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2화 〉 둥지 짓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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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와 레이시가 잠자리를 보내고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알티네는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매일매일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경비를 2배로 늘렸지만 밤새 느껴지는 울렁거리는 기운의 존재는 파악하지 못해 점점 입맛을 잃었고, 레이시를 사교계에서 쫒아내기 위한 행동은 엘레오놀이 자신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으면서 자꾸만 지지부진하게 진행되었다.
그렇다고 레이시를 괴롭히는 일에 성공하고 있느냐?
그것 또한 영 시원찮다고 대답할 수 있었다.
알티네의 행동을 막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배 아파서 낳았던 아들인 볼케릭.
왕궁 예법과 질서를 관리하는 일을 담당해서인지 볼케릭은 아무리 어머니인 알티네라고 해도 사사로운 감정으로 엘라의 아내인 레이시를 괴롭히는 걸 좌시할 수는 없다며 알티네의 수하에게 못을 박아두었다.
물론 알티네는 그런 볼케릭의 행동에 이게 다 누구를 위해서 하는 일인지 모르겠냐며 볼케릭을 다그쳐봤지만, 볼케릭은 자기 목을 꽃을 꺾는 것처럼 쉽게 앗아갈 수 있는 엘라와도 기세 싸움을 하는 사람.
알티네가 화를 내면서 집기를 던져도 몸으로 받아내면서 오라토리엄 왕가의 규율을 따르라는 말로 알티네의 분노를 무시했고, 그 때문에 알티네의 부하들은 레이시의 근처에는 가지 못하고 쪼잔하게 레이시에게 일을 좀 더 보내는 것으로 복수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런 건 미스트에게 아무런 압박이 되지 않았다.
레이시가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사이에 미스트가 밖에서 특수부대원을 양육하는 동시에 서류작업을 하며 처리해버렸으니까.
“흐아아아아아!”
때문에 알티네의 궁에서는 오늘도 히스테릭한 비명이 흘러나왔고, 그곳의 시종들은 몸을 잔뜩 움츠린 채 조심스럽게 일했다.
레이시라는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는 미천한 신분으로는 알 도리가 없지만, 되도록 알티네에게 괴롭힘을 당하든 뭘 해서 알티네의 히스테리를 끝내주면 좋겠다.
다소 이기적인 생각이었지만, 레이시와 직접 일하거나 마주할 것도 아닌 사용인들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집안일을 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메이드장은 자기가 직접 나설까 잠시 고민했다.
볼케릭의 엄포가 조금 걱정되기는 했지만, 자기는 후작 가문의 사람.
사실혼 관계라지만 아직 제대로 결혼식을 올리지 않아 정식으로는 평민에서 남작이 된 레이시는 자기 직위로 압박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알티네가 자기를 돌볼 거고.
그렇게 생각한 메이드장은 자기와 뜻이 비슷한 메이드들을 모아서 레이시를 괴롭힐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고, 그날 저녁 옷을 갖춰입은 다음 결사의 의지로 저택에서 발을 디뎠다.
“어머.”
그러자 마주치는 엘레오놀.
원래는 연맹 북부의 왕가인 쿨리아 왕가의 공주였지만, 이번에 독립을 선언하면서 오라토리엄의 새로운 공작이 된 여자.
메이드장은 엘레오놀의 모습에 이 여자가 왜 여기에 있나 싶어서 잠시 의문을 느끼다가 이내 자기가 계속해서 알티네를 대신해서 편지를 보냈던 걸 떠올리고 지금이라도 자기네 세력에 올 마음이 들었냐고 물어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엘레오놀은 부채로 입가를 가리면서 고개를 좌우로 젓더니 억지로 웃음을 참는 이상한 얼굴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도 무척 아름다웠지만, 어딘가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는 찝찝한 얼굴.
메이드장은 그런 엘레오놀의 웃음에 대체 그 웃음의 의미는 뭐냐며 가볍게 쏘아붙였고, 엘레오놀은 메이드장이 화를 내자 웃음을 터트리면서 일부러 이러는 건 아니라면서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고는 자기가 웃은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그야, 사교계를 가지 못하는 처지의 사람에게 사교계에 오라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겠어요?”
“네?”
“사교계에 가서 얻을 수 있는 건 주변 정세와 정보들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지금의 제겐 그런 것들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기반이 없거든요. 먹기 싫은 걸 계속 억지로 떠먹이던 어머니가 생각나서……, 푸후후훗! 정말 죄송해요. 웃을 생각은 없었어요.”
키득키득 웃으면서 옆에 있던 애인에게 팔짱을 끼는 엘레오놀.
엘레오놀은 메이드들에게 그래서 메이드들은 무슨 일로 외출을 했냐면서 고개를 갸웃거렸고, 메이드들은 엘레오놀의 웃음에 포커페이스가 무너지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레이시에게 간다고 말해주었다.
“알티네 님께서 급한 용무가 있으시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어머, 정말요?”
“네. 시어머니로서 며느리에게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하셨거든요.”
“저라면 안 하겠어요.”
“……네?”
“으음~ 이제부터 한 나라에 같이 살게 되었으니 충고를 드리는 거예요. 저라면 그런 일은 하지 않겠어요. 진지하게요. 당신들의 주인은 슈레이 씨를 도와주겠답시고 이러고 있지만, 왕이 되는 자의 조건 중에 신하를 얼마나 잘 억누르는지에 대한 평가도 있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난동을 피우면 국왕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윽…….”
“볼케릭 왕자님께서 괜히 알티네 왕비님께서 레이시 씨의 저택을 방문한 다음 헐레벌떡 수행인도 없이 저택을 방문하신 것 같나요?”
점점 분위기가 무거워지더니 그림자 속에서 뱀이 기어다니는 것처럼 변하기 시작하자 메이드장과 그 일당은 주춤거리면서 엘레오놀에게서 떨어지려고 했고, 엘레오놀은 집사복을 입은 남성에게 팔짱을 낀 채 말을 이어나갔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볼케릭 왕자님께서는 아마 슈레이 씨가 국왕이 되길 바라겠죠. 그야 당연하죠. 이 나라는 지금 누가 왕이 된다고 하더라도 대성해서 최소한 백 년은 태평성대를 누릴 테니까 자기 혈육이 꿈을 펼치길 기대하겠죠.”
슈레이는 블루드처럼 광인도 아니니까 더더욱 그렇게 바라겠지.
엘레오놀은 자기가 직접 봤었던 슈레이와 볼케릭의 얼굴과 애인이 머릿속으로 직접 전달해주는 정보에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을 이어나갔고, 메이드장과 일당은 엘레오놀의 말에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다가 이내 그래도 왕비가 남작 하나를 이기지 못해서 어떻게 하겠냐면서 엘레오놀의 말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숨을 내쉬면서 머리카락을 가지고 노는 엘레오놀.
엘레오놀은 이쯤 했으면 됐다며 손을 휘적거리다가 부엉이 형태로 있는 미네르바를 보고 싱긋 웃었고, 미네르바는 힘은 레이시보다 약하면서 이상하게 감각만은 살아있는 엘레오놀의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다가 그대로 날아올라 메이드장을 앞서 나가 골목에 들어가는 그들의 앞에 섰다.
부엉이 특유의 소리없는 비행으로 갑자기 뚝 떨어지는 미네르바.
알티네의 메이드장은 갑자기 나타난 금발의 인형에 화들짝 놀라다가 레이시의 옆에 있던 하피라는 걸 깨닫고는 피식 웃더니 레이시의 애완동물이 뭐하러 자기 앞길을 막냐고 비아냥거려봤고, 미네르바는 메이드장의 말에 고개를 꺾고 정말로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응?”
“왜 지성인이라는 것들이 더욱 예의를 갖추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너희들은 자기보다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을 구별할 수가 없나? 여긴 감시구도 없고, 이 거리라면 너희가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빠르게 쓰러트릴 수 있다.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도 내 변덕에 따른다. 그런데 왜 내게는 예의를 차리지 않지? 엘라랑 나랑 그렇게 힘 차이가 나는 거 같나?”
미네르바는 의문을 표현하면서 천천히 고개를 꺾다가 이내 180도에 가깝게 머리를 꺾었고, 메이드장은 보통의 사람이라면 죽었을 미네르바의 행동에 흠칫 떨면서 미네르바를 바라봤다.
어느새 눈동자가 부엉이처럼 확장되어서 메이드장을 바라보는 미네르바.
좀 더 몬스터스러운 모습으로 날개를 펼친 미네르바의 모습에 메이드장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정말로 감시구가 없는 지역이라는 걸 깨닫고 안색이 창백하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메이드장은 처음으로 물리적으로 죽는다는 걸 실감하며 주춤거렸고, 미네르바는 완전히 몸이 굳어버린 메이드장의 모습에 눈을 가늘게 뜨다가 천천히 다가가서 메이드장의 얼굴을 잡고 천천히 긁는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주인에게……, 레이시에게 다가오지 마라. 마지막 경고다. 나는 엘라나 미스트, 아샤처럼 사회 같은 건 신경 안 쓴다. 내게는 주인밖에 없으니까, 건들지 마라.”
흰자가 사라진 눈으로 메이드장을 바라보는 미네르바.
메이드장은 그런 미네르바의 눈에 베스티야 왕국의 어느 백작 가문에 대한 것을 떠올렸다.
몬스터이긴 하지만 날개와 다리를 제외하면 아름다운 여성형의 외모.
적의가 들어가지 않은 목소리는 아름다우며 적당히 훈련만 잘 시키면 그리폰을 상대로도 주인을 지킬 수 있는 무력.
거기에다가 한 번 자신의 연인으로 인식한 대상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키는 본능 덕분에 하피를 전문적으로 육성하고 있다던가.
그때는 라미아와 하피를 첩으로 기른다기에 사막에서 힘들게 사는 사람다운 머리가 이상한 취향이라고, 미네르바를 첩으로 인정하는 엘라는 역시 창녀의 딸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대답해라. 쓰레기.”
이런 걸 직접 보니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가지고 있는 사회성과 도덕성, 윤리는 하나도 없으며 짐승 특유의 공격성으로 주인만을 지키는 사냥개.
메이드장은 그런 미네르바의 모습에 얼어붙은 몸으로 억지로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고, 미네르바는 메이드장의 대답에 눈을 가늘게 뜨다가 이내 미스트의 지시를 떠올리고는 물병을 꺼내 메이드장의 입에 박아넣었다.
“끄룩!?”
“다 삼켜라. 미스트의 독이다. 미스트가 말하길 다음 달에 약을 받지 않으면 캘러미티 가문의 방식으로 죽는다더군.”
“히익!?”
미네르바의 말에 다급하게 미네르바의 팔을 잡고 긁어대는 메이드장.
하지만 미네르바는 메이드장이 저항하든 말든 평범한 물을 메이드장에게 전부 먹인 다음 근처에 있는 다른 일당들에게도 전부 마시게 했고 이어서 미스트가 준비해준 말을 그들에게 말해주었다.
“한 번이라도 더 주인에게 다가오면 지금 겪는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끼게 해주지. 알겠나?”
“야, 야, 약! 약 주세요! 뭐든지 할게요!”
“한 달 뒤에 보지.”
메이드장의 손을 뿌리치고 날아오르는 미네르바.
미네르바는 구름의 그림자를 타고 저택까지 날아간 다음 미스트에게 시키는 대로 했다고 말해주었고, 미스트는 미네르바에게 차를 건네주면서 수고했다고 말해주면서 키득키득 웃었다.
“잘 속았나요?”
“그런 건 모른다. 그냥 네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럼 속았겠네요. 후후. 하여튼 알티네 왕비님과 슈리아 공주님은 참 신기하단 말이죠. 도대체 국왕님의 피가 얼마나 좋게 작용하고 있는 걸까요? 이게 교육 프로그램의 위엄일까요?”
“그런 거 모른다. 후아아아암……. 그것보다 이러면 주인이 행복해지는 거 맞나?”
“네에, 음~ 레이시는 저희가 이러는 건 모르겠지만요.”
키득키득 웃으면서 미네르바의 입에 간식을 물려주는 미스트.
미네르바는 그런 미스트의 행동에 뚱한 얼굴로 간식을 먹다가 미스트의 계획을 떠올렸다.
계획 이름이 레이시의 세력 형상화 계획이었던가…….
이대로 엘라와 결혼해봐야 주변에게 휘둘릴 뿐이니 주변에 휘둘리지 않도록 엘레오놀을 필두로한 레이시의 세력을 만드는 계획.
루룬이 레이시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처럼 레이시에게 충성을 바치는 사람을 구하고 왕가의 휘하의 세력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엘라가 돌아오면 지금처럼 평화롭게 살아간다.
미네르바로서는 미스트의 계획이 잘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이런 일에서는 미스트가 항상 옳았기 때문이 미네르바는 미스트의 말을 믿기로 하고 이제 뭘 하면 되냐고 물어보며 다음 일을 하려고 했다.
“지금은 쉬세요.”
“으응?”
“이런 일은 천천히 공을 들여야하거든요. 쉽지 않은 사냥감을 사냥할 때처럼 말이죠.”
“흐으응…….”
“그것보다 슬슬 레이시가 미르랑 레아 때문에 일어날 거 같으니까 안에 들어가주실래요?”
“미스트는 어떻게 할 거냐?”
“저는 엘레오놀 공작 각하에게 가야해서요.”
“흐으응……. 알겠다.”
미스트가 말한 거라면 그런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미네르바는 귀를 쫑긋 세우고 레이시의 목소리를 찾기 시작했고, 이내 레이시의 목소리가 들리자 조심스럽게 레이시의 침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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