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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447화 (447/542)

〈 447화 〉 집안일 배우기­4

* * *

미스트가 답장을 보내자 며칠 지나지 않아 돌아온 초대장.

그 초대장에는 정중한 말투로 레이시를 다과회에 초대한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지만, 속을 조금만 파고 들어가면 레이시를 이용해 어떻게든 편하게 살겠다는 게 보이는 편지.

레이시는 이렇게 노력할 거라면 차라리 본인의 능력이나 갈고 닦는 게 낫지 않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자기가 말한다고 해서 들을 사람이라면 이미 스스로 고쳤겠다 싶어 한숨을 푹 내쉬면서 미스트를 바라봤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러네요. 레이시가 화가 난 걸 그대로 표현하면 괜찮아요. 단, 시장의 왈패처럼 소리를 지르고 이러면 안 되요. 어디까지나 우아하게 화를 내면 되요.”

“우아하게요?”

“네, 남들이 보기에만 경박하지 않으면 되요. 그리고 가문을 공격하면 안 되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쪽으로 나가는 게 좋을 거예요.”

“그건 당연히 그래야죠……?”

그 사람이 잘못한 거지 그 사람이 속한 가문이 잘못한 건 아니니까.

레이시가 당연하다는 듯 그렇게 말하자 미스트는 싱긋 웃으면서 그렇게 단순한 건 아니라고 말해주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하여튼 여기에 나가서 어떻게 하면 되는 거냐고 물어봤다.

우아하게 화를 내라고 말했지만, 전생과 현생을 포함해봐도 레이시는 우아하게 화를 낸 적이 없었다.

별거 아닌 이유로 싸웠을 때도, 군대에서 훈련할 때 교관의 실수로 귀가 먹을 뻔했을 때도 둘 다 정해놓은 선을 넘는 바람에 크게 화를 냈었다.

애초에 우아하게 화를 낼 수 있는 게 가능한지조차도 의심스럽다.

레이시에게 있어서 분노라는 감정은 언제나 그랬다.

에일렌을 가지고 협박한 사람을 죽일 때도 조용히 화를 내긴 했지만, 엘라를 비롯한 사랑하는 사람의 흉내를 내면서 철저하게 죽였었다.

……내가 영화속 귀부인처럼 우아하게 화를 낼 수 있는 걸까?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술을 약하게 깨물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모습에 우아하게 화를 내라는 건 소리를 지르지 말라는 거지 정말로 분노를 느껴도 속으로 삭히라는 게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만약 레이시가 정치적으로 뭔가를 하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레이시는 정치적으로 뭔가 하는 상황이 아니잖아요? 기껏 한다는 아멜리아 관리도 솔직히 말하면 루룬 씨가 다 알아서 하고 있고요.”

“네? 네……. 그건 그렇죠…….”

“레이시는 아주 적은 것만을 누리는 대신에 자유로운 입장이에요. 실제로 여기에 있는 사람들과 말다툼하다가 살인을 저지른다고 해도 이 정도의 사람들은 국왕님께서 무마해주겠죠.”

“그, 그런……. 저 은근히 누리는 거 많은데.”

“그런가요?”

“네, 집 걱정 안 하고 돈 걱정 안하고 살고 있잖아요. 그것만 해도 많은 걸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닌가요?”

“후후, 그건 레이시의 말이 맞지만,그렇다고 해서 레이시가 국가사업을 벌일 수는 없잖아요. 아이야트 왕자님과 슈레이 공주님께서는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도시에서 원하는 사업을 벌일 수 있어요. 그리고 거기에 드는 돈은 대략 이 정도.”

“헉……!”

0이 몇 개지…….

레이시는 미스트가 아이야트와 슈레이의 사업비로 지출한 돈을 보여주자 기겁하면서 종이를 붙잡고 있다가 이내 어색하게 웃으면서 헛기침했다.

하긴 아무리 개인적인 돈이 아니라 국가에 환원하고 국왕이 원하는 때에 제지할 수 있다고 하지만 돈을 몇백억 단위로 쓸 수 있는 사람과 비교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안 누리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생각하던 레이시는 고개를 좌우로 젓다가 사람을 죽이진 않을 거라고 말했다.

“제가 진심으로 화를 내면 그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는 아샤가 마차에서 말해줬으니까 아마 때리지는 못할 거예요.”

“후후,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만약이라고 했잖아요?”

“으으응…….”

“하여튼 그런 수준이니까 웃는 얼굴로 욕을 할 수 있기만 하면 괜찮아요. 그런 건 레이시가 저를 흉내내면 되고요.”

싱긋 웃으면서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어주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손길에 얼굴을 붉히다가 너무 놀리지는 말아 달라고 부탁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지금 곧바로 가면 되나요?”

“네. 마차 불러드릴게요. 옷차림은 지금 입고 있는 옷으로도 괜찮아요.”

셔츠에 베스트, 바지라는 중성적인 옷차림.

예전에는 집사복을 여자 몸에 맞게 맞춘 사용인의 복장이었지만, 지금은 고급 브랜드의 여성용 생활복이었기에 다과회에 가도 괜찮았기에 미스트는 레이시에게 지금 마차를 불러줄 테니 다녀오라고 말했고, 레이시는 두 시간 정도 뒤에 다녀오겠다면서 엘라가 산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에일렌에게 갔다.

“블록 재미있어요?”

“웅, 마망두 할래?”

“마망, 지금은 일하러 가서 못 놀아주고, 2시간 뒤에 오면 놀아드릴게요.”

“미르랑 레아 보러 갈 거자나.”

볼을 빵빵하게 부풀이는 에일렌.

초대장이 오는 동안 놀아주다가 중간에 몇 번 빠져서인지 에일렌은 오늘도 중간에 도망칠 거라면서 레이시를 믿지 않았고, 레이시는 에일렌의 말에 어색하게 웃다가 그러지 않겠다고 속삭였다.

“진짜?”

“네, 오늘은 미스트 엄마가 시간이 많이 빈다고 대신 돌봐주겠다고 했거든요. 오늘은 에일렌하고만 놀거예요.”

하지만 레이시의 말 몇 마디에 금방 풀려서 에일렌은 헤실 웃으면서 일을 조심해서 하고 오라며 손을 흔들었고, 레이시는 에일렌의 인사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밖으로 나가 제 1 내벽, 귀족거주구에 있는 커피숍으로 하양이를 타고 움직였다.

“나비가 더 좋은데…….”

그럼 화났다는 걸 좀 더 잘 표현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던 레이시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떠나기 전에 미스트가 건네줬었던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참가자의 신상정보와 거기에 참가한 사람들이 레이시에게 바라는 것들이 적혀 있는 종이.

레이시는 그 종이를 읽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면서 종이를 품에 넣었고, 초대장에 적혀 있던 장소까지 오자 레이시는 카페 직원에게 초대장을 건네주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 어서 오세요, 레이시 루피너스 남작님.”

“반가워요. 레이니아 자작 영애.”

레이니아 가문은 귀족 거주구에서 부족하게 살고 있진 않지만, 그렇다고 어깨를 펴고 살 수 있는 수준은 아닌 수준의 귀족.

그 이유는 안사람이 병약해 사교계에 나가지 못해서이며, 그의 딸 베튼 레이니아는 레이시의 총애를 받아 사교계의 중심으로 가려는 욕망을 몸에 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베튼 레이니아를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은 레이시를 초대하겠다고 선을 넘어버리고 말았고, 그 때문에 레이시는 사람들이 미소를 지으며 자기를 바라보고 있어도 웃지 못하며 곧바로 자리에 앉았다.

연회장에서 보여줬던 모습과는 정반대로 차갑고 싸늘한 모습.

베튼은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움찔 떨다가 이내 엘라가 없어서 예민해진 거라고 생각하고 레이시에게 선물을 건네며 은근슬쩍 레이시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비록 사교계에 나간 적이 얼마 없어 기를 펴지 못하고 살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유혹하는 게 서툴다는 건 아니었다.

은근슬쩍 레이시의 손을 만진다거나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거나…….

그런 식으로 계속 레이시를 유혹하자 레이시는 눈을 감으면서 그들의 손을 피했고, 그들은 레이시의 행동에 움찔 떨다가 레이시의 잔이 빈 걸 보고는 차를 따라주려고 했다.

“제가 할게요.”

처음으로 짓는 미소.

사람들은 레이시의 미소에 안도감을 느끼며 잔과 주전자를 건넸고, 레이시는 주전자를 받아들더니 잔에 천천히 차를 따르기 시작했다.

천천히 잔에 차오르는 녹색의 차.

사람들은 잔에 차오르는 차를 보면서 레이시가 대화할 생각이 있다고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레이시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레이시의 얼굴을 본 사람들은 움찔 떨면서 자신의 안도가 이르다는 걸 직감했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는 레이시.

얼굴만 본다면 그렇게 무섭지 않았지만, 사람에게는 없는 뿔과 뱀처럼 쭉 찢어진 동공은 사람과 죽일 듯이 싸웠던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영애들에게 공포를 심어주었다.

그것은 사람을 죽여본 사람과 죽여본 적이 없는 사람의 차이.

미스트가 있었다면 영애들을 동정할 정도로 차가운 눈빛에 영애들은 움찔거리면서 레이시를 바라봤고, 레이시는 그런 영애들의 시선에 최대한 화를 식히면서 잔에다 차를 따랐다.

욕을 해선 안 된다.

폭력도 하면 안 된다.

최대한 표준어로 자기 의지를 전달하자.

그렇게 중얼거린 레이시는 자기가 잔에 넘쳐흐르도록 차를 따르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움찔 떨었다가 이왕 흘린 거 이걸 이용하자고 생각하면서 계속해서 잔에 차를 따랐다.

그러자 차는 점점 테이블로 넘쳐 흐르기 시작했고, 레이시를 초대한 베튼은 레이시에게 차가 넘친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네요.”

“네?”

“차, 엄청 흘러넘치네요. 엘라의 자애로움 덕분에 여러 훌륭한 분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된 제 모습 같아요. 안 그래요?”

미스트처럼 입술을 쭉 찢으면서 웃어보는 레이시.

베튼은 레이시의 웃음에 움찔 떨면서 불안한 마음에 사용인을 곁눈질 했지만, 베튼처럼 실전 경험이 없었던 사용인은 똑같이 얼어붙은 채 레이시의 말을 기다렸다.

“엘라가 없으니 외롭지 않냐면서 부족한 감정을 채워줄 수 있으니 같이 이야기를 나누자니……, 엘라가 주던 감정을 당신이 줄 수 있다는 건가요?”

“와, 완벽하게는 무리더라도…….”

“잘 알고 있네요? 저는 또 당신이 엘라를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여기에 있는 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의미는 아, 아니었…….”

“그래요? 다행이에요. 정말로요. 안 그러면 손가락 하나나 둘 쯤은 꺾어버렸을 거예요. 펜을 쥐지 못하게요.”

히죽 웃으면서 손에 힘을 주자 그대로 바스러지는 주전자의 손잡이.

베튼은 도자기로 만들어졌을 손잡이가 종이처럼 구겨져서 부러지는 모습에 작게 비명을 지르다가 레이시가 테이블에 있던 칼을 손에 쥐고 힘을 주기 시작하자 이내 비명도 지르지 못하게 되었다.

아무리 빵을 자르기 위해서 날을 날카롭게 세우지 않고 일부러 죽여놓은 칼이라고 해도 철로 만든 다음에 은으로 도금을 해놓은 명백한 칼.

그걸 주먹으로 쥐면 당연하게 살이 잘리게 된다.

하지만 레이시의 손에 들린 칼은 레이시의 몸에 상처를 주기는커녕 맥없이 찌그러져서 동그란 철구로 변했고, 레이시는 나이프였던 걸 가만히 바라보다가 찻잔에 넣으면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쁜 소리는 안 할게요. 다시는 엘라를 대신할 수 있다느니 그딴 헛소리만 하지 말아주세요. 안 그러면 정말 힘을 실어서 당신을 때릴지도 몰라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제가 그러면 당신 목 정도는 너무 쉽게 꺾어버릴 수 있거든요. 아시겠죠.”

베튼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레이시.

베튼은 미스트의 흉내를 내는 레이시의 속삭임에 덜덜 떨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레이시는 베튼의 목을 만지작거리다가 천천히 손을 떼며 싱긋 웃었다.

베튼이 사과하자 그제야 풀어지는 얼굴.

레이시는 무서운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다면서 고개를 꾸벅 숙인 다음에 카페 밖으로 나갔고, 이내 딸기를 사서 저택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봄이 되면 딸기가 안 나올 거 같은데……. 으으응, 어쩌지…….”

에일렌에게 새 과일을 먹여볼까?

취향인 간식은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으니까, 그러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봄에 나오는 과일의 이름을 생각하며 저택으로 들어갔고, 자기가 들어가자마자 쪼르르 달려와 안기는 에일렌에게 딸기를 먹여주면서 에일렌과 함께 블록을 가지고 놀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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