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9화 〉 평범한 일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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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으로 능력이 뛰어난 사람과 대화하면 복마전에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좋은 일을 하더라도 회색적인 영역에 있고, 나쁜 일을 하더라도 회색의 영역 안에 있으며, 나오는 말들은 전부 진실된 말이긴 하나 그렇다고 해서 정확하진 않으니까 평범한 인사를 주고받는 것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어떤가?
두 번, 세 번 생각하게 만드는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지 않나?
미스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눈앞의 영애를 가만히 바라봤고, 영애는 미스트의 시선에 부끄러워하듯 몸을 베베 꼬기 시작했다.
평범한 기사라면 그대로 호감을 느낄 정도로 괜찮은 연기.
하지만 상대가 너무 좋지 않았다.
미스트는 자기에게 아양 떠는 영애를 볼 때마다 레이시를 보고 싶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또 그와 동시에 엘라에게 대한 존경심이 샘솟기 시작했다.
엘라는 자기가 이런 일을 겪기 전부터 이런 일을 겪고 있었을 건데 어떻게 그렇게 사고를 안 치고 얌전히 레이시에게 돌아오는 걸까?
캘러미티 가문을 망가트릴 때 그렇게 준비한 걸 보고 인내심이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좋을 줄은 몰랐다고 생각한 미스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다가 적당히 좋은 말로 둘러대면서 레이시에게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미스트, 일 끝났어?”
“공주님.”
“훈련이라더니 은근 쉽게 끝났나봐?”
“딱히 훈련이랄 것도 없었어요. 훌륭한 군인들이라고 들었는데 알고 보니 ‘지금.’, 그리고 무슨 일을 당해도 ‘아무래도 괜찮은’ 사람 중에 차출한 거라서 정신머리부터 교정을 해야 하거든요.”
“그래? 그거 힘들겠네.”
“후후, 정말이요. 새삼스럽게 공주님의 인내력이 대단한 걸 느꼈어요.”
“갑자기? 별일이네.”
미스트의 말에 의아하다는 듯 쳐다보는 엘라.
미스트는 엘라의 시선에 정말로 엘라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엘라를 띄어주었고, 엘라는 그렇게 칭찬해봐야 아무것도 안 나온다고 말하면서도 미스트가 대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유를 물어보았다.
“미르랑 레아를 돌보고 있을 레이시에게 선물할 간식을 사러 갔다 오는 길인데 온갖 사람들이 들러붙더라고요. 나름대로 우연을 가장하고 다가온 거겠지만……, 솔직히 속내가 다 보여서 화를 참는데 곤혹을 치루었어요.”
“아하, 그런 이야기?”
“네, 아이가 생겼을 땐 몰랐는데 태어나고 나니까 제정신인데도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네요.”
머리카락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어서 흉터를 매만지는 미스트.
분명히 윤리와 도덕 같은 리미트를 풀어버리는 외과적 수술을 했고, 이 부분은 회복마법을 아무리 퍼붓더라도 완벽하게 되돌아오지 않을 텐데 왜 이러는 걸까?
미스트는 알 수 없는 현상에 한숨을 푹 내쉬다가 다시 한번 엘라를 칭찬했고, 엘라는 미스트의 칭찬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얼른 돌아가자면서 빨리 걷기 시작했다.
“후후.”
미스트는 그 모습을 보고 작게 웃었다.
뭔가 귀찮은 일을 떠맡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일로 엘라를 좀 더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 착각이겠지만……, 그런 종류의 감정이 새로 생긴다는 느낌 만으로도 즐거웠다.
“공주님.”
“응? 왜? 뭐 안 사간 거 있어?”
“네에, 잠시 같이 가주시겠어요?”
“그래.”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엘라.
보통이라면 무슨 일이 있으면 먼저 보내고 혼자서 일처리를 하던 미스트였기에 엘라는 싱글벙글 웃고 있는 미스트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미스트가 다시 한번 부탁하자 엘라는 알겠다면서 미스트에게 어디로 갈 건지 물어봤다.
“레이시의 몸조리용 음식이요. 아샤에게서 야차는 감정을 주로 먹고 감정만 충분하면 어떤 부상이든 나을 수 있다고 들었지만, 그래도 맛있는 걸 먹이면 좀 더 빨리 낫지 않을까 싶어서요.”
“준비 안 했어?”
“아뇨, 했는데 연속 이틀로 육류는 조금 그렇잖아요? 해산물로 조리하게요.”
“그래?”
“네. 도와주세요.”
“알았어.”
내가 도와줄 일이 있기는 한 걸까…….
엘라는 미스트의 말에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일단은 발걸음을 시장으로 옮겼고, 커다란 어항을 한 가운데에다 두고 생선을 관리하는 가게에 들어갔다.
왕족의 문장이 찍혀 있는 가게.
다른 것도 똑같이 신선도가 중요하다지만, 생선은 특별히 중요하다고 들었기에 엘라는 미스트에게 이 가게로 데리고 갔고, 미스트는 어항 안에 있는 생선을 빤히 쳐다보다가 몇 마리의 생선을 사서 돌아가기 시작했다.
“좀 큰데 다 먹을 수 있어?”
“네? 네에, 남는 부위는 나비에게 주고 있으니까요.”
“어……, 괜찮아? 호랑이는 염분을 많이 먹으면 안 된다는 거 같던데.”
“네, 조리할 부분만 따로 잘라내서 쓴 다음 질이 떨어지는 부분은 삶아서 염분을 제거한 다음 나비에게 주고 있어요.”
“어쩐지 나비를 데리고 오고 나서부터는 식사의 질이 갑자기 확 올랐더라. 돈도 꽤 많이 쓰지?”
“후후, 나비에게 닭고기만 주는 건 조금 그렇잖아요? 하양이의 식사는 엄청 다양한데. 그리고 한 달에 100만 조금 넘는 수준으로만 쓰니까 괜찮잖아요?”
“……뭐, 마음대로 해. 어차피 그 정도의 사치는 사치 축에도 못 들어가니까.”
아이야트나 슈레이 같은 경우에는 부하들에게 품위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한 달 식사비만으로 몇백 만을 쓴다던가?
그렇게 생각해보면 한 달에 식비가 백만 쯤 나오는 건 그다지 큰 소비가 아니었기에 엘라는 미스트의 말에 어깨를 으쓱인 다음에 이제 돌아갈지 물어봤다.
“아뇨, 조금 더 돌아다녀봐요.”
“……? 어디 가게?”
“채소가게요.”
싱긋 웃으면서 엘라를 데리고 또 다른 곳으로 가는 미스트.
엘라는 평소와 다른 미스트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얌전히 미스트를 따라갔고, 미스트는 엘라를 데리고 한참을 돌아다니면서 엘라를 관찰했다.
평소와 똑같은 모습과 똑같은 반응.
하지만 미스트는 이상할 정도로 뭔가 다르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고, 미스트는 그런 감각에 작게 소리를 죽여서 웃기 시작했다.
“왜 웃어?”
“그냥요. 즐겁네요, 공주님.”
“……?”
미스트의 뜬금없는 말에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엘라.
미스트는 그런 엘라의 얼굴에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리면서 재미있지 않냐면서 엘라의 손을 잡았고, 엘라는 미스트가 자기 손을 잡자 놀란 눈으로 미스트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내 미스트가 배시시 웃으면서 자기를 쳐다보자 피식 웃으면서 유부녀끼리 기묘한 동질감이라도 느끼는 거냐며 미스트를 놀렸고, 미스트는 엘라의 농담에 정말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면서 자기 몸만 한 가방을 번쩍 든 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셨어요?”
“레이시, 이제 걸어다녀도 괜찮아요?”
“다른 사람들이 무거운 거 옮겨줘서 저는 별로 안 힘들었어요”
저택에 돌아가자 반겨주는 레이시.
미스트는 요람에 누워있는 미르와 레아, 그리고 레이시의 허벅지에 앉아 책을 읽는 에일렌을 보고는 레이시에게 무리하는 건 아니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요람을 옮겨준 건 아샤와 미네르바라며 어색하게 웃었다.
“조금 과보호에요.”
“그게 안전하잖아요.”
레이시의 옆에 앉더니 입을 맞추는 미스트.
미스트는 처음에는 가볍게 입술만 맞추다가 레이시가 고개를 빼지 않자 입술을 깨물고 혀로 레이시의 이빨을 혀로 문댔고, 레이시는 방심하고 있다가 갑자기 딥키스를 시도하는 미스트의 행동에 놀라 미스트를 밀어냈다.
“후후…….”
레이시가 놀라자 미스트는 요염하게 웃으면서 에일렌이 있으면서 여기에서 참겠다고 속삭였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얼굴을 붉히면서 이게 참는 거냐며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푸훗, 죄송해요. 하지만 일이 힘들었는 걸요.”
“그래도 애 앞에서…….”
“그럼 애 없을 땐 해도 되나요?”
“아으으, 놀리는 거 금지!”
미스트의 말에 투덜거리면서 미스트의 볼을 꼬집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손짓에 배시시 웃다가 다시 한번 레이시와 가볍게 입술을 맞대었다가 떨어졌고, 레이시는 미스트가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자 입술을 샐쭉하게 내밀면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후후, 미안해요, 그럼 저녁 준비해드릴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요.”
“부우, 네에.”
“…….”
“……왜요?”
“왜일까요?”
“아으으으……, 진짜, 에일렌도 있고 미르랑 레아도 있는데…….”
레이시는 미스트의 요구에 아이들을 힐끗힐끗 쳐다보다가 못 이기겠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면서 미스트에게 입을 맞췄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입맞춤에 배시시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에일렌은 기다렸다는 듯 레이시의 볼에 잡으면서 자기도 책은 됐으니 뽀뽀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에일렌의 조름에 얼굴을 붉히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마망, 나두, 나두우우.”
“아으으으으……, 에일렌도 뽀뽀할래요?”
“웅!”
책을 몇 번 읽더니 이제는 발음도 3살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수준으로 발달한 에일렌.
레이시는 에일렌의 발전에 기쁘면서도 그 발전한 어휘력으로 이런 것만 조르는 것에 마음이 복잡해지다가 에일렌이 자기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자 어색하게 웃으면서 에일렌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츗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맞닿았다가 떨어지는 입맞춤.
에일렌은 레이시의 뽀뽀에 눈을 깜빡이다가 배시시 웃으면서 레이시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고, 엘라는 그런 에일렌의 행동을 웃으면서 바라보다가 레이시의 옆에 앉아 레이시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귀엽네.”
“누구누구 씨처럼 너무 조르는 게 심해서 탈이지만요.”
“나랑 레이시의 아이니까 당연한 거 아닐까?”
“엘라, 바보.”
엘라가 능글맞게 웃자 레이시는 볼을 부풀인 채로 엘라의 뺨을 손가락으로 찔렀고, 에일렌은 레이시와 엘라를 번갈아 보다가 장난스럽게 엘라의 배 위에 손을 가만히 올렸다.
“킥킥!”
“엄마.”
“응, 왜?”
“바부!”
“아하하핫!”
에일렌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에일렌의 뺨을 쓰다듬는 엘라.
엘라는 에일렌을 안아들더니 오늘은 뭘 했는지 물어보면서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미네르바와 아샤는 엘라와 미스트가 자리를 비우자 각자 앉는 곳에 앉아서 저녁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아, 아샤.”
“응? 왜?”
“미스트가 하는 일이 군인 분들을 훈련 시키는 일이죠?”
“응, 그렇지. 기사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이 되겠지만, 일단 군인을 훈련시키는 일이지.”
“잘 할 수 있을까요? 미스트, 오늘 힘들어 보이던데.”
“……어, 뭐, 잘 하겠지. 힘든 건 워낙 초짜라서 미스트가 아는 훈련 방식을 적용하지 못해서 난감해하는 거야.”
“그런 걸까요?”
“응, 여러 이유가 있긴 하겠지만, 내가 엘라와 미스트에게서 들은 캘러미티 가문의 훈련방식은 기본이 전신이 망가진 채로 시작하니까 일반적인 군인이 받아들이긴 힘들겠지.”
군인들이 못난 건 아니다.
제각각의 이유로 국왕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지만, 그들은 나름 엘리트이며 귀족 출신 특유의 질 좋은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딱 그 정도.
그들 개개인에게는 특출난 재능이 없는 데다가 가르치는 교사는 목숨을 정말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처럼 보는 구 캘러미티 가문에서도 걸작이라고 말할 정도로 특출난 미스트다.
당연하지만 기초적인 훈련을 시키려고 해도 시작점부터가 너무 달라서 어떻게 훈련시켜야 할지 모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레이시에게 지금 당장 에일렌에게 테이밍에 대한 걸 가르쳐줄 수 있겠냐고 물었고, 레이시는 에일렌을 힐끗 바라보다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스킬을 익히려면 나이가 태어난 기준으로 3살은 되어야 한다면서요.”
“그런거야. 아니, 미스트 수준을 생각해보면 그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있겠지.”
“그렇군요…….”
“그러니까 미스트를 잘 보살펴줘. 꽤 힘들어 할 거니까.”
“에헤헤, 네에, 그럴게요 아샤.”
아샤의 말에 머리를 기대는 레이시.
아샤는 그런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훈련을 받기로 한 군인의 목록을 보면서 그나마 미스트의 도움이 될만한 녀석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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