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9화 〉 개선1
* * *
“그나저나 미스트.”
“네?”
“사신이라는 게 대체 뭔가요?”
“아, 으음, 신경 쓰이세요?”
“네. 아무래도……, 좀 위험한 이름이잖아요?”
“이름처럼 위험하지는 않지만요. 인공적으로 만든 귀신이에요.”
“아, 언데드처럼요?”
“얼추 비슷하죠. 조금 다른 점은 언데드랑 다르게 심장이 뛰고 살아있다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 뭐,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빨아들여서 만든다는 것만 보면 언데드죠.”
“그럼 엘라가 그렇게 긴장한 이유는 뭐예요?”
“그건 사신 특유의 비규칙성 때문이겠죠? 네크로맨서와 다르게 사신을 만드는 건 아무런 규칙이 없거든요.”
“네?”
“일단 생명체를 많이 쓰면 쓸수록 뭔가 많이 가지고 태어나는 것과 태어나면 만든 주인도 못 알아보고 공격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규칙이 없어서 뭐가 나올지 몰라요. 거기에다가 키메라랑 다르게 애초에 자연계의 법칙도 따르지 않고 스킬의 소유자도 소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망가트리는 스킬이니까 익히는 것 자체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죠.”
미스트의 말에 레이시는 정말로 엘라가 괜찮은 건가 싶어서 고개를 돌렸지만, 미스트는 엘라와 아샤가 부상으로 레이시를 속일 사람은 아니니 안심하고 준비하자고 말하며 레이시를 다독였다.
그러자 레이시는 짧게 한숨을 내쉬다가 이내 미스트의 말대로 지금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면서 미스트의 뒤를 따라 걸어가서 두 사람을 맞이할 준비를 시작했다.
아직 엘라가 돌아오려면 10일 조금 넘게 남았지만, 미리 대청소도 하고 만드는데 며칠이나 걸리는 훈제 연어도 만들고…….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자 시간은 금방 흘러 저녁이 되었고, 레이시는 오랜만에 같이 자자고 칭얼거리는 에일렌과 함께 침대에 누웠다가 에일렌이 엘라는 언제 오냐고 물어보자 에일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배시시 웃었다.
“엄마 보고 싶어요?”
“응! 또 놀러 갈래!”
“으응, 그럼 약속 잘 지켜야겠죠?”
“우웅! 공부 열심히 하구 있어어~ 이제 글도 읽을 수 있는 걸?”
“씻는 것도 잘 씻어야겠죠?”
레이시가 에일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에일렌이 해야 할 것을 말하기 시작하자 에일렌은 전부 다 했다며 볼을 빵빵하게 부풀인 채로 레이시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말하지 말라며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레이시의 어깨를 투닥투닥 때려대는 에일렌.
레이시는 그런 에일렌의 주먹질에 키득키득 웃다가 에일렌을 꽉 끌어안아주면서 에일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에일렌은 입술을 샐쭉하게 내민 채로 침대에 누웠고, 레이시는 에일렌의 가슴까지 이불을 올려준 다음 이마에 입을 맞춰주었다.
“잘 자요. 에일렌. 내일 뵈요~.”
“네에~ 마망.”
에일렌의 인사에 레이시는 다시 한번 에일렌에게 입을 맞추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문 앞에서 기다리던 미네르바는 레이시가 나오자마자 레이시를 껴안으면서 달라붙기 시작했다.
“으응~ 왜 그래요?”
“며칠 지나면 주인이랑 이렇게 못 달라붙는다. 엘라랑 아샤 오기 전까지 붙어있을 거다.”
“에헤헤. 붙어 있을 거예요?”
“응.”
“그럼 이러고 있을까요? 미르랑 레아도 돌봐야 하는데?”
“……으응, 애들 방에서 이러면 된다.”
레이시의 말에 그대로 레이시를 안아들고 애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미네르바.
정말로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는 미네르바의 행동에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뺨에 입을 맞춰주면서 미네르바를 달래주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애교에 입술을 샐쭉거리다가 자기랑은 언제 아이를 가져줄 거냐면서 조르기 시작했다.
“아이 참……, 에일렌도 아직 돌봐야 하는데…….”
“우우우, 알고는 있지마아아안.”
“쪽……, 지금은 이거로 참아주세요. 네?”
“으으응, 알겠다…….”
“후후, 착하다~.”
“그나저나 미스트가 심각한 얼굴로 무기를 정비하고 있었는데 혹시 왜 그런지 아나?”
“아, 그건……, 으음, 엘라가 있는 전쟁터 있죠? 거기에서 누가 사신을 만들었대요. 그래서 일찍 온다고 하는데 엘라가 있는 곳에서 그게 나타난 걸 보면 사교도들이 활동하는 걸지도 모른데요.”
“흐으으응, 사교도가 뭐냐? 나쁜 사람이냐?”
“저희 적이에요.”
“음. 그런가?”
“네, 저희 적이에요. 그래서 미스트도 긴장하는 거겠죠?”
레이시의 설명에 눈을 깜빡이다가 레이시를 꽉 끌어안고 눈을 감는 미네르바.
미네르바는 어떻게서든 레이시를 지켜줄 테니 안심하라며 레이시의 배에 뺨을 비비다가 레이시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 침대에서 눈을 붙였고,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의 모습에 배시시 웃다가 미네르바를 침대에 눕히고 미네르바의 품에 파고들었다.
그러자 미네르바는 한쪽 눈을 힐끗 떴다가 다시 레이시를 꽉 끌어안으면서 같이 미르와 레아가 깨지 않는지 주의를 기울이면서 수마에 몸을 맡겼다.
스스로 몸을 뒤집고 기어다니기 시작하면서 우는 게 줄어들어서 나름 편하게 잔 레이시와 미네르바.
레이시는 마지막으로 쪽잠을 자다가 시계를 확인하고는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고, 미르와 레아는 레이시가 일어나는 걸 느꼈는지 곧바로 울면서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으응, 쉬야 했어요오오?”
“흐에에엥!”
“으응, 큰 거네에에……. 후아아암.”
이제는 반쯤 졸면서도 미르와 레아의 엉덩이를 깨끗하게 씻긴 다음에 기저귀를 새로 갈아주는 레이시.
레이시는 아이들을 다시 재운 다음 축사로 내려가 하양이와 나비의 방도 치우기 시작했고, 미스트는 레이시가 꾸벅거리면서도 일하는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추면서 졸면서 일하면 위험하다며 레이시에게 커피를 건넸다.
“후얏.”
“후후, 애들이 많이 칭얼거렸나요?”
“으으응, 아니요오오. 그러지는 않았는데 마지막에 새벽 3시 반에 울었나?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미네르바가 그러던데……, 무기를 정비하고 계셨다는데 많이 긴장되나요?”
“네? 아……, 음, 긴장되는 건 아니에요. 그들이 딱히 강한 건 아니거든요.”
“으응, 그래요?”
“네에, 제가 다소 신경 쓰이는 건 몇 년 전에 박멸했던 녀석들이 다시 돌아다니는 게 신기해서 그래요.”
정말로 이해가 안 된다.
분명 몇 년 전 엘라와 함께 오라토리엄 왕국 내부에 있는 사교도 조직은 말단의 말단, 관련자의 구족까지 처벌하면서 양지로 기어 나올 거면 각오하고 나오라고 경고했었고, 그 때문에 사교도 집단은 엘라가 무서워서라도 오라토리엄 왕국과 관련된 일에서는 기승을 부리지 않았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엘라의 앞에 나타나서 엘라를 도발하는 거지?
엘라를 어떻게 할 수 있는 수단이라도 구했나?
하지만 엘라를 어떻게 한다고 해서 아샤랑 나를 어떻게 할 수 있는 수단이 있나?
아니, 미네르바만 하더라도 어지간한 사교도 집단을 터트릴 수 있을 건데 어째서 갑자기 나타난 걸까?
블루드라는 백이 그렇게 믿을만한 존재인가?
그야 믿을만 하냐 믿을만하지 않냐만 따지자면 믿을만한 존재이긴 하지만, 이렇게 급하게 뭔가 할 정도로……?
“으으음, 레이시.”
“네?”
“공주님이 다녀오시면 이번엔 제가 한 두 달 정도 나갈지도 몰라요.”
“……네?”
“이번 일의 조사를 해봐야겠어요. 너무 걱정하시지는 마시고요.”
“그, 그게…….”
미스트도 나갔다가 온다고 하자 당황하는 레이시.
레이시는 꼭 가야만 하는 거냐면서 미스트의 손을 잡고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눈빛에 작게 웃으면서 가볍게 입을 맞춰주었다.
“레이시가 혼자서도 이렇게 잘 있으니까 믿고 나가는 거예요. 그래도 안 돼요?”
“으, 으읏…….”
“중요한 일이라서 그래요.”
“언니…….”
“후후, 고마워요.”
레이시의 대답에 다시 입을 맞추는 미스트.
가볍게 입술끼리 맞대던 레이시는 미스트가 떠날 마음을 접지 않을 거란 걸 직감하자 혀를 섞으면서 미스트의 손을 잡았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입맞춤에 눈을 가늘게 뜨다가 가볍게 입을 맞추면서 레이시의 허리에 손을 올렸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떠나기 전에 실컷 안아드릴게요.”
“으, 으읏……. 따, 딱히 그런 걸 원하는 건…….”
“그럼 그냥 몰래 갈까요?”
“……싫어요.”
“푸훗, 귀여워라.”
미스트의 웃음에 얼굴을 붉히는 레이시.
미스트는 레이시의 얼굴이 붉어지자 가볍게 뺨을 쓰다듬으면서 사랑한다고 속삭여주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속삭임에 얼굴을 붉히면서 조용히 미스트를 끌어안았다.
“그럼 옷 갈아입고 다른 일들을 준비해볼까요?”
“아, 네! 그러니까 오늘은 물고기 훈연이죠?”
“네에, 보석 연어의 훈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니까 공주님이 오실 때까지는 매일매일 관리를 해줘야 할 거예요.”
“엄청 오래 걸리네요.”
“불에다 직접 쐬는 것도 아니고 연기만으로 익히는 거니까요. 그것도 굴뚝을 타고 오면서 식은 연기로. 간신히 60도가 넘는 연기로 익히는 거니 늦을 수밖에 없죠. 특히 보석 연어는 말 그대로 보석처럼 잘 상하지는 않는데 조리도 보석처럼 잘 안 되는 습성을 지녔으니 며칠 동안은 훈연해야 해요.”
하긴 습식 사우나의 온도도 60도고 건식 사우나는 온도가 80도 이상이었지.
그런 열지옥에서 10분, 20분씩 열을 쐬고 나오는 사람도 아프거나 그런 것보다는 개운하다는 말만 하는데 60도의 건식 사우나로 고기를 익히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겠네.
레이시는 미스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훈제실의 옆방에서 나무 장작을 쌓아 불을 피우기 시작했고, 연기가 방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자 문을 닫고 나와 멍하니 굴뚝을 올려다보았다.
“그럼…… 대청소는 저번에 했고 오늘은 뭘 할까요?”
“글쎄요? 어차피 저는 근신 명령을 받아서 어디 못 나가지 않나요?”
“하긴, 그렇죠?”
알티네와 있었던 마찰 때문에 볼케릭이 내린 근신 명령.
왕비를 폭행하고도 근신 명령에서 그친 걸 보면 체면상 내린 벌에 불과하지만, 그렇기 때문이라도 자기는 그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기에 할만한 게 없다.
지금은 에일렌의 자립심을 위해서 오늘은 뭘 공부하면 좋겠는지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고…….
굳이 따지자면 지금처럼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미스트에게 머리를 기댄 채 멍하니 연기가 허공으로 흩어지는 걸 구경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어깨를 쓰다듬어주면서 같이 시간을 죽이기 시작했다.
“아아, 주인! 미스트랑만 놀고 있다!”
“아, 미네르바. 깼어요?”
“으응, 깼다.”
“이리 와요.”
미네르바의 투정에 배시시 웃으면서 팔을 벌리는 레이시.
미네르바는 레이시가 팔을 벌려주자 마치 제자리라는 듯 자연스럽게 레이시의 품에 파고들어 미스트를 놀리듯 혀를 내밀었고, 미스트는 미네르바의 장난에 키득키득 웃다가 집에 누가 오지는 않았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놀리는 쪽이 무안해졌는지 미네르바는 뾰로통한 얼굴로 혀를 집어넣은 다음 엘레오놀의 편지를 미스트에게 건네주었고, 미스트는 엘레오놀의 편지를 읽더니 싱긋 웃으면서 편지를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무슨 일이에요?”
“좀 있다 영지 분할 문제로 찾아뵙겠대요.”
“네에? 저는 그게, 근신 처분이 떨어져 있지 않나요?”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건 금지, 하지만 찾아오는 사람을 만나는 건 괜찮다는 명령이죠. 애초에 왕궁 내 배달부를 쓴 걸 보면 왕가와 이야기가 됐을 거예요.”
“아아……. 그렇구나. 그런데 왜 굳이 저랑?”
“공주님이 일찍 온다는 소식은 전화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모두 알려졌을 테니 국왕님의 귀에도, 그리고 엘레오놀 공작님의 귀에도 흘러갔겠죠. 국왕님은 미리 공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실 테고, 엘레오놀 공작님은 공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협상을 끝내놓고 신하로서의 자세를 취하려는 걸거고요.”
“으으응, 괜찮겠죠?”
“제가 옆에서 봐드릴게요. 독소조항이 있나 없나.”
“미, 미스트으……!?”
“농담이에요. 엘레오놀 공작님이 그런 멍청한 짓을 할 리가 없잖아요.”
다소 쿨리아 공작 가문에 유리한 쪽으로 일을 처리할지는 모르겠지만. 엘레오놀이 공작 가문으로서 충성을 바치는 조건이라고 생각해본다면 그 정도는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엘레오놀을 어떻게 도와줄지 고민하며 영토 분쟁이라는 말을 반복하며 덜덜 떠는 레이시를 다독여주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