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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487화 (487/542)

〈 487화 〉 구호 사업­2

* * *

“음, 이 정도면 됐겠다.”

아샤와 함께 서류를 만지작거리다가 3시 반쯤 되어서 서류를 내려놓는 엘라.

엘라는 기지개를 켜면서 하품을 깊게 내쉬다가 레이시의 이름을 크게 불렀고, 레이시는 위층에서 들리는 엘라의 목소리에 에일렌을 데리고 위로 올라갔다.

에일렌은 저택 모험이 중간에 끊겨서인지 입술을 샐쭉하게 내밀며 투덜거렸지만, 엘라가 팔을 벌리자 언제 투덜거렸냐는 듯 환하게 웃으면서 엘라에게 안겨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저택 탐방은 어땠어? 재밌었어?”

“응! 재미있었어! 막막 비밀 통로도 발견하고 그랬어!”

“응? 비밀통로?”

에일렌의 말에 엘라는 레이시를 보며 설명을 부탁했고, 레이시는 어색하게 웃다가 자기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책장에 가려져 있는 통로라거나 없던 통로가 생기거나 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엘라는 에일렌에게 어디에 있는 통로를 찾았냐고 물어봤고, 에일렌은 엘라의 질문에 엘라가 줬었던 장난감 중에 숨겨진 구슬을 찾는 장난감이 있지 않냐며 배시시 웃었다.

“그거 따라했어요.”

“헤에…….”

“에헤헤. 칭찬해줘!”

“잘 했어.”

스킬 없이 장난감의 작동원리만 보고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 나중에는 진짜 나만큼 마법을 쓸 수 있으려나.

엘라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에일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시계를 확인했고, 3시 45분쯤 되자 지금 이동하면 딱 맞겠다 싶어 에일렌에게 10분 동안 가만히 있는 거 할 수 있겠냐고 다시 한번 물어봤다.

그러자 에일렌은 할 수 있다면서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환하게 웃었고, 레이시는 에일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그럼 같이 해보자면서 엘라의 뒤를 따라갔다.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되는 거죠?”

“응. 부탁할게.”

레이시에게 입을 맞추면서 속삭이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입맞춤에 얼굴을 붉히다가 한 번 최선을 다해보겠다면서 연설장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이내 엘라가 단상에 올라가 연설하는 걸 들으면서 아이들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우선 7살이나 8살부터는 표정을 관리하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무슨 이유에서 얼굴을 관리해야 하는지 모르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엘라가 영주보다 아득히 높은 사람이라는 걸 눈치채고 불만을 대놓고 표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어린 애들은 표정을 전혀 관리하지 못하고 불만을 드러내고 있었고, 그들의 부모로 보이는 사람들은 곤란한 듯 애들을 말리고 있었다.

하긴 왕족에게 불만을 품고 있다는 걸 알면 삼족이 몰살될지도 모르니 당연한 거겠지.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며 씁쓸하게 웃다가 이내 사람들이 엘라에 대해 경외심이나 애정을 품고 있는지 확인했고, 이내 그런 것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자 씁쓸하게 웃으면서 창문에서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아샤를 바라봤다.

그러자 아샤는 레이시의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레이시는 아샤의 대답에 한숨을 내쉬면서 마을 사람들을 바라봤다.

“으으응.”

“왜?”

“아뇨, 엘라에 대한 경외심 같은 게 전혀 안 느껴져서요. 아샤도 그렇다고 대답했고.”

“레이시도 느낄 수 있어?”

“아샤를 흉내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어요.”

“흐으응.”

레이시의 말에 비음을 흘리다가 대충 예상을 했다면서 어깨를 으쓱거리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왜 사람들이 불만인 거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질문에 과일을 못 먹어서 그렇다고 대답해주었다.

“사람들이라는 게 구호가 오면 처음에는 먹고 사는 것만 신경 쓰다가 점점 살만해질수록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을 되돌려 받길 바라거든.”

“에에에…….”

“과일 가지고 공휴일을 만들어도 되냐고 어전회의에서 당당하게 건의를 했었던 만큼 이 영지 사람들에게 과일은 무척 중요한데 말린 과일도 못 먹고 감자와 옥수수 같은 것만 퍼먹고 있으니 빡친 거겠지.”

무덤덤하게 말하면서 저택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마을 사람들을 힐끗 쳐다본 다음에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자기가 이 마을에 온 기념으로 축제를 열 거라고 말했다.

“연구원이 온 이상 육체 노동이 이어질 거야. 땅에다 축복을 내리고 정령들의 힘을 깃들게 한다고 해서 땅이 회복되거나 그런 건 아니거든. 지력이 회복되려면 땅을 갈아엎고 나무를 심는 둥 일을 해야 해. 지금 이상태에서 일을 시키면 좀 그러니까 당근부터 먹여줘야지.”

“그래도 축제로 괜찮은 걸까요?”

“이러니까 축제로 괜찮은 거야.”

레이시의 질문에 엘라는 오히려 힘든 일을 해야만 하기에 때문에 축제라는 명분을 이용해야만 한다고 대답해줬다.

힘을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만약 조금이라도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일을 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 지시를 내려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 나올거고 마을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 동조할 것이다.

안 그래도 힘들었는데 귀족이라는 게 와서 분위기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으니까.

그러니 축제를 열지 않으면 안 된다.

말린 과일에 싸구려 술이라고 하더라도 술과 과일을 잔뜩 먹여서 희망을 심어준다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며 투덜거리는 사람이 나와도 마을 사람들이 알아서 분위기를 떨어트리지 말라며 조져놓을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배식을 나쁘게 한 것도 있다.

그렇게 말해주자 레이시는 안 믿긴다는 듯 에일렌에게 육포 대용으로 들고 다니는 말린 과일을 입에 넣어주었고, 엘라는 근처 사용인에게 말린 과일을 주면서 엘레오놀에게 갈 테니 기별을 넣으라고 말했다.

“엘레오놀에게 물어보면 되지?”

“으응.”

“누구 말이 맞는지 내기 할래? 내가 이기면 레이시가 뽀뽀해줘.”

“으으, 알았어요. 대신 제가 이기면 엘라가 해줘요.”

“풋, 알았어.”

누가 이기든 상관이 없는 내기를 하면서 엘레오놀의 집무실에 들어가는 엘라와 레이시.

엘레오놀은 두 사람이 소파에 앉자 자기를 보는 에일렌에게 쿠키를 건네주면서 머리를 쓰다듬었고, 엘라는 그런 엘레오놀에게 레이시가 궁금해하던 걸 물어보면서 어떻게 하고 있냐고 물어봤다.

“아, 그거 일부러 그러는 거예요.”

“……네?”

“일부러 배급을 조절했어요. 왜냐면 한 번에 배급을 좋게 해줘봐야 바라는 것만 많아지지 제 말을 안 들을 확률이 높거든요. 여기가 쿨리아의 영지였다면 제 명성을 이용하겠지만, 여기 사람들에게 저는 그냥 이방인이잖아요.”

“으으응.”

“그런 사람들에게 처음부터 잘해봐야 다음 요청이 들어올 뿐이에요. 그래서 일부러 폭동을 일으키지 않을 정도로 배를 불려줬어요. 거기에서 제 3자로 온 엘라 공주님께서 여기 사람들에게 말린 과일을 배급하라고 지시하면 사람들이 말을 잘 듣겠죠.”

“축제 때는 생과일을 먹여야겠지만.”

“네에, 과일을 옮길 상단은 준비해뒀답니다. 여기 서류에요. 그 다음 말린 과일과 관련된 상단은 여기에다 해주시면 되고요.”

엘라가 어떻게 말할지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서류를 꺼내는 엘레오놀.

레이시는 그런 엘레오놀의 행동에 벙쪄 있다가 이내 입술을 샐쭉하게 내밀면서 미리 이야기가 됐으면서 자기에게 내기를 하자고 말한 거냐며 엘라에게 투닥거렸고,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그런 건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보통 이렇게 하니까 그냥 말해본거야. 엘레오놀이 왕궁의 지시를 따른다고 일부러 불만을 내버려둘 정도로 무능하지도 않고.”

“어머, 고마워요.”

“뭘. 그것보다 서류는 확인했고, 이대로 진행해줘.”

“네, 그럴게요. 공주님.”

“그럼 나는 엘레오놀하고 일 좀 더 할 테니까 레이시는 에일렌하고 가서 잘래? 피곤한 모양이네.”

“으응, 그럴게요.”

“내기는 잊지말고.”

“쪽……, 안 잊었거든요?”

엘레오놀의 쿠키를 받아먹더니 이내 레이시에게 머리를 기대고 쿨쿨 자는 에일렌.

마차를 타고 도착하자마자 뛰어놀다가 갑자기 가만히 있으니 졸음이 몰려온 건지 에일렌은 레이시가 머리를 쓰다듬어도 모를 정도로 곤히 자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그런 에일렌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엘라는 레이시에게 저녁을 먹을 쯤에는 돌아가겠다면서 레이시의 뺨에 입을 맞췄고, 레이시는 다시 한번 엘라에게 입을 맞추고 조심스럽게 에일렌을 안아들고 엘레오놀이 빌려준 방으로 들어갔다.

“왔어?”

“쉬이이.”

“자?”

“네, 자요. 조금 피곤했었던 모양이에요.”

“레이시도 피곤해 보이는데 자.”

“으으응.”

미리 준비해준 건지 베개와 이불이 가지런히 깔려 있는 침대.

레이시는 그 침대에 에일렌을 눕힌 다음 아샤를 보면서 마을 사람들에 대해서 물어봤고, 아샤는 레이시의 질문에 레이시도 느끼지 않았냐며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 기아 상태인데 간신히 입에 풀칠만 해, 땅이 회복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성벽 밖에는 마수가 돌아다니지……, 이런 상황에서 경외심 같은 게 생길 리가 없잖아.”

“그러려나요…….”

“응, 뭐, 자세한 건 엘라가 움직이고 나서 정해지겠지만.”

“에에, 아샤도 엘레오놀이 어떻게 한 걸 눈치챘어요?”

“기사단장이면 이런 환경에도 자주 끌려오거든. 지금처럼 환경을 조사하고 회복시키려고 온 게 아니라 마수를 죽이거나 호위하러 오는 거지만. 마리아만 봐도 알잖아?”

“그렇구나.”

“그래서 대충 매번 이런 상황으로 돌아가는 걸 알지. 그리고 저 사람들도 알고 있을걸? 그래도 식량 상황이 괜찮아진다고 하니까 눈 감고 넘어가는 거고.”

“으으응.”

“일단 자. 피곤해 보이네.”

레이시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대고 천천히 눕히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의 손길에 천천히 침대에 눕더니 아샤도 같이 자자며 사이에 에일렌을 두고 아샤를 껴안았고, 아샤는 그런 레이시의 행동에 당황하다가 이내 레이시가 자기 손을 잡고 눈을 감자 못 말린다는 듯 웃다가 조심스럽게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레이시는 배시시 웃으면서 완전히 잠들었고, 아샤는 레이시와 에일렌이 잠든 걸 확인하고는 몸을 돌려 미르와 레아를 바라봤다.

방금 밥을 먹고 누워서인지 곤히 자고 있는 두 아이.

아샤는 세상 모르게 자는 미르와 레아를 빤히 바라봤고, 미네르바는 그런 아샤의 시선을 눈치채고는 아샤를 빤히 바라봤다.

“왜?”

“……내 아이도 아샤가 키워도 된다. 내가 더 많이 키울 거지만.”

“킥.”

“흥.”

“고마워.”

배려 아닌 배려.

하피에게 있어선 아이를 누가 키우는 것 정도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니 아무 말 안 해도 되지만, 레이시와는 절대로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나를 배려해준 거겠지.

아샤는 미네르바의 말에 그렇게 생각하다가 에일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몸을 일으켜 세웠고, 미네르바는 아샤가 침대에 앉아서 아이들을 돌보자 창문으로 시선을 돌리고 멍하니 오염된 농경지를 바라봤다.

붉은 기운이 감도는 땅.

아마 그 자리에 사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이상도 없겠지만, 저 땅에서 자라는 걸 먹으면 배앓이를 심하게 하거나 독이 있어 잘못하면 죽겠지.

“으응?”

“왜?”

“흐음, 아샤. 엘라가 흑, 흑……? 뭐라고 했지? 그 검은 녀석들.”

“흑창 기사단?”

“그래, 그 기사단에게 중형 몬스터가 몇 마리 나타나면 퇴각하라고 했었지?”

“3마리. 사살이라면 가볍게 죽이겠지만, 호위 임무니까 기본이 회피, 도주거든. 거기에다가 호위대상이 흑창 기사단보다 많으니까 더더욱. 왜?”

“마수가 몰려다녀서 죽이고 오겠다.”

“엘라에게 보고하고, 코코랑 나비도 데리고 가.”

“알겠다.”

창문을 열더니 아래로 뛰어내리는 미네르바.

그러더니 미네르바는 엘라에게 가지 않고 곧바로 나비와 코코에게 갔고, 아샤는 미네르바의 모습에 한숨을 푹 내쉬다가 사용인을 불러 엘라에게 미네르바의 출전을 알려달라고 부탁하며 창문 너머를 바라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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