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466화 (466/542)

〈 466화 〉 서열 정리­1

* * *

“연회 준비라는 거, 저는 딱히 준비하는 게 없는데도 되게 힘드네요.”

“사람을 시켜서 이것저것 준비하는 거라 어쩔 수 없죠.”

“그렇죠오……. 그래도 어떻게든 준비를 끝냈네요.”

숲 한 가운데서 기지개를 켜며 하품하는 레이시.

레이시는 눈을 깜빡이다가 완벽하게 준비된 연회에 이제 사람들만 기다리면 되는 거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에게 자기 허벅지를 내어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레이시는 미스트의 손을 잡으면서 알티네가 올 것 같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질문에 잠시 생각해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실 거예요. 초대장을 보내지 않았어도, 그리고 엘레오놀 공작님이 여기에 꼭 참석하겠다고 말하지 않으셨어도 자기는 레이시의 시어머니이니 레이시가 연회에서 실수하지 않는지 볼 의무가 있다면서 찾아왔을 거예요.”

“그건 좀…….”

“뭐,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니 왕비님께서 올지 안 올지는 걱정하지 마세요. 레이시가 걱정해야 하는 건, 왕비님께서 오셨을 때 대처하는 거랍니다.”

“으응, 역시 그게 중요하겠죠?”

애초에 이 모든 것을 준비한 이유가 알티네가 자기랑 다른 사람들을 건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니까.

“그나저나 정말 먹힐까요?”

“레이시가 짠 계획이잖아요? 레이시가 계획한 대로 흘러갈 거예요.”

“그러면 좋겠지만요.”

“정 안되면 제가 계획대로 흘러가게 만들어 드릴게요.”

“아하하……, 그, 그건 좀 무섭네요.”

레이시의 어색한 웃음에 자기는 진심이라며 가볍게 입을 맞추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입맞춤에 얼굴을 붉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들이 언제 오는지 신경을 곤두세우기 시작했다.

볼케릭이 소개해줬다고는 하지만, 그 사이에 알티네에게 회유되어서 엘라를 공격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 과대망상의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동안 레이시가 봐왔던 귀족들은 루룬과 엘레오놀을 제외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레이시는 바짝 긴장한 얼굴로 연회에 도착하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처음에는 남작가부터 시작해서 점점 작위가 높은 사람들이 오는 연회장.

레이시는 오는 순서도 정해져 있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질문에 그런 건 아니지만 높은 작위의 가문은 아무래도 주의해서 올 수밖에 없다고 대답해주었다.

“작위가 높은 사람은 가볍게 움직여도 그 의미가 커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리고 이번 연회는 알티네 왕비님께서 레이시와 만나는 걸 금지하고 있는 와중에 열린 연회니까 더더욱 주의해야겠죠. 안 그러면 알티네 왕비님의 본가와 척을 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군요.”

“낮은 작위의 사람들은 레이시가 공주비라는 것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으니 일찍 오는 거고, 높은 작위의 가문은 누구를 보낼지 고민하고 있는 중이 아닐까요?”

눈웃음을 지으면서 레이시를 바라보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웃음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자기에게 인사하러 오는 사람들을 맞이해주었고, 연회에 참석한 귀족들은 레이시의 인사에 주변을 둘러보며 연회장을 살피기 시작했다.

보통의 연회장과는 다른 장소.

야회라는 게 없는 게 아니긴 하지만, 야회를 할 땐 이런 사냥용 숲에서 하지 않고 정원에서하는 편이다.

그런데 여기는 숲 한 가운데.

잘 꾸며서 모이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다른 연회와 비교해보면 아무래도 부족한 점이 많았고, 그렇기에 귀족들은 역시 레이시는 귀족이 아니라 야차인건가 싶어 미스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허락만 한다면 곧바로 충고를 쏟아내며 레이시와 친분을 쌓으려고 하겠지.

미스트는 그런 귀족들의 시선에 그렇게 생각하며 레이시를 바라봤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시선에 싱긋 웃다가 미스트의 손을 잡고 엘레오놀을 기다렸다.

그리고 엘레오놀이 연회장에 들어서자 레이시는 팔을 벌리면서 어서 들어오라고 말했고, 엘레오놀은 레이시의 환영에 미소를 지으면서도 숲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움찔움찔 떨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가 느끼고 있는 걸 느끼지 못하는 건지 사용인들의 봉사를 받으면서 하하호호 웃고 떠들고 있지만……, 여긴 연회장 같은 곳이 아니라 마경에 좀 더 가까운 곳이다.

그림자에서 숨어있는 맹수들부터 시작해서, 숲의 그림자에 능숙하게 숨어서 땅 위를 지켜보고 있는 짐승,

엘레오놀은 애인들이 전해주는 정보에 식은땀을 흘리면서 레이시를 바라봤고, 레이시는 엘레오놀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동물은 익숙하지 않은 거냐며 손에 있는 도마뱀을 가볍게 쓰다듬어주었다.

“동물자체가 서투른 건 아닌데……, 이런 맹수들은 좀 그러네요.”

애인들이 지닌 능력을 일정 부분 이어 받고 있다지만, 자기는 레이시처럼 강하지 않다.

여기에 있는 동물들 중 어느 한 마리도 자기가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없다.

아니, 레이시가 제대로 마음먹고 움직인다면 자기 애인들도 생존을 보장 받을 수 없다.

레이시가 자기에게 우호적이라서 다행이지 만약 처음 보는 사람의 연회에 갔는데 이런 것이 있었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도망치는 수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엘레오놀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건 정말로 좋은 일이라며 쓰게 웃다가 레이시에게 오늘 이 자리에 초대해주어서 감사하다며 레이시에게 부탁하러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엘레오놀 쿨리아가 레이시 루피너스님에게 인사드립니다. 오늘의 야회에 초대해주셔서 무척이나 감사드립니다.”

“뭘요, 제 초대에 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레이시 님께서 부르시는데 어떻게 오지 않을 수 있을까요?”

“에헤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레이시 님, 한참 즐겨야할 연회에 곧바로 죄송합니다만, 영지의 개발과 관련해 말씀을 좀 나누고 싶습니다만, 괜찮겠습니까?”

남에게 들려주기 위한 대화.

엘레오놀의 목소리와 몸짓에 주변 귀족들은 하나 같이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 연회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 말을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애초에 여기에 모인 이유가 저런 보여주기식 대화를 듣기 위해서였으니까.

이걸로 한 가지 확실해진 것은 엘레오놀은 레이시에게 우호적이며, 엘레오놀과 대화를 하려고 한다면 레이시를 경유할 수도 있다는 것.

귀족들은 좋은 걸 봤다고 생각하면서 엘레오놀과 레이시를 바라봤고, 엘레오놀은 레이시에게로 시선이 쏠리자 싱긋 웃으면서 미스트를 바라봤다.

이걸로 만족했냐는 듯 미스트를 바라보는 엘레오놀.

미스트는 엘레오놀의 시선에 고개를 끄덕이며 왕비님은 안 오냐고 물어봤고, 엘레오놀은 기사단을 대동하고 오려고 하고 있다며 왕궁 안에서 본 것을 말해주었다.

“아마도 레이시 씨가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거겠죠.”

“그래서 진은 기사단을 데리고 오시는 거군요.”

“네. 이 숲에 있는 동물들을 생각한다면……, 아마 쓸데없는 짓이겠지만요.”

이 정도라면 호위병들도 왕족을 지키는 게 아니라 한 명이라도 살아나가서 왕가에 왕족이 죽었다는 걸 보고하는 것에서 목적이 변할 정도다.

거기에다가 여기에 있는 모든 맹수들이 레이시의 마력을 받고 강화된다면…….

레이시의 자비에 모든 걸 맡겨야겠지.

대체 뭐가 약하다는 걸까?

그야 엘라나 미스트와 비교해본다면 레이시가 약한 건 맞지만, 모든 사람을 기준으로 보면 레이시도 까마득하게 강하다.

그렇게 생각한 엘레오놀은 레이시와 이야기를 이어나가면서 여기에 들어온 동물들이 어떤 존재들이 있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엘레오놀의 질문에 배시시 웃으면서 동물들을 소개해주기 시작했다.

“시, 실버 스콜……. 으음, 제 애인들도 실버 스콜을 사냥한 적이 있긴 한데……, 잘도 기르고 계시는 군요?”

“기를지 말지는 아직 고민하고 있어요. 저는 이미 한계까지 계약을 맺었고 스콜을 기르게 된다면 그냥 평범한 애완동물을 기르듯이 기르게 될 건데 그럼 사람을 안 물게 교육해야 하잖아요.”

“저 맹수를 강아지처럼 교육한다는 발상은 레이시 님 말고는 아무도 못 할 거예요.”

“아하하, 설마요.”

엘레오놀의 말에 꺄르륵 웃으면서 손사래를 치는 레이시.

엘레오놀은 레이시의 손사래에 어이가 없다는 듯 미스트를 바라보다가 미스트가 쓰게 웃으면서 고개를 좌우로 젓자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면서 레이시의 도움을 받아 동물을 만져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동물들을 만지며 놀고 있자 알티네가 기사들과 함께 연회장에 방문했고, 레이시는 완전 무장한 기사의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미스트에게 이래도 되는 거냐고 물어봤다.

아샤조차도 연회장에 올 땐 손목에 단검 하나 정도만 간략하게 챙겨서 들어왔는데 할버드 같은 걸로 완전 무장이라니…….

아무리 왕비라지만 너무 무례한 거 아닐까?

“무례한 거 맞아요. 이런 처사는 상대가 자작이나 남작처럼 한 번 왕족을 부를 때 몇 달, 몇 년 치의 월급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만 할 수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왕족의 그런 모습을 바라고 초대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레이시에게는 이러면 안 돼요.”

“…….”

“아마, 기선 제압을 하고 싶은 거겠죠.”

미스트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뜨면서 자연스럽게 마력을 방출하는 레이시.

감정이 흔들렸을 때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에 알티네는 레이시를 보고 자기 감정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년이라며 속으로 비웃으며 레이시에게로 다가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걸음을 옮길수록 알티네는 무릎이 땅에 처박힌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몸이 떨리기 시작했고, 알티네를 지키기 위해 따라온 기사들은 알티네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에일렌이 배를 눌러대고 있는 커다란 늑대의 모습에 몸을 흠칫거렸다.

실버 스콜.

그거 한 마리라면 괜찮지만 레이시의 팔을 휘감고 있는 뱀과 도마뱀의 모습에 기사들은 자기들이 어디로 발걸음을 옮겼는지 깨닫고 마른 침을 삼키며 알티네의 곁으로 자연스럽게 모여들었다.

최악의 상황에 알티네만이라도 돌려보내기 위해서.

미스트는 그 모습을 보고 왕가의 기사단인 진은 기사단답게 충성심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기 시작했고, 이내 피식 웃으면서 레이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레이시, 화를 내면 저 기사들이 겁을 먹을 테니까 최대한 진정하고. 아시겠죠?”

“네.”

알티네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심호흡을 크게하며 감정을 추스르는 레이시.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적대심만큼은 점점 더 날카로워져서 마치 잘 벼린 칼처럼 번뜩이기 시작했고, 알티네는 근래 매일 밤 느꼈었던 기묘한 감각에 눈을 날카롭게 뜨면서 레이시에게 곧바로 다가갔다.

“요새 매일 밤 찾아오는 모양이구나?”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요. 저는 미르와 레아를 돌보느라 집에서 안 떠났어요. 벽천화 기사단이 엘라의 저택을 지키고 여쭈어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흥. 아무것도 모르는 척은…….”

“……?”

이 시어머니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레이시는 알티네의 반응에 눈살을 찌푸리고 여기에는 대체 왜 왔냐면서 나와 이야기하기 싫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와 만나지 말라고 명령을 내린 것 아니였냐며 따지기 시작했고, 알티네는 레이시가 자기에게 따박따박 대들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자기에게 말대꾸를 하는 거냐며 기 싸움을 걸었다.

그러자 레이시는 고개를 천천히 꺾고 알티네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고, 그것이 신호가 된 듯 숲에 있는 맹수들도 모두 레이시처럼 고개를 꺾고 알티네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얼어붙는 숲속 분위기.

다들 맹수가 가만히 있는 것에 놀라며 콧잔등을 만지며 화기애애하게 웃던 야회의 분위기는 당장이라도 피가 튀겨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변하기 시작했고, 기사들은 갑자기 자기를 옥죄여 오는 분위기에 칼을 반쯤 뽑아들고 레이시를 바라봤다.

“레, 레이시 공주비님. 아무리 엘라 공주님의 아내분이셔도…….”

“칼, 안 꺼내시는 게 좋을겁니다.”

기사의 말을 끊고 나이프를 들어올리는 미스트.

미스트가 수인족 특유의 이를 드러내고 웃자 분위기는 아까보다도 더욱 차가워지기 시작했고, 진은 기사단의 기사들은 눈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어떻게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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