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1화 〉 케톤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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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샤의 훈련을 받으면서 공사를 기다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공사가 시작되었고, 레이시는 수십만의 사람들이 한 공사에 동원되는 장엄한 광경에 감탄했다.
“저 나무는 왜 들고 가는 거야? 마망.”
“으응, 공사하는 지역에 마수를 대비하는 방벽을 만든대요.”
“그렇구나. 근데 마수가 나비처럼 크면 어떻게 해?”
“으으음~ 나비는 특별한 아이라서 나비가 흔하지는 않다고 하네요.”
“그래?”
“네, 엘라 엄마가 그랬어요.”
“후에에에~.”
엘라가 뭐라고 했더라?
나비는 운이 없어도 맹수를 찾으려고 애쓴다면 누구라도 찾을 수 있는 수준이고 드래곤 같은 건 찾으려고 해도 운이 없으면 찾을 수 없다고 했던가?
그런 것치고는 엘라는 힘으로 찾은 것 같지만.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미네르바에게 기대면서 점점 더 한가해지겠다면서 배시시 웃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말에 혹시 바쁘길 원하는 거냐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요.”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열심히 일하는데 저만 아무 일이 없는 게 영 편하지는 않네요.”
“흐응. 산책이라도 해봐라, 주인.”
“으으으응……, 그치만 에일렌이랑 산책하기에는 이 도시 상태가 좀……, 그렇죠?”
“그러면 나도 같이 가겠다.”
“그럴까요?”
싱긋 웃으면서 미네르바를 바라보는 레이시.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시선에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 당장 가자면서 자리에서 일어났고,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말에 배시시 웃으면서 에일렌에게 산책을 갈 거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에일렌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오늘은 아샤랑 놀기로 했다면서 미르와 레아에게 손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그래요?”
“웅!”
“그럼 동생이랑 잘 놀고 있어요? 마망은 미네르바 엄마랑 같이 산책 다녀올게요.”
“알았어어어~.”
레이시는 에일렌의 대답에 작게 웃다가 미네르바와 함께 산책을 나갔고, 미네르바는 기지개를 쭉 켜다가 주변을 둘러봤다.
“흐음, 지금 우리를 지켜보는 사람은 없다.”
“지금은 그러겠죠? 어른들을 노리는 사람은 없을 거니까요. 문제는 아이에요.”
“아이는 약하니까.”
“네, 정말로요.”
한숨을 푹 내쉬면서 뺨을 긁는 레이시.
강한 사람을 괴롭힌다는 건 있을 수 없으니까,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당연하다고 해도 그게 내 아이라면 용납할 수 있을 리가 없고, 그 괴롭힘의 원인이 여기에서는 못 먹는 과일을 혼자서 전부 먹고 싶어서라면 더더욱 용납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이 근방의 마을만이라도 정리할까 싶었지만, 이내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눈가를 찌푸렸다.
“왜 그러나? 주인.”
“으응, 요즘따라 폭력성이 강해지는 거 같아서요.”
“아이를 지키기 위한 어미는 폭력성이 강해진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아하하……, 그래도요. 사람들하고는 안 싸우고 싶은데 예민해지네요.”
레이시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방안에만 있어서 스트레스가 쌓였을 거라고 말하면서 팔을 벌렸다.
그러자 레이시는 미네르바가 원하는 대로 품에 안겼고, 미네르바는 그대로 하늘을 날아오르면서 레이시에게 풍경이 어떠냐고 물어봤다.
“시원하네요.”
“흐응. 그게 끝인가?”
“우으음, 공사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그러네요.”
별로 상쾌해 보이지 않는 레이시의 대답.
미네르바는 그런 레이시의 대답에 눈을 깜빡이다가 레이시를 꽉 끌어안고 자기에게 좀 더 집중해달라고 부탁했고,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말에 어색하게 웃다가 자기를 잡아줄 수 있겠냐고물어봤다.
“잡아주겠다.”
“에잇.”
미네르바의 대답에 떨어지자마자 미네르바의 품에서 뛰어내리는 레이시.
레이시는 아슬아슬하게 자기를 잡아달라고 부탁한 다음 중력을 마음껏 즐기기 시작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땅에서 30m 정도 남았을 때 뒤쫓아 가기 시작해서 레이시를 안아주었다.
그러자 레이시는 1m정도의 높이만 남겨두고 미네르바의 품에 안겼고, 레이시는 이래도 가슴 한 구석이 무겁다면서 꺄르륵 웃었다.
“으으응, 더 아슬아슬하게 낚으면 되나?”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뭔가, 다른 이유가 있어요.”
“그게 뭐냐?”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 지금은 뭐라도 해야 될 거 같아요. 죄송해요. 저 혼자서 돌아다닐 테니까 미네르바는 돌아갈래요?”
“다른 애완동물들은?”
“으음……, 하양아, 나비야. 이리로 오렴.”
레이시의 말에 녹색의 게이트를 열고 나오는 두 마리의 짐승.
레이시는 몸에서 마력이 빠져나가는 감각에 한숨을 푹 내쉬다가 혼자 좀 돌아다니고 오겠다고 말한 다음 하양이의 등 위에 올라탔고, 미네르바는 레이시를 조심스럽게 바라보다가 레이시의 이마에 입을 맞춘 다음 도시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레이시는 하양이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면서 가자고 말했고, 하양이는 레이시의 명령에 투레질한 다음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마치 어디로 가면 좋을지 물어보듯 천천히…….
그렇게 천천히 걷자 레이시는 하양이의 이마를 쓰다듬다가 하양이에게 자기가 이상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고, 곧바로 자기가 이상하게 된 계기를 떠올려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에일렌이 애들에게 밀쳐진 것.
엄마로서 그걸 보자마자 눈이 뒤집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거 때문에 이렇게까지 성격이 변할까?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다른 이유를 생각해보기 시작했고, 이내 아샤와의 밤일을 떠올리고는 얼굴을 붉혔다.
“에휴우우…….”
아무리 생각할 게 없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자기 머리를 어지럽히는 갑갑함을 해결하기 위해서 하양이에게 마음껏 달려보겠냐고 물어봤고, 하양이는 레이시의 명령이 떨어지자 어디로 달릴지 물어보듯 레이시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레이시는 도시가 보이는 선이라면 어디로든 달려도 된다고 말했고, 하양이는 레이시의 말에 레이시를 태운 채 마음 가는 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의 마음대로 달리는 질주.
하양이는 발굽에 닿는 충격에 기뻐하면서 빠르게 달렸고, 레이시는 그런 하양이의 기쁨에 같이 웃다가 이내 하양이의 등 뒤에 누워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진짜 왜 이러지이…….”
뭔가 이상한 감정이라도 먹었나?
……스토커? 아니면 금태양? 아니, 나는 여자를 좋아하니까 금발 태닝 크싸레……?
아니, 그런 부류의 사람이 붙었으면 누가 됐든 아내들이 눈치채고 잡아줬겠지.
그러지 않았다는 건 그런 건 아니다.
그렇다면 스스로 뭔가 응어리가 졌나?
레이시는 그런 결론을 내리고서는 다시금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켜세웠고, 하양이는 레이시의 한숨에 발을 멈춘 다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응, 천천히 걸어줄래요?”
“메에에에~!”
“후후, 고마워요.”
하양이의 대답에 작게 웃다가 주변을 둘러보는 레이시.
그러자 레이시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이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뭔가 형용하기 어려운 형태의 연기의 모습에 눈을 깜빡이다가 눈을 비비적거리면서 뭔가 잘못 먹었나 싶어 미스트가 가르쳐준 대로 마력으로 독을 해독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독하려고 해도 몸에는 독이라고 부를만한 게 없었고, 레이시는 그런 자기 몸 상태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혹시 병이라도 걸렸나 싶어 이마에 손을 올렸다.
“으응……? 멀쩡한데?”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이마.
혹시 정신병인 걸까…….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그럴 리가 없다면서 고개를 세차게 저은 다음 엘라에게 가자며 하양이의 이마를 쓰다듬었고, 하양이는 레이시의 감정을 읽었는지 힘차게 엘라의 마력이 느껴지는 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응? 레이시. 무슨 일이야? 미네르바가 아까 산책하다가 혼자 어디로 간다고 말해주긴 했는데……. 데이트라면 지금 좀 바빠.”
“아뇨. 그게……, 으응. 엘라, 한 번만 저 따라오면 안 돼요?”
“응? 어……, 뭐. 그러지.”
평소와는 너무 다른 레이시의 부탁에 엘라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책임자에게 일을 맡기고 레이시에게 어디로 가면 되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레이시는 엘라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다음 엘라를 하양이의 등에 태워 이상한 연기를 발견한 곳으로 갔고, 이상한 게 보이지 않냐고 물어봤다.
“이상한 연기 같은 거?”
그냥 평범한 초원이다.
이상할 것 하나 없는 초원.
문제라고 한다면 땅이 오염되었다는 게 문제지만, 그거야 이 근방의 땅이 다 그렇고 신관이 신의 자애를 뿌리고 정령사가 부른 야생 정령이 신의 자애가 뿌려진 곳에 자리를 잡는다면 회복되니 이상할 건 없다.
애초에 연기 같은 게 없냐고 물어봤는데 여기에는 강에서 나오는 안개도, 불타서 생기는 연기도 없다.
그렇기에 엘라는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말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진짜 자기가 아픈 건가 싶어서 덜컥 겁을 먹은 채 눈을 이리저리 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엘라는 레이시에게 괜찮다고 레이시를 다독이기 시작했다.
“그, 그치만 저, 엘라는 못 보는 걸 보고 요즘에 너무 짜증도 많이 부리고…….”
“우리에겐 안 그랬잖아. 괜찮아. 설령 어떤 병에 걸렸든 어떻게든 낫게 해줄게.”
“우으으으……. 심각한병은 아니겠죠?”
“여자끼리 임신할 수 있는 스킬보석보다는 쉽게 구할 수 있겠지. 어쩌면 야차만 걸리는 병일수도 있고.”
농담을 섞어가면서 레이시를 달래는 엘라.
그러다가 엘라는 뭔가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입을 다물고 멍하니 레이시를 바라봤고, 레이시는 엘라의 반응에 움찔 떨면서 왜 그러냐고 물어봤다.
“어쩌면 병이 아닐지도 모르겠네.”
“네?”
“아샤도 그런 증상을 겪은 적이 꽤 있거든. 구체적으로 골렘과 언데드, 그리고 사교도들의 신을 상대할 때. 왜 그런 증상이 나타나는지 몰라도 야차라면 느낄 수도 있는 거야. 왜 그걸 생각을 못 했지?”
엘라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하양이의 등 뒤에 올라타 아샤에게 가자면서 레이시에게 손을 내밀었고, 레이시는 갑자기 진지하게 변한 엘라의 분위기에 당황해하면서도 엘라의 손을 잡고 아샤에게 가기 시작했다.
마침 할 일이 없어 미네르바와 함께 에일렌과 미르, 레아를 돌보던 아샤.
아샤는 엘라가 나오라고 말하자 한숨을 푹 내쉬면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아샤에게 골렘들과 싸울 때 이상한 연기 같은 게 보이지 않냐고 물어봤다.
“그거야……, 그렇지. 비밀결사 처리한다고 한 달 내내 골렘과 언데드만 상대한 적이 있잖아. 그때 봤지.”
“어떻게 생겼어?”
“어떻게 생겼다고 말하긴 조금 그렇고, 그때는 예민해지고 짜증나고 갑갑해지지.”
“혹시 그 이유를 말해줄 수 있어?”
“……왜?”
“레이시가 그 증상을 겪어서.”
“정말?”
“그, 네……. 엘라는 못 보고 저만 볼 수 있는 안개 같은 게 깔려 있었어요.”
“진짜네. 그런데 왜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와 엘라의 대화에서 자기 몸이 잘못 된 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왜 그러냐고 물어봤고, 아샤는 레이시의 질문에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야차의 본질부터 말해주었다.
“강한 감정만 먹어도 괜찮다면 좋겠지만, 그러면 영양 불균형이 일어나거든.”
“아샤도 그랬어요?”
“아니, 나는 그냥 기아 상태. 저 녀석들이 나를 보는 건 우정에 가깝지 경외심에는 거리가 멀거든. 하여튼 그런 불균형 상태가 되거나 기아 상태가 되면 야차는 그걸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 같은 걸 보게 돼. 신의 배려라고 해야 하나 정령으로서의 본능이라고 해야 하나……. 죽기 직전의 땅에는 정령이 잔뜩 모였다가 완전히 죽어버리면 땅을 떠나버리는 거랑 똑같아.”
“그럼 아샤의 말대로라면 여기 이 땅에는 제가 먹는 감정이라는 게 없는 상태란 거예요?”
“음, 그러네. 그냥 운이 없어서 대형 몬스터끼리 부딪쳤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
“네?”
“특별히 저주를 받지 않는 이상 이 땅에는 항상 신의 자애가 쏟아지거든. 그렇기에 죽음을 무서워하게 되고 등장만으로 재해가 되는 대형 몬스터에게는 나태함을 부여했지. 그런데 그런 두 몬스터가 죽을 듯이 싸웠다……. 처음에는 그냥 재수가 없었겠거니 했는데, 이거 누가 꾸민 일일지도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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