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6화 〉 시어머니4
* * *
다음 날, 미네르바의 살기를 분노로 잊은알티네는 자기 사용인들에게 말한 것대로 레이시의 저택을 방문했다.
왕족이 살아간다고 생각하기에는 조금 작은 저택.
선대의 국왕이 사용했다는 별장이라는 걸 제외하면 허물고 다시 지어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저택에 알티네는 엘라의 수준에 맞는 저택이라고 생각하면서 문을 열었고, 레이시는 알티네가 문을 열자 놀란 눈으로 알티네를 바라보다가 싱긋 웃었다.
억지로 입을 찢어서 웃는 것 같은 미소.
사용인들은 레이시의 억지웃음에 움찔 떨면서 알티네를 바라봤지만, 알티네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자리에 앉아 시어머니에게 눈빛이 그게 뭐냐고 타박하기 시작했다.
“출신이 천하면 애교라도 부릴 줄 알아야지…….”
“……에일렌, 위로 올라갈래요?”
“마망, 화났어?”
“설마요~, 한 시간만 미네르바 엄마랑 같이 놀아줘요. 알겠죠?”
“으웅. 알았어어.”
알티네가 시비를 걸자 무릎에 앉히고 같이 놀던 에일렌을 위로 올려 보내는 레이시.
레이시는 에일렌이 위로 올라갈 때까지 손을 흔들다가 에일렌이 사라지자 천천히 얼굴을 굳히면서 알티네를 바라봤고, 알티네는 레이시의 반응에 코웃음을 치더니 어제 선물은 잘 받았다고 말해주었다.
“건방지게…….”
“으응?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네요. 선물이라니.”
레이시가 보낸 게 아닌가?
레이시의 반응에 눈을 가늘게 뜨던 알티네는 역시 어젯밤의 선물은 미스트가 보낸 것이었다고 생각하면서 혀를 찼고, 레이시는 알티네가 갑자기 집에 쳐들어온 것도 모자라서 자기에게 대놓고 적의를 내비치자 인내심이 떨어지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국왕을 생각해서 뱀을 보내도 적당히 웃으면서 넘어갔지만, 집에까지 처들어오는 건 봐줄 수가 없다.
거기에다가 갑자기 선물이라니.
저렇게 이를 가는 걸 보면 좋은 의미의 선물은 아니고 분명 나쁜 의미의 선물이겠지.
……내가 암살자라도 보낸 줄 아나?
착각을 해도 정도껏 해야지 이렇게 불쾌하게 착각을 하는 건……, 솔직히 화난다.
아니, 화나는 건 예전부터 화가 났었고 이젠 조금 참기 힘들게 됐다.
그렇기에 레이시는 알티네를 빤히 바라보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알티네의 사용인들은 레이시의 반응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알티네와 레이시를 번갈아 봤다.
만약 레이시가 화라도 내는 순간 자기들이 대신해서 레이시를 진정시켜 하겠지만, 레이시는 야차.
사회생활을 하고 공격성이 거의 없다지만, 야차는 야차.
기사도 아니고 전투와 관련된 스킬도 없는 자기들이 레이시를 막을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아무래도 대답은 요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사용인들은 주춤거리면서 레이시에게서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사용인들이 뒤로 물러나자 마지막으로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들었다.
“출구는 저쪽이에요. 조용히 나가주세요.”
“헉…….”
존댓말로 말했지만 그냥 꺼지라는 말과 다를 게 없는 레이시의 발언.
알티네의 사용인들은 레이시의 말에 말다툼을 직감하면서 바짝 긴장했고, 아니나 다를까 알티네의 눈썹은 점점 ?자를 그리면서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너…….”
“사실 시어머니라고 하셔도 엘라의 친어머니도 아니고 제가 알티네 왕후님에게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거든요. 저만 괴롭히는 거라면 모르겠는데 에일렌에게 뱀까지 보내시고.”
“뱀? 그게 무슨 소리니? 헛소리로 나를 모함하는 거라면 그쯤 하는 게 좋을 거란다.”
“그래요? 그럼 공작가를 부숴야 하나?”
“……그 말, 흘려 듣기에 좀 그렇구나.”
“못 할 거 같나요?”
“엘라의 입장이 난처해질 거다.”
“엘라라면 오히려 저를 도와줄걸요? 에일렌에게 뱀을 보냈으니까 눈이 뒤집혀져서 왕궁 내에서 마법을 난사할지도 몰라요?”
레이시의 말에 눈썹을 까딱이는 알티네.
알티네는 레이시가 진심으로 이런 망언을 지껄이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레이시의 눈을 바라봤고, 레이시는 알티네가 자기 눈을 바라보자 조용히 알티네를 바라봤다.
전생의 자기였다면 이런 말을 할 수도 없었겠지만……, 에일렌이 달려있는 일이라면 그렇게 마냥 참을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레이시는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알티네를 바라봤고, 알티네는 레이시가 진심으로 공격할 수 있다는 걸 느끼며 이 일을 후회하게 될 거라고 말했다.
“연회에 나오지 못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몸으로 겪어보렴.”
“어머, 저는 나가라고 했는데요.”
연회는 무슨 연회야.
어차피 그런 거에 들어갈 생각은 추호에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알티네에게 빨리 나가라며 재촉했고, 알티네는 레이시의 말에 이를 으득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네!”
“흥…….”
자리에서 일어나는 알티네를 보고 콧방귀를 뀌며 몸을 돌리는 레이시.
레이시는 아침부터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다면서 투덜거리다가 2층으로 올라가 놀란 에일렌을 달래주었고, 에일렌은 레이시가 평소와 똑같은 얼굴로 돌아와 자기를 안아주자 품에 안기면서 알티네가 누구였냐고 물어봤다.
“우리 에일렌은 몰라도 되는 사람이요. 엘라 엄마를 아주아주 싫어하는 사람인가봐요.”
“으응. 왜 싫어해?”
“엘라 엄마가 너무 강해서요. 무서운가봐요.”
“바보 같아.”
“에헤헤, 그렇죠?”
레이시는 에일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딴 연회에 안 가도 괜찮지 않냐고 물어봤고, 에일렌은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맞다면서 자기는 레이시가 안아주면 다 된다며 애교를 부렸다.
“에헤헤, 누구 딸이기에 이렇게 귀여울까요~?”
“마망!”
“헤헤, 그럼 오늘은 뭐하고 놀 거예요?”
“오늘은 미스트 엄마가 공부하래! 오늘은 더하기랑 빼기 가르쳐 준대!”
“아하~. 그럼 마망이랑 같이 배울까요?”
환생 전의 이야기라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아이가 뭔가를 배울 땐 부모가 같이 있는 게 도움이 된다고 했었으니까 같이 공부하면 에일렌에게 도움이 되겠지.
그리고 수업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미스트도 허락해줄 거다.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며 에일렌의 머리를 계속해서 부드럽게 쓰다듬었고, 에일렌은 레이시가 자기랑 같이 공부한다고 말하자 방방 뛰며 기뻐하다가 미네르바에게 달려갔다.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요오오~.”
“레이시.”
“미스트. 으응, 저기…….”
“선물은 제가 보냈어요. 설명을 미리 못 해줘서 죄송해요.”
“그렇구나. 저에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 있으셨죠? 그럼 됐어요.”
“고마워요.”
“그나저나 미스트.”
“네?”
“알티네 왕후님이요, 사교계에 발을 못 붙이게 해주겠다면서 저에게 으름장을 놨는데 엘라에게 불이익이 있을까요?”
“레이시에게 말고요?”
“저야, 아버님께서 부르시는 게 아니라면 딱히 찾아갈 생각이 없었는걸요?”
“그럼 괜찮아요. 공주님이 연회를 여신다면 오실 분들은 오시고 안 오실 분들은 안 오시고요. 그리고 공주님을 배제하신다면 엘레오놀 공주님……. 지금은 공작님이셨죠. 하여튼 레이시를 배제하면 공주님의 활약으로 오라토리엄 왕국으로 들어오게 된 엘레오놀 공작님이 연회에 참석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건…….”
“지금 엘레오놀 공작님께서는 이 나라의 지지기반이 없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세력을 불리면 기존 세력에게 공격 받을 가능성이 크죠. 그리고 엘레오놀 공주님께서 원하시는 건 자기 영지민들의 안전과 주권. 기존 귀족 세력에 반발해야 할 필요도 적고요. 아마 엘레오놀 공작님께서는 공주님과 국왕님의 아래에서 지내시려고 하실 텐데 그런 레이시가 배제된 곳에 나갈 리가 없죠.”
지금 엘레오놀이 레이시가 배제된 곳에 나가게 되면 국왕파의 세력들이 엘레오놀을 견제할 거고, 그렇게 된다면 기껏 확보해놓은 쿨리아의 안전이 흐트러진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목적과 수단을 확실하게 구별할 능력이 있는 엘레오놀이 그런 일을 하진 않을 것이다.
결국 이건 누가 먼저 배에 힘을 빼냐의 싸움이 될 건데…….
솔직히 말하자면 레이시는 배에 힘을 주고 있지도 않으니 아마도 이 기 싸움은 알티네의 쉐도우 복싱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았다.
뭐, 그렇다고 해도 동정심을 느낄 리는 없지만.
결혼하면 누구나 고부 갈등을 겪게 된다지만, 엘라의 친엄마도 아니고 레이시를 자주 찾은 것도 아닌 그저 그런 외부인 주제에 엘라의 업적을 이용하려고 하는 걸 보자 기가 찰 뿐이다.
“뭐, 알티네 왕후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해요. 많이 이야기한다고 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으응, 그건 그렇죠? 아!”
“응?”
갑자기 소리를 크게 내는 레이시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미스트.
미스트는 레이시에 뭔가 깨달은 것이 있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배시시 웃으면서 알티네와 싸워서 얻을 수 있는 좋은 게 하나는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게 뭔가요?”
싸워서 얻을 수 있는 좋은 게 뭐지?
그것도 어떠한 종류의 싸움을 싫어하는 레이시가 싸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있다고 말하다니…….
미스트는 레이시가 했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말에 레이시의 옆에 앉아 그게 뭐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미스트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자 배시시 웃으면서 자기에게 사람들이 달라붙지 않는 것만큼은 좋다고 말해주었다.
“엘라를 노리든 저를 노리든 그 사람들은 사교계를 어어엄청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저랑 친하게 지내게 된다면 알티네 왕후님에게 밟힐 테니까 저를 꺼려하지 않을까요?”
“아하, 후후, 하긴 그러네요. 보통은 사교계에서 추방 당하는 걸 나쁘게 만 생각해서 그렇게 생각을 못 했네요. 레이시도 이제 정치를 해도 괜찮을 거 같은데요?”
“네에? 그건 좀……. 사람들을 책임지기는 싫다고요.”
“아하하하.”
“그나저나 시어머니와의 첫 대면이 이런 거라니 조금 꺼려지네요.”
“후후, 다른 시어머니들은 잘 대해주실지도 모르잖아요?”
“몇 분이 계신데요?”
“5분 정도?”
“와, 많네요…….”
“국왕의 의무 중 하나가 자식을 많이 낳아서 후계에 문제가 없도록 하는 거라서 최소 3명의 아내를 가지게 된답니다. 아이야트 왕자님도 국왕 자리에 오르시면 레베카 왕자비님을 정실로 삼고 측실을 두, 세 분 정도 가지실 거예요. 레베카 왕자비님도 그 부분은 인식하고 있고요.”
“으으응. 그렇구나.”
“후후후. 그렇답니다.”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웃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설명에 헤프게 웃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에일렌과 같이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같이 수업을 듣자며 에일렌에게 갔다.
그리고 에일렌의 수업이 끝날 무렵 레이시의 저택에는 한 사람의 손님이 찾아왔고, 레이시는 손님의 정체에 움찔 떨다가 조심스럽게 안으로 안내했다.
“그, 미안하다. 왕실 전체를 대표하지는 못하지만 알티네 오라토리엄의 아들로서 사과하지.”
“아니에요. 볼케릭 왕자님. 왕자님께서는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으셨잖아요?”
“아니, 이번 일에는 내 책임도 있는 모양이더군. 아무래도 평소에 네게 왕가의 규칙을 강요하는 편지를 보냈던 것이 화근이 된 모양이다.”
한숨을 푹 내쉬면서 머리를 부여잡는 볼케릭.
볼케릭은 당분간은 편지를 자제하겠다는 말과 함께 자기 어머니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말해주었고, 레이시는 볼케릭의 말에 눈을 깜빡거리면서 아무래도 좋다고 말해주었다.
“사교계라는 거 결국 헛소문을 퍼트리는 장소잖아요? 그런 곳이라면 못 가도 별 상관은 없어요.”
“음, 다들 뒤에서 수군거릴 거다만?”
“엘라랑 사귄다고 말했을 때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었었으니까 괜찮아요.”
“그런가……. 강하군.”
“에헤헤.”
“그럼 어머니가 무슨 일을 하는지, 또 정도를 벗어난 짓을 꾸미고 있다면 보고할 테니 잘 지내도록.”
“부탁드릴게요.”
볼케릭은 레이시에게 사과하는 게 그렇게 급했던 건지 레이시가 자신의 사과를 받아주자 미스트가 내놓은 뜨거운 차를 단번에 마신 다음에 자리에서 일어났고, 레이시는 언제 비웠는지도 모를 찻잔에 어색하게 웃다가 손을 흔들어주다 미스트에게 볼케릭이나 슈레이와 다르게 왜 알티네는 자기에게 적대적이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미스트는 레이시의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활기차게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알테니 왕후님은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서 그렇죠.”
“……아.”
“후후, 이해가 되셨나요? 그럼 저희는 저녁 준비를 해볼까요?”
“네에~. 저는 야채를 씻어주면 돼죠?”
“네, 부탁드릴게요.”
뭔가 많은 게 축약된 미스트의 대답.
하지만 레이시는 미스트의 대답을 제대로 읽을 수 있었고 이내 미스트가 부탁대로 야채를 씻으며 모두와 함께 먹을 저녁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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