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2화 〉 연회 n일차3
* * *
베스티야 왕국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
오늘은 에일렌을 건드는 사람이 없었는지 에일렌은 미네르바와 아샤, 두 사람과 함께 놀았던 이야기를 해주면서 해맑게 웃었다.
“흐응, 그래?”
물론 이야기의 영양가는 하나도 없었다.
늘 하는 이야기에 늘 듣는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엘라는 마차에 대충 누워 에일렌을 자기 배 위에 앉힌 다음 에일렌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주었고, 에일렌은 엘라가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자 환하게 웃으면서 에일렌에게 계속해서 애교를 부렸다.
“헤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헤프게 웃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웃음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가 피식 웃으면서 레이시에게도 가까이 오라면서 손짓했고, 레이시는 마차가 잠시 멈춘 사이에 엘라의 옆에 앉아 에일렌의 뺨을 콕 하고 찔러주었다.
“아잉.”
“에헤헤, 재미있게 놀았어요?”
“응! 간식도 많이 먹었어!”
“그럼 착한 아이로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요?”
“이빨 닦아야 해!”
“착해라~. 에일렌은 마망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네요.”
“웅! 에일렌은 착해!”
레이시가 묻자 에일렌은 곧바로 대답하면서 레이시의 품으로 자리를 바꿨고, 엘라는 에일렌이 좋다는 듯 레이시의 품을 파고 들어가자 레이시와 에일렌을 같이 안아주었다.
그러자 에일렌은 꺄르륵 웃으면서 엘라와 레이시의 품에서 바둥거렸고, 엘라와 레이시는 에일렌이 숨이 넘어갈 듯 웃자 똑같이 환하게 웃으면서 계속해서 에일렌과 놀아주었다.
한참을 시간을 가는 줄 모르고 손장난을 치는 세 사람.
아샤는 마차 안에서 들리는 웃음소리에 조금은 부럽다고 생각하다가 저택이 보이자 창문을 가볍게 노크하면서 도착했다고 말하면서 미네르바를 깨웠다.
“나는 마차 정리하고 올 테니까 먼저 들어가.”
“흐아아암, 알겠다. 수고해라. 혹시 부탁할 거 있나?”
“없어. 레이시, 좀 피곤해 보이던데 잘 보살펴줘.”
“응. 알겠다.”
아샤의 말에 하품을 늘어지게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레이시를 돌보러 가는 미네르바.
아샤는 미네르바가 자리를 뜨자 한숨을 내쉬면서 마차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미스트는 집에 레이시가 돌아오자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추면서 아샤는 어디에 있냐고 물어봤다.
“아샤는 마차를 정리하고 온데요. 흐아아아암……. 죄송해요. 씻고 미르랑 레아 돌볼게요. 맞아! 좀 있다가 쿠키 올 거예요! 저희만 연회장에서 맛있는 거 먹어서 죄송해요.”
“어머, 그런가요?”
“에헤헤, 직접 사오고 싶었는데 연회장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와서…….”
“괜찮아요. 레이시도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잖아요.”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는 레이시에게 입을 맞추면서 얼른 씻고 자라고 말하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미르랑 레아를 봐야 해서 자지는 못 할 것 같다며 배시시 웃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대답에 피식 웃더니 레이시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춘 다음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목적지는 당연하게도 아샤.
미스트는 아샤가 있을 만한 곳을 계산하다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고, 말을 돌려주고 난 다음 저택으로 터덜터덜 걸어오던 아샤는 마중나온 미스트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레이시는?”
“씻으러 들어갔어요.”
“그래? 근데 넌 왜 나왔냐?”
레이시의 옆에서 미르와 레아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하지 않냐?
그렇게 말하듯이 눈을 찌푸리던 아샤는 미스트가 싱글벙글 웃자 한숨을 내쉬면서 빨리 말해보라는 듯 턱짓했고, 미스트는 아샤의 턱짓에 싱긋 웃더니 연회장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봤다.
“국왕님 성격을 생각해본다면 레이시에게 일을 시키지 않을 거 같은데요.”
“맞아. 아이야트와 슈레이에게 의견을 받게 한 다음 왕가끼리 내부 회의를 한 다음 마지막 날에 대신들을 모아서 이야기하겠다고 하네.”
“레이시는 정작 하는 게 없겠네요.”
굳이 따지자면 의견을 듣는 척 회의실에 가서 이야기를 하는 게 끝이려나…….
미스트는 일단 겉으로는 레이시가 일한 것처럼 하면서 실상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게 해준 국왕의 일 처리에 눈을 가늘게 뜨다가 이내 말해줘서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고, 아샤는 미스트의 인사에 낯간지럽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으면서 궁금한 건 다 물어봤냐고 물어봤다.
“네, 궁금한 건 이제 없어요.”
“그래?”
미스트의 말에 미심쩍은 눈으로 미스트를 바라보는 아샤.
미스트는 그런 아샤의 시선에 왜 그런 눈으로 바라보냐고 물어봤고, 아샤는 미스트의 질문에 눈을 가늘게 뜨다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사실,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지만 여기에서 더 깊게 파고들면 귀찮아지겠지.
그런 생각에 미스트를 가만히 바라보자 미스트는 괜히 아샤가 괘씸해져서 피식 웃으면서 레이시에게 들었던 호칭을 말하면서 신경을 건들었다.
“그나저나 귀염둥이는 어떻게 할까요?”
“……어!?”
“에일렌 말이에요. 연회장에 갔다 왔다고 간식을 달라고 조르면 곤란하잖아요?”
“아, 아아……. 응, 그렇지.”
미스트의 말에 안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아샤.
아샤는 그런 거라면 자기가 혼내면 된다면서 손을 휘휘 내저으면서 이야기의 주제를 바꾸려고 했고, 미스트는 그런 아샤의 말에 키득 웃다가 아샤가 방심할 때까지 다른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럼 다행이고요. 참, 베스티야 왕국의 사람들은 어땠나요? 제가 가문을 복구시켜도 전과 같은 암살자나 특수 공작원은 안 하고 공개적으로 볼 수 있는 훈련 교관만 한다고 말해주니 크게 안심하던데.”
“확실히 그건 그렇지. 수행인들도 내게 그렇게 말하면서 접근했었어.”
“아샤는 어떻게 대답했어요?”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어. 내가 엘라의 기사이지 네 기사도 아니고, 지금 나는 벽천화 기사단과 연계해서 엘라와 레이시를 지키는 것만 해도 힘들다고, 그래서 모른다고. 그래도 그런 걸 알게 된다면 레이시에게 해가 될 수도 있으니 말릴 거라고 대답했지.”
“그렇군요.”
“……왜 그런 얼굴인데?”
“네?”
“아니, 뭔가 좀 엿 같은 얼굴을 하길래.”
“아뇨, 우리 귀염둥이 치고는 말씀을 잘 하신다 싶어서요.”
“……야이 개새끼야아아아아!”
“아핫, 시끄러워요, 아샤. 한밤중에 그렇게 소리를 지르시면 어떻게 해요?”
미스트의 말에 얼굴이 시뻘개지는 아샤.
미스트는 붉어질대로 붉어진 아샤의 얼굴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왜 그러냐며 아샤를 놀려댔고, 아샤는 미스트의 말에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주먹을 휘둘렀다.
꽤 힘을 실었는지 파공음이 그대로 들리는 아샤의 주먹.
미스트는 흘리는 것도 힘들겠다 싶어 고개를 돌리며 주먹을 피했고, 아샤는 미스트가 주먹을 피하자 그대로 무릎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미스트는 발바닥으로 아샤의 발을 밀어내며 충격을 흘렸지만, 흘려서 어떻게 할 힘이 아니라는 듯 미스트는 그대로 공중제비를 돌며 하늘을 수놓았다.
“아이 참. 미스트, 이거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대로 발이 사라졌을 거예요.”
“시끄러, 개새끼야! 뒤져!”
“어머, 그렇게 레이시와의 애칭을 들킨 게 부끄러운가요? 하긴 귀염둥이는 좀 부끄럽죠.”
“이익! 이이익!”
“푸풋!”
미스트의 놀림에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거리는 아샤.
미스트는 그런 아샤의 모습에 웃음을 빵하고 터트리더니 그 이상 싸우면 지반이 무너질 거라면서 대충 하자고 말했고, 아샤는 미스트의 말에 자신의 발이 지면을 반쯤 파고들었다는 걸 깨닫고 씩씩 거리기 시작했다.
“아샤는 예전부터 그런 귀여운 면이 있단 말이죠. 사실은 태어날 때부터 사람을 죽이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저와 같은 괴물인데 말이죠.”
“제발 좀 닥쳐…….”
“네에, 그럼 다른 이야기를 할까요?”
“또 뭐.”
“내일부터는 일반 귀족가의 사람들도 연회에 참석하죠. 그건 동시에 레이시에게 온갖 개소리를 할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거고요. 그 사람들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이야기에요.”
“……너는 못 도와주지?”
“네. 참고로 레이시를 저희 저택에 가둬두는 것고 무리에요. 미르와 레아는 아직 마력앓이도 시작하지 않았고, 자식이 아프지 않다면 파티의 주인공이 빠져나갈 수도 없으니까요.”
전쟁에 관련된 이야기만 해서 그렇지 지금 여는 파티의 본 목적은 미르와 레아의 건강을 기원하는 것.
왕가가 받아들이고 있는 선물도 전부 아이의 옷이라거나 아이가 아플 때 쓸 수 있는 약들로 한정되어 있다.
그런데 그런 파티에 파티의 주인공이자 미르와 레아의 엄마인 레이시가 불참한다?
레이시가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도 레이시가 귀족들을 무시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인식할 수 있고, 그렇다면 국내에서 레이시의 입지가 줄어든다.
단순히 입지가 안 좋아져서 활동에 제약이 생기는 거라면 상관이 없는데, 다른 어설픈 년들이 엘라에게 접근해서 레이시에게 스트레스를 주거나 반대로 레이시에게 접근해서 엘라를 빡치게 할지도 모르니…….
“막을 방법을 떠올려야 할 텐데 말이죠.”
“뭐, 괜찮지 않을까?”
“네?”
“레이시도 나름 성장했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아샤의 말에 눈을 깜빡이면서 아샤를 바라보는 미스트.
아샤는 미스트의 시선에 화를 억누르듯 숨을 고르게 내쉬다가 레이시도 나름 성장한 것 같으니 그냥 내버려두는 게 좋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거기에다가 우리가 없을 수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불안해할 수는 없잖아. 레이시가 우리 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할 리도 없고.”
“……, 후후, 그건 그러네요. 정말이지, 이런 땐 정말 듬직하다니까요. 귀염둥이인데.”
“……맨날 늑대 수인이라고 말하고 다니는데, 너 사실 개지?”
“물론이죠. 늑대 수인이라는 건 개과 형 수인이 ‘나 사실은 개야!’라고 말하기 부끄러우니까 만들어낸 일종의 핑계라고요?”
“아이씨…….”
“우리 레이시의 귀염둥이~.”
“제발 좀 닥쳐. 내가 여기에서 더 험한 말 쓰는 거 볼래? 개새꺄.”
얼굴을 가리고 씩씩거리는 아샤.
미스트는 아샤의 반응에 여기에서 더 놀리면 진짜로 허리춤에 걸린 도끼를 휘두르겠다 싶어 양손을 들면서 자기도 언니라고 말해달라고 했다면서 적당히 이야기를 끊었고, 아샤는 미스의 말에 퍽이나 잘났다면서 투덜거리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레이시는 미르와 레아를 앞뒤로 안은 채 두 사람을 반겼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모습에 미르와 레아가 깼었냐고 물어봤다.
“네, 쿠키 왔었는데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깼어요.”
“후후, 그렇군요.”
레이시의 머리카락을 꽉 쥐고 자는 미르와 레이시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자는 레아.
미스트는 두 아이의 모습에 작게 웃다가 아샤에게 쿠키를 먹겠냐고 물어봤고, 아샤는 미스트의 질문에 가운데 손가락을 들려다가 이내 미스트가 자기를 빤히 쳐다보자 한숨을 내쉬면서 자리에 앉았다.
“너 말이야, 놀릴대로 실컷 놀려대고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고.”
“후후, 아샤는 이렇게 보면 제 부탁은 거의 다 들어주니까요.”
“좀, 닥쳐.”
한숨을 푹 내쉬면서 머리를 감싸쥐는 아샤.
미스트는 아샤의 반응에 작게 웃다가 허공에서 음료수를 꺼내 레이시에게 같이 마시겠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제안에 논 알코올이면 마시겠다고 말했다.
“새벽에는 젖을 먹여야 하는데 술을 마시면 젖을 못 주니까요.”
“네, 다행히도 논 알코올 포도 쥬스랍니다. 와인을 만드는 것과 공정은 똑같지만요.”
“에헤헤, 그럼 애들 눕히고 올게요.”
“네, 얼른 오세요.”
1층의 작은 방에 들어가서 에어컨을 조작해 방을 따뜻하게 만들고 조심스럽게 미르와 레아를 요람에 눕히고 나오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에게 잔을 건네면서 아샤와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흠칫 떨더니 아샤를 바라봤다.
“죄, 죄송해요…….”
“됐어. 내일 있을 일이나 생각해.”
자기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쿠키를 입에 넣고 와작와작 씹어먹는 아샤.
하지만 말과 다르게 몸은 레이시를 꽉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았고, 레이시는 그런 아샤의 행동에 배시시 웃으면서 아샤의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