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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481화 (481/542)

〈 481화 〉 새로 일을 맡게 되었다­4

* * *

“으으으으응~!”

“피곤하신가요? 조금 쉴까요?”

“으으응, 아뇨오오. 괜찮아요. 그래서 이 분과 이 분을 추천한다는 거죠?”

“네, 레이시는 안전하겠지만, 거기에 가는 학자분들까지 안전하다고는 못 하니까요.”

마수 사냥은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

흑창 기사단과 벽천화 기사단이 같이 동행한다면……, 아니, 그냥 레이시 혼자 던져둬도 레이시라면 마수를 전부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서 얌전히 걸어나올 수 있다.

하지만 학자들은 그렇지 않다.

몸을 지키기 위해서 나름 마법도구나 이런 것들을 챙겨서 가겠지만, 그런 도구는 위력이 그다지 강하지 않고 사용횟수도 제한되어 있으니 그것만 들고 간 사람들이 마수가 들끓는 곳을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다.

따라서 본인의 무력이 어느 정도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사람 중에서 추리고 추린다면…….

“한 명은 가웨인 갈리아 공자. 마수 학자 겸 지질 학자에요. 대표적인 논문은 땅의 특성에 따른 몬스터의 특성 발현 경향성으로 나름 자주 인용되는 논문이에요. 덤으로 본인 자체도 나름 힘이 있는 귀족이라 호위할 때 편하겠네요. 다른 한 명은 로마네오 주훈 백작이네요. 지질 학자 겸 농업 학자시죠. 대표적인 논문은 피로 오염된 지력 회복. 이 분은 본인의 무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아도 힘에 비하면 몸을 잘 사리시죠. 이런 경험이 많거든요.”

“으응, 두 분께서는 사병을 데리고 가야 하죠?”

“글쎄요? 본인의 호위 기사 한 분, 그리고 사용인 두 분 정도는 데리고 가겠지만, 그 이상은 아닐걸요?”

“그렇다면 흑창 기사단을 두 분께 넘길까요?”

“그래도 좋죠. 사업의 총 책임자는 누구로 하실 건가요?”

“으으응, 편지는 많이 받았지만……, 솔직히 다들 모르는 사람이고 알티네 왕비님의 입김이 닿은 것 같기도 해서 꺼려지네요.”

미스트가 확인해준 걸 보면 정말로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중립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을 시작했을 때도 중립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저번에 단단히 경고하기는 했지만 그녀는 왕비.

자기보다 훨씬 더 좋은 위치에 있다.

거기에다가 외가쪽 가문이 공작가라니, 아마 귀족을 고용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수작을 부리지 않을까?

그렇다고 자기가 직접 사업을 할 수는 없다.

자기는 사업에 대해서 잘 몰라서 분명히 망칠 테니까.

돈이 많으니 사업에 실패할 일은 없지만, 돈의 효율이 떨어질 것이다.

그러니까 돈을 효율적으로 써줄 사람을 고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으으으으응……. 어떻게 하죠? 엘라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일을 하고 싶지는 않은데.”

“지금이라도 국왕님께 무리라고 말하실래요?”

“으으, 아뇨. 아버님도 이유가 있어서 제게 일을 맡기시는 거겠죠. 그럼 제가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돼요.”

레이시의 대답에 미소를 짓더니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숨을 깊게 내쉬었고, 이내 엘레오놀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내용은 엘레오놀에게 사업을 도와줄 수 있겠냐는 것.

“엘레오놀에게도 기대기만 하네요.”

“후후, 엘레오놀 공작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겠지만요.”

“네?”

“비록 알티네 왕비님과는 척을 지겠지만, 레이시와 친하게 지내면 국왕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명분에 해석할 여지가 있다면 또 모를까 신하된 자로 명망을 받아준 국왕에게 충성을 다 하는게 무슨 여지가 있겠어요? 아마 엘레오놀 공작님도 편지를 보내셨을 걸요?”

“정말요?”

“네, 레이시가 먼저 편지를 보내면 레이시에게 안 좋은 말이 생길 거고 그렇다면 공주님에게도 좋지 않은 말이 나올 수 있으니 먼저 편지를 보냈을 거예요. 다만 소식을 늦게 받은 듯 연기를 해야 오늘 배달 오는 편지에 엘레오놀 공작님의 이름이 있겠죠.”

아직 열지 않은 상자를 뒤적거리더니 다른 편지보다 좀 더 화려하게 포장된 편지를 건네는 미스트.

그 편지의 보낸 사람은 당연하게도 엘레오놀이었고, 레이시는 엘레오놀의 편지지를 만지작거리더니 다행이라고 말하면서도 편지지에 금박을 씌우는 건 조금 과한 것 같다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엘레오놀이라면 편지지를 고급 편지지를 썼지 이런 걸 박을 사람은 아닌데.”

“다른 사람들에게 급하게 보이기 위해서에요. 꾸미지 않은 편지로 여유롭게 레이시의 제안을 받으면 다른 사람들이 엘레오놀에게 경계심을 가지겠지만 이렇게 잔뜩 꾸미고 향수까지 뿌려서 어떻게든 뽑아달라고 애원하는 편지로 레이시에게 선택받으면 레이시의 동정심으로 사업을 맡게 되었으니 경계까지는 안 할 거니까요.”

“그렇구나.”

“여기가 연맹국이었다면 왕가로서의 위엄을 보이겠지만, 지금은 오라토리엄 왕국에 망명온 사람. 불쌍하지만 당찬 사람으로 보일 필요가 있어요.”

그러니 왕가의 사업을 위해서 자신의 명예를 버리는 시늉을 했다.

자기는 적이 아니라고, 그저 자신의 백성을 지키고 싶어한 망국의 왕족이었을 뿐이라고 말하기 위해서.

역시 엘레오놀은 적으로 두는 것보다는 아군으로 두는 게 좋은 사람이다.

특히 엘라와 나름 성격이 잘 맞는 곳이 있어서 엘라가 중립으로 있는데 도움을 줄 수 있겠지.

“후후, 그럼 엘레오놀 공작님께 도와달라고 할까요? 아멜리아의 일은 루룬이 혼자서 잘할 테니까요.”

“으응. 네. 그래요. 너무 의존하는 건 좀 그렇지만, 엘레오놀이 부탁하는 거기도 하고……, 솔직히 엘레오놀을 제외하고는 다른 부탁할 사람도 없고요.”

“호위로는 마리아 씨가 벽천화 기사단의 단원들을 데리고 온대요. 그런데 조건이 있네요.”

“네? 뭔가요?”

호위할 때 탈 마차 같은 거려나……?

그런 거라면 기꺼이 마리아의 요구 조건을 들어줄 생각이 있었기에 레이시는 마리아의 조건이 뭐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질문에 싱긋 웃으면서 마리아의 요구 조건을 들려주었다.

“남자를 소개해달래요.”

“네?”

“반은 농담이고 반은 진담이겠죠? 마리아 시트러스 남작은 슬슬 혼기가 차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가문의 후계자를 배우자로 만나면 벽천화 기사단을 그만둬야 하고 그렇다고 평민을 데릴사위로 맞이하면 위험성 때문에 벽천화 기사단을 그만둬야 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겠죠.”

“아…….”

“마리아 씨는 아샤를 무척이나 존경하니까 결혼을 안 할 생각까지 하고 있을 거예요.”

“으응, 대단하네요. 저는 미스트랑 이렇게 있지 않으면 불안한데.”

“후후, 고마워요. 그래서 어떻게 하실래요?”

“……가웨인 씨 만나볼지 물어볼래요?”

“푸훗, 좋아요. 그럴게요.”

아무리 생각해도 알고 있는 미혼의 남자가 없었기에 논문에 적힌 이름을 말하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대답에 키득키득 웃으면서 어쩌면 정말로 사귀게 될지도 모르겠다면서 편지를 정리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작게 웃으면서 그렇게 되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자, 그럼 일은 여기까지 하고 조금 쉴까요?”

아무리 자기가 도와줬다지만 하루만에 사업의 기반을 닦아놓았다.

피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미스트는 그 피로를 이용해 레이시에게 와인을 한 잔 건네주면서 잡담을 시작했다.

“오늘 에일렌이 늦잠 자던데 어제 어떘나요?”

“으응, 어제 엄청 재미있었어요. 에일렌에게 여기저기 끌려다니면서 장난감이랑 모자랑 이것저것 사서, 서로 손을 잡고 시장을 거닐었어요.”

“레이시는 그런 분위기를 좋아했었죠?”

“왕궁의 사람들이 싫은 건 아닌데……. 아, 그래도 싫은 일도 있을 뻔 했어요.”

“응? 뭔가요?”

“술에 취한 사람들이 여자 둘이서 걸어다니니까 남자를 몰라서 그런다며 놀자고 하더라고요. 애는 집에다 데려다 놓고 오고 놀면 재밌을 거라고.”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으응~, 딱히 어떻게 하지는 않았어요.”

“네?”

“신분증을 보여주면서 왕실에 데려다 놓고 올 테니 기다려달라니까 죽을 상을 하고 도망치더라고요.”

“풉! 아하하, 잘하셨어요.”

예전 같았으면 신분증을 들이밀기보다는 엘라에게 도와달라고 말했을 텐데 언제 이렇게 똑부러지게 변했을까?

미스트는 와인을 마시면서 레이시를 바라보다가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손길에 눈을 깜빡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미스트의 손바닥에 뺨을 비비며 미스트를 바라보았다.

“우리 미르랑 레아도 크면 같이 야시장에 갈까요? 공주님께는 휴가를 받고 서로 아이의 손을 잡고 놀러 가요. 여름에 놀러 가는 것도 좋고 겨울에 놀러 가는 것도 좋아요. 소풍가서 꼬리에 빗질을 해주고 어디든 누워서 같이 낮잠을 자요.”

눈웃음을 지으면서 레이시에게 어떻게 놀고 싶냐고 물어보는 미스트.

레이시는 그런 미스트의 질문에 처음에는 눈을 깜빡이며 미스트를 바라봤지만, 이내 조용히 눈을 감고 미스트랑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다고 말해주었다.

“그래도 빌리는 방은 좀 작으면 좋겠어요. 미스트는 어쩔 땐 엘라보다도 화려하니까요.”

“후후, 공주님께서는 워낙 신분에 신경 쓰지 않으니까 제가 대신 신경 써야 했거든요. 그리고 저도 귀족 출신이니까요.”

“으응~. 겨울에 간다면 작은 방에서 벽난로에 불을 피우고 서로 옹기종기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미스트의 꼬리는 폭신폭신하니까요.”

“그거도 좋네요.”

레이시의 뺨을 계속해서 쓰다듬으면서 레이시를 빤히 쳐다보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손길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미스트의 손바닥에 입을 맞추면서 자리를 미스트의 옆자리로 옮겼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를 조심스럽게 안아주면서 꼬리로 레이시의 허리를 간지럽혔다.

“으응~ 오늘은 좀 이상해요, 미스트.”

“후후, 싫어요?”

“에헤헤, 싫을 리가 없잖아요. 너무좋아요.”

“그렇다면 사랑한다고 말해줄래요?”

레이시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작게 속삭이는 미스트.

레이시는 목소리를 잔뜩 죽이고 사랑의 말을 해달라고 속삭이는 미스트의 말에 자기도 같이 소리를 죽이면서 사랑한다고 속삭여주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대답에 부르르 떨다가 레이시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허벅지를 가볍게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레이시.”

“네?”

“오늘, 아이는 아샤가 돌봐주겠대요. 아이를 무척 좋아하는 거 같아요.”

“그렇죠? 가끔은 아샤에게 정말로 미안해요.”

“후후, 괜찮아요. 아샤는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 걸요. 레이시도 알잖아요?”

“그래도요.”

“후훗. 참,미네르바는 하양이와 나비를 데리고 멀리 사냥을 나갔어요. 내일 돌아온대요. 돌아갈 곳이 있는 비행은 너무 좋다고 그랬어요.”

“제가 돌아올 곳이 되었네요.”

“네, 그리고 엘라는 오늘도 에일렌과 논다고 했어요. 아샤와 경쟁해서 나름 곤란해요.”

“그렇……, 에.”

미스트가 방금 엘라를 공주님이라 부르지 않고 엘라라고 불렀나?

레이시는 미스트의 입에서 나온 말에 놀라 미스트를 바라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시선에 작게 웃으면서 지금 이 넓은 저택에는 자기와 레이시 박에 없다고 속삭였다.

“레이시가 저랑 하고 싶다는 것과는 정반대네요.”

“네? 네, 네에에……. 그, 그러네요?”

“레이시.”

“네?”

“사랑한다고 또 한 번 말해줄래요?”

묶었던 머리를 풀면서 조심스럽게 속삭이는 미스트.

평소와 다르게 약한 느낌이 드는 미스트의 목소리에 레이시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가 애써 웃으면서 다시 한번 사랑한다고 속삭였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속삭임에 레이시를 꽉 끌어안고 다시 한번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사, 랑해요.”

“정말요?”

“네. 사랑해요.”

“……레이시, 제가 전에 말했던 거 기억해요?”

“네?”

“저는 엘라의 뒤, 아샤와 미네르바의 뒤라도 좋다고 말했었잖아요.”

“그건…….”

“저는 제대로 된 가정을 만들지 못할 확률이 높으니까 그렇게 말했어요. 그리고 저는 메이드니까요. 그런데 레이시랑 계속 있다 보니까 다른 사람의 뒤로 있는 게 힘들어졌어요.”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던 손으로 입술을 가볍게 만지작거리면서 레이시의 눈을 그윽하게 쳐다보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시선에 얼굴을 붉히며 조심스럽게 시선을 떨어트렸지만,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시선을 다시 잡아끌면서 레이시에게 사랑해달라고 속삭였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좋으니, 저를 레이시의 첫 번째로 해주지 않을래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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