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468화 (468/542)

〈 468화 〉 서열 정리­3

* * *

“오늘 연회에 초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루피너스 남작님.”

“아니에요. 중간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서 정말 죄송했어요.”

연회의 끝, 레이시는 자기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인사하면서 연회에서 있었던 일을 사과하면서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정리했고, 연회에 초대받은 사람은 레이시의 정리에 눈치를 보다가 일단 레이시의 정리를 따르기로 했다.

어차피 주변에 알티네의 사람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고, 설령 알티네가 이 자리에 남아있다고 해도 레이시의 힘이나 주변 짐승들을 보면 알티네가 자기가 아니라 레이시를 따른다고 해서 화를 낼 수도 없을 테니까.

거기에다가 엘레오놀이 이 나라에 망명오면서 아직까지는 어느 한쪽을 지지해서 얻는 이득보다는 중립을 유지해서 얻는 이익이 더 크다.

그렇게 생각한 귀족들은 레이시의 지도를 따라 한 명씩 자기 저택으로 돌아갔고, 레이시는 그런 귀족들의 반응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마저 연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들 수고하셨어요.”

사용인들에게 팁으로 5만 하랑씩 쥐어주면서 꾸벅 인사하는 레이시.

사용인들은 예상하지 못한 팁에 오늘 일은 비밀로 하겠다면서 자리에서 물러났고, 레이시는 연회장에 집기들이 하나, 둘씩 옮겨지면서 자기가 없어도 되는 시간까지 오자 미스트와 함께 저택으로 돌아갔다.

“이제 또 바빠지겠네요.”

“으, 으응. 원래 계획과 다르게 폭력을 써서 그렇죠?”

“네. 누가 먼저 잘못했든 간에 폭력을 쓴 사람이 잘못됐으니까 아마 그 부분에 대해 시비를 가리려고 할 거 같네요.”

“으으응…….”

“괜찮아요. 왕족끼리 물리적 접촉이 적었던 것도 아니고 공주님께서 진짜 막 나갈 때는 진짜 이래도 괜찮은 건가 싶을 정도로 막 나갔거든요.”

“어느 정도로요?”

“왕가의 정례 행사 때 술 마시고 여자랑 만난다면서 안 나가셨어요.”

“…….”

“5년에 한 번 있는 정기 행사라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나가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데도 여자랑 노셨어요. 왕가에 대한 반발심인지 고급 창부를 잔뜩 불러서 말이죠.”

“에, 에에에…….”

“물론 지금은 레이시가 있으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시겠죠. 하지만 그땐 정말로 공주님의 메이드를 괜히 자처했나 싶더라고요. 몸이 8개여도 모자랐어요.”

“자, 잘못했어요?”

“아하하, 아니에요. 레이시에게는 오히려 고맙죠. 사고를 쳐도 이런 부류의 사고밖에 안 치잖아요? 공주님이 치시는 사고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죠.”

미스트의 말에 어색하게 웃던 레이시는 문득 궁금해져서 대체 엘라는 무슨 사고를 치고 다녔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질문에 엘라가 저질렀었던 일들을 소개해주면서 레이시에게는 절대로 하지 말라고 경고해주었다.

“그,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국보를 미끼 삼아 비밀 조직을 소탕하다니…….

그런 짓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누가 자기에게 시킨다고 해도 전력을 다해서 자기의 무능함을 어필하면서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겠지.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그렇게 생각하면서 고개를 좌우로 젓다가 저택으로 달려오는 마차의 모습에 볼케릭이 왔구나 싶어서 숨을 들이 마시며 사과할 준비를 했다.

누가 먼저 잘못했든, 먼저 손을 댄 건 자기니까 잘못을 빌지 않으면 안 되겠지.

“……에휴.”

짧게 한숨을 내쉰 레이시는 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잠시 불평을 토해내다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했고, 예상대로 볼케릭이 찾아오자 폭력을 휘두른 건 미안하다면서 먼저 사과하며 시작했다.

“어, 으, 으음. 그럼 두 사람 다 사과한 거니 불문에 부치마.”

“네?”

“어머니께서도 사과했다. ……더욱이 너를 감싸면서 말이지. 나의 어머니를 그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평소에는 절대라면 하지 않을 행동이었지. 혹시 뭔가 독을 쓰거나 그랬나?”

레이시를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는 볼케릭.

레이시가 독을 쓴 다음 아무렇지 않게 행동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담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알티네의 변화를 생각하면 독이나 정신계 마법을 안 떠올릴 수가 없다.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레이시가 그런 걸 사용했다면 왕궁의 질서를 담당하는 자로서 레이시를 문책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볼케릭은 그렇게 생각하며 레이시를 바라봤지만, 레이시는 볼케릭의 질문에 자기는 독이나 세뇌 마법은 쓸 줄 모른다면서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자기가 한 건 그저 감정을 증폭시켰을 뿐이라고 말해주었다.

“감정을?”

“네, 원한다면 거절할 수 있어요?”

자기가 뭘 했든 결국 선택은 알티네가 하는 거라면서 손을 건네는 레이시.

볼케릭은 레이시의 손길에 미심쩍은 눈으로 레이시를 경계하다가 이내 몰래 챙겨온 아티펙트를 믿고서 레이시의 손을 잡았고, 이내 레이시의 말대로 레이시가 손을 잡자마자 강해지는 가족애에 눈을 크게 뜨고 레이시를 쳐다봤다.

레이시의 마력이 몸을 감싸고 돌자마자 강해지는 감정.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레이시의 말처럼 이 정도면 알티네가 알아서 감정을 거부하고 거리를 벌릴 수 있을 정도의 감정에 불과하다.

알티네는 레이시에게 공격당했다는 사실 때문에 겁을 먹어서 제대로 이 감정을 거절하지 못 한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볼케릭은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먼저 잘못한 건 알티네지만 레이시의 대처도 왕실 소속답지 않게 폭력적이었다면서 체벌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일주일 동안에 공식적인 연회에 참석하는 것을 금지하겠다. 이런 일이 처음이고 잘잘못을 따져보면 우리 어머니께서 더 심했으니 이 정도로 그치는 것이다. 앞으로 주의하도록.”

“네.”

최대한 직접적인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배려해준 벌.

레이시는 볼케릭의 배려에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명심하겠다고 말했고, 볼케릭은 엘라와 다르게 순순히 벌을 받드는 레이시의 모습에 한숨을 푹 내쉬면서 귀족들을 진정시켜야 하니 자기와 입을 맞춰주라며 대본이 적힌 편지를 내밀었다.

“그럼 가보마.”

“네, 죄송해요.”

“하아, 아니다. 네가 오면서 엘라도 철이 들었는지 막 나서는 경우가 줄어들었으니……. 네가 있는 게 훨씬 낫다.”

레이시의 사과에 괜찮다면서 손을 흔들고 나가는 볼케릭.

평소와 다르게 어딘가 바빠 보이는 모습에 레이시는 미스트에게 볼케릭이 엘라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저거 때문이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질문에 직접적으로 대답하는 대신 아무 말 없이 웃어주었다.

그러자 레이시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볼케릭이 건네준 편지를 읽기 시작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에게 볼케릭의 지시를 그대로 따를 거냐고 물어보았다.

“네. 따라야죠. 설마하니 시어머니가 칼을 들고 연회장에 찾아올 줄은 몰랐어서 저도 폭력적으로 나갔지만, 일부러 그러려고 한 게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죠.”

“그러니까 이번에는 따르게요. 안 그러면 막 날뛰는 사람처럼 보일 거 아니에요?”

“으음, 안 건드리면 얌전히 있겠다고 말하게요?”

“네.”

엘라라면 여기에서 더 미친 척 하고 날뛰었을 건데.

레이시의 대답에 그렇게 생각하던 미스트는 레이시가 열심히 볼케릭이 건네준 편지를 읽자 레이시를 도와 이것저것 준비하기 시작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와 미스트가 돌아오자마자 일하자 아이들을 안은 채 볼을 부풀렸다.

“우우, 주인 뭐 하나?”

“아, 미네르바.”

“나도 열심히 일했는데 주인은 미스트만 신경 쓴다.”

“아하하, 그런 거 아니에요. 으응, 이리와요.”

레이시의 말에 곧바로 레이시의 품에 안기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애들이 울거나 그러지는 않았냐고 물어봤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질문에 눈을 깜빡거리다가 에일렌은 지금 자고 있고 미르와 레아는 서로 몸을 뒤집다가 자고 있다면서 손을 뻗어 요람에서 자는 애들의 모습을 보여줬다.

“수고했어요.”

“으으응……. 에헤헤. 주인은 별 일 없었나?”

“별일은 없긴 하죠.”

싸우긴 했지만 크게 싸운 것도 아니고 단번에 끝났으니까.

“그냥 서열 정리……?를 했을 뿐이에요.”

“흐아암, 그런가?”

“네, 미네르바가 걱정할만한 일은 없었어요.”

미네르바의 입장에서도 서열 정리는 꽤 잦았기 때문일까?

미네르바는 레이시가 싸웠다는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별말 없이 레이시에게 안겨서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애교에 작게 웃다가 편지를 마저 읽기 시작했다.

편지의 내용은 적당히 반성하는 척 해달라는 것.

알티네가 그렇게 흥분하지 않아서 이런 방법을 쓴다면서 꽤 날려 쓴 글씨에 레이시는 조금은 미안하다고 생각하며 편지를 읽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옆에서 같이 편지를 읽다가 자잘한 일은 자기가 해줄테니 볼케릭과 입을 맞추는 것만 신경 쓰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일은 엘라 공주님과 전화해야 하니까 미리 쉬세요.”

“아, 벌써 날이 그렇게 됐나요?”

“공주님이 가실 땐 울고불고 난리를 쳤으면서 벌써 이렇게 하다니, 슬퍼하실 거예요.”

“그, 그건!?”

“농담이에요.”

“……우으으으.”

“그것보다 정말 준비하죠. 전화실은 왕궁에 있으니까 왕궁으로 들어가는 순간 눈초리가 쏟아질 거예요.”

레이시의 볼을 가볍게 꼬집으면서 웃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웃음에 눈을 깜빡이다가 입술을 샐쭉하게 내밀며 미스트를 노려보다가 이내 배시시 웃으면서 다시 편지를 읽으며 내일 아침에 숙지해야 할 것들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날, 레이시는 미스트와 함께 에일렌을 데리고 왕궁에 들어갔고, 미스트가 말한대로 사람들의 시선이 자기에게 꽂히자 눈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볼케릭이 전해줬었던 편지의 말을 떠올렸다.

“확실히 무시할 건 그냥 무시하라고 했었지…….”

하긴 뒤에서 남의 일을 가지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이니 그냥 무시하는 게 정신 건강에 더 나을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에일렌의 손을 잡고서 에일렌과 함께 전화할 수 있는 방으로 들어갔고, 전화실의 사람들은 레이시가 들어오자 전화를 켜면서 엘라와 연결했다.

“아, 아아, 들려?”

“엘라! 에헤헤, 잘 지냈어요?”

“으음, 레이시는?”

뭔가 평소랑 다른 목소리.

표정도 어딘가 조금 귀찮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기에 레이시는 엘라를 걱정하며 이쪽은 별 일 없었다고 말해주었고, 엘라는 레이시의 대답에 키득 웃다가 서열은 확실히 정리했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레이시는 몸을 크게 움찔 떨고서 미스트에게서 다 들었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볼케릭에게 들었다고 말해주었다.

“뭐, 일이 잘 해결 됐으면 괜찮고……, 그것보다 레이시.”

“네?”

“예상보다 한 일주일 정도는 일찍 집에 갈 수도 있겠어.”

“정말!?”

“그럼, 에일렌. 아샤 엄마도 그렇게 말했는걸.”

화면 너머에서 고개만 살짝 내밀었다가 다시 들어가는 아샤.

레이시는 그런 아샤의 모습에 작게 웃다가 전쟁이 일찍 끝난 거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아샤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둘이서 한참을 떠드는 엘라와 아샤.

레이시는 두 사람의 대화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갑자기 화면이 움직이자 놀란 얼굴로 화면을 쳐다봤고, 엘라는 군데군데 크레이터가 생긴 평야를 보여줬다.

전쟁이 지나갔다는 걸 몸소 보여주고 있는 황망한 평야.

그런 평야 한 가운데에는 이상한 형태의 시체가 하나 있었고, 엘라는 그 시체를 가리키며 레이시에게 시체가 보이냐고 물어봤다.

“저기 가운데에 보여?”

“잘 안 보이는데……. 아, 지금 보여요. 저게 뭐예요? 이상하게 생긴 몬스터네요.”

“사신.”

“네?”

“재앙을 내린다는 귀신 말이야. 사특한 신. 사교도들이 섞였나봐. 전쟁 도중에 갑자기 소환되어서 양쪽 군대 다 전부 공격하고 날뛰어서 그냥 내가 병사를 물리게 한 다음 죽였어. 지금 양쪽 지도자는 누가 명예로운 전쟁에서 사신을 소환했냐는 거로 싸우고 있고, 거기에서 나랑 아샤가 할 일은 없으니까 일찍 돌아올 거 같아.”

“에……. 괜찮아요?”

“응? 나? 나는 괜찮지. 애초에 나랑 내 사용인들 전원이 24시간 감시를 받는 상황이라서 날 의심할 수도 없어.”

“그게, 그것도 걱정이긴 한데, 안 다치셨어요?”

“아, 그런 문제? 괜찮아. 안 다쳤어. 다만 좀 화가 나기는 하네. 이런 사신을 소환한 걸 보면 양쪽 중에 한쪽이 일부러 시체를 만들기 위해서 전쟁을 열었다는 게 되니까. ……에일렌이 듣기엔 별로 안 좋은 이야기였네. 에일렌, 선물로 뭐 사갈까?”

“딸기!”

“딸기? 딸기는 지금 안 열리는데~?”

“그래두우우.”

“푸훗, 알았어. 딸기 비슷한 거라도 사갈게. 그럼 나중에 봐.”

“웅! 나중에 봐아~!”

해맑게 웃으면서 전화를 끊는 에일렌.

레이시는 에일렌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미스트를 바라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시선에 싱긋 웃으면서 우리가 생각해봐도 없는 일이니 엘라를 맞이할 준비나 하자며 레이시의 등을 떠밀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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