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5화 〉 말싸움에서 지지 않는 방법3
* * *
“으으응, 싫다…….”
엘라가 연맹국 기사들의 뒷담화를 듣고 온 다음 날, 레이시는 옷을 차려입고서 엘라, 미스트와 함께 검성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기 시작했다.
대체 왜 사과를 받는 사람이 먼저 기다리는지 전혀 알 수 없지만, 일단 기다리는 게 좋다니까 기다리고는 있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손을 잡아주고 10분만 더 기다리다가 안 오면 그냥 돌아가자고 말했다.
“어차피 만나는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까 말이야.”
“으응, 앞으로 54분 남았죠?”
“응.”
“4분 있다가 안 오면 그냥 가요.”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엘라.
미스트는 두 사람의 대화에 차를 내려주면서 시간을 확인했고, 그런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기라도 한 듯 검성이 주변에 사용인들을 데리고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레이시 님.”
뭔가 죄송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데도 웃고 있는 듯한 검성의 표정.
레이시는 그런 검성의 표정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일단 대화를 하긴 해야 하니 고개를 꾸벅 숙여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죄송합니다. 일이 밀려서…….”
“일이요?”
“네, 연맹국의 일입니다.”
“으응.”
아무리 상대방의 속내를 잘 못 읽는다지만, 자기를 비웃는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는 검성의 표정.
레이시는 그런 검성의 표정에 순간 자기가 잘못을 저지른 건가 싶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검성을 쳐다봤다.
“저번의 일은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아……, 네.”
과연 무슨 말을 할까?
레이시는 검성의 말을 기다리면서 차를 마셨고, 검성은 레이시를 습격한 것을 사과하는 동시에 레이시를 바라보며 협상을 진행하자고 말했다.
“저희 국가에 오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오라토리엄 왕국이 싫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타국이라 도스토 연맹국에 오시면 대접해드리겠습니다.”
“말씀은 정말 감사하지만, 제가 몸이 이래서 못 갈 거 같아요.”
“그러면 산부인과 의사들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게…….”
“도스토 연맹국은 여러 나라가 연맹을 맺은 나라. 그중에서는 의학적으로 발전된 나라도 있지요. 레이시 님께 도움이 될 겁니다.”
레이시가 머뭇거리자 열변을 토로하면서 억지로 레이시에게 의견을 강요하는 검성.
엘라는 검성이 자기가 없는 동안 틀어박혀서 생각해낸 수단이 이렇게 억지로 밀어붙이는 거냐며 어처구니없어 했지만, 레이시가 떨떠름해하는 반응을 보자 나름 효과는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레이시의 손을 잡았다.
“으응.”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면서 엘라의 손바닥을 손가락으로 간질이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가 혼자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자 싱긋 웃으면서 레이시에게 한 번 해보라고 말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숨을 고르다가 산부인과를 어떻게 아냐고 물어봤다.
“검성 씨는, 그……, 고자잖아요.”
“…….”
레이시의 말에 침묵이 감도는 회의장.
하지만 레이시는 침묵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배시시 웃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아샤에게 잘렸잖아요. 그런데 산부인과는 어떻게 알아요?”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웃으면서 말을 이어나가던 레이시는 검성의 아랫도리를 힐끗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아내분들의 출산 때도 같이 안 계셨다면서 제가 뭘 믿고 검성님의 의사를 믿겠어요?”
“네……?”
“그렇잖아요? 고자의 산부인과라니, 탈모에 걸린 사람이 안내하는 미용실 같은 느낌이잖아요? 검성님은 대머리가 안내하는 미용실을 믿으실 수 있나요?”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듯 웃으면서 사과하는 레이시.
하지만 그 사과는 상대방의 마음을 녹이기는커녕 검성의 심기를 건들기 시작했고, 검성은 레이시의 도발에 움찔 떨다가 여기에서 흥분하면 불리한 건 자기라면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어나갔다.
“하, 하하하……, 벌을 받을 짓을 한 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 이야기를 꺼내는 건……, 네, 레이시님만이 할 수 있겠죠.”
“에헤헤, 죄송해요. 산부인과는 역시 엘라 공주님과 함께 갈래요.”
자기 아랫배를 쓰다듬으면서 행복한 얼굴을 하는 레이시.
마치 검성은 이런 걸 이제 못하지 않냐는 듯 물어보는 것 같은 레이시의 손길에 검성은 순간 움찔거리다가 숨을 크게 내쉬었고, 레이시는 그런 검성의 모습에 왜 그러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연맹국으로 여행을 오시는 건 어떻습니까? 아름다운 풍경과 맛있는 먹거리가 있습니다. 오라토리엄 왕국과 도스토 연맹국은 닮은 듯 닮지 않았으니까레이시 님께서도 충분히 즐기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게……, 으응, 그것도 조금.”
“어째서지요?”
“고자는 평범한 사람과 감성이 다르다는데 검성님은 고자시잖아요.”
레이시의 말에 미끄러지듯 탁자에 얼굴을 박는 검성.
엘라는 검성이 미끄러지자 레이시도 은근히 무서운 면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혹시 미스트의 흉내를 내고 있는 건가 싶어 레이시를 쳐다봤고, 레이시는 미스트처럼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어머나, 정수리도 휑하시네요. 이상하다……, 탈모는 남성호르몬이 원인으로 고자이신 검성님께서는 탈모가 걸리면 안 될 텐데. 스트레스 때문인가요? 하지만 검성님은 고자이든 고자가 아니든 멋진 검사니까 힘내세요. 아시겠죠? 파이팅!”
“끄, 끄으으!”
“어머, 스트레스 탈모인데 화를 내시면 안 좋아요. 여기 이 차, 사람을 진정시켜주는 효과가 있대요. 피부도 좋아지고요. 약간의 부작용으로 여성스러워진다는 소문도 있던데……. 음, 검성님은 고자시니까 괜찮죠?”
“이게에에!”
“우으, 엘라……, 검성님이 화내셔요. 저는 차를 권해줬을 뿐인데.”
“아, 아닙니다! 크흠, 저희 나라에서 나지 않는 차라서 놀랐을 뿐입니다. 크흠, 이게 그 오라토리엄 왕국에서 유명한 차군요. 이 차 덕분에 오라토리엄 왕국에서 미녀가 많다는 소문이 많이 들렸습니다.”
“아, 저도 여기에 오면서 엘레오놀 공주님께 도스토 연맹국의 남자들이 더욱 마초적이라는 건 들어봤어요.”
“호오, 그렇습니까? 저희 기사를 보니 어떤 거 같습니까?”
“정말 그런 거 같아요.”
“정말입니까?”
“네, 검성님 고자가 되신지 벌써 반 년인데 근육이 남아있잖아요. 도스토 연맹국의 단련법이 얼마나 마초적이면 검성님이 아직도 이렇게 남성스러울까 감탄하고 있었죠.”
“…….”
“검성님의 부하 기사분들도 검성님을 칭찬하시던걸요? 왕궁의 사용인들이 엄청 들떠 있었어요.”
“……참고로 뭐라고 칭찬했는지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고자가 되어도 근육을 참 잘 유지한다고, 가끔 같이 씼을 때마다 그게 작아진 게 보이는데 아직도 당당하게 허리를 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남자로서 존경심마저도 느껴진다고. 제가 잘 몰라도 남성분에게 그런 건 무척 중요한 요소라는 건 아는데……, 어떻게 그렇게 자신감 넘치게 있을 수 있나요?”
레이시의 말에 부들부들 떨면서 부하들을 째려보는 검성.
왕궁에 들어왔을 때부터 재능이 있는 녀석들을 골라 검을 쥐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휘두르는 방법까지 전부 가르쳐준 녀석들이다.
레이시의 말처럼 자신을 모욕했을 리가 없다.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까부터 레이시가 계속해서 고자라 놀린 데다가 레이시의 입에서 나온 그 이야기의 출처가 다른 곳도 아니고 왕궁의 사용인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검성은 눈을 부라리며 레이시의 말이 사실이냐고 물어봤고, 검성의 부하들은 검성의 시선에 다급하게 고개를 좌우로 젓기 시작했다.
그런 이야기를 안 한 건 아니지만, 검성의 앞에서 그런 말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렇기에 그들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좌우로 저었고, 검성은 죽을 둥 살 둥 고개를 좌우로 젓는 모습에 입술을 꽉 깨물고 다시 한번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화를 억누르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
레이시는 그런 검성의 모습에 싱긋 웃더니 다시금 신경을 건들기 시작했다.
“참, 그거 아시나요?”
“뭐가, 말입니까?”
“도서관에서 봤는데, 여성끼리 성교하는 책이 있었어요. 드릴까요?”
레이시의 말에 이마에 핏줄이 설 정도로 이를 꽉 깨문 검성.
레이시는 그런 검성의 반응에 마지막 쐐기를 꽂아주었다.
“뭘 그렇게 화를 내세요. 고자 씨. 어차피 없으니까 여성끼리 하는 방법 정도는 배워두는 게 좋지 않겠어요? 아, 근데 여자라고 생각하기에는 검성님 머리숱이 좀……, 대머리시네요.”
“이 개새끼가 듣자 듣자 하니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레이시에게 화를 내는 검성.
레이시는 그런 검성의 반응에 무섭다는 듯 팔을 쓰다듬다가 엘라에게 가자고 말했고,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레이시의 이마에 입을 맞춘 다음 검성을 비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나고 싶다고 해서 레이시가 무리해서 왔는데 욕설에 협박이라니 연맹국의 기사 수준도 알만하네, 가자. 레이시. 타국의 왕족에게 저렇게 무례하게 구는 사람에게 배려는 사치야.”
“네에.”
엘라의 팔에 팔짱을 끼면서 배시시 웃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배를 조심스럽게 끌어안더니 검성을 비웃으면서 자리를 떴고, 검성은 그런 엘라의 행동에 자기 분에 못이겨서 코에서 피를 쏟기 시작했다.
“거, 검성님!”
“꺼져라! 꺼져어어어!”
“알겠습니다!”
잔뜩 씩씩 거리면서 자기 부하마저도 밀치고 방으로 돌아가는 검성.
레이시는 그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다가 웃음을 터트리면서 엘레오놀이 말해준 방식이 통했다면서 엘라와 미스트에게 안겼고, 두 사람은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칭찬해주었다.
평범한 손님이라면 그다지 좋은 행동이 아니겠지만, 검성은 오라토리엄과 전쟁을 하기 위해서 스스로 블루드의 장기말이 된 사람.
좋게 받아들여줄 필요도 없고, 이렇게 상대방의 신경을 건들면서 불리한 조건 속에서 전쟁을 일으키게 하는 게 맞다.
“그나저나 나중에 레이시에게 바가지 긁힐 걸 생각하니까 조금 무서운데.”
“에에, 바가지 같은 거 안 긁어요오.”
“정말? 술 마시면 긁을 거 같은데.”
“적당히 마시면 뭐라 안 해요. 취하거나 일주일에 3번 이상 마시면 혼내긴 하겠지만요.”
“그럼 조금 마니악한 플레이는?”
“……최, 최대한 저를 배려해주고 이야기를 나누어주면 고민해볼게요.”
“킥킥, 알았어. 그나저나 날씨가 꽤 쌀쌀하네. 건물 안인데…….”
“아직 겨울이 아니라서 방한 장치가 안 되어 있는 것 같네요? 아직 애매한 시간이니까요.”
“그런 거겠지. 그래도 내일부터는 어떻게 해달라고 말해야겠어. 미스트, 내일 아버지에게 건의해둬.”
“네, 알겠습니다.”
창문을 닫아두고 성 안에서 난방을 틀어두고 있는데도 꽤 추운 성 안.
아직 겨울이 시작되지 않아 난방만 틀고 방한 처리는 하나도 안 한 모습이라 엘라는 혀를 차다가 자기 겉옷을 레이시에게 덮어주었고, 레이시는 셔츠만 입은 엘라의 모습에 춥지 않냐고 물어보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하지만 몇 걸음 떼자 갑자기 우뚝 서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가 자신의 손을 잡은 채 갑자기 움직이지 않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레이시에게 왜 멈췄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숨을 거칠게 내쉬면서 엘라의 손을 꽉 잡기 시작했다.
그러자 레이시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음에도 레이시가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눈치채고 당황하기 시작하는 엘라.
“미스트! 레이시랑저택으로 텔레포트 해! 어이! 거기 문관! 너, 나 따라와! 아버지에게 간다!”
“네?”
“빨리 오라고!”
“힉!? 네, 아, 알겠습니다!”
“미스트! 텔레포트!”
“레이시, 꽉 잡아요. 속이 울렁거릴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시고요.”
레이시에게 주의사항을 알려주면서 다급하게 주문을 외우는 미스트.
엘라는 미스트에게 금방 따라갈 테니 먼저 레이시와 있어달라고 부탁했고, 미스트는 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왕궁 안에서 금기시 되는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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