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8화 〉 마망의 연회장2
* * *
“저번보다 옷이 더 야해지지 않았나요?”
“응? 안 그런데?”
“진짜요?”
“응.”
“그런데 왜 눈을 피해요?”
“레이시가 예뻐서.”
“그런 이야기로 어물쩍 넘어가지 마요.”
볼을 부풀이면서 미스트가 준비한 드레스를 몸에 걸친 레이시.
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퍽 야한 드레스의 모습에 레이시는 얼굴을 붉히면서 엘라를 추궁했지만, 엘라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식으로 나오면서 혀를 빼꼼 내밀면서 다음 드레스를 내밀었다.
지금 입고 있는 흰색 드레스와 대비되는 검은색 드레스.
레이시는 엘라가 내민 드레스를 빤히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천을 들춰봤고, 너무나 가볍게 노출되는 안쪽 옷감에 엘라를 빤히 노려봤다.
“저기, 애 엄마에게 뭘 입히려는 거예요?”
“……드레스?”
“드레스인 건 아는데 이게 멀쩡한 드레스 같아요?”
조금만 움직여도 안쪽 속살이 보일 것만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던 레이시는 하여튼 이 드레스는 무리라면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몸에 착 달라붙는 건 안 되고 이렇게 맨살을 노출하는 것도 무리에요.”
“그럼 화려한 건?”
“벌칙 수행한다는 셈 치고 입어볼게요.”
“그럼 이거 어때?”
“장식이 너무 비싸서 걸을 때마다 주변에 사람이 없기를 기도할 거 같아요.”
“그럼 이거로 하자.”
“……네에.”
엘라의 선택에 한숨을 내쉬면서 옷을 갈아입는 레이시.
혼자서는 입기도 참 힘든 옷이라 레이시는 미스트의 도움을 받아 옷을 갈아입어 보았고, 보석과 고급스러운 털로 장식된 드레스의 감촉에 레이시는 한숨을 내쉬면서 거울을 봤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장식으로 몸이 덜 노출된다는 걸까?
그런 걸 위안으로 삼는 시점에서 그다지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지만……, 하여튼 그런 거라도 위안으로 삼아야지.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한숨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다른 옷을 줄지 물어봤다.
“아뇨, 이거로 할게요. 더 입어봤자 머리만 아플 거 같아요.”
“그래요?”
“네. 정말로요……. 엘라는 대체 유부녀에게 무슨 옷을 입히려는 걸까요?”
입술을 샐쭉거리면서 눈을 가늘게 뜨던 레이시는 화났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던 건지 자기는 바지가 잘 어울린다고 말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투정을 받아주면서 레이시를 달래주었다.
“어쩔 수 없으니까 참아줘요. 오라토리엄 왕국 내에서 하는 파티와 연회였다면 공주님의 취향이니까 레이시에게 바지를 입혔다고 말할 수 있지만, 지금은 타국의 사람들을 맞이하는 파티라서 보통의 귀부인이 파티 때 입는 옷을 입어야 하는 걸요.”
“미스트도요?”
“네, 저도 그 자리에서는 공주님의 전속 메이드인 미스트가 아니라 백작 직위의 귀족인 미스트 E 캘러미티로 참석할 거예요. 아샤도 귀족으로 나올 거예요. 성씨는 뭐였는지 잊었지만요.”
“에…….”
“근데 별 상관없어요. 어차피 저희가 레이시의 첩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저희는 저희 가문명을 버린 채 루피너스라는 레이시의 성을 따를 거거든요.”
드레스를 벗고 속옷차림이 된 레이시를 뒤에서 끌어안은 채 입을 맞추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입맞춤에 정말로 그래도 괜찮은 거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정말로 괜찮다며 눈웃음을 지었다.
“애초에 제 가문은 없어지는 게 좋잖아요?”
“그건……, 동의하지만요. 으음, 그래도 아샤의 가문은…….”
“이름만 있는 가문이니까 괜찮아요. 영지도 없고, 레이시의 가문에 들어간다고 해서 일을 못하게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러면 정말 다행이지만요.”
결혼한다고 성을 바꾸다니…….
한국에서는 없던 문화에 레이시는 눈을 깜빡거리다가 낮에 들었던 전쟁에 대한 걸 떠올리고는 이것도 그런 종류의 것이겠지 싶어 고개를 끄덕이다가 옷을 갈아입으며 한 가지 당부를 건넸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성씨를 유지하고 싶으면 미스트나 아샤나 자기 성씨를 유지해도 괜찮으니까요? 아시겠죠?”
“네?”
“혹시 모르니까요.”
“후후,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알겠어요. 나중에 결혼식에 들어가면서 생각해볼게요.”
“그러면 늦잖아요…….”
미스트의 대답에 레이시는 기운 빠지는 목소리로 어색하게 웃었다.
식장에 들어갈 때 생각해본다니, 그건 그냥 성씨를 바꿀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거잖아…….
하긴 생각해보면 영 이상한 일도 아니다.
미스트는 자기 가문에 적대심을 가진 채 스스로 가문을 없앴으니까 캘러미티라는 가문 명을 빨리 버리고 싶을 것이다.
아샤는 애초에 자기가 자기 가문 명을 까먹을 정도로 관심이 없고.
조금은 이상하긴 하지만 미스트와 아샤의 시선에서 보면 이게 평범한 걸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평소에 입는 셔츠와 바지를 입은 채 시계를 바라봤고, 해가 거의 다 져가자 에일렌과 아샤, 미네르바를 기다렸다.
“다녀왔어.”
“늦었잖아요~. 에일렌은요?”
“자고 있어.”
문을 열자마자 달려오는 레이시를 보고 쓰게 웃는 아샤.
아샤는 에일렌이 붙잡고 조금만 더 놀자고 졸라대는 바람에 못 왔다면서 미네르바의 품에 안겨 자는 에일렌을 보여줬고, 레이시는 에일렌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동시에 늦어도 5시까지는 데려와달라고 부탁했다.
“걱정된단 말이에요.”
“어……, 응, 그럴게.”
“으응, 땀 흘린 거 봐. 씻겨야겠네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셔츠와 바지를 벗는 레이시.
아샤는 레이시의 행동에 화들짝 놀라더니 욕실에서 안 벗고 왜 여기에서 옷을 벗냐며 자신의 외투로 레이시의 몸을 감싸주었고, 레이시는 아무도 없는 데서 왜 그러냐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옷을 방금 입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옷을 버릴 수는 없잖아요.”
“그……, 으으, 그럼 우리에게 안게 하고 욕실에 데려가면 되잖아.”
“힘들게 달래주고 왔는데 어떻게 그래요. 저는 작은 욕실에 갈 테니까 아샤와 미네르바는 큰 곳에서 씻고 와요.”
싱긋 웃으면서 미네르바에게서 에일렌을 건네받고 에일렌을 깨우는 레이시.
에일렌은 레이시가 등을 두들기자 잔뜩 칭얼거리며 손등으로 눈을 비비다가 레이시가 자기를 안아주고 있자 방금 막 일어난 사람 같지 않게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다.
떠드는 내용은 아샤와 미네르바와 같이 놀았다는 것.
아베리아라는 영웅이 좋은 건지 에일렌은 허공에 주먹을 팍팍 내지르면서 들뜬 얼굴을 했거, 레이시는 에일렌의 행동에 괜히 엘라의 눈치를 보다가 마법은 싫냐고 물어봤다.
“마법?”
“네, 나중에 엘라 엄마와 같이 놀러가서 한 번 구경해요.”
“네에에~.”
“후후, 착하다. 그럼 씻으러 갈까요?”
“웅! 마망이랑 씻을래.”
에일렌의 대답에 배시시 웃으면서 욕조에 들어가서 허벅지 위에 에일렌을 앉혀두는 레이시.
에일렌은 조금은 뜨거운 물에 부르르 떨다가 레이시에게 찰싹 달라붙어서 밥을 먹고 싶다며 칭얼거리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에일렌의 칭얼거림에 어색하게 웃다가 뭘 먹고 싶은지 물어봤다.
“우우우웅~ 사과!”
“사과가 좋아요?”
“응! 사과 좋아! 고기는…… 물고기! 마망, 가시 발라줘!”
“푸훗, 네, 발라줄게요. 에일렌은 어떤 물고기가 좋아요?”
“흰색인 게 좋아!”
이런 건 엘라를 닮은 걸까?
묘하게 식성이 엘라와 닮은 에일렌의 말에 레이시는 얼굴에서 웃음을 거두지 못한 채 에일렌을 씻겨주었고, 에일렌은 레이시의 미소에 똑같이 웃으면서 레이시를 껴안고 있다가 레이시가 자기를 껴안고 일어나자 조심스럽게 내려와 수건으로 자기 몸을 닦기 시작했다.
“짜잔!”
“후후, 앞에만 닦으면 어떻게 해요?”
“뒤는 마망 거야!”
“푸흐흣! 알았어요. 뒤는 제가 닦아드릴게요.”
새 수건을 꺼내서 에일렌의 뒤와 머리를 깨끗하게 닦아주는 레이시.
그렇게 몸을 닦고 나가자 미스트가 저녁을 준비한 채 두 사람을 맞이했고, 레이시는 에일렌에게 엘라 엄마에게 가겠냐고 물어봤다.
“으우우웅……!”
레이시의 질문에 에일렌은 얼굴을 와락 찌푸리더니 앓는 소리를 내면서 레이시와 엘라를 번갈아보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그런 에일렌의 모습에 왜 부모들이 아이한테 왜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짓궂은 질문을 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저렇게 망설이는 것 자체가 귀엽네.
딱히 애교를 부리지 않았는데도 뭔가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레이시는 그런 마음에 다시 한번 에일렌에게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봤고, 에일렌은 반쯤 울상을 짓다가 이내 중요한 걸 깨달았다는 듯 눈을 빛내며 레이시의 손을 잡아끌었다.
“이렇게!”
엘라의 옆에 레이시를 앉힌 다음 엘라의 무릎 위에 올라가는 에일렌.
레이시와 엘라는 그런 에일렌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에일렌이 뿌듯하다는 듯 가슴을 활짝 내밀자 웃음을 터트리면서 에일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오늘 저녁 뭐야아아아?”
“연어 스테이크와 샐러드에요.”
“와앙~!”
“생선 뼈는 미리 발라뒀으니까 그대로 먹으면 괜찮아요.”
“잘 먹겠습니다, 미스트 엄마아아~.”
“네에, 맛있게 먹어요.”
미스트에게 인사한 다음 포크와 나이프를 들어보는 에일렌.
에일렌은 처음에는 스스로 잘라보려는 듯 자기 몸에 맞춰진 작은 포크와 칼을 열심히 움직여봤지만, 아무래도 식기가 뭉뚝하고 작아서인지 에일렌은 금방 지쳐서 연어를 자르는 걸 포기하고 엘라를 바라봤다.
“엄마가 잘라줄까?”
“웅!”
“알았어.”
에일렌의 말에 엘라는 에일렌의 포크와 나이프를 받아들더니 연어를 잘라준 다음 포크를 에일렌에게 건네주었고, 에일렌은 건네받은 포크로 열심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에헤헤…….”
“마망은 안 먹어?”
“먹어야죠. 잠시만요.”
에일렌의 말에 포크를 들었다가 우는 소리를 듣고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레이시.
레이시는 에일렌에게 미안하다면서 에일렌의 이마에 입을 맞춘 다음에 2층으로 올라갔고, 에일렌은 그런 레이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볼을 빵빵하게 부풀이며 엘라에게 투정을 부렸다.
“동생 싫어.”
“응?”
“마망이랑 밥 먹으려고 했는데, 마망, 미르랑 레아만 신경 써!”
“아하하……, 어쩔 수 없잖아. 미르랑 레아는 아직 아기니까.”
“우으으응……, 미르랑 레아만 파티 해!”
“아닌데? 에일렌이 태어났을 때도 파티했는데?”
“내가 기억 못 하니까 몰라!”
밖에서 놀다가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은 걸까?
엘라는 에일렌이 투덜거리는 걸 가만히 듣다가 미스트에게 연회장에 어린애들만 있는 곳이 있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있다면서 고개를 끄덕거려주었다.
“그럼 에일렌도 파티에 가볼까? 너랑 비슷한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 있어야 하지만.”
“마망이랑 못 있어?”
“마망은 일하러 가는 거니까. 대신 아샤 엄마랑 미네르바 엄마가 같이 있어줄 거고, 우리도 일이 끝나는 대로 에일렌이 있는 곳으로 갈게.”
“……우으으응.”
엘라의 말에 입술을 샐쭉하게 내미는 에일렌.
엘라는 그런 에일렌의 입에 사과를 넣어주면서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어봤고, 에일렌은 욕조에서 레이시가 했었던 말을 떠올리면서 엘라에게 애교를 부려봤다.
“마, 마법도 보여줄 거야?”
“응? 보고 싶어?”
“응!”
“그래, 알았어. 보여줄게.”
에일렌의 부탁에 싱긋 웃으면서 에일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엘라.
엘라는 자기 딸인데 그 정도 부탁도 못 들어주겠냐면서 에일렌의 볼에 입을 연신 맞추면서 내일은 드레스를 사러 가자고 속삭였고, 에일렌은 엘라의 말에 눈을 빛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려면 밥을 깨끗하게 먹어야겠지?”
“핫!? 아, 안 묻혔어.”
“그럼 엄마가 닦은 건 뭐야?”
“……요, 요정이 묻히고 도망쳤어!”
“킥킥!”
에일렌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에일렌의 뺨을 닦아주는 엘라.
에일렌은 엘라의 눈치를 보다가 이내 배시시 웃으면서 연어 스테이크와 샐러드를 조심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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