붙으면 4~5개 군단 정도는 쓸어버릴 수 있어.”

엘라의 말에 어색하게 웃다가 말뚝을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보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질문에 말뚝을 한 곳에 모으더니 마력을 모으고 스킬을 발동시켰다.

“흑마법 제 9위계, 원자융해.”

“에……?”

백색의 광선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말뚝.

레이시는 열도, 굉음도 없이 사라진 말뚝에 멍하니 입을 벌리면서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질문에 그냥 원자단위로 분해시켰다고 말했다.

“심판의 눈동자가 광역 파괴술이라면 이건 국소지역 파괴마법이야. 대군전과 대인적의 차이랄까?”

“그, 그럼 어떻게 된 거예요?”

“원자 단위로 분해되서 사라진 거지.”

“아, 아으음, 그렇군요.”

“흑마법의 정수지. 파괴의 정점. 어때? 멋져?”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가슴을 활짝 펴는 엘라.

레이시는 칭찬을 바라는 듯한 엘라의 모습에 키득키득 웃다가 엘라를 칭찬해주었고, 엘라는 레이시의 칭찬에 키득키득 웃다가 지도에 말뚝이 발견된 곳을 표시하며 말뚝의 규칙성을 살피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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