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1화 〉 평범한 일상3
* * *
“뭐하고 놀까?”
“우웅, 우웅, 영웅놀이!”
“그게 뭔데?”
“그러니까아아~ 그러니까아아아~.”
“……우선 말이나 타러 갈까?”
영웅놀이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영웅은 말을 타니까 말을 태워주면 좋아하겠지.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에일렌을 데리고 벽천화 기사단의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고, 에일렌은 아샤가 말을 태워준다는 말에 눈을 빛내면서 아샤를 꽉 끌어안았다.
“마리아, 있어?”
“아, 대장! 무슨 일이에요?”
“대장 아니라니까……, 에일렌, 말 태워주게 말 좀 빌려줘.”
“네? 벌써 그렇게 컸어요?”
“마력이 많으니까.”
“아……, 하긴 그렇겠네요. 으음, 그럼 군마 말고 의전용 말로 준비해두면 괜찮죠?”
“응.”
마리아와 아샤의 대화가 끝나자 눈을 빛내면서 아샤의 옷을 잡아당기는 에일렌.
아샤는 에일렌의 손짓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왜 그러냐며 에일렌의 뺨을 쓰다듬었고, 에일렌은 아샤가 자기를 바라보자 눈을 빛내면서 이제부터 말을 타는 거냐면서 즐거워했다.
“엄마, 엄마, 말 타는 거지이?”
“응, 우리 말 타러 가는 거야.”
“……대장이 엄마라고 불리다니, 세상 참 많이 변했네요.”
“시끄러워, 너도 결혼하고 할 거 다 할 거면서.”
“마음은 그러고 싶은데~ 저는 금남 기사단 단장이라서 남자를 만날 틈이 없네요. 대장이 복귀해주시면 이 귀여운 부하가 빨리 결혼할지도 모르겠는데…….”
“안 돼. 내가 없으면 에일렌하고 레아하고 미르를 못 도와줘.”
“아, 저번에 소동이 있었죠? 이번에도 인원을 차출하는 중인데 이번에는 부하들이 나는 빠지라면서 짜증내서 슬퍼요.”
“잘 됐네. 이번에 일하는 거 보고 후임을 정하던지 해.”
“너무해애애~.”
“시끄러워. 그럼 말 빌린다.”
마리아의 말에 한숨을 내쉬면서 마굿간으로 들어가는 아샤.
아직 축사를 구분하는 방법이 바뀌지 않아서인지 아샤는 의전용 말들을 편하게 찾아낸 다음 그중에서도 특히 온순한 녀석을 고른 다음 말 위에 올라탔다.
그런 다음 아샤는 에일렌이 떨어지지 않도록 안전벨트로 자기와 에일렌을 연결했고, 벽천화 기사단의 승마장을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고삐는 이렇게 쥐는 거야.”
“이렇게에?”
“응, 그렇게. 너무 세게 쥐면 말이 아파하니까 가볍게 쥐는 정도로만 쥐어봐.”
“응!”
아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의 고삐를 잡아보는 에일렌.
에일렌은 손을 몇 번 쥐었다가 펼치면서 고삐를 잡더니 이내 능숙하게 힘조절하기 시작했고, 아샤는 그런 에일렌의 모습에 엘라보다 훨씬 재능이 있다면서 에일렌을 칭찬해주었다.
“엘라 엄마보다아?”
“응. 훨씬 잘해.”
엘라가 말을 타는 방식은 거친 편이었다.
말 타는 걸 군마나 야생마로 배웠는지 힘으로 꽉 억누르면서 달리는 방식.
그런 방식에도 장점은 있으니 뭐라고 하지 못하지만, 재능만 따지고 들자면 지금까지는 적어도 에일렌이 엘라보다 나아보였다.
레이시의 영향인 걸까?
그렇게 생각하던 아샤는 에일렌이 말이 신기하다면서 배시시 웃자 승마장 근처에 있는 나무 창을 잡아 들고서는 말의 배를 가볍게 차며 가운데 있던 짚인형으로 달리게 했다.
투둑 투둑 거리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달려나가는 말.
에일렌은 빠르게 달리는 말에 놀라 소리를 지르다가 아샤가 짚인형을 창으로 찔러 부서트리자 눈을 크게 뜨고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와아아앙!”
“재미있어?”
“웅!”
“한 번 더 할까?”
“웅! 또오! 또오!”
에일렌의 대답에 말의 상태를 살피고는 다시 말을 출발시키는 아샤.
에일렌은 아샤의 몸을 통해 충격이 전해질 때마다 재미있다는 듯 꺄아 꺄아 소리를 지르면서 즐거워했고, 아샤는 에일렌의 소리에 이게 맞나 싶으면서도 에일렌과 놀아주기 위해서 말을 바꿔가면서 승마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 말을 바꿔가면서 승마술을 보여주자 에일렌은 조금씩 질리기 시작했는지 이제는 말 타는 거 말고 다른 걸 하자고 조르기 시작했고, 아샤는 에일렌의 말에 뭘 하고 싶은지 물어보면서 말을 마굿간에 넣었다.
“칼싸움!”
“……칼싸움?”
“응! 엄마랑 칼싸움할래!”
“으음, 에일렌은 무거워서 못 들 건데?”
“들 수 이써어어!”
아샤의 말에 볼을 부풀이던 에일렌은 자기도 들 수 있다면서 씩씩거리기 시작했고, 아샤는 에일렌의 반응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머리를 긁적이다가 부드러운 나무를 깎아 만든 장난감 칼을 에일렌에게 건네주었다.
“으귝!?”
“무겁지?”
나무를 깎아 만들어서 무게는 기껏해야 1.4kg 정도밖에 안 되지만, 그걸 드는 애는 이제 막 몸무게 14kg을 찍은 어린 아이.
남자로 치자면 70kg의 병사가 7kg짜리 양손 검을 드는 거랑 마찬가지였기에 에일렌은 씩씩거리면서 힘을 주더니 전혀 들리지 않자 볼을 빵빵하게 만들며 화를 내다가 고개를 확 돌려버렸다.
“다른 거!”
“아하하…….”
몸이 완성된 성인도 제대로 된 훈련을 받으며 몸을 다듬지 않으면 7kg짜리 대검은 들기 힘들어 한다.
하물며 몸이 완성되지도 않았고 훈련을 받지 않은 아이에게는 어련히 힘든 일이겠지.
아샤는 에일렌의 투정에 그렇게 생각하다가 그나마 에일렌에게 해줄 수 있는 영웅놀이를 떠올리고는 연무장으로 들어갔다.
열심히 대련하다가 아샤가 들어오자 자연스럽게 대련을 멈추고 인사하는 기사들.
아샤는 그런 기사들의 인사에 쓰게 웃으며 사과하다가 에일렌을 품에 안고 작은 붕대를 꺼내들었다.
“이게 뭐야아아?”
“음, 맨손 격투 가르쳐줄게.”
“웅?”
“투기장의 용사아베리아의 전설, 알지?”
“웅!”
“그 사람이 쓰는 기술이야.”
에일렌의 손에 작은 밴드로 주먹을 다치지 않게 감싸주는 아샤.
에일렌은 아샤의 말에 눈을 빛내더니 해보고 싶다면서 아샤에게 손을 내밀었고, 아샤는 에일렌의 손에 붕대를 완벽하게 감은 다음 연무장 구석에 가서 에일렌에게 주먹을 내지르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겨드랑이를 조이고 이렇게.”
“이렇게에?”
“응, 그렇게. 힘을 너무 주지는 말고, 이렇게 살살. 그리고 팔이 이쯤 펴지면 그대로 힘을 확 주는 거야.”
주먹을 가볍게 휘두르다가 미트를 잡고 에일렌의 앞에 앉는 아샤.
에일렌은 아샤가 미트를 잡아주자 눈을 빛내면서 주먹을 열심히 지르기 시작했고, 아샤는 에일렌의 펀치를 받아주면서 에일렌과 놀아주기 시작했다.
아샤가 일부러 소리가 크게 나도록 미트를 잡아준 덕에 에일렌의 주먹은 큰 소리를 내면서미트를 두들기기 시작했고, 에일렌은 자기가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나는 소리에 재미있다는 듯 꺄륵 웃으면서 지쳐 쓰러질 때까지 주먹을 휘둘렀다.
“후엣……, 후에엣……!”
“좀 힘들어?”
“아, 아냐아아~ 아직 더 할 수 이써!”
“더 할까?”
“웅!”
“근데 에일렌.”
“왜에?”
“혼자서 서지도 못해서 안겨서 그런 이야기하면 설득력이 없어.”
피식 웃으면서 에일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아샤.
아샤는 시간이 늦었다면서 레이시에게 돌아가자고 말했고, 에일렌은 레이시의 이름을 듣자 움찔 떨더니 배시시 웃으면서 붕대를 풀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나중에 또 놀자아~.”
“그래, 내일 또 하자.”
“웅! 아베리아 놀이 또 하자!”
“그래, 그래.”
에일렌의 머리에 묻은 땀을 가볍게 닦아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샤.
에일렌은 처음에는 자기가 걷겠다고 조르더니 10걸음도 떼기 전에 아샤에게 안아달라고 조르기 시작했고, 아샤는 그런 에일렌의 투정에 피식 웃으면서 에일렌을 안아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 왔어.”
“마마아앙~.”
“왔어요~? 땀 많이 흘렸네.”
“응, 많이 놀았거든.”
“아베리아 놀이!”
“에헤헤, 그게 무슨 놀이에요?”
“주먹질!”
“…….”
“……그, 운동 정도는 아무나 다 하잖아.”
“으, 으응, 그건 그렇죠.”
해맑게 웃으면서 험한 말을 하는 에일렌의 모습에 레이시는 잠시 말을 삼켰다가 씻고 밥을 먹자면서 에일렌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에일렌은 레이시의 말에 ‘밥!’이라고 외치면서 옷의 단추를 자기 손으로 쪼물거리면서 풀기 시작했다.
“에일렌은 손을 잘 쓰네요.”
전생에서 유치원을 다닐 땐 찍찍이도 쓰기 힘들어 했던 거 같은데.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에일렌을 칭찬해주다가 에일렌과 함께 욕조에 들어갔고, 에일렌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자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후에에에엥~.”
“아하하, 아저씨 같은 소리를 내네요.”
“우응?”
“아니에요. 그나저나 땀을 이렇게나 많이 흘리고……, 그렇게 재미있었어요?”
“웅! 재미있었어! 팡팡 소리두 나구~. 뚜시뚜시두 하구우우~.”
“에헤헤, 재미있었다면 다행이에요.”
에일렌의 이야기를 듣던 레이시는 샤워캡을 씌워준 다음 에일렌의 머리를 감겨주었고, 에일렌은 머리 위로 울이 떨어지는 감촉에 재미있다는 듯 배시시 웃다가 레이시가 자기도 머리를 감고 몸에 비누칠하자 꺄르륵 웃으면서 레이시의 몸에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아하하핫! 그만해요오~, 차암. 조금 늦었지만 이제 점심 먹으러 가요.”
“웅! 밥 먹을래!”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자 배고프다면서 오늘 반찬은 뭐냐고 물어보는 에일렌.
레이시는 에일렌의 말에 햄과 샐러드라고 말하면서 에일렌과 함께 밖으로 나왔고, 두 사람과 다른 욕실에서 씻은 아샤는 나왔냐면서 레이시 보고 먼저 밥을 먹으라고 말했다.
“미르랑 레아는 언제 잤어?”
“30분 전에요. 저희 밥 먹을 때까지는 안 깰 거예요. 아샤도 먹어요.”
“난 조금 있다가 먹을래. 너희 먼저 먹어.”
“으응, 네에에.”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잠시 떨떠름한 얼굴을 했지만, 이내 에일렌이 식탁에 앉아서 빨리 오라고 재촉하자 자리에 앉아 에일렌과 함께 밥을 먹기 시작했다.
에일렌 전용으로 만든 딱딱하지 않은 숟가락과 포크.
에일렌은 밥을 크게 한 입 떠먹더니 포크로 햄과 소시지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거렸고, 레이시는 그런 에일렌의 모습에 배시시 웃다가 자기도 따라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우웁. 후아아아암…….”
“아하하, 졸려요?”
“웅……, 마마앙, 재워 줘어어.”
“밥 다 먹고 이빨 닦은 다음에 재워드릴게요.”
“우웅~.”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열심히 수저를 놀리는 에일렌.
하지만 운동 후의 나른함이 에일렌이 밥을 먹는 것을 방해하기 시작했고, 에일렌은 결국 수마와 싸우다가 이기지 못하고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특제 의자에서 꾸물꾸물 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레이시는 남아 있는 밥과 반찬을 대충 입에 우겨넣고 에일렌과 함께 욕실에 들어갔고, 에일렌의 이를 닦아주기 시작했다.
“마망두 치카치카 할 거야?”
“꿀꺽……, 파하. 네. 할 거예요. 에일렌이 치카치카 다 하면 할게요.”
“우부부부부.”
“푸훗.”
레이시의 말에 볼을 부풀리고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장난치는 에일렌.
레이시는 이상한 소리를 내는 에일렌의 모습에 작게 웃다가 물컵을 건네주면서 입을 헹구라고 말했고, 에일렌이 물을 뱉는 것에 맞춰서 자기도 이를 닦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마저 다 닦은 레이시는 입을 헹군 다음 에일렌을 안아들고 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장가도 불러드릴까요?”
“웅…….”
“후후, 자장~ 자장~. 우리 아가~.”
에일렌의 대답에 레이시는 어렸을 때 들었었던 자장가를 들려주며 에일렌의 배를 토닥거리기 시작했고, 에일렌은 꽤 피곤했었는지 금방 잠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에일렌이 완전히 잠들자 레이시는 에일렌의 이마에 입을 맞춘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미르와 레아에게 갔고, 두 사람은 레이시가 도착하자마자 기운 좋게 울기 시작했다.
“으응, 기저귀부터 갈고 와야겠네요.”
“그래?”
“네, 죄송한데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미네르바, 기저귀랑 파우더 준비해주시겠어요?”
“알았다, 주인.”
자매라 똑같이 울고 똑같이 밥을 먹는 걸까?
레이시는 잠시 그렇게 생각하다가 이내 피식 웃으면서 미르와 레아를 화장실에 데려갔고, 미네르바는 레이시가 화장실에서 두 사람을 씻길 때 기저귀와 베이비 파우더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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