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9화 〉 새로 일을 맡게 되었다2
* * *
“아버님이 왜 저를 보자고 했을까요?”
“으음, 아마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쿨리아 공작가에게 땅을 선물한 일 때문일까요? 국가간의 협상이라 왕가의 사람들을 통해 구매한 게 되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실 수 있겠네요.”
“아.”
“아마 예산에 대해서 말하겠죠.”
“돈이 부족해서요?”
“설마요, 돈이 부족하지는 않아요. 그 지역에는 쿨리아 왕가와 관련된 설화도 없고 쿨리아 3대 국왕의 봉신이 좋아하는 호수라는 말밖에 없고 전략적 물품도 나오지 않는걸요. 사과가 나오긴 하지만 황금 사과처럼 특산품도 아니고요. 공주님께서 레이시에게 준 돈이면 그 땅을 사고도 남아요.”
“그럼 왜 부른 걸까요?”
돈도 충분하다면 사치를 부린다고 부른 걸까?
확실히 어찌됐건 국고로 땅을 산 거니까 아무래도 사치에 대해서 물어볼 수도 있겠네.
안 그래도 자기에게 관심이 많았던 시아버님이니까 사치를 부리면 안 된다고 충고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미스트와 함께 걷다가 특수부대원이 마중 나오자 허리를 숙여 인사한 다음 미스트의 볼에 입을 맞추면서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속삭여주었다.
“후후, 네. 조심해서 다녀올게요.”
“으응, 너무 괴롭히지 마시구요. 저번에 인체에 무해한 독충을 풀었다고 했을 때 얼마나 놀랐는 걸요. 저는 미스트가 착한 걸 알지만 이 분들은 아닐 거 아니에요?”
“레이시의 부탁이라면 들어드려야죠. 레이시도 국왕님과 이야기 잘 하고 오세요.”
“네.”
헤어지기 전 다시 한번 볼에 입을 맞추고 미스트를 배웅하는 레이시.
레이시는 미스트가 안 보일 정도로 멀리 떨어지자 한숨을 내쉬며 국왕이 왜 자기를 불렀을까 생각하면서 알현실에 들어갔고, 이내 거기에 있는 재무부 대신의 모습에 당황하며 고개를 숙였다.
“듀세리안 국왕님을…….”
“커흠!”
“……시아버님. 우응……, 지금은 공적인 자리 아닌가요?”
“하하, 공적인 자리이긴 하지만 우리 재무부 대신이 우리 귀여운 며느리에게 사정하러 온 거니 편하게 들으렴.”
“네? 네에에…….”
미르와 레아를 안은 채 우물쭈물거리면서 자리에 앉는 레이시.
국왕은 레이시의 품에 안긴 미스트와 레이시의 아이를 보고는 시종장에게 요람을 들고 오라고 명령했고, 레이시는 요람을 들고 온 시종장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국왕에게 대체 무슨 일이기에 자기를 부른 거냐고 물어봤다.
“저는 쿨리아 공작가의 땅을 산 것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제 입장을 잊고 사치를 좀 심하게 부렸나요?”
“응? 아니란다. 분명 우리 며느리가 땅을 사서 조금 놀라긴 했지만, 저택 하나 가지고 있지 않았던 엘라의 행동을 생각해보면 땅 정도는 사도 이상하지 않단다. 그리고 그러라고 준 돈이니 신경 쓰지 마렴.”
“그럼 왜 부르셨나요?”
“그게, 레이시 공주비님. 저는 랜슬롯 갈리아 공작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공작님. 무슨 일이신가요?”
“우선……, 쿨리아 공작가문의 땅 매입은 잘 끝났습니다. 여기 도스토 연맹국에서 보낸 토지 문서이며 공주비님께서 대금을 치루었다는 증빙서류입니다.”
“와아~ 감사해요! 그런데 이거 좀……?”
“네, 그 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면서 레이시의 눈치를 보는 랜슬롯.
레이시는 랜슬롯의 눈치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국왕을 바라봤고, 국왕은 레이시에게 랜슬롯은 누구 하나 지지하지 않는 자기 아래의 사람이니 걱정하지 말고 이야기를 들어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으으으응…….”
“그럼 설명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공주비님.”
“네.”
“공주비님께서 땅을 구매하시겠다고 의사를 밝혔을 때 가격은 이 가격이었습니다. 하지만 후에 알고 보니 도스토 하이 킹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는 엘림 왕가에서 중간에 횡령을 저지르고 있더군요. 당연히 이 부분에 대해서 저희는 공적으로 비판했고, 도스토 하이 킹은 저희에게 배상금을 내주었습니다.”
“헤에에에…….”
어느 나란지 몰라도 나라 꼴이 참…….
레이시는 말기의 신성 로마 제국이나 당나라도 이런 수준은 아니었을 거라면서 망국은 다들 이런건가 싶어 멍하니 랜슬롯의 설명을 들었고, 랜슬롯은 레이시에게 빌어야 하는 상황이 멋쩍은 듯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들도 최대한 쓸모가 없는 땅을 위주로 배상을 진행했고, 레이시 공주비님이 사신 땅은 그 중에서도…….”
“최고로 무쓸모한 땅?”
“크흠, 네. 그런 땅이라 배상금이 그쪽으로 몰렸습니다. 덕분에 레이시 공주비님께서 사신 땅은 일단 명목상으로만 돈을 지불했지 사실 무료로 받은 거나 다름 없는 땅이 되었죠.”
무려 95%의 환급금을 자랑하는 미친 거래를 성사시켰다.
상대방의 삽질로 시작해서 상대방의 개수작으로 끝낸 거래지만 확실히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거래를 성사시켰고, 그로 인해서 레이시는 무척이나 이득을 본 상황이었다.
“쿨리아 공작님께서 이번 거래는 엘라 공주님과 레이시 공주비님의 지원을 제외하면 받지 않겠다고 못을 박아둔 상황이라 이득을 본 상황 자체에는 귀족들도 반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와아, 잘됐네요. 솔직히 시어머니랑 싸우고 좀 불편했었거든요. 그런데 그래서요……? 돈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됐으니까 돌려받아서 엘라에게 주시면 되잖아요.”
“네, 그렇죠. 레이시 공주비님에게 차액을 그대로 돌려드리면 되는 일인데…….”
“음?”
“그……, 하아, 이번에 여름이 오면서 가뭄 피해가 발생한 지역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구호 사업을 해야 하는데 귀족들이 공주비님의 수완이 대단하니 공주비님에게 맡기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에에에에. 하지만 상대방의 삽질로 시작했다면서요?”
“그렇긴 하지만 알티네 제 2 왕비님께서는 그런 건 아무래도 신경을 안 쓰시는 모양이라……. 저희도 함부로 막기가 좀 그래서 가능하시면 공주비님께서 구호 사업을 진행해주실 수 있나요?”
“으으으응……, 미스트랑 데이트도 해야 하고 아샤랑도 해야 하고 바쁜데…….”
“네, 알고 있습니다. 미스트 씨는 개인적인 용무로 나간다고 하셨고, 엘라 공주님과 아샤님께서는 전쟁에서 사신을 퇴치했다는 전공을 세우고 오셨다는 것을. 그리고 공주비님께서 그 분들을 달래시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귀족들의 불만을 잠재우는데는 이게 가장 편한 방법이라…….”
그 동안은 엘라의 눈치를 보느라 편한 방법을 사용하지 못했지만, 지금이라면 어쩌면 다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랜슬롯은 구호 사업을 한 번 해볼 생각이 없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랜슬롯의 말에 자기가 무슨 사업을 하냐며 고개를 좌우로 젓기 시작했다.
“저는 지금 당장에 장보는 것도 잘 못해서 매일 가계부를 쓰는 입장인데 제가 어떻게 사람을 구하고 사업을 해요?”
“저도 그렇게 말해봤습니다만, 아멜리아는 뭐냐며 따지더군요.”
“아멜리아는 루룬이 다스리잖아요. 루룬 마케르크.”
“네, 그렇죠. 공주비님이 임명하신 마케르크 영애가 다스리고 있죠.”
“…….”
랜슬롯의 말에 드디어 상황파악을 끝내는 레이시.
레이시는 이것도 참 복잡한 일이라며 머리를 긁다가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구박하는 게 어딨냐며 투덜거렸다.
“그것도 엘라는 알티네의 친자식도 아니잖아요.”
“그, 공주비님.”
“왜요?”
“크흠, 자, 잔이.”
“아. 부서졌다.”
레이시의 악력을 견디지 못하고 찌그러진 손잡이.
분명 금속으로 만든 손잡이인데 어떻게 저렇게 종이 찌그러지듯이 찌그러지는 걸까?
랜슬롯은 레이시가 놀라며 국왕에게 사과하는 모습에 레이시는 아샤랑 다르게 성격이 온화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레이시에게 해결 방법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다른 사람에게 대신 임명해도 됩니다. 애초에 귀족들도 공주비님께서 직접 사업에 뛰어드신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고요. 아마 이 방을 나서는 순간 자기를 고용해달라는 편지가 올 겁니다.”
“으으으으…….”
“그으, 그럼 공문을 내려도 되겠습니까?”
“제가 안 하면 아버님께서 곤란해지는 거죠?”
“어허, 곤란해진다니. 지금 하는 일에서 추가로 일이 조금 생기는 것뿐이란다!”
“안 그래도 나라 하나를 다스리는 일을 하시는 데다가 도스토 연맹국과 신성 왕국의 일까지 있는데 여기에 저까지 부담을 주면 많이 힘드실 거잖아요. 사람이 염치가 있지 어떻게 그래요…….”
레이시의 말에 침묵이 감도는 알현실.
레이시는 뭔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왜들 그러냐며 국왕과 랜슬롯을 바라봤고, 국왕은 레이시의 질문에 정신을 차린 듯 헛기침을 하더니 이내 다시 정신 나간 눈빛으로 랜슬롯을 쳐다봤다.
“봐라, 이게 내 며느리다!”
“국왕님, 체통 좀 지키세요.”
“아하하하! 네놈 며느리는 이런 거 안 해주지!?”
“씨이…….”
국왕의 말에 분하다는 얼굴을 하다가 레이시의 얼굴을 보고 한숨을 푹 내쉬는 랜슬롯.
랜슬롯은 고생은 자기가 더 많이 했는데 왜 덕은 국왕이 보는 거냐며 투덜거렸고, 레이시는 그런 랜슬롯의 반응에 어색하게 웃다가 나중에 엘라에게 일을 설명할 때 랜슬롯 씨가 고생한다고 말하겠다며 달래주었다.
그러자 랜슬롯은 눈물을 찔끔거리면서 어떻게 엘라에게 이런 참한 아가씨가 간 건지 전혀 모르겠다며 울먹거렸고, 레이시는 랜슬롯의 반응에 어색하게 웃다가 혹시 소개를 원하는 거냐고 물어봤다.
“네! 마침 적령기인 자식이 있어서 고민이었습니다. 혹시 참한 레이디 한 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엘레오놀 공작님은 어때요?”
“아, 그건 좀…….”
“에에……. 엘레오놀 공작님, 능력있으신데.”
“그건 알고 있습니다만……. 제 아들이 뱀 앞의 개구리가 될 거 같아서.”
“아하하하…….”
“혹시 좋은 영애를 찾으신다면 여기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레이시 양의 안목이라면 믿을 수 있을 거 같네요.”
“아하하……, 믿어주셔서 감사해요.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날게요.”
“살펴 들어가십쇼. 공주비님.”
“혹시 선물 필요하니?”
“아뇨오~. 필요한 물건 있으면 연락할게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나가는 레이시.
랜슬롯은 끝까지 예의바르게 행동하는 레이시의 모습에 국왕을 보면서 정말 전생에 무슨 덕이라도 쌓은 거냐며 진지하게 의심했고, 국왕은 자신의 오랜 친우의 질문에 가슴을 활짝 펼치면서 뿌듯하게 웃었다.
“늘 자기 자식 자랑만 하던 네놈에겐 과분한 아이지.”
“쯧, 나이도 60 넘게 먹어놓고 질투는…….”
“킥킥!”
“그나저나 저런 귀여운 아가씨가 알티네를 제압했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군.”
“뭐, 저렇게 보여도 야차 아닌가? 가족을 건드리면 눈 돌아가서 사람을 제압할 수도 있겠지.”
“그렇겠지. 그럼 이쪽은 이쪽대로 움직이겠네.”
“그래, 블루드를 죽일 준비를 해야지. 동서 전쟁은 일어나면 안 되니까.”
한숨을 푹 내쉬면서 머리를 부여잡는 국왕.
어째서 자기 대에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국왕은 잠시 하늘에 있을 신에게 투정을 부려봤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랜슬롯과 함께 블루드를 처리할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각 레이시는 미스트에게 일하는 걸 구경하고 가도 되냐고 물어본 다음 특수부대의 훈련을 지켜봤다.
전생에서는 지옥주 훈련이니 뭐니 해서 보다가 말았었지.
이번 생의 특수부대는 좀 다르려나?
“으아아악!”
“따가워어어억!”
“특수부대원이 시끄럽네요. 공주비님이 계시다고 제가 둔하게 할 거 같나요?”
“오, 오옥! 귀가아아악!”
“어머, 우셔도 안 봐준답니다. 그나저나 레이시 무슨 일이에요?”
“에, 에에…….”
정정, 목숨만 뭍어 있으면 사라진 팔도 다시 붙여줄 수 있는 세계라 그런지 훈련이 더 지독하네.
전신에 벌레를 붙인 채 시험을 본다니…….
“그, 그게…….”
“네.”
“구호 사업을 하게 됐어요……, 도와주세요.”
“어머, 어머. 네에~ 도와줘야죠. 제가 사랑하는 레이시의 일인걸요.”
“그리고 저 사람들 적어도 발바닥에만 벌레가 물게 해주면 안 될까요?”
“흐음, 뭐, 훈련이 약한 날도 있어야 하니까 레이시의 의견을 받아드릴게요.”
미스트의 말에 환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숙이는 사람들.
레이시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미스트와 함께 구호 사업에 대한 것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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