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414화 (414/542)

〈 414화 〉 말싸움에서 지지 않는 방법­2

* * *

할 일을 정리해두고 왕궁으로 돌아가는 레이시 일행.

레이시는 처음에는 왕궁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미르와 레아에 대한 것에 신경 쓰고 에일렌에 대한 걸 신경 썼지만, 여러 마을을 지나치면서 왕궁에 가까워지자 점점 검성에 대한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으, 으으으으……. 그 사람, 갑자기 칼을 뽑아들거나 그러지는 않겠죠?”

“걱정되나요?”

“네.”

“저희가 지켜줄 테니까 안심하세요.”

미스트의 말에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다가 서로 싸우는 것 자체가 싫다고 말하는 레이시.

레이시는 격투기 같은 게 아니라면 왜 싸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칭얼거렸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정말로 그렇다면서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번 일이 끝나면 한동안 평화로워질 거니까 마음 편하게 먹고 기다려요. 아시겠죠?”

“으으응, 네에.”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안기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아샤에게 언제쯤 왕궁에 도착할 거 같은지 물어봤고, 아샤는 지도를 펼친 다음 주변을 둘러보다가 아마 오늘 저녁이나 내일 아침이면 도착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가요.”

“음……, 최대한 다른 사람들을 피해서 들어갈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아하하…….”

아샤의 말에 어색하게 웃다가 침을 꼴깍 삼키는 레이시.

레이시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으면서 그냥 편하게 있으라고 말했다.

“첫 날에는 국왕님이 직접 오실 거기 때문에 건들지는 못할 거예요.”

“으, 으응…….”

“거기에서 저희의 결혼에 대해서 생각해보죠.”

싱긋 웃으면서 웨딩 드레스는 배가 들어가고 나서 입은 게 보고 싶다고 말하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자기 배를 바라보다가 부끄러운 듯 배시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신호위반으로 결혼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가 부른 채로 결혼을 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못 봤으니까 배가 들어간 다음에 결혼식을 올리는 게 좋겠지.

그것보다 배가 부른 채로 입는 웨딩드레스는 뭔가 코스프레 같아서 싫다.

부끄럽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결혼식 날을 잡는 게 어렵다면서 애교를 부렸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일생에 한 번 있을 결혼식이니까 다들 조심하는 거라면서 레이시의 뺨에 입을 맞췄다.

“에헤헤…….”

“행복하게 해줄게요.”

“이미 행복한 걸요.”

미스트의 손에 뺨을 비비다가 기지개를 쭉 켜면서 마차 밖을 바라보는 레이시.

오랜만이라 조금은 어색하지만, 그래도 눈에 익은 풍경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레이시는 자기가 수도로 돌아왔다는 걸 실감하면서 어색하게 웃기 시작했다.

“뭔가 올해는 저희 집에서 안 보내는 거 같네요.”

“밖으로 나돌아다녔으니까. 그래도 꽤 이르게 돌아온 거야.”

“정말요?”

“레이시를 만나기 전에는 1년에 한 달 정도 머물면 오래 머무는 거였으니까, 좀 이르게 돌아온 느낌이지.”

보통의 왕족은 바쁘다.

설령 왕위의 계승권을 포기했다고 해도 왕족은 왕가의 힘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지방 귀족들의 충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전국 각지로 파견을 나가거나 파티를 열어 귀족들을 참석 시켜서 귀족들에게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불만을 들어준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처리하다 보면 1년의 9개월은 지방 순회를 하고 2개월은 파티, 나머지 한 달 정도는 왕궁 안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왕궁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친분을 쌓게 된다.

거의 기계처럼 파티를 즐기며 동시에 업무를 보는 악마적인 스케쥴.

엘라는 그런 스케쥴이 싫어서 이런저런 여자와 몸을 섞으면서 수도에 돌아가지 않을 핑계를 쌓았고, 수도로 돌아와서도 아무 여자나 불러서 뒹구느라 다른 사람들과 만나지 못한다고 벽을쌓아뒀었다.

그것도 레이시를 만나면서 옛말이 되긴 하지만…….

“아마 아이야트 오라버니나 슈레이 언니는 내 나이 때 아예 왕궁에 못 붙어 있었을걸? 궁에 방만 있고 1년에 10일도 못 자고 마차에서 자거나 밖에서 잤을 거야.”

“어어어…….”

“지금은 나이도 있고 기반도 튼튼해지고 이러니까 왕궁에서 중앙 통제 시스템을 배우는 거지 후계자가 둘로 줄어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어.”

“서로 지지하는 사람을 밀어달라고요?”

“응. 당연하지만 나도 거기에 포함됐고……. 뭐, 그래도 다행인 건 옆나라처럼 자기 이익 때문에 싸우지 않아서 다행이랄까……. 정말로 그랬으면 독살이나 그런 것 때문에 레이시가 생긴 순간 대륙 반대편에 있는 나라로 가서 적당히 모험가로 살았을지도 모르겠어.”

“아, 아하하…….”

자세한 이름은 말하지 않았지만, 엘라가 연맹국을 까고 있다는 건 어렵지 않게 알아차린 레이시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서로 사이가 좋고 나라를 위해서 힘 쓰는 나라에서 태어났는데도 이렇게 힘든데 서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물고 뜯는 곳에서 태어났으면……, 어쩌면 정말로 죽었을지도?

그렇게 생각하자 레이시는 팔뚝을 쓰다듬으면서 부르르 떨었고, 엘라는 레이시에게 추운 거냐고 물어보면서 마차의 에어컨 마석에 손을 올렸다.

“온도 조금 올렸어, 그래도 추우면 말해줘.”

“그, 으음……, 네에.”

슬슬 가을이 끝나가는 무렵.

무서운 이야기를 들어서 등골이 오싹해진 것도 있겠지만, 진짜로 추워진 것도 있겠지 싶어서 레이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원피스 위로 여러 옷을 껴입기 시작했다.

“벌써 바지가 그립네요…….”

뭔가 바람이 휭휭 불어서 허전한 다리.

레깅스를 입어둬서 그렇게 춥지 않았지만, 가랑이 사이로 바람이 들어오자 레이시는 다리를 비비면서 어색하게 웃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웃음에 배가 이러니 어쩔 수 없지 않냐면서 레이시를 달래주었다.

“조금만 참아요. 참, 수도로 돌아갈 때까지는 할 것도 없는데 조금 주무시겠어요?”

“으으응~.”

“쪽, 잘 자요.”

이마에 입을 맞춘 다음 레이시에게 담요를 덮어주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손길에 눈을 감고 잠들었고, 미스트는 레이시가 잠들자 레이시의 배를 쓰다듬어주면서 엘라에게 검성에게서 며칠 정도 시간을 벌 수 있을지 물어봤다.

“왜?”

“으음, 쌍둥이는 조산이 꽤 많으니까요. 네 달이라고 했으니까 거기에서 보름 정도는 여유를 둘려고요. 슬슬 시간이라…….”

“네가 말했으니까 논문이 나온 이야기겠지?”

“네.”

“……음, 글쎄……. 난감하네.”

“죄송해요.”

“아니, 아이를 가진 건 축하해야 할 일이지. 거기다가 레이시는 스킬 특성상 둘 다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고……. 좋아, 내일 딱 한 시간 정도만 시간을 주겠다고 해볼게.”

“그렇게 말씀해주셔서감사해요.”

“뭘, 너도 고생해야 하니까, 아샤랑 너, 왕궁에 도착하면 곧바로 나랑 검성을 만나러 가자.”

“알겠습니다, 공주님.”

미스트는 엘라의 말에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엘라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미리 작성해두겠다면서 종이와 펜을 꺼내 들었고, 엘라는 미스트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연맹국의 정보를 있는대로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럼 중요한 부분만 정리해서 드릴게요.”

“응, 부탁할게.”

“네. 양이 좀 많으니 20분만 기다려주세요.”

불굴의 장군과 검성의 정보로 간추려서 적는다고 해도 워낙 적이 많아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설명을 덧붙이는 미스트.

엘라는 미스트의 말에 적이 얼마나 많은 거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엘라의 말에 자기 세력을 제외한 모든 세력이 적일 거라고 말해주었다.

“연맹의 매까지는 어떻게 중립이라고 해도 엘레오놀 공주님의 세력도, 하이 킹을 중심으로 한 보수파의 세력, 연맹국의 형태를 무너트리고자 하는 개혁파, 상인, 학자까지 전부요.”

“……잘도 그런 상태에서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소리를 지르네. 아니, 오히려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그 지랄을 하는 건가?”

“아마 그렇겠죠? 그리고 원래 강하다고 자만심에 가득 차 있지만, 실은 위태로운 사람이 잘 속는 법이에요. 아마 블루드 왕자님께서는 그 상황을 이용해서 전쟁을 일으키려는 걸지도 몰라요.”

“흐음…….”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엘라.

엘라는 귀찮은 일이 됐다면서 투덜거리다가 미스트가 작성한 글을 보면서 검성과 어떻게 협상할 것인지 생각하기 시작했고, 저녁이 될 때까지 고민을 이어가던 엘라는 마차가 멈춰서자 그제야 자기가 왕궁에 도착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샤, 수고했어. 미스트, 미네르바랑 같이 레이시 깨워서 저택으로 돌아가고 아샤는 마차 정리하고 알현실로 찾아와. 나는 아버지랑 검성과 만나야겠어.”

“알겠어.”

엘라의 말에 다들 제 갈 길을 가는 일행들.

엘라는 일행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싫은 녀석을 자기가 찾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한숨을 푹 내쉬다가 위약이라도 먹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후우우우…….”

나중에 레이시에게 안겨서 투정 부려야지.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발걸음을 빠르게 옮겨 알현실에 들어갔고, 곧바로 국왕에게 검성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봤다.

“흐음, 며칠만 더 참으면 검성은 연맹국에 돌아갈 텐데?”

“연맹국에 충성을 바치고 있으면 그러겠죠. 그런데 저 양반들은 연맹국에 충성을 바치는 인간이 아닌 거 같아서요. 레이시의 해산일이 얼마 안 남은 데다가 만반의 준비를 하기 위해서 검성을 쫓아내야 할 거 같거든요.”

“아하, 미스트의 아이랬던가?”

“네.”

“그럼 결혼의 형식은 레이시에게 선물을 주는 방향으로 할 거냐?”

“네. 남들에게는 레이시를 제 곁에 어떻게든 붙잡기 위해서 레이시에게 이것저것 주는 거로 보이겠죠?”

“그렇지. 아하하! 그 바람둥이가 팔불출이 된다니, 정말 재미있구나.”

“시끄럽습니다.”

국왕의 반응에 이를 살짝 드러내면서 혀를 차는 엘라.

국왕은 그런 엘라의 반응에 키득키득 웃더니 검성과 레이시의 만남을 주선해주겠다고 말했고, 엘라는 국왕의 말에 딱 한 시간만 만나게 해주겠다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임산부니까 그 이상 만나고 싶다고 말한다면 까버릴 거예요.”

“음, 그건 그렇지. 산달에 가까워진 여자에게 국무를 보게 하는 건 상식이 아니지. 상대방이 예의를 안 차리고 어떻게든 시간을 늘리겠다고 말하면 내 선에서 처리해주마.”

“그건 고맙네요.”

“그럼 물러나거라.”

“네, 감사합니다.”

국왕의 말에 허리를 숙인 다음 밖으로 나가는 엘라.

복도로 나가자 엘라의 눈에는 정원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연맹국의 사람들이 보였고, 엘라는 그 사람들의 모습에 혀를 차면서 연맹국의 사람들이 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엿들어보기 시작했다.

“하아……, 검성님도 참 너무하시지. 자기야 얼마나 있어도 문제가 없다지만, 우리는 여기에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돈도 모자라지고 눈치도 보이는데…….”

“하이 킹께서 어떻게 반응하실까?”

“글쎄? 잘 모르겠는데 좋게는 안 말하겠지. 듣기로는 검성께서 왕족을 건드렸다가 좆됐다던데…….”

“고자가 된 게 아니고.”

“아이고, 들켰다가 뒤지려고?”

“끄응……. 하여튼 빨리 돌아가면 좋겠구만. 장군님께서 뭐라고 말씀해주시면 좋겠지만……, 안 하시겠지?”

“그렇겠지.”

“결국 우리의 운명을 결정 짓는 건 레이시라는 여자인가…….”

“맞아, 그 레이시라는 여자. 엄청 예쁘다던데? 매일 영애와 메이드들을 갈아치우며 침실로 불러들이던 엘라 파우스트가 푹 빠진 모양이야.”

“밤일을 잘 하는 건가? 히히, 남자 맛을 알아야 여자하고 안 할 텐데.”

“킥킥! 자자, 다른 나라에서 이런 말 하는 걸 들켰다간 죽을 테니까 그만하고 가자. 검성님께서 사비를 들여서 돈을 줬으니까 술이라도 마시자구.”

……이미 다 들었거든?

엘라는 기사들의 뒷담화에 내일 만나면 제대로 엿을 멱여주자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갔고, 오자마자 칭얼거리면서 안기자 레이시는 놀라하면서도 엘라의 등을 토닥이면서 엘라를 달래주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