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3화 〉 말싸움에서 지지 않는 방법1
* * *
집무실에서 루룬과 함께 이런저런 서류를 보고 있던 엘레오놀.
레이시는 그런 엘레오놀의 모습에 말을 걸어도 괜찮을지 잠시 고민하다가 아샤가 노크를 하자 화들짝 놀라면서도 이내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아, 반가워요. 후후, 죄송해요. 이런 모습이라.”
엘레오놀이 자기를 반겨주자 레이시는 떨떠름한 미소를 지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당장에 보이는 건 서류의 산을 치우는 모습을 보자 레이시는 아무래도 안 좋은 때에 왔다고 생각하면서도 엘레오놀이 서류를 치우고 차를 마실 공간을 만들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에 앉았다.
“으음, 오늘 가시는 거군요?”
“네? 아, 네. 맞아요.”
“무슨 할 말이 있으신가요?”
“그게……. 음, 엘레오놀 공주님, 지금 왕궁에는 그, 연맹국의 검성이 있잖아요…….”
“네, 그렇죠. 지금 돌아가신다면 연맹국에 부담을 주면서까지 머물려고 하겠죠. 그 사람은 자기가 국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요. 머리에 제대로 생각이 박힌 사람이라면 여기에서 물러나겠지만……, 아마 아니겠죠.”
“그으…….”
“그 사람을 피할 방법을 생각하시는 거죠?”
“네에. 혹시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엘레오놀이 연맹국의 검성에 대해서 하는 말을 생각해보면 엘레오놀과 검성의 사이는 나쁘고 검성에 대해서 말하는 것조차 기분이 상할 일이지도 모른다.
그래서 레이시는 쭈뼛거리면서 엘레오놀의 눈치를 보며 혹시 가르쳐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고, 엘레오놀은 레이시가 쭈뼛거리자 배시시 웃으면서 괜찮다는 듯 수첩을 펼쳤다.
“그 사람, 레이시 씨를 습격했다가 역으로 고자가 됐다면서요? 도끼로 썩둑 당해서요. 그러면 그냥 고자라고 놀리세요. 아니면 씨 없는 수박, 쭉정이, 막대만 있고 공놀이는 못하는 내시. 이 정도로 놀리면 되겠네요.”
“…….”
“후후후.”
“그으, 어른인데 너무 유치하게 놀리는 거 아닐까요?”
“그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서 제대로 된 생각도 못 하고 힘이 세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대착오적인 사람은 유치하게 놀려줘야 돼요. 그리고 어떻게 대화를 하려는 건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죠…….”
대화할 생각이 없긴 하지…….
레이시는 엘레오놀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정말로 그래도 괜찮겠냐고 물어봤고, 엘레오놀은 레이시의 걱정에 싱긋 웃으면서 그런 건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어차피 연맹국은 하이 킹이 쓰레기에 재활용도 안 되는 폐기물이라서 국왕 자리를 갈아치워야 해요. 불굴의 장군과 검성을 잃는 건 좀 뼈가 아프지만, 연맹의 매는 박쥐 새끼라서 제가 행동에 나서면 적당히 지원하는 척만 하면서 알짜배기 병사는 전부 자기 아래에 둘 테니까 국가가 변하지는 않을 거예요.”
“병력을 잃어도 괜찮은 건가요……?”
“네에, 뭐, 어차피 불굴의 장군 아래에 있는 병사들은 품질이 낮아요. 장군과 검성이 능력이 뛰어나서 한 군대로 유지되고 있지, 그 아래의 녀석들은 제 애인들보다도 약한 걸요.”
“아……, 네…….”
“거기에다가 저랑 레이시 씨가 이렇게 친하게 있으니 오라토리엄 왕국에서는 저를 지켜줄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만큼 저도 레이시 씨에게 이것저것 줘야 하지만, 도시 하나로 제가 하이 킹에 올라갈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도 없죠. 동양의 물건은 사치품이 되니까 투자할만 하고요.”
“에, 에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이야기에 눈을 깜빡이다가 어색하게 웃는 레이시.
엘레오놀은 레이시의 웃음에 싱긋 웃으면서 어려운 이야기는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말고 연맹국 북부의 공주인 자기가 허락하니 마음대로 고자라고 놀리라고 말했다.
“애초에 사랑 없이 남녀간의 관계를 유지하는 쓰레기니까요. 그 사람은 좆을 지 좆대로…….”
“와아앗! 아, 알았으니까요. 아, 아하하하…….”
엘레오놀의 말에 화들짝 놀라서 엘레오놀을 말리는 레이시.
레이시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서 엘레오놀을 바라봤고, 엘레오놀은 레이시의 시선에 싱긋 웃다가 손을 흔들어주면서 직접 배웅을 가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아뇨, 바쁘신데 죄송했어요.”
“그럼 다음에 또 뵐 수 있기를 기대할게요.”
“네, 다음에 뵈요.”
검성과 대화할 땐 고자라고 놀린다.
……상상도 못한 대답이네.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아샤에게 그렇게 말해도 괜찮을 것 같냐고 물어봤고, 아샤는 레이시의 대답에 떨떠름한 얼굴로 엘레오놀이 한 말을 떠올렸다.
“그으…….”
“역시 안 될까요?”
“아니, 그런 건 아니야. 해도 괜찮긴 할 거야. 그냥, 어른으로서 그래도 괜찮을까 고민했을 뿐이지.”
“……역시요?”
“뭐, 뭣하면 미스트에게 물어보자. 미스트에게 물어보면 뭐라도 대답을 해주겠지.”
“아, 아하하하…….”
아샤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아샤는 레이시의 어색한 웃음에 일단 돌아가자면서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레이시는 아샤의 손길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생각해본다면 여기에서 줄창 앉아서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이런 일은 미스트나 엘라와 이야기하는 게 좋겠지.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미네르바에게 기대어 발걸음을 옮겼고, 마차 안에 들어간 레이시는 에일렌을 돌보던 미스트에게 엘레오놀과 나누었던 대화를 들려주었다.
“아하하, 엘레오놀 공주님이 참 재미있는 말씀을 해주셨네요.”
“그으, 재, 재밌나요?”
“네에, 재미있지 않나요? 검성에게 고자라고 놀리라니. 제게 그런 걸 하라고 했으면 단순히 고자라고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선물로 장난감을 선물로 줬을 거예요.”
“가끔은 미스트의 감상을 따라갈 수가 없네요…….”
“후후후. 그런가요?”
비즈가 한 줄로 연결된 장난감을 꺼내면서 검성에게 꼭 건네달라고 말하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어색하게 웃다가 이런 험한 이야기는 하지 말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자며 미스트의 품에 안겼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싱긋 웃으면서 레이시를 끌어안고 배를 쓰다듬어주었다.
“출발한다.”
“네, 부탁할게요.”
“그래.”
아샤와 엘라의 말에 잘 부탁한다고 말한 다음 미스트에게 몸을 기대는 레이시.
미스트는 레이시가 마차에 타자마자 졸린 듯 하품하자 졸리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질문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요새 누우면 잠을 자서 그런가봐요. 일어나 있으면 안 졸린데.”
“괜찮아요. 무리하지 말고 주무세요.”
“으응…….”
미스트의 말에 얼굴을 붉히면서도 몸을 뒤틀면서 미스트의 허벅지에 머리를 눕히는 레이시.
그리고 미스트에게 무릎베개를 받자 레이시는 연이어서 자기에게 잘 자라고 해줄 수 있냐고 물어보면서 몸을 살짝 옆으로 돌렸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레이시의 배 밑에 푹신한 베개를 끼워준 다음 레이시의 등 뒤에 누워서 레이시를 끌어안았다.
“잘 때까지 이러고 있을 게요.”
레이시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면서 배시시 웃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입맞춤에 얼굴을 붉히다가 배시시 웃으면서 천천히 눈을 감았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으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레이시가 낮잠을 많이 자는 이유는 저녁에 잠을 자지 않기 때문.
늘 12시에 자서 4시에는 일어나니 낮잠을 자지 않으면 못 견디는 거겠지.
하지만 이게 몸에 좋긴 한 걸까…….
임신했을 때만이라도 저녁에는 자게 내버려두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으으음…….”
“왜 그러냐?”
“레이시, 아직도 새벽에 일어나죠?”
“맞다. 그건 같이 일하는 미스트가 더 잘 알지 않나?”
“그건 그렇지만요. 그런데 저녁에는 잠을 자게 내버려두는 게 레이시에게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요.”
“하지만 그건 에일렌 때도 실패했잖나.”
무리해서 억지로 자게하는 것도 스트레스.
하지만 잠을 거의 안 자고 낮잠을 즐기는 것도 걱정되고…….
미스트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한숨을 푹 내쉬며 레이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고, 미네르바는 미스트의 반응에 레이시의 기분을 존중해주는 게 좋지 않겠냐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후후후, 미네르바의 말이 맞긴 하죠.”
“미스트도 자라. 에일렌도 잔다.”
레이시의 팔을 베개 삼아 배고 자고 있는 에일렌의 모습에 미스트에게도 자라고 말하면서 하품하며 날개를 쭉 펴는 미네르바.
미네르바는 자기는 미스트가 일어나면 그때 쉬겠다면서 불침번을 서듯 쪼그려 앉아 미스트와 레이시를 바라봤고, 미스트는 그런 미네르바의 모습에 작게 웃다가 천천히 눈을 감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확인한 미네르바는 마차 천장에 올라가더니 주변을 둘러보며 다른 무언가는 오지 않는지 경계하기 시작했다.
“미네르바.”
“응? 뭐냐, 엘라?”
“안에 있는 사람은 자?”
“잔다. 너도 들어가서 자라.”
“흐응, 아니, 나는 잠 안 오니까 패스할게. 대신에 이야기 좀 하자.”
“응?”
엘라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엘라 쪽을 바라보는 미네르바.
미네르바는 무슨 이유 때문에 그러는 거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미네르바에게 검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가는 도중에 수정구로 통화를 할 수 있을 땐 통화를 하고 해서 검성의 행방을 조사할 건데, 엘레오놀의 말대로라면 검성은 어떻게든 레이시와 이야기를 하려고 할 거야.”
“거절할 수는 없나?”
“음, 거절하려면 거절할 수는 있는데 그럼 검성의 체류기간이 늘어나면서 레이시에게 부담이 될 거야. 그러니까 만나게 하는 게 좋아. 최악과 차악의 사이에서 고르는 거지.”
“……끄응. 머리가 아프다. 그래서 뭘 부탁하고 싶은 거냐?”
“레이시의 옆에 꼭 붙어 있으라고. 나나 미스트, 아샤는 직위도 직위고 직업도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불러 다니는 일이 있지만, 너는 아니잖아. 그러니까 너는 꼭 레이시의 옆에 붙어 다녀. 저번 습격도 레이시를 알면서도 습격했을 녀석들이야. 레이시를 공격하려고 한다고 해도 이상할 일은 없을 거야.”
“…….”
엘라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뜨면서 살기에 내뿜는 미네르바.
엘라는 미네르바의 살기에 마차를 툭툭 치면서 진정하라고 말했고, 미네르바는 엘라의 신호에 숨을 고르게 내쉬더니 천천히 날개를 접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왕궁에 있을 땐 레이시와 딱 붙어 있어. 보통은 우리 집에서 지내겠지만, 몇몇 번은 밖으로 나가야 하니까.”
“너는 어떻게 할 거냐?”
“나도 최대한 붙어 있을 거야. 레이시의 부인이니까. 하지만 그 전에 왕족이라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부탁한다는 거야. 알겠지?”
“……알겠다.”
미네르바는 엘라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뜨더니 자기가 레이시를 지키겠다고 말했고, 엘라는 미네르바의 말에 조금 안심했는지 한숨을 푹 내쉬더니 하여튼 웬 전쟁에 미친 놈들 때문에 고민이라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대체 무슨 이득이 있다고 이 지랄일까 몰라.”
“보물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냐? 인간들도, 인어들도 보물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거 말 되네. 킥!”
미네르바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는 엘라.
“뭐, 적이 왜 그딴 짓을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나올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할 행동은 간단해. 아군은 지키고 적은 죽인다. 그렇지? 네게 있어서 아군은 레이시 밖에 없으니까 레이시만은 꼭 지켜.”
“너도.”
“응?”
“너랑 미스트, 아샤도 아군이다. 하양이랑 나비는 말할 것도 없고.”
“……풋, 그럼 잘 부탁한다.”
“흥, 알았다.”
엘라의 말에 콧방귀를 뀌더니 엘라보다 더 잘 지켜주겠다며 으스대는 미네르바.
엘라는 그런 미네르바의 행동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기지개를 켜면서 왕궁으로 계속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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