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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430화 (430/542)

〈 430화 〉 마망의 연회장­4

* * *

“그럼 공주님, 저는 에일렌과 함께 가보겠습니다.”

“응, 부탁할게.”

사람들의 안내를 받고 들어선 연회장.

레이시가 연회장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느낀 건 조용한데 시끄럽다는 것이었다.

노래소리가 다 들릴 정도로 조용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가장 시끄러운 목소리가 누가 들어온다는 걸 알려주는 안내원이라는 걸 생각해본다면 연회장에 모인 사람들은 수에 비해서 정말 정숙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뭔가 정신적으로는 시끄럽다 못해서 제대로 버티고 서있기가 힘들 정도였다.

시선이 물리력을 지녔다면 이미 몸이 망가졌을 정도로.

레이시는 그 시선에 움찔 떨다가 이내 반가운 얼굴이 보이자 화색을 띄면서 엘라의 손을 잡았고, 엘라는 레이시의 손길에 눈을 돌려 엘레오놀을 바라봤다.

연맹국의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있던 엘레오놀.

딱히 친한 사람들은 아니었는지 엘레오놀은 적당히 거리를 벌린 채 이야기를 하다가 레이시를 발견하고는 눈웃음을 치면서 엘라에게 다가가도 괜찮냐고 허락을 구했고, 엘라는 엘레오놀의 눈빛에 주변을 둘러보다가 엘레오놀에게 어서 오라며 턱짓했다.

“엘라 파우스트 오라토리엄 님을 뵙습니다.”

“엘레오놀 공주. 오랜만이군요.”

밖에서 볼 때와는 다르게 서로에게 존댓말을 하면서 웃는 엘레오놀과 엘라.

엘레오놀은 잠시 엘라와 함께 웃고 떠들다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자기에게 고정되자 나중에 테라스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다음 다른 사람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주었고, 레이시는 엘레오놀의 배려에 덕분에 긴장이 풀렸다며 감사인사를 전한 다음 숨을 깊게 들이 마셨다.

그런 다음 레이시는 국왕이 알려준 20명의 얼굴과 특징을 떠올리면서 주변 사람들을 줄러봤고, 엘라는 레이시를 에스코트하면서 우선 전쟁과는 가장 거리가 먼 사막의 나라, 베스티야의 사람들에게 안내해주었다.

“뷜트레 백작입니다. 파우스트 공주님과 루피너스 남작님을 이렇게 뵙게되어 영광입니다.”

“반갑군, 백작. 베스티야 국왕님께서는 여전히 사냥을 다니시나?”

“네, 정말이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정정하십니다.”

분명 올해로 90세였나…….

엘라는 국왕의 막내아들이 자기보다 어린 걸 떠올리면서 눈앞의 뷜트레 백작을 봤고, 백작은 엘라의 시선에 쓰게 웃으면서 그래도 후계자가 제대로 정해졌으니 조금은 덜 걱정된다고 말했다.

“아아, 정해졌나?”

“네, 국왕님께서는 70년을 통치했으면 나라를 많이 굴렸다면서 제 1 왕자님께 업무를 넘기고 계십니다. 아마 내년 쯤에는 은퇴하시고 막내 왕자님과 사냥을 다니시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막내 왕자도 사냥을 좋아하시나?”

“네. 여자 취향도 국왕님을 쏙 닮아서 많이 아끼시죠.”

“그렇군. 그렇다면 좋은 활을 보내주지. 참, 백작은 사냥을 잘 아나?”

“아버지 때부터 국왕님을 곁에서 모시다보니 싫어도 하게 되더군요.”

“후후, 그럼 내 아내가 사냥한 짐승의 가죽을 보겠나? 나중에 미스트를 불러 전달해주지.”

싱긋 웃으면서 여기에 온 목적을 달성시켜주겠다고 말하는 엘라.

백작은 그런 엘라의 말에 놀란 눈으로 엘라를 바라보다가 이내 레이시를 힐끗 쳐다보며 엘라의 반응을 살폈고, 엘라가 싱긋 웃으면서 자기가 쳐다보자 엘라가 뭘 원하는지 깨달았다.

엘라가 이렇게 해주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자기 아내인 레이시에 대한 자랑.

아무리 오라토리엄 왕국이 중립국으로서 몬스터도 사람으로 받아줄 정도로 개방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좋게 말해서 평민인 레이시와의 결혼은 귀족들의 반발을 살 수 있다.

대표적으로 국격이 떨어진다는 말이 나오겠지.

지금 당장에 레이시가 입장했다고 말했음에도 겉으로만 호의적으로 대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마 진심으로 존중하지는 않고 이용할 수 있으면 이용하기 위해 노력을 쏟는 존재.

그것이 레이시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타국의 사람들이 레이시에 대해 존경을 표하면 오라토리엄 왕국 내에 있는 귀족들은 레이시에 대해서 섣불리 건들 수가 없고 진심으로 레이시를 존중해주는 사람도 생겨날지도 모른다.

그러니 자신에게 레이시를 존중해달라는 부탁을 하는 거겠지.

두 번째 이유는 다른 사람들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달라는 것.

레이시가 정계에 나타난 건 1년 전 쯤.

그전에는 타국에서는 있는지도 모르는 존재였었다.

정보에 의하면 2년 정도 전에 나타났다고 하니까 2년 동안 귀족 수업을 빡빡하게 들었으면 귀족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레이시의 반응을 보면 레이시는 귀족 수업을 받지 않았다.

아마 엘라가 다른 사람의 생각보다도 훨씬 레이시를 아끼는 거겠지.

이런 상황에서 엘라가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두 가지다.

레이시를 훈련시켜서 귀족으로서의 몸가짐을 갖추게 하거나, 아니면 최대한 자기가 감싸고 돌아서 타인의 입으로 레이시가 뛰어난 능력을 지닌 사람으로 만드는 것.

엘라는 두 번째 선택지를 골랐고, 그 역할을 수행할 이방인으로 자기를 골랐다.

그래서 왕과 왕자에게 줄 선물을 건네주고 있는 거다.

물론 이게 끝이 아니라 추가적인 이익도 있겠지.

백작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싱긋 웃으면서 자기 역할을 다하겠다는 대답을 엘라에게 전해주었다.

“캘러미티 백작님은 바쁘신게……?”

“아니, 그녀의 일의 1순위는 여전히 내 전속 메이드지. 가문의 복귀는 부가적인 일이야. 그러니 미스트에게 부탁해보지.”

“감사합니다. 베스티야의 사람들은 모두 사냥을 좋아하니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겠군요.”

“파티를 방해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군.”

“아뇨, 선물을 받았으니 저희도 선물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이번에 저희가 준비한 건 오라토리엄 왕가를 위한 선물이라서……. 죄송합니다.”

“아니, 그거면 충분하네. 우리는 왕가에게 충성을 바치는 사람이라……. 그렇지? 레이시.”

“네? 아, 네! 저희는 백작님의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기뻐요.”

“말씀만으로도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제가 너무 오래 잡고 있었군요. 타국의 사람들의 시선도 신경 쓰이니 이만 자리를 벗어나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타국의 사람이라…….

엘라는 백작의 대답에 흡족하게 웃으면서 백작이 물러나는 걸 허락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더니 조심스럽게 엘라의 손을 잡았다.

“으응, 베스티야……라고 했죠? 저 사람 말고 또 다른 베스티야 사람이 오면 어떻게 해요?”

“괜찮아, 아마 안 올 거야. 오면 상인으로서의 입지가 흔들릴 테니까.”

“네?”

“베스티야는 이번 전쟁에서 무기와 용병을 팔 생각이야. 물론 국가의 군인을 파는 건 아니고, 귀족이 후원하는 용병단을 파는 형식으로. 그러니까 다른 두 나라를 굳이 자극할 필요가 없지. 사실 여기에 온 목적도 연맹국과 신성 왕국 사이에서 줄타기하러 온 거야. 다만 걸리는 게 있어서 우리에게 접근한 거지.”

“걸리는 거요?”

“캘러미티 가문의 복구.”

“…….”

“미친 인간들의 집합소라는 그 가문이 다시 살아난다니까 아무래도 불안했겠지. 미스트가 기억하고 있는 정보만 해도 당장에 이 정도 크기의 도서관을 채울 수 있을 정도인데 한 번 이야기를 나누어서 캘러미티 가문을 복구시켜도 자기를 건들지 않으면 한다고 조르고 싶겠지.”

“그래서 미스트를 보낸다고 했군요?”

“응.”

“미스트는 괜찮을까요?”

“미스트는 괜찮아. 내가 다른 건 다 몰라도 미스트랑 아샤만큼은 걱정 안 해.”

“…….”

“그 둘은 걱정해봐야 이쪽이 손해거든. 덤으로 미네르바도.”

그 세 사람은 신에게 애정을 받는 특별한 존재라고 말한 엘라는 마저 자기에게 다가오려는 사람들을 힐끗 쳐다보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신에게 사랑받는 존재들. 나와 그 세 사람은 그런 사람들이야. 걱정한다고 한다면……, 레이시, 너겠지. 너는 오우거 정도야 어렵지 않게 죽이고 이성이 없는 드래곤도 하양이와 나비가 함께라면 간신히 죽일 수 있지만, 그 이상의 존재는 죽일 수 없으니까.”

“그건…….”

“우리들 중 누군가가 적에게 목숨을 잃는다면 그건 너라는 거지. 독을 먹든 뭘 하든.”

“…….”

“조심해, 네가 죽으면 난 더 이상 못 살지도 모르니까.”

“파티잖아요.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말아요.”

“킥킥, 파티를 뒤집어쓴 전쟁 팔이 중이지만.”

다음에 찾아온 사람은 신성 왕국의 사람들.

교회의 옷을 입은 사람들은 엘라에게 인사하며 에일렌에 대해서 축하해주다가 이내 레이시를 보면서 슬쩍 뒤로 물러났고, 레이시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대놓고 자기에게 싫은 티를 내는 신성 왕국의 사람들의 행동에 움찔 떨었다.

딱히 겁을 먹거나 그러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꺼려지는 반응.

이게 인종차별주의자를 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인가?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엘라를 바라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왜 그러냐고 물어봤다.

“그게…….”

“편하게 말해.”

“저 사람들 저를 싫어해요.”

“……응?”

레이시의 말에 처음에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이해를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엘라.

엘라는 레이시에게 추가로 설명해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스킬때문인지 저 사람들은 자기를 싫어하며 가능하다면 자기와 접촉하지 않으려 한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엘라는 눈을 가늘게 뜨며 신성 왕국의 사신들을 바라봤다.

레이시는 자기에게 거짓말 같은 건 하지 않는다.

다른 거에서는 몰라도 이런 부분에서는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레이시가 한 말이 영 없는 건 아니다.

신성 왕국의 안에는 신의 축복이라고 불리는 레어 7 이상의 스킬을 인간만 가져야 한다는 교리를 믿는 교회도 있으니까, 그 교리를 믿는 교회 출신의 외교관이라면 그럴 수 있다.

그런 거라면 자기도 썩 좋게 생각하지 않겠지.

그들은 남녀간의 커플을 제외하면 인정하지 않으니까.

거기에다가 여성이 어깨를 노출하는 것도 극도로 싫어한다던가?

……그런 사람들이 잘도 외교관 짓을 하는구나.

엘라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눈앞의 사람들을 빤히 쳐다봤고, 사신들은 갑작스럽게 거리를 벌리는 엘라의 행동에 당황하면서 엘라를 쳐다봤다.

“흐으음…….”

“저……, 엘라 공주님?”

“음…….”

“공주님……?”

“무례하군.”

“……!?”

엘라의 말에 당황한 얼굴로 엘라를 바라보는 사신들.

사신들은 레이시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엘라의 행동이 갑자기 변했다는 걸 떠올리고는 레이시를 바라봤지만, 레이시는 사신의 눈을 피하면서 엘라의 뒤에 숨었고, 엘라는 레이시가 자기 뒤로 숨자 사신들을 째려보면서 가볍게 마력을 흘리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지만…….

“레이시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다니, 이 연회의 주인이 누구인지 잊은 거야?”

이 연회의 주인은 표면상으로는 어디까지나 엘라와 레이시.

신성 왕국의 평소 행실을 아는 사람들은 엘라의 분노에 신성 왕국의 사신들이 제 버릇을 못 버리고 엘라와 레이시에게 헛짓거리했다고 생각하며 침을 삼키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연주도 멈추고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는 상황.

무거운 침묵이 깔린 상황에서 레이시는 침을 삼키면서 엘라와 사신들을 바라봤고, 엘라는 천천히 숨을 마시다가 이내 빼액거리는 에일렌의 울음에 놀라 분위기를 잡던 것도 잊고 고개를 홱 돌렸다.

“흐에에에에에엥!”

“에일렌!? 왜 울어? 어디 아파?”

엘라를 향해 달려오더니 그대로 엘라에게 안겨서 서럽게 우는 에일렌.

엘라와 레이시는 에일렌을 달래면서 아샤를 바라봤고, 아샤는 두 사람의 시선에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뺨을 긁다가 한숨을 푹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누구의 자제인지 몰라도 한 자제분과 싸우셨습니다. 미네르바와 놀고 있었는데 하피는 사람의 엄마가 될 수 없다면서 말했고, 에일렌은 그 말에 아니라고 소리치다가 상대 자제분께서 계속 놀리자 화를 내지는 못하고 구역에서 빠져나왔습니다.”

“……하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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