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5화 〉 둥지 짓기4
* * *
“저, 다녀왔어요~.”
“다녀오셨나요? 일은 잘 해결 됐어요?”
“에헤헤, 그럭저럭?”
레이시의 웃음에 잘 했다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미스트.
미스트는 엘레오놀에게서 이야기는 전부 들었다면서 레이시에게 어떻게 했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볼케릭과 국왕에게 부탁했다고 말하면서 미스트에게 연회의 분위기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해봤다고 말했다.
“헤에, 어떤 방식으로 하고 싶나요?”
“알티네 시어머니가 제 출신 가지고 뭐라고 못 하게 하고 싶어요!”
“흐으응, 어떻게요?”
“이거요!”
미스트의 질문에 레이시가 내미는 건 한 동화책이었다.
아이들은 다 좋아한다는 요정의 이야기.
분명 동물 친구들과 함께 모험을 떠나서 전설의 세계수를 찾는다는 이야기였지.
미스트는 그런 이야기책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레이시에게 이 책으로 뭘 하고 싶은 거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책의 내용을 말해주면서 자기 계획을 말해주었다.
“저는 야차죠?”
“그렇죠.”
“그리고 야차는 육신을 지닌 정령, 혹은 감정의 저주를 받은 정령이라고 불리고요.”
“네, 그거 때문에 처음 레이시가 왕궁에 왔을 때 기사들이 바짝 긴장했답니다. 제가 늘 붙어 있지 않았다면 어딜 가든 기사가 붙었을 거예요. 사실 감시역도 붙었었구요.”
“……에? 정말요?”
“네, 후후. 이제는 아무도 레이시를 무서워하지 않지만요.”
왕족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긴장하면서 레이시를 경계하기는 하지만, 그 정도면 레이시가 아니더라도 상당한 무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는 수준이니까 딱히 특별대우는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레이시를 바라보자 레이시는 우물쭈물거리면서 눈치를 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반응에 싱긋 웃더니 지금은 없으니 괜찮다면서 레이시의 계획을 마저 물어보았다.
“아, 그, 그러니까요. 사람들이 생각하기엔 전 육체를 가진 정령이라는 거죠?”
“네, 그렇죠. 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그리고 영웅과 관련된 동화를 보면 언제나 정령과 관계가 있고요.”
“흐응~?”
“그러니까 이 동화책에 나오는 것처럼 하면 제 핏줄에 대해서 아무도 뭐라고 못 하지 않을까요?”
배시시 웃으면서 미스트에게 칭찬해달라는 듯 눈을 빛내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웃음에 피식 웃더니 좋은 생각이라면서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럼 동물을 많이 데리고 와야겠네요. 주로 맹수 위주로요.”
“근데 그게 문제에요. 지금부터 테이밍을 하러 다닌다고 해도 제 시간에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양이를 데리고 온 동물원 아시나요? 그쪽에 가면 온갖 맹수가 있으니 거기로 가면 될 거예요. 국왕님께서 모으신 동물들인데 국왕님이 맹수를 모으신 이유는 국왕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맹수의 생태를 연구하기 위해서시니까 레이시가 동물들을 제대로 제어한다면 빌려주실 거예요.”
“그렇구나……. 에헤헤, 노력해볼게요!”
“네에, 그럼 약속을 잡아둘 테니 3일 뒤에 가볼까요?”
“네!”
미스트의 말에 배시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미스트는 혼자서 잘도 이런 대답을 내놓았다고 생각하면서 레이시의 머리를 가볍게 쓸어넘기다가 헤실헤실 웃고 있는 레이시의 표정에 가볍게 장난을 쳐봤다.
“그나저나 레이시가 자기보고 요정이라고 말할 줄은 몰랐어요.”
“……에.”
“푸후훗, 귀여워라. 우리 요정님.”
“아, 아으으! 그런 의미가 아니란 걸 알잖아요!”
“네에, 네에. 우리 레이시는 요정이라기보다는 서큐버스에 가깝죠.”
“……진짜, 너무 놀리면 미워요.”
피식 웃으면서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추는 미스트.
미스트는 레이시의 허리를 끌어안고 분위기를 잡다가 레이시가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난처하다는 듯 어깨를 밀어내자 얌전히 물러나면서 반대쪽 볼에 입을 맞추며 연회의 준비에 대해서 말을 나누었다.
그리고 3일 뒤, 레이시는 미스트와 이야기를 나눈 것대로 국왕의 신하가 보는 앞에서 동물원으로 갔다.
맹수를 기르면서 테이밍의 난이도와 맹수들의 습성을 파악하는 연구원이 가득한 곳.
보통의 귀부인이라면 짐승 냄새가 난다며 잘 찾아오지 않는 곳이었기에 연구원들은 레이시가 여기에 온 것을 보고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고, 레이시는 코카트리스나 그리폰, 와이번 같은 맹수들이 잔뜩 있는 걸 보고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다가 우리 가장 안쪽 자기를 똑바로 쳐다보는 늑대에게 다가갔다.
“으응, 크네요.”
“그러네요. 실버 스콜이네요.”
“네?”
“실버 스콜, 일반적인 늑대가 일식과 월식의 마력을 먹고 자라났다는 환상종 중에 하나에요. 은빛의 털이 매우 아름다운 동물이죠. 이름의 유래는 실버 스콜이 사냥할 때 보이는 모습이 은빛의 소나기가 사납게 몰아치는 것으로만 보여서이기도 하고, 달빛……, 그러니까 은빛의 부름을 받는다고 해서 실버스 콜이라고도 읽어요.”
“그렇구나.”
“나비랑 비교한다면 나비는 완력으로 짓누르는 쪽이라면 실버 스콜은 스피드와 지구력으로 상대보는 타입이에요.”
“고양잇과는 상대적으로 개과에 비해서 체력이 약하니까요.”
미스트와 대화를 나누면서 점점 우리에 가까이 다가가는 레이시.
연구자들은 레이시의 행동에 그러면 다친다며 기겁했지만, 미스트는 연구자들을 말리면서 레이시를 가만히 바라봤다.
레이시가 발을 우리 안으로 디디자 크게 소리를 내면서 몸을 일으켜 세우는 실버 스콜.
레이시는 그런 실버 스콜의 콧잔등을 쓰다듬으면서 숨을 고르게 내쉬었다.
테이밍 스킬은 미네르바와 하양이, 그리고 나비에게 할애하느라 쓰지 못하지만…….
“착하지?”
연정의 야차의 스킬은 다르다.
애정이라는 건 무한히 주고받을 수 있는 거니까.
그러니 지금처럼 목숨과 무관한 명령이라면 내 명령을 들어줄 수 있을 정도로만 나를 따르게 하는 것도 가능하리라.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스콜에게 마력을 불어넣었고, 처음에는 레이시의 마력에 잔뜩 경계하던 스콜은 레이시의 마력이 자신의 몸을 감싸면 감쌀수록 천천히 알아서 머리를 숙이기 시작했다.
“에헤헤, 착하네요.”
“세상에 이때까지 테이밍이나 정신계 마법을 모두 저항한 실버 스콜이…….”
“레이시의 마력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니까요.”
레이시의 스킬은 아샤와 같은 것.
그 둘에게 저항하기 위해서라면 존재 그 자체에 영향을 끼치는 스킬이 아니면 안 된다.
물론 실버 스콜이 자기 존재를 지키는 방법을 모른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아마 레이시가 적의가 없다는 걸 알고 그냥 받아들인 거겠지.
애정이라는 건 어느 동물이나 갈구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레이시와 실버 스콜을 바라보고 있자 레이시는 실버 스콜의 배를 쓰다듬어주면서 실버 스콜과 함께 놀아주었고, 연구원들은 그런 실버 스콜의 모습을 보며 멍하니 입을 벌렸다.
어떠한 마법, 음식에도 미동도 하지 않던 녀석이 스스로 움직이며 애교를 부린다.
자기보다 훨씬 작은 존재에게……, 아니, 어쩌면 자기보다 훨씬 약한 존재에게.
연구원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했고, 미스트는 연구원들의 반응에 레이시에게 실버 스콜과 함께 사냥하며 길들이지 않겠냐고 물어봤다.
“남문쪽으로 일직선으로 나가실 수 있게 준비해둘게요. 남쪽에 있는 숲에 가주세요. 거기는 사냥회의 준비를 위해서 멧돼지와 사슴들을 풀어넣고 있을 거예요. 레이시가 실버 스콜과 가서 논다고 해도 별 문제가 없을 거예요. 겸사겸사 그 근처에 발생한다는 몬스터도 처리해주세요.”
“그럴까요?”
“네, 연락을 넣어둘게요.”
미스트는 레이시가 고개를 끄덕이자 곧바로 수정구를 꺼내 수도의 경비들에게 연락을 전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답장을 기다리다가 미스트가 허락하자마자 곧바로 실버 스콜의 이마를 쓰다듬은 다음 등 뒤에 올라탔다.
꼬리는 나비보다 길지만, 키는 나비보다 조금 작으려나.
거기에다가 털에 가려서 잘 몰랐지만, 조금 말랐다.
속도와 지구력으로 사냥한다고 했으니까 일부러 이런 몸을 유지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스콜의 털을 붙잡고 승마하듯 자세를 잡자, 스콜은 철창을 찌그러트리고 나가 일직선으로 쭉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남문이에요.”
레이시의 지시에 따라 달리는 실버 스콜.
처음에는 나비와 엇비슷한 속도로 달리던 실버 스콜은 사람들이 일렬로 길을 쭉 열어주자 주변에 있는 모든 게 선으로만 보일 정도로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그 속도에 감탄하기 시작했다.
미네르바만큼은 아니지만 꽤 선선한 바람.
레이시는 이 정도면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건들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배시시 웃었고, 스콜은 레이시가 기뻐하는 게 느껴지자 조금 더 빠르게 움직이며 숲에 들어가 멧돼지와 사슴을마음대로 사냥하기 시작했다.
“잔뜩 먹었나요?”
아무리 작은 숲이라지만 1시간만에 안에 퍼져있던 동물을 모두 잡아먹다니, 대단하네…….
공터에 앉아 스콜의 힘에 감탄하던 레이시는 이제 돌아가자면서스콜의 목을 쓰다듬었고, 스콜은 레이시의 말에 낑낑거리면서 레이시의 손에 머리를 비비기 시작했다.
“내일도 찾아올게요. 으응, 그리고 만약 스콜이 원한다면 나중에 엘라가 오면 우리 멍멍이도 한 마리 기르자고 해볼게요.”
“멍!”
“아하하, 귀여워라. 그럼 돌아갈까요?”
입가에 묻은 피와 살점 찌꺼기들을 깨끗하게 치워주면서 웃는 레이시.
레이시는 스콜이 목이 마르지 않도록 강물을 잔뜩 먹인 다음 동물원으로 들어갔고, 그날부터 시간을 내어서 매일 같이 동물원을 방문하며 동물원 안에 있는 맹수들을 조련하며 연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게 이 결과인거냐?”
“네, 아주버님, 연구원님들이 다들 사나운 동물이라서 조금 걱정했는데 다들 순한 아이들이었어요.”
“그……, 그러냐.”
왕궁의 예절과 풍기를 지키기 위해서 엄격한 훈련을 받았었던 볼케릭.
그 훈련 덕분에 볼케릭은 어지간한 일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을 담력을 얻었었지만, 지금의 레이시는 그런 볼케릭으로서도 감당하기는 조금 어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벽천화 기사단이나 진은 기사단처럼 오라토리엄 무력의 정점이라고 불리는 집단조차도 부상자가 나올지도 모르는, 맹수보다는 괴수에 가까운 존재들.
그런 존재들의 배를 베개 삼은 채 책을 읽고 있는 모습.
동물의 배를 만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 볼케릭은 에일렌과 함께 동화책을 읽는 레이시의 모습에 헛기침했고, 레이시는 볼케릭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어봤다.
“아, 아니다. 음, 그것보다 연회에 초대해도 괜찮은 사람과 연회에 사용할 시종들의 명단을 구했다. 미스트에게도 전해줬고……. 다만 연회의 주인은 레이시, 너니 네가 직접 사람을 고르거라.”
“네, 감사합니다.”
“연회장은 어떻게 꾸밀 거지?”
“밖에서 할까봐요.”
“응? 밖에서?”
“네, 수도 남쪽 숲에 사냥을 위해서 가꾼 숲, 거기에서 하게요. 이 애들과 함께요.”
싱긋 웃으면서 손을 위로 뻗는 레이시.
그러자 스콜의 그림자에서 도마뱀이 나와서 레이시의 손바닥 위에 자리를 잡았고, 레이시는 그 도마뱀의 머리를 만져주며 배시시 웃었다.
“정말 착하죠?”
“그, 그렇구나.”
그 도마뱀이 코끼리도 단번에 땅을 뒹굴게 만든다는 맹독을 지닌 그림자 세계의 살수가 아니었다면 말이지.
대체 레이시는 뭘 하고 싶은 걸까?
단지 엘레오놀을 도와주고 싶은 걸까,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던 볼케릭은 레이시가 엘라와 비슷한 분위기로 웃으면서 자기를 바라보자 흠칫 떨면서 레이시를 바라봤고, 레이시는 볼케릭의 반응에 싱긋 웃으면서 자기는 누군가를 해치고 싶은 게 아니라고 말했다.
“다만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괴롭히지 못하게 막으려는 거예요.”
“그, 그런거군.”
“네. 그런 거랍니다. 엘라가 돌아왔을 때도 저러시면 조금 곤란하니까요.”
어색하게 웃으면서도 맹수의 턱을 간지럽히는 레이시.
볼케릭은 그런 레이시의 손길에 자기 어머니지만 정말이지 불쌍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거렸고, 레이시는 볼케릭의 대답에 싱긋 웃으면서 그럼 연회의 준비를 하러 가겠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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