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6화 〉 낮잠1
* * *
“맛있어?”
“웅! 엄마도 먹어어.”
사과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서 환하게 웃는 에일렌.
엘라는 그런 에일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맛있으니 다행이라면서 에일렌의 입에 함박 스테이크를 넣어주었고, 에일렌은 볼을 빵빵하게 부풀인 채 음식을 우겨 넣기 시작했다.
그냥 보면 귀여운 아이의 식사시간.
하지만 그 식사를 보는 마을의 유지들은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른 채 열심히 포크와 나이프를 휘적거리고 있었다.
같은 메뉴를 먹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요리에 신경을 많이 쓸 수 있는 상황도 아닐뿐더러 자식을 위해서 열린 파티에서는 음료를 제외하면 어른들도 아이들과 같은 요리를 먹는 건 꽤 흔한 일이니까.
거기에다가 맛이 나쁜 것도 아니고.
하지만 문제는 플레이팅까지 다 똑같다는 것.
사과를 대충 깎았다거나 소스를 대충 부었다거나 느낌이 없잖아 있었지만, 전체적인 플레이팅은 에일렌이 받은 것과 똑같았고 어른들은 그 사실에 손을 덜덜 떨었다.
어른이 아이들과 같은 접시를 받았다는 건 크게 2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아이를 통해서 마음에 안 드는 일을 항의하는 것.
다른 하나는 너희는 내 아이보다 훨씬 아래에 있으니 알아서 기어라고 말하는 것.
이 경우에는 두 의미를 다 담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엘라의 눈치를 보자 엘라는 에일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저 아저씨들은 음식이 마음에 안 드는 것 같다고 말하곤 사람들을 바라봤다.
“부우.”
“헉!? 아, 아닙니다! 맛있습니다!”
“그런 주제에 함박 스테이크를 그렇게 하는 거야? 고기를 난도질해놨잖아.”
“그, 그게! 제가 이빨이 약해서 자, 잘게 잘라야만 먹을 수 있습니다.”
“아하, 그래? 킥킥……. 그거 힘들겠네. 숟가락을 가져다주도록.”
“알겠습니다.”
엘라의 웃음에 덜덜 떨면서 스푼을 가져다주는 사용인.
지금 일을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전부 이 도시의 사람이었기에 사용인은 침을 삼키면서 자기가 실수하지는 않는지 확인했고, 상인은 사용인의 긴장에 덩달아 긴장하면서 풀어진 고기를 스푼으로 입에 넣기 시작했다.
여전히 느껴지지 않는 맛.
차라리 속 시원하게 화를 내면 화를 내는 부분에 대해서 사죄를 빌고 추후 대책을 세우겠지만, 엘라는 에일렌에게 밥을 먹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화가 난 건지, 화가 안 난 건지…….
적어도 그거라도 알 수 있으면 좋겠지만 엘라의 얼굴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에일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을 뿐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름대로 산전수전 다 겪은 상인들도 쩔쩔 맬 정도의 포커페이스.
엘라보다 한 자리 낮은 자리에서 앉은 엘레오놀은 엘라의 포커페이스를 보고 키득키득 웃으면서 상인들을 동정했다.
아마 지금쯤이면 엘라가 어떤 기분이고 어떻게 해야 화를 풀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겠지.
하지만 저들은 화가 났다는 걸 제외하면 엘라의 기분을 읽을 수 없을 것이다.
저들의 머릿속에 있는 엘라는 그래도 에일렌이 화난 것 이상의 이득을 안겨주면 화를 풀 사람이겠지만, 실제의 엘라는 에일렌을 슬프게 했다는 사실에 꽂혀서 어떻게 하면 사람을 합법적으로 최대한 괴롭힐 수 있나 고민하는 사람이니까.
거래할 생각이 없는데 거래를 하겠다고 난리를 피우니 생각을 읽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차라리 지금이라도 화를 어떻게 하면 풀어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게 낫겠지만, 안타깝게도 뼛속까지 애매한 상인인 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엘라의 기분을 파악하려고만 들었다.
“지금이라도 도와줄 테니까 나중에 연회 열면 한 번 초대해주시는 건 어때요?”
“난 연회 안 열어.”
“그럼 저 모습을 계속 봐야 할 건데요? 그럼 별로 재미가 없잖아요?”
“하아…….”
거래를 하자는 엘레오놀의 말에 한숨을 깊게 내쉬다가 상인들을 바라보는 엘라.
하긴 이대로 계속 내버려두면 밥을 다 먹을 때까지도 이런 모습을 봐야겠지.
딱히 그런 걸 원하는 건 아니었기에 엘라는 엘레오놀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엘레오놀은 연회가 안 된다면 나중에 7000만 하랑 정도의 가치를 지닌 상단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뭐에 쓰게?”
“국왕님께 로비를 하려고요. 너무 비싸면 정치에 개입하려고 오해를 받고 너무 싼 걸 하면 돈을 너무 아낀다는 소리를 들을 테니 한 1억에서 1.1억 사이의 선물을 국왕님께 보내게요.”
“넌 미스트랑 다르네.”
“저는 영주고 미스트 씨는 메이드니까요.”
“아니, 협상이나 사고 방식이 다르다고.”
“어떻게요?”
“미스트는 자기에게 매달리는 사람을 제외하면 조종하기 어렵다고 안 했고, 너는 스스로 조종당하는 입장에 들어가잖아.”
“그러는 쪽이 편하니까요. 아마 미스트 백작님은 공주님을 닮아간 거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겠네.”
엘레오놀의 말에 피식 웃으면서 상단 이름을 적어주는 엘라.
엘레오놀은 엘라의 소개장에 적힌 상단의 이름들을 보다가 집사에게 종이를 넘긴 다음 에일렌을 빤히 바라봤고, 에일렌은 엘레오놀이 쳐다보자 상인들이 쳐다보던 것과 다르게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체리를 내밀었다.
“이모, 여기. 이거 먹어.”
“어머, 고마워요. 재미있는 거 보여드릴까요?”
“우웅?”
“우물우물……. 짠. 리본이랍니다.”
“와앙! 어떻게 했어?”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요.”
엘라와 레이시와의 친분을 이용해서 에일렌에게 친근하게 장난치는 엘레오놀.
에일렌은 엘레오놀의 말에 배시시 웃으면서 엘레오놀과 놀기 시작했고, 엘라는 에일렌의 웃음에 피식 웃으면서 엘레오놀이 한 거, 자기도 할 수 있다면서 분위기를 풀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하기에는 다소 성적인 농담이었지만, 지역의 유지들은 어떻게든 땅을 살리는 게 먼저였기에 같이 깔깔대며 웃다가 엘라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엘라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 초코 칩 쿠키를 먹으면서 히죽 웃었다.
“다들 꽤 급한가 보네? 다들 고상한 척 나이프질 좀 했을 건데 이런 질 낮은 농담에도 웃고. 하긴 나랑 다르게 너희들은 여기에서 망하면 어디로 가지도 못할 테니까 급하겠지?”
“아, 아닙니다!”
“아니긴. 아까부터 에일렌 눈치나 살살 보면서 뭘 말하려던 거 같던데.”
“그, 그게…….”
“뭐, 나도 에일렌네 이모를 두고 계속 화를 낼 생각은 없어. 엘레오놀의 사업이기도 하고.”
“아, 아하하.”
엘라의 말에 환하게 웃는 지역 유지들.
엘라는 나이를 먹고 저렇게 표정이 확확 변하는 지역 유지들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하여튼 사업을 그만 둘 생각은 없으니 안심하라며 손짓했고, 엘라의 말에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하지만……, 에일렌에게 좋은 추억이 될 거 같아서 내가 전액을 지원하기로 했었는데 이래서는 전액은 조금 무리일 거 같네. 에일렌에게 추억을 쌓기 위해 축제를 열라고 명령해도 땅이 이래서야 수도의 야시장보다는 못 할 거 같고.”
“지, 지원금을 내겠습니다!”
“저도 헌금하겠습니다!”
“저희 길드는 사람들에게 엘라 공주님의 이야기를 퍼트리겠습니다!”
돈을 낼 수 있는 사람은 돈을 내고, 물건을 댈 사람은 물건을 대고, 그것도 못 하는 사람은 사람을 풀겠다고 말하는 유지들.
엘라는 이걸로 에일렌의 장난감과 마법 연습용 허수아비나 사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손을 휘휘 저었고, 유지들은 엘라의 손짓에 크게 안도하면서 에일렌을 바라봤다.
“우웅, 저 할아버지들 이상해.”
“아하하핫! 이상해? 그러네, 이상하네. 아까는 이빨 아프다고 잘게 잘라 먹더니 사과를 마구 먹네? 이상하지?”
“웅! 고기만 못 먹는 할아버지인가봐! ……핫! 혹시 하양이랑 똑같아!?”
“푸하하하하하핫!”
엘라는 사람을 산양으로 보는 에일렌의 말에 한참을 웃다가 초코 칩 쿠키를 먹이면서 에일렌을 안아 들었고, 엘레오놀은 엘라가 나가자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 엘라에게 바칠 헌금의 양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문 밖에서 얼핏 들어도 완벽한 배분.
엘라는 미스트는 왕궁 안에서, 엘레오놀은 왕궁 밖에서 굴리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위로 올라갔고, 미르와 레아에게 젖을 먹이는 레이시를 보고는 에일렌을 놓아주었다.
그러자 에일렌은 엘라에게서 쿠키를 받은 다음 쪼르르 달려가 레이시의 입에 넣어주었고, 레이시는 에일렌의 쿠키를 먹으면서 정말 맛있다면서 행복하게 웃었다.
“일은 잘 해결 됐나요?”
“응, 남는 돈으로 에일렌에게 훈련 도구나 사주게. 미네르바의 손바닥에 흠집도 못 냈다지만, 일반 훈련용 도구는 한 방에 부서질 거야.”
“으응.”
딸이 천재라는 말을 듣는 건 좀 기쁘지만, 이 재능 때문에 괴물이란 소리를 들었으니 마냥 기뻐하긴 좀 그러네…….
그렇게 생각하던 레이시는 에일렌이 미르와 레아를 보면서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자 에일렌에게 동생들이 신기하냐고 물어봤고, 에일렌은 레이시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볼을 콕콕 찔러댔다.
“얘들은 언제 쿠키 먹어어?”
“글쎄요? 나이를 좀 더 먹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빨이 돋아나고 송곳니는 미스트처럼 조금씩 날카로워지기 시작했지만, 아직 앉아 있는 거밖에 못 하니까 일어나서 걸어다니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레이시는 미르와 레아가 입을 떼자 조심스럽게 등을 두들겨준 다음 두 아이를 침대에 앉혔다.
그러자 서로를 쳐다보면서 투닥거리며 장난치는 미르와 레아.
미르와 레아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손장난을 치면서 꺄르륵 웃었고, 레이시는 에일렌이 미르와 레아를 부럽다는 듯 쳐다보자 친구가 가지고 싶은 거냐고 물어보면서 에일렌과 손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우우웅, 그런 건 아닌데…….”
“그럼요?”
“쟤들은 부러워서. 쟤들은 서로 같이 커도 서로 안 무서워할 거잖아.”
“에일렌…….”
레이시가 꽉 끌어 안아주자 같이 꽉 끌어안으면서 자기가 괴물이라도 버리면 안 된다고 말하는 에일렌.
레이시는 에일렌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에일렌이 괴물이라도 버리지 않겠다면서 에일렌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저는 에일렌의 마망이니까, 에일렌이 어떤 사람이 되도 저만은 에일렌의 편이 되어 드릴게요.”
“정말?”
“네, 정말이요. 저 하늘의 별님이 다 떨어져도 저는 에일렌의 편이에요.”
“햇님이 떨어져도?”
“달님이 떨어져도요.”
“에헤헤헤…….”
레이시의 말에 기분이 풀렸는지 낮잠을 자고 싶다고 말하는 에일렌.
레이시는 에일렌의 말에 이를 닦고 오라면서 손을 흔들어주었고, 에일렌이 욕실에 들어가자 미르와 레아를 재우며 아샤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쩝.”
“왜요?”
“아니, 조금 입맛이 써서.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완성되어 있으니까 저런 건 못 느끼잖아.”
“아…….”
정확하게는 환생한 거지만, 아샤는 태어날 때부터 완성된 채로 태어났었구나.
태어날 때부터 정신이 완성되었고 자신의 근본을 깨달아 진화를 이룬 것 외에는 아샤는 이러한 고민을 겪어보지 못했으리라.
그러니 너무나 탁월한 재능 때문에 괴물이라고 불리면서 친구 하나 마음 놓고 사귀지 못하는 어린 에일렌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거겠지.
레이시는 에일렌의 마망으로서만 생각하다가 생각하지도 못한 점을 깨달아 쓰게 웃다가 아샤에게 몸을 기대면서 그러니 에일렌의 다른 엄마로서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럴 거야.”
“에헤헤……. 아샤.”
“응. 왜?”
“그냥요.”
레이시가 머리를 기대면서 눈을 감자 시시하다면서 레이시의 어깨를 감싸주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가 틱틱대자 배시시 웃으면서 아샤의 볼에 입을 맞췄고, 아샤는 레이시의 입맞춤에 눈을 가늘게 뜨다가 에일렌이 온다면서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췄다.
“으응.”
“마망! 이빨 닦구 왔어요! 세수도 했어!”
“와아~ 고생했어요. 이리 와요. 안아줄게요.”
“응!”
쪼르르 달려와서 레이시의 품에서 자리를 잡는 에일렌.
이미 몇 번이나 해서 익숙하다는 듯 자리를 잡은 에일렌은 레이시의 손을 자기 머리로 끌고 갔고, 레이시는 그런 에일렌의 행동에 못 말린다는 듯 웃다가 아샤와 함께 침대에 누워 에일렌을 재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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