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9화 〉 구호 사업4
* * *
“토끼다, 토끼이~.”
“아하하, 그렇게 좋아요?”
“응!”
작은 입을 열심히 오물거리면서 사과를 먹는 에일렌.
레이시는 그런 에일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엘레오놀은 레이시의 접시에 고기가 다 사라지지 않은 걸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벌써 가시나요?”
“네, 지금 쯤이면 미르랑 레아가 배 고프다고 울 때라서 올라가봐야 할 거 같아요.”
“아하, 그럼 나중에 말린 과일을 보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레이시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위로 올라가자 애 엄마는 힘들겠다면서 키득키득 웃는 엘레오놀.
엘레오놀은 레이시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자기가 아이를 낳으면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자기가 일하는 게 편하겠다고 말했고, 엘라는 엘레오놀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더니 축제의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냐고 물어봤다.
“이미 준비는 끝냈어요. 하지만 계기가 필요하네요. 공주님이 오셨다고 곧바로 축제를 열면 공주가 와서 축제를 연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명분이라는 건가?”
“네, 미스트 씨가 있으면 편했겠지만…….”
“미스트는 지금 조사중이니까 안 돼.”
“그렇죠. 그러니까 지금은 조사단 여러분들이 열심히 해주거나 그럴 수밖에 없네요.”
“내가 마수를 죽인 건?”
“미네르바 님의 개인 공적이지 도시를 복구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되잖아요?”
“흥.”
미네르바는 미스트랑 다르게 바로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하자 입술을 샐쭉하게 내밀며 투덜거렸고, 엘라는 그런 미네르바의 반응에 미네르바를 달래주면서 말을 이어갔다.
“뭐, 중형 마수들이야 이 도시의 기사들도 어떻게든 할 수 있는 수준이니까. 안타깝네. 대형 마수라면 어떻게든 축제 삼았을 텐데.”
“됐다. 주인에게 칭찬 받으려고 한 거지 너희들에게 칭찬 받으려고 한 건 아니다.”
“뭐, 그건 그렇다치고 조사결과는 구하기 어려울 거 같던데.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백순 기사단을 부르는 게 나을 뻔했어.”
“제 애인들에게 호위를 부탁할까요?”
“음,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아무래도 소규모 정예로 채집단을 꾸리고 그걸 도시 안에서 연구하는 게 낫겠네. 그렇다면 조사단 기지를 만든 걸 기념해서 축제를 열 수도 있잖아.”
“그것도 좋은 생각이죠.”
“그럼 그렇게 하고, 돈 계산은 맡겨둘게.”
“어머, 적당히 빼돌릴지도 몰라요?”
“10%내외라면 왕국 내에서도 수고비로 쳐주는 편이지. 물론, 질은 좋아야 하겠지만.”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세요. 적당히 좋은 질의 상품을 구해드릴게요.”
“그럼 수고해, 쿨리아 공작.”
“명을 받들겠습니다. 파우스트 공주님.”
엘레오놀의 인사에 손을 휘젓더니 아샤에게 위로 올라가라고 말하는 엘라.
아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기 허벅지에 앉아있던 에일렌을 엘라의 허벅지에 앉힌 다음 에일렌의 이마에 입을 맞춰주었고, 에일렌은 아샤의 입맞춤에 배시시 웃다가 손을 흔들었다.
그런 다음 아샤는 레이시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고, 레이시가 아이들에게 젖을 먹이는 걸 보고는 힘들지는 않냐며 옆에 앉았다.
“자, 육포.”
“애들 밥부터 먹이고요.”
“흐응.”
레이시가 자신의 제안을 부드럽게 거절하자 아샤는 레이시를 빤히 바라보다가 레이시를 꽉 끌어안고 자기에게 기대라고 말했다.
“훨씬 편하네요.”
“애들에게 밥 먹일 때마다 안아줄까?”
“그러면 좋겠지만 아샤도 아샤의 일이 있잖아요?”
“기사단장직에서 내려오면서부터 할 일이 줄어서 아무래도 괜찮아. 솔직히 왕궁에 있을 땐 마리아 훈련 봐주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없고.”
“아하하하…….”
어째 마리아 씨가 우는 소리를 하더니…….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마리아에게 너무 엄하게 대하지 말라며 어색하게 웃었고, 아샤는 레이시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면서 하여튼 어떻겠냐고 물어보며 레이시가 허리를 편하게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가끔씩 시간이 나면요.”
“그럴까?”
“네, 그래요. 부탁할게요.”
“부탁까지는 하지 말고.”
묘하게 미스트를 더 많이 닮은 쌍둥이.
아샤는 그런 쌍둥이를 눈에 담다가 미르와 레아가 레이시의 가슴에서 입을 떼자 능숙하게 미르를 안아들고 트림을 시켜주기 시작했다.
“께흐으윽.”
“미스트가 이런 소리를 내면 엄청 웃길 건데.”
“아, 아하하하하…….”
“뭐, 그럴 리는 없겠지만.”
레이시에게 농담을 건네면서 엘라와 엘레오놀이 했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말해주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그럼 조사단에는 누가 들어가는 거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샤도 들어가나요?”
“설마. 나는 엘라의 기사니까 안 들어가. 들어가는 사람들은 흑창 기사단하고 벽천화 기사단 조금, 그리고 네가 고용한 조사원들이겠지.”
“그렇겠죠?”
“왜? 도와줄까?”
“으으으음…….”
아샤는 레이시가 원한다면 사람들을 도와주겠다고 말했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사람들의 목숨이 위험한 일이 생긴다면 나서겠지만, 그것도 아닌데 괜히 나서고 싶지 않다.
“엘라가 말한다면 도와주세요.”
“그래?”
“네, 그건 그 사람들의 일이니까요. 엘라가 명령할 때까지는 저희가 관여하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너는 공주비니까 엘라에게 의견 정도는 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엘레오놀 공작님이나 엘라가 직접 제게 어떻게 할건지 물어봤을 거 같아요.”
“그래. 그건 그러네.”
레이시의 대답에 만족스럽게 웃더니 가볍게 입을 맞추는 아샤.
아이들이 잠들자 레이시는 미르와 레아를 침대에 눕힌 다음에 아샤에게 등을 기대면서 욕포를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다른 거 줄까?”
“아뇨, 이것도 맛있는 걸요.”
“그래. 내일은 뭐 할거야?”
“글쎄요? 아무런 일정이 없네요. 아샤랑 같이 데이트할까요?”
“읏……. 그, 글쎄? 지금은 놀만한 곳이 없으니까 추천은 못 하겠네.”
“에이, 제가 언제 재미있는 거 느끼려고 데이트했나요? 아샤랑 같이 있는 게 좋으니까 데이트하자고 하는거지.”
레이시의 말에 얼굴을 붉히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의 반응에 배시시 웃다가 아샤에게 기대 남은 육포를 입에 털어넣었고, 아샤는 레이시가 식사를 끝내자 애들은 돌보고 있을 테니 먼저 씻으라며 순서를 배려해주었다.
“고마워요.”
“뭘.”
“그래서 데이트는 어떻게 할래요?”
“으응, 내일 생각할래.”
“후후, 그래요. 그럼 먼저 씻을게요.”
“그래.”
레이시가 씻으러 들어가자 아샤는 마른 세수를 하면서 미르와 레아를 바라봤다.
자기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배가 부르니 기분이 좋다는 듯 대자로 퍼져서 자는 모습.
아샤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마을에 들어올 때 봤었던 풍경을 떠올려보았다.
영주의 처치인지 엘레오놀의 처치인지 그래도 약간의 놀 거리가 있던 도시.
서커스 같은 건 솔직히 보는 재미가 없겠지만, 그래도 마술사들의 눈속임 같은 건 볼만하지 않을까?
“……는 아니겠지.”
엘라나 미스트라면 자연스럽게 데이트 플랜을 짜려나.
아샤는 잠시 그렇게 생각하다가 다른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까 같은 생각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정 안 되면 붉은 땅이라도 구경하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미르와 레아가 하품하면서 꼬물꼬물 팔다리를 움직이자 얇은 이불을 두 사람에게 덮어주면서 조심스럽게 뺨을 쓰다듬었다.
“먀우웅.”
“으웅.”
“킥.”
이제 막 태어난 강아지 같은 소리를 내면서 몸을 움직이는 두 아이.
아샤는 미스트와 다르게 무척 귀엽다고 생각하면서 두 사람을 재우기 시작했고, 미르와 레아가 잠들 떄쯤 나온 레이시는 아샤가 애들을 재우고 있자 천천히 옆에 앉아 가볍게 입을 맞췄다.
“죄송해요. 제가 야차라서…….”
“뭐 어때? 나도 야차인데.”
“으응.”
“아이는 신경 쓰지마. 네 아이라면 누구의 아이든 사랑해줄 수 있으니까.”
아샤는 자기 눈치를 보는 레이시에게 가볍게 입술을 맞대면서 데이트나 생각해보자고 말했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이 도시에 놀만한 게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봉사활동이라도 할까요?”
“나쁘지 않지. 아니면 붉은 땅을 구경하던가.”
“아……, 마수가 있는 땅 말이죠?”
“응, 평범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지만 가끔 아름다운 꽃이 피거든. 잔혹할 정도로 아름답게 피는 꽃. 독초지만 연금술의 재료라 비싸게 거래되는 꽃이 있어. 한 번 채집해볼래?”
“그럴까요?”
싱긋 웃으면서 아샤에게 몸을 기대는 레이시.
아샤는 레이시의 머리를 가볍게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주었고, 레이시는 아샤의 토닥임에 눈을 감고 봉사활동을 하면 아이들에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말린 과일을 주고 여기가 원래는 어땠는지 묻고 싶어요.”
“그거 좋지. 원래 여긴 대곡창 지대여서 엄청 아름답다고 했으니까.”
“풍경을 그린 그림이 있으면 그림도 보고 싶고요.”
“그래. 한 번 물어보자.”
“흐아아아암……. 에헤헤.”
“졸려?”
“네, 조금 졸리네요.”
“그럼 자.”
“아샤는요?”
“너 자면 같이 잘게.”
“히히……. 사랑해요.”
아샤의 말에 레이시는 배시시 웃다가 그대로 침대에 누워 아샤의 손을 잡았고, 아샤는 레이시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잡다가 레이시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고 사랑한다고 속삭여주었다.
그러자 레이시는 얼굴을 붉히면서 아샤를 바라봤고, 아샤는 레이시의 시선에 다시 한번 입을 맞추면서 레이시를 재우기 시작했다.
마차 안에서 매일 열심히 공부했으니 피곤할만도 하겠지.
아샤는 그렇게 생각하며 레이시를 재우다가 엘라가 올라오자 가볍게 손을 흔들면서 인사했다.
“레이시는 벌써 자?”
“피곤한가봐.”
“흐응. 마차에서 매일 공부를 그렇게 했으니까 피곤할만도 하겠지.”
“그렇지? 그래서 축제는 열기로 했어?”
“응, 조사단을 만들고 그걸 기념하면서 축제를 열기로 했어. 그때는 너도 완전 무장하고 앞에서 나와야해.”
“쯧. 귀찮…….”
“귀찮다고 하지 말고. 너랑 나만큼 확실한 홍보 수단이 어디에 있어? 특히 너는 이름이 많이 알려졌잖아. 국가적으로 신문에 홍보까지 받아서 나를 모르는 사람도 네 갑옷가 네 이명만큼은 알고 있다고.”
“끄으응…….”
마차에 개인 장비를 실을 때부터 대충 짐작은 했었지만…….
아샤는 귀찮다는 듯 머리를 긁다가 하여튼 알겠다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엘라는 아샤의 대답에 피식 웃더니 오늘은 이만하고 씻고 자자며 욕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레이시는 아샤와 함께 미르와 레아의 밥을 미리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게 짜면 안 아파?”
“네? 아, 으음, 별로……? 아픈 건 에일렌 이빨 났을 때가 아팠죠? 상처가 나도 애가 자주 무니까 연고도 못 바르고 그냥 몸이 나을 때까지 기다려야 할 때도 있었으니까요. 그나저나 이번에는 애가 두 명이라 양쪽 다 상처가 날 거 같네요.”
어색하게 웃으면서 우유병을 꽉 채우는 레이시.
6병 정도면 충분히 먹겠다 싶었던 레이시는 가슴을 닦으면서 그래서 데이트 코스는 어디냐고 물어봤고, 아샤는 레이시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이면서 우선 나가고 나서 생각해보자며 레이시에게 손을 내밀었다.
“에헤헤. 데이트네요.”
“그러게. 우선 말린 과일부터 챙길까?”
“네, 그래요.”
아샤의 말에 배시시 웃으면서 말린 과일을 챙기는 레이시.
레이시는 아직 잠을 자는 에일렌의 이마에 입을 맞춘 다음 엘라에게 에일렌을 부탁했고, 엘라는 레이시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잘 놀고 오라며 키득 웃었다.
“애들이 너무 귀찮게 달라붙으면 아샤에게 말해.”
“네, 그럴게요.”
“그럼 조심해서 다녀와.”
“다녀올게요오오~.”
레이시의 인사에 피식 웃으면서 자기가 들고 있던 말린 과일을 건네주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선물에 나가기 전에 손으로 키스를 보내면서 사랑한다고 외쳤고, 엘라는 레이시의 애교에 키득키득 웃으면서 서류를 손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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