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1화 〉 도망치는 사람과 쫓는 사람2
* * *
“훌쩍…….”
여관으로 돌아간 레이시는 입술을 샐쭉하게 내민 채 투덜거렸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행동에 어색하게 웃다가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이번 일은 레이시가 잘한 건 아니지만, 반대로 딱히 레이시가 잘못한 일도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서로의 시야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게 이번 사건의 원인이다.
그 자리에 모인 상인, 그리고 중역들은 레이시를 엘라의 마음에 들려고 애를 쓰는 귀족으로 바라봤다.
중간에 엘라가 협박한 이후로는 모르겠지만, 처음 시비를 걸었을 때를 생각해보면 레이시를 딱 그 정도의 입장으로 보고 행동했을 것이다.
아직 에일렌은 비밀에 가까운 이야기니까 더욱 그렇겠지.
그리고 루룬과 엘레오놀, 그리고 엘라는 레이시를 왕족의 일원으로 바라봤다.
그 세 사람은 각자 당사자거나 왕궁에 개인적인 정보원이 있어 레이시가 어떤 존재인지 확실히 알고 있고 늦어도 내년 봄까지 레이시의 왕가의 일원이 될 거라 생각하고 이러한 부탁을 했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레이시는 정말 이 도시를 위해서 움직였다.
이 도시에 필요할 것 같은 건물을 열심히 생각해서 학교라는 선택지를 내밀었고, 사람들은 그런 레이시의 행동을 각각 다르게 해석했다.
상인들은 레이시가 엘라의 마음에 들기 위해 생색을 내면서 학교 같은 걸 말했다고 생각했고, 루룬은 레이시가 세력을 만들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조금은 미숙한 짓을 했다고 생각하고는 레이시에게 조언을 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겹쳐서 레이시는 받아들일 수 있는 스트레스 한계선을 넘어버렸고, 그냥 도망치게 되었다.
그뿐인 일이다.
“레이시, 괜찮아요?”
“으응, 괜찮아요. 훌쩍…….”
“후후, 안 괜찮은 거 같은 걸요?”
레이시에게 자기 허벅지를 내어주고서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미스트.
레이시는 가슴 때문에 보일 듯 말듯한 미스트의 얼굴을 올려다보다가 조용히 레이시의 허벅지에 얼굴을 파묻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애교에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괜찮다고 레이시를 달래주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공주님은 레이시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잘 알 거예요.”
“정말요?”
“네에~ 물론이죠. 레이시가 스스로 학교를 원한다고 직접 말했잖아요? 레이시가 얼마나 열심히했는지 다들 알 거예요.”
“으우우우…….”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레이시는 회의장에서 빠져나올 때 같이 데리고 온 에일렌을 보더니 조심스럽게 에일렌의 옆으로 가서 에일렌하고 자고 싶다고 말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싱긋 웃더니 에일렌의 옆에 커다란 베개를 놓은 다음 레이시를 재워주었다.
레이시가 누으면서 살짝 아래로 떨어지는 침대.
에일렌은 그런 침대에 놀라 눈을 깜빡이다가 레이시가 자기 볼을 콕콕 찔러주자 엉금엉금 기어가 레이시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간지러워요.”
“먀우우.”
“에헤헤…….”
레이시의 말에 옹앓이를 하다가 그대로 레이시에게 고개를 파묻고 자는 에일렌.
레이시는 그런 에일렌의 애교에 스트레스가 풀리는 걸 느끼면서 천천히 눈을 감았고, 미스트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엘라와 아샤를 기다렸다.
두 사람이 나가고 얼마 안 지나서 나와서인지 금방 들어오는 엘라와 아샤.
미스트는 두 사람의 모습에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레이시는 자고 있다고 말했고, 엘라는 미스트의 보고에 머리를 긁다가 자기가 조금 무리했냐고 물어봤다.
“딱히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런데 한 분이 그러신 게 아니라 여러분이서 동시에 그러셔서 그게 문제였을 뿐이에요.”
엘라와 루룬만 이렇게 레이시에게 압박을 가했으면 레이시는 두 사람을 위해서 어떻게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의 앞에서 레이시가 건물을 짓겠다고 결정해야만 했다.
그래서 레이시는 도시에 도움이 되는 일을 생각했고, 자기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지을 건물을 아멜리아에 짓자고 말했었다.
그렇지만 레이시와 아무런 친분도 없고, 레이시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는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서 레이시를 압박했고, 그 때문에 레이시는 사람과 맞부딪치기보다는 도망치는 걸 선택했다.
도적처럼 피한다고 해서 누군가 다치는 것도 아니고, 건물을 안 짓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생기거나 하지는 않으니 그냥 피한 거겠지.
받을 수 있는 지원을 못 받게 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는 건 아니니까.
아마 무언가 문제가 생긴다면 레이시도 억지로 밀어붙였겠지.
엘라는 그렇게 생각한 다음 일주일 안에 사람들이 레이시를 설득할 수 있을지 물어봤고, 미스트는 엘라의 질문에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무리야?”
“글쎄요? 이번의 일은 레이시가 문제가 아니잖아요? 굳이 문제라고 한다면 기 싸움을 하지 않고 피하려고 했단 건데……, 꼭 해야 하는 일도 아니고 공주님의 호의로 시작해서 루룬 씨에게만 꼭 필요한, 그런 아무래도 좋은 일에 싸움을 피한 게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죠.”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엘라.
하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면 레이시에게 이번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면서 레이시에게 일을 꼭 해주면 좋겠다고 종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랬으면 좋겠다.’와 ‘꼭 그래야 한다.’의 차이니 아쉽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혼을 내거나 그럴 수는 없다.
“쩝…….”
“공주님께서는 조금 성급하셨고요.”
“음, 그런가…….”
엘라는 미스트의 말에 멋쩍게 머리를 긁다가 한숨을 내쉬었고, 아샤는 엘라의 반응에 눈을 깜빡이다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할지 물어봤다.
“벌써 사람이 붙었어.”
상인이니까 레이시의 정보를 얻으려고 보낸 사람들이겠지만, 굳이 붙여놓을 필요는 없다.
무언가 나쁜 마음을 가지고 접근한 게 아니니 죽이거나 몸을 부러트리지 않고 쫓아내기만 하면 되려나?
아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미스트를 바라봤고, 미스트는 아샤의 시선에 마음대로 하라고 한 다음 미네르바에게도 똑같이 마음대로 하라고 말했다.
그러자 각자 순식간에 사라지는 두 사람.
미스트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참 열혈이라면서 고개를 좌우로 저은 다음 엘라와 여관으로 들어갔고, 엘라는 레이시가 자는 걸 보고는 레이시의 옆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헀다.
그리고 소설책을 반쯤 읽자 시간은 저녁이 되었고, 낮잠을 잔 레이시는 하품을 늘어지게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뺨을 두들기던 에일렌을 안아서 가슴을 입에 물려주었다.
“으으으응.”
하품을 늘어지게 하면서 에일렌의 등을 토닥여주는 레이시.
레이시는 눈을 비비면서 잠을 깨려고 노력하다가 눈앞에 엘라가 있자 눈을 깜빡이면서 엘라를 바라봤고, 엘라는 레이시가 자기를 빤히 쳐다보자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으면서 작게 웃었다.
“일어났어?”
“흥…….”
엘라의 말에 괜히 삐진 듯 고개를 돌리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반응에 삐져있지 말라면서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춘 다음 허리에 손을 올렸고, 레이시는 엘라의 몸에 천천히 머리를 기대면서 자기가 잘못한 거냐고 물어봤다.
“딱히 레이시가 잘못한 건 아냐. 잘잘못을 따지면 내가 더 잘못했지. 그리고 정확하게는 아무것도 아닌데 자기 이익을 위해 기싸움을 건 상인들이 잘못한 거고.”
“으응…….”
“그러니까 괜찮아. 저녁으로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엘라가 먹고 싶은 거 먹을래요.”
“그럼 생선으로 괜찮을까? 초밥이라는 게 맛있대.”
“초밥…….”
날 생선인 걸까?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날 거는 조금 그렇다면서 고개를 좌우로 저었고,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오라토리엄 왕국 사람의 입맛에 맞춰서 구운 생선으로 초밥을 만들고 있을 거라면서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어디까지나 퓨전식이라는 거 같으니까.”
“으응. 그렇구나.”
“레이시는 기름기 많은 생선도 먹을 수 있지? 그럼 내가 먹을 초밥이랑 레이시가 먹을 초밥, 주문하고 올게.”
“네에.”
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배시시 웃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기분이 조금은 풀린 듯 보이자 싱긋 웃다가 미스트와 함께 주문을 넣으러 발걸음을 옮겼고, 아샤는 엘라와 미스트가 나가자 방으로 들어가서 레이시의 옆에 앉았다.
“으으음, 레이시.”
“네?”
“다른 사람들이 사람을 보내서 너를 지켜보고 있는데 어떻게 할 거야?”
“에?”
“네가 나가고 나서 엘라가 화를 좀 심하게 냈거든. 자기 밥그릇 키워보겠다고 지금 이 지랄하는 거냐면서. 그러니까 아까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너랑 협상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보내고 있어. 지금은 밥 먹을 시간이니까 돌려보냈는데, 다음에 또 오면 어떻게 할까?”
“으으으응…….”
아샤의 말에 잠시 고민하는 레이시.
아샤는 레이시에게 이번 일은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니까 레이시가 원하는 대로 하자고 말했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볼을 부풀이다가 자기도 화가 났으니까 안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부우우……, 저도 화났어요!”
“그래?”
“새, 생각해보니까 학교는 좋든 싫든 지어야 하는 건데 괜히 제 의견에 반대한 거잖아요! 학교는 꼭 필요 없다면서! 그러니까 저도 화를 내볼래요!”
화를 내본다니…….
레이시다운 온건한 방식이다.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레이시가 원하면 그렇게 하자고 말한 다음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레이시는 아샤의 손길에 배시시 웃다가 엘라가 뭘 주문하러 갔는지 말했다.
“생선인가……, 생선은 별로 안 좋아한다.”
“네? 왜요?”
“가끔씩 벌레를 먹은 생선이 있는데 그걸 먹었을 때 꽤 아팠다.”
“아, 기생충……. 민물고기에는 그런 게 많다고 했었죠. 이번에는 구운 생선이 나오니까 기생충은 없을 거예요. 있다고 해도 조리하면서 빼내고.”
“먹어도 안 아픈 생선인가?”
“네. 그러니까 먹으러 가요.”
레이시가 싱긋 웃으면서 손을 잡아끌자 떨떠름해 하면서도 발걸음을 옮기는 미네르바.
아샤는 레이시가 에일렌을 안은 채로 먼저 떠나자 잠시 하품을 하다가 두 사람을 따라 식당으로 갔고, 엘라와 미스트는 식당까지 나온 네 사람의 모습에 왜 밖으로 나왔냐고 물어봤다.
“아샤가 사람들이 보고 있다고 해서 방에 있기 싫었어요.”
“응? 그건……. 아니, 아니야. 가끔씩 방 밖에서 먹는 것도 좋지. 방 비어 있으니까 우선 방 배정받을게.”
레이시에게 따라오라고 말하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가 말한 대로 식당에 있는 방에 들어간 다음 에일렌을 자기 다리에 앉힌 다음 손수건으로 에일렌의 턱을 감싸주었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를 보며 웃다가 레이시의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아 다른 사람들과 만나겠냐고 물어봤다.
“싫어요~.”
“흐응? 다른 때랑 다르게 고민도 안 하네?”
“아샤에게 다 들었다고요. 그 사람들이 거절한 이유가 자기들 권익을 위해서 그냥 저에게 거절했던 거라면서요! 저두 화났다구요!”
볼을 빵빵하게 만들고 짐짓 화를 내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키득키득 웃으면서 화를 낼만도 하다면서 레이시에게 힘내라고 말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배시시 웃다가 화를 내는데 응원하는 건 아무래도 조금 이상하다면서 배시시 웃었다.
“에일렌이 먹을 수 있는 것도 있을까요?”
“응. 옥돔죽인가? 그거 해준대. 비린내 없애서. 생선뼈를 우려서 수프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죽에다가 생선 살을 넣을 생각을 하다니 동양은 죽을 좋아하는 걸까? 생선을 좋아하는 걸까?”
“글쎄요~? 맛있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아하하, 하긴, 그건 그러네.”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손을 닦는 엘라.
레이시는 그런 엘라를 보면서 배시시 웃으면서 에일렌의 손을 잡았고, 엘라는 레이시와 엘라를 바라보다가 음식이 오길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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