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6화 〉 구호 사업1
* * *
“그럼 저 가볼게요.”
“으응, 정말로 돈이나 보석을 더 안 들고 가도 괜찮아요?”
“네, 추적만 당할 뿐이니까요.”
“그럼 이거 받아요.”
“머리카락?”
“네, 조금 잘라봤는데 금방 자라더라고요.”
“후후, 고마워요. 공주님도 못 받은 걸 제가 받았네요. 기뻐요.”
레이시의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배시시 웃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웃음에 같이 웃으면서 조심해서 다녀오라며 가볍게 입을 맞췄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레이시도 구호 사업을 조심해서 하고 오라며 입을 맞춰주었다.
“자, 그럼 가자.”
“네, 엘라. 미스트, 진짜 조심해야 해요.”
“네.”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사라지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가 사라지는 걸 보고 나서야 엘라가 타고 있는 마차에 올라탔고, 주변에 보이는 기사들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면서 아이들을 품에 안았다.
“마망, 이제 우리 어디로 가아?”
“으음~ 사람들 도와주러 가요.”
“도와줘? 왜에?”
“가뭄이래요. 먹을 게 없어서 먹을 걸 주고 땅을 회복시키려고 가요. 그 사람들도 농사를 지을 수 있어야 지원 없이도 살 수 있잖아요.”
“으으응?”
레이시의 설명을 들은 에일렌은 한참을 생각해보다가 이내 먹을 걸 준다는 거 말고는 잘 모르겠다면서 레이시를 껴안았고, 레이시는 에일렌의 대답에 에일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사람들을 도와주러 간다는 것만 알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아직 에일렌은 어리니까 사람을 도와준다는 것만 알면되요.”
“응! 마망!”
“마차에 있을 땐 동생들을 돌봐줘야 하는데 그럴 수 있어요?”
“우우움, 해볼게!”
가슴을 내밀며 엣헴거리는 에일렌.
레이시는 그런 에일렌의 모습에 피식 웃으면서 마차를 출발시켰고, 마리아는 엘라의 신호에 마차를 출발시키면서 동시에 마차 뒤를 따라오는 실버 스콜을 보고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정말 길들이신 거예요?”
“네, 계약도 착실히 맺었답니다?”
아무래도 연구실에 박혀 있는 것보다는 조르면 산책을 나갈 수 있는 레이시와 계약을 맺는 게 낫다고 생각했는지 쉽게 계약을 맺은 실버 스콜, 코코.
에일렌은 코코를 보고 손을 흔들었고, 코코는 그런 자신의 코로 에일렌의 팔을 마차 안에 넣은 다음 다시 마차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리아는 맹수를 그렇게 애완동물 취급할 수 있는 사람은 레이시 밖에 없을 거라면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죽이라고 하면 못 죽일 건 없지만,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못하면 마을 하나는 집어삼킨 마수를 귀엽다고 애완동물로 삼다니…….
“왜 그러세요?”
“아, 아뇨. 아닙니다.”
하긴 내가 신경 쓸 건 아니지.
그렇게 생각한 마리아는 벽천화 기사단에게 지시를 내리면서 마차를 호위하기 시작했고, 그에 맞춰서 흑창 기사단은 다른 마차를 호위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레이시는 마리아에게 저 마차에 마리아가 원하던 신랑감이 있다고 말하면서 한 번 친해지는 게 어떠냐고 물어봤고, 마리아는 레이시의 질문에 호위 대상을 생각해보다 가웨인 갈리아를 말하는 거냐며 어색하게 웃었다.
“저는 남작인데요?”
“뭐 어때서 그래요? 그러는 저는 평민이었잖아요?”
“그으으…….”
“거기에다가 마리아 씨와 가웨인 씨는 종족도 같으니까 좀 더 편하지 않을까요?”
“틀린 말씀은 아니지만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말씀이네요.”
어색하게 웃으면서 가문 차이가 너무 심하게 차이가 난다고 말하는 마리아.
마리아는 차라리 평민이었다가 귀족이 되었다면 레이시처럼 로맨스를 찾아 행동하겠지만, 자기는 처음부터 귀족이라서 그렇게 생각하기는 조금 힘들다고 말했고, 레이시는 마리아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번에는 오래 있을 테니 한 번 생각해보라면서 마차에 몸을 기대고 엘라를 바라봤다.
“엘라.”
“응?”
“엘레오놀 공작님은 미리 거기에 가서 일을 준비하시고 계신 거죠?”
“응. 듣기로는 식량 배급을 진행 중이라더라고. 쿨리아 왕가였을 시점에 많이 해본 거겠지. 일의 진행 상황이 무척 빨라서 우리가 도착할 때쯤에는 식량 배급은 끝날 거고, 우리는 그냥 지력의 회복에만 신경 쓰면 될 거야.”
“대단하네요…….”
“뭐, 사람에겐 잘할 수 있는 특기가 정해져 있으니까, 레이시는 레이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돼.”
“에헤헤…….”
엘라의 말에 배시시 웃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레이시는 엘라에게 안겨서 미스트와 지은 셋째의 이름을 말하면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지 물어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질문에 미스트라면 가능할 거라고 말했다.
“어쨌든 도망치는 건 우리 중에서 미스트가 제일 잘 할 거니까, 무사히 돌아올 거야.”
“그렇겠죠?”
“응.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 일이나 신경 쓰자.”
“네, 그럴게요.”
엘라의 말에 다시 한번 계획서를 펼쳐보는 레이시.
자세한 건 현지에 가서 정해지기에 계획서에는 준비된 자금이나 추가되는 자금, 추가로 고용할 수 있는 사람의 이름 정도가 적혀 있었고, 레이시는 궁금한 게 생길 때마다 엘라에게 질문하면서 계획서를 이해하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 시간이 흐르자 레이시는 지원사업을 펼치는 곳에 도착했고, 레이시는 마차를 마중 나온 시민들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엘레오놀이 잘 했나보네.”
“네?”
“엘레오놀이 나랑 네 이름을 팔면서 일해서 그런 걸거야. 구호 사업의 가장 중요한 점은 구호 받을 사람들의 신뢰도거든. 사람들이 엘레오놀을 믿어야 밥하고 물을 줬으니 우리의 사업을 따라 달라고 말할 수 있잖아?”
“아아……. 엘레오놀은 괜찮을까요? 저희가 공을 뺏어가는 것처럼 됐잖아요.”
“괜찮지. 어차피 엘레오놀은 아빠랑 귀족들에게 평가받으니까 평민들의 평가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평민들이 자기를 얼마나 칭찬하느냐보단 귀족 사회에 자기 이름이 얼마나 퍼지느냐를 신경 쓸걸?”
“그런 건가요?”
“응.”
“뭔가 좀 찝찝하네요.”
사람을 한 명 여기로 보냈다고 해서 이렇게 칭찬을 받다니…….
뭔가 곰에게 재주를 부리게 한 다음 돈만 채가는 느낌이다.
레이시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멋쩍게 머리를 긁다가 에일렌과 함께 마을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고, 마을 사람들은 레이시의 인사에 더 크게 환호하면서 레이시에게 어디로 가면 되는지 알려주었다.
그 안내를 따라 마차를 계속 옮기자 레이시는 엘레오놀이 있는 저택에 도착했고, 안경을 쓴 엘레오놀은 서류를 보면서 엘라와 레이시를 반겼다.
기사들은 그런 엘레오놀의 태도에 무엄하다면서 화를 냈지만, 엘레오놀은 기사들에게 일이 바쁘니 어쩔 수 없다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제가 지금 먹여 살리고 있는 마을 사람의 수가 50만이 넘어서요. 쿨리아처럼 제 기반이 있는 곳이었다면 식량 배급 같은 건 제 부하에게 맡겼겠지만, 지금 전 기반이 없는 곳에서 기반을 만들면서 동시에 사람들에게 식량을 배급하고 있거든요. 이 일을 기사님들이 할 수 있다면 다른 귀족들처럼 공주님을 맞이하는 연회를 준비할게요.”
“…….”
“못 하죠? 50만 명이나 되는 사람의 식량 사정을 처리하는 건.”
“재난이 보고서에 쓰여 있는 것보다 퍼졌나 보네요?”
“네, 개인적인 조사로 알아보니까 도시의 식량을 책임지던 농경지 일대는 물론이고 드래곤과 기간테스의 공멸로 인해 지하수까지 전부 오염됐어요. 우선 교회의 신관과 정령사들을 고용해서 긴급 정화는 부탁했고요, 이제 공주님께서 데려오신 학자분들이 일하실 차례죠.”
“그러네. 가웨인, 로마네오. 엘레오놀에게 인수인계 받아 정령사, 신관과 함께 사건의 여파가 어디까지 퍼졌는지 확인해라. 흑창 기사단은 두 사람을 호위하고 중형 몬스터 셋 이상이 나타나면 호위를 할 수 있든 없든 일단 대피한 다음 마물 퇴치 작전을 세워라.”
“명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벽천화 기사단은 단상을 마련하고 저택의 구조를 파악하도록. 오후 4시엔 나랑 레이시가 단상에 설 거다. 연설의 준비를 부탁하지.”
“명 받들겠습니다.”
“레이시는 애들 데리고 올래? 엘레오놀 공작, 방을 부탁하지.”
“네, 가장 넓은 방을 준비해드릴게요. 보안 측면도 완벽한 방이니 아이들을 데리고 계셔도 충분할 거예요.”
눈을 문지르더니 종을 흔드는 엘레오놀.
그러자 남자 사용인들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엘레오놀의 명령을 기다렸고, 엘레오놀은 10분 정도만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일할 테니 커피와 다과를 준비해달라고 부탁하며 레이시에게 방을 안내해주었다.
“와아, 넓어요!”
“그러게. 우리들이 다 같이 자도 충분하겠어.”
“에헤헤, 에일렌은 어때요?”
“우리 집이 좋아.”
“어머, 그래요? 왜요?”
“우웅, 너무 넓어서 마망에게 가기 불편해!”
“불편해요?”
에일렌을 안아주며 키득키득 웃는 레이시.
레이시는 그래도 사람들을 도와줘야 하니 조금만 참아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고, 에일렌은 레이시의 말에 샐쭉하게 있다가 아샤가 유모차에 태우고 오는 미르와 레아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처음에는 동생을 싫어하는 것 같더니 이제는 완전 동생바라기가 되어버린 에일렌.
레이시는 그런 에일렌의 모습에 에일렌의 이마에 입을 맞추면서 사랑한다고 속삭여주었고, 에일렌은 레이시의 속삭임에 배시시 웃으면서 레이시를 꽉 끌어안았다.
“에일렌, 이리와.”
“응, 엘라 엄마.”
“레이시도 같이. 연설문 보자. 연설은 나 혼자 하겠지만 내 옆에서 지켜봐줬으면 하는 게 몇몇 개 있어.”
“네? 뭔가요?”
“사람들의 의식주……, 아니, 의식 상태겠네.”
“으응, 엘레오놀이 잘 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뭐, 먹는 것자체는 문제가 없을 거야. 하지만 옷은 또 모르고 지금 식량 상태에 불만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럴까요?”
“굶어죽을 뻔했다고 하더라도 며칠 내내 감자만 퍼먹이면 불만이 터지지. 가웨인과 로마네오가 원인을 파악하면 대형 동원령을 시행해야 하니까 고기와 술을 좀 먹여야 하니까 의식 문제는 확인해봐야 해.”
“으으음……. 그렇구나…….”
“이런 일은 일개 백작 가문이 도맡아서 하기 힘드니까 왕가가 나서야지.”
“네, 그럼 어떻게 확인하면 돼요?”
“애들을 봐. 애들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확인하면 대충 식량에 얼마나 불만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으니까.”
어른들은 그래도 일을 해야 하니까 입에 음식을 쑤셔 넣을 수 있지만, 아이들은 먹고 하는 일이라곤 노는 거랑 집안일을 돕는 것밖에 없으니 불만이 금방 튀어나온다.
아마 왕가에서 방문했다고 해도 에일렌을 껴안고 연설을 하면 불만이나 부러움이 보이겠지.
엘라는 그걸 확인한 다음 작물을 몇 가지 더 배급할지 정해야한다고 말했고, 레이시는 그럼 처음부터 여러 작물을 주면 안 되냐고 물어봤다.
“응, 그러려면 아무래도 돈 소비가 커져서. 이 사업이 몇 개월간 지속될지도 모르는데 곧바로 돈을 꽂아버리기엔 조금 그렇잖아.”
“아하……, 돈 차이가 많이나요?”
“지금은 감자랑 옥수수만 주고 있는데 여기에서 양파랑 당근을 추가하면 20%는 돈이 더 들거야. 여기에 치커리나 말린 토마토 같은 걸 들고 오면 35%는 더 들지. 그 돈을 아끼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할 수도 있는데 막 쓸 수는 없잖아?”
“으응, 알았어요. 열심히 봐볼게요!”
“후후,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에일렌. 한 10분 정도만 안겨 있을 수 있을까?”
“우우웅?”
“필요할 거 같아서. 못 하겠어?”
“할 수 있어!”
엘라의 말에 볼을 부풀이면서 무조건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에일렌.
엘라는 그런 에일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가볍게 입을 맞췄고, 에일렌은 엘라의 입맞춤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다가 이내 배시시 웃으면서 엘라를 꽉 끌어안았다.
“그럼 나중에 네 시 되면 가만히 있어야 하니까 마망이랑 저택 탐방 좀 하고 올래? 미네르바, 호위로 따라나가. 아샤, 너는 나랑 같이 있고.”
“와아아앙~! 탐험이다아아~.”
“에일렌, 같이 가요오오.”
“풋…….”
저택 탐방이라는 말에 다람쥐처럼 달려가는 에일렌과 그런 에일렌을 따라가면서 웃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작게 미소를 짓다가 아샤에게 연설물 초고를 보여주면서 어떠냐고 물어봤고, 아샤는 엘라의 질문에 같이 초고를 보면서 엘라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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