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9화 〉 이 도시는 누구의 것?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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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트가 배를 탈 때 삼각함수가 필요하니까 수학을 가르쳤으면 좋겠다.
아샤가 천문학도 필요하다고 말했으니까 학교에서 천문학을 가르쳤으면 좋겠다.
배를 타는 사람들은 쉽게 영양 불균형이 걸리니까 영양학을 배우면 좋겠고, 다쳤을 땐 치료할 수 있게 의학도 배우면 좋겠다.
관광에 대한 건 잘 모르겠지만, 여기에서 자라나는 아이는 한국의 학생들과는 다르게 놀면서 지내면 좋겠으니까 운동장이 있으면 좋겠고 노는 방법도 가르쳐주면 좋겠다.
레이시는 아샤의 질문에 그렇게 대답하면서 대화를 이어나갔고, 아샤는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대로 루룬에게 말하지 않겠냐고 물어봤다.
“으응, 그래도 되나요?”
“안 될 건 뭐야. 루룬도 그렇게 말해주는 걸 기다리고 있을걸?”
“으음. 그건 그렇죠?”
루룬과 이야기를 많이 해본 건 아니지만, 평소와 다르게 꽤 강요하듯이 밀어붙였으니까.
자기가 학교를 지을 줄은 몰랐던 레이시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축 늘어졌고, 아샤는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자고 말했다.
“지금쯤이면 엘라도 일을 끝냈으니까 엘라랑 돌아가자.”
“엘라,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음, 대충은.”
“어떻게요?”
“마력을 느끼는 거지. 엘라의 마력은 너무 커서 정확한 위치는 알기 어렵지만, 근처에만 가면 그쪽에서 우리를 찾아서 올거야.”
“에에, 그동안 그런 걸 할 수 있는 건가요?”
“보통은 못 하지. 하지만 나는 탐색 계통의 스킬을 지니고 있으니까 할 수 있는 거고.”
“으으응. 미네르바는 할 수 있어요?”
“나는 마력을 느끼는 건 못 한다.”
“헤에~.”
“그, 그래도 나는 눈이나 다른 거로 아샤보다 잘 찾을 수 있다!”
“에헤헤, 착하다~. 착하다~.”
왜 또 이런 걸로 경쟁을 하는 걸까?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미네르바를 안아주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포옹에 배시시 웃다가 그럼 엘라에게 가는 거냐고 물어봤다.
“아마 그렇게 되겠죠?”
학교를 짓고 싶다고 말하면 학교를 지어준다고 했지만, 그런 큰 건물을 엘라와의 상담도 없이 덜컥 지어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다.
만약 이 일이 개인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면 엘라에게 갈 필요가 없겠지만, 루룬이나 아샤의 반응을 보면 이번 일은 왕족으로서 하는 일.
그런 이유로 레이시는 엘라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어떻게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대로 날아올랐다.
“응, 찾았다. 주인.”
“에? 어떻게요?”
“배 위에 있었다. 그리고 미스트와 눈을 마주쳤다.”
“에에에……. 눈을 마주쳤다니…….”
여기에서 항구까지는 꽤 거리가 될 건데?
레이시는 잠시 그렇게 생각했다가 미스트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거렸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에게 길은 외워뒀다면서 레이시의 손을 잡고 앞장서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정말 괜찮을까요?”
“응?”
“저는 잘 모르지만, 학교라는 거 지으려면 힘들잖아요. 부지선정부터 시작해서 선생님을 구하는 일도 있고, 그런 걸 제외하고도 여러 일이 있을 거 같은데…….”
“괜찮다니까? 루룬은 학교를 지어달라고 부탁하는 것보다는 네가 아무 말도 못하고 망설이는 걸 더 난처해 할 거야.”
“으으으응……. 엘라는 괜찮아할까요?”
“엘라라면 아무런 생각이 없지 않을까?”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니 레이시가 무언가를 짓고 싶어한다고 말하면 그것 자체로 기뻐하지 않을까?
아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레이시를 달랬고, 레이시는 묘하게 닮은 아샤의 흉내에 어색하게 웃다가 숨을 크게 한 번 들이마신 다음 발걸음을 옮겼다.
미네르바가 날아올랐을 때 이야기를 정리한 건지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레이시를 반겨주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가 자기를 마중 나와 있자 손을 크게 흔들면서 인사하다가 엘라가 팔을 벌리자 엘라의 품에 안기면서 뺨을 가볍게 비볐다.
“갑자기 애교야?”
“에헤헤, 그냥요.”
“왜? 힘든 일 있어?”
싱긋 웃으면서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는 엘라.
레이시는 조금 그렇다고 말했고, 엘라는 레이시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루룬과 관련된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어떻게 알았어요?”
“소거법으로. 애초에 여기에 있는 사람 중에 너를 아는 사람은 루룬과 엘레오놀 밖에 없잖아. 근데 엘레오놀은 나랑 인어들과 관련된 일을 처리하고 있었으니까 루룬이 뭔가 말했겠지.”
“으응, 루룬 씨가 그렇게 움직일 걸 알고 제게 그런 말을 한 거예요?”
“아니, 언젠가는 할 거 같다고 생각은 했는데 이렇게 빠르게 부탁할지는 몰랐지.”
아직 한참 개발하고 있는 도중의 도시다.
레이시의 건물을 짓는 것 외에도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니까 하게 된다면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다음이라고 생각했다.
엘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레이시의 뺨을 만지작거렸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엘라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루룬이 찾아왔다고 말해주었다.
“저는 그래서 엘라가 루룬에게 부탁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내가 레이시에게 부담을 주는 부탁을 할 리가 없잖아.”
“으응, 몇 번 그랬는데요?”
머리를 살짝 기대면서 웃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웃음에 어색하게 웃다가 자기는 나름 노력한 거라고 말한 다음, 그래서 짓고 싶은 건물은 생겼냐고 물어봤다.
“생겼다면 좋겠네.”
“으응, 생기긴 했어요.”
“헤에, 뭐 짓고 싶어? 나처럼 작은 저택이라도 지을래?”
“아뇨. 개인적인 용도로 쓰는 건물이 아니어도 된다고 해서 학교를 지어주셨으면 해서요.”
“학교?”
“네. 어린애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를 가르치는 학교요. 수학이라거나 천문학이라거나 영양학이라거나 그런 거요.”
“흐응, 그렇구나. 그럼 오늘 회의하고 내일은 놀까?”
레이시의 이마에 입을 맞추면서 사람들에게 손짓하는 엘라.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행동에 당황하다가 이내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속담을 떠올리고는 침을 삼키며 각오를 다지기 시작했다.
“그럼 갈까? 회의실. 우리가 먼저 가서 기다리면 다른 사람들도 올 거야.”
“아, 아하하하…….”
엘라의 말에 1초만에 깨지는 각오.
레이시는 막상 회의실에 들어가야 한다고 듣자 손끝을 파르르 떨면서 엘라를 바라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눈이 흔들리자 웃음을 터트리면서 레이시를 데리고 엘레오놀과 함께 회의실에 들어갔다.
“자, 여기에 앉아.”
“여기, 상석이죠?”
“응. 상석이지. 이 자리에서는 레이시가 상사니까.”
“배가 아픈 느낌이에요.”
“그만두고 그냥 짓게 할까?”
“아, 아니요. 그러면 좀 더 싫으니까 노력할게요…….”
“힘내. 참, 에일렌은 내가 안을게.”
“고마워요…….”
한숨을 푹 내쉬면서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진정하라며 차를 건네주었고, 아샤와 미네르바는 각자 레이시의 옆에 앉아서 레이시의 옆에서 레이시를 달래주었다.
그렇게 레이시가 다른 일행의 위로를 듣고 있자 루룬과 함께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그 사람들의 모습에 움찔 떨면서 조심스럽게 미스트를 바라봤다.
“괜찮아요, 레이시.”
“아으으으…….”
레이시의 시선에 안 보이는 곳에서 손을 잡아주고 싱긋 웃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웃음에 조금은 긴장을 덜면서 회의장 안의 사람들을 바라봤고, 회의장 안 사람들은 레이시의 시선에 다소 부정적인 시선으로 레이시를 쳐다봤다.
“으응…….”
그들이 레이시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간단했다.
안 그래도 일이 꽤 많은 편인데 일을 늘릴 필요가 어디에 있냐는 것.
왕족의 건물이 생기는 건 확실히 좋은 일이었지만, 지금은 안 그대로 바쁜 상황이었기에 사람들은 레이시가 부디 쓸데없는 짓을 안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레이시를 바라봤고, 레이시는 그런 그들의 시선에 움찔 떨다가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어찌됐든 지금 여기에서 의견을 거절당한다고 해도 의견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루룬과 엘레오놀의 신호를 기다렸고, 루룬은 레이시의 시선에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레이시가 알지 못하는 아멜리아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루룬.
레이시는 루룬의 보고를 들으면서 루룬과 엘레오놀이 얼마나 힘내서 아멜리아를 발전시켰는지 실감하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루룬은 레이시의 시선이 자기에게 쏠리자 작게 웃으면서 보고를 끝냈다.
“그럼 다음 의제로 넘어가겠습니다. 아멜리아는 여기에 계신 레이시 루피너스 남작님의 지원으로 생긴 도시. 따라서 레이시 루피너스님의 건물을 하나 세워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잠시, 괜찮겠습니까?”
“네, 말씀하세요.”
“아멜리아가 당초 계획된 것보다 더 높은 성취를 얻은 것은 확실히 고무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더욱 발전에 힘을 쏟아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손을 들고 레이시를 바라보는 남성.
남성은 마치 다른 귀찮은 일을 만들지 말라는 듯 레이시를 쳐다봤고, 어딘가 날카롭기까지한 그 시선에 레이시는 어깨를 움츠러트리며 미스트의 손을 꽉 잡았다.
“저는 남작님도 도시가 발전하는 것을 원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으, 으으응…….”
남자의 말에 남자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눈치를 보면 더 기어오를 거라고 속삭였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움찔 떨다가 그래도 어떻게 눈치를 안 볼 수 있겠냐며 어색하게 웃었다.
“루피너스 남작님. 남작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 네? 죄송해요. 못 들었어요.”
레이시의 말에 눈을 찌푸리는 남성.
다른 사람도 별반 다르지 않은 반응이라 레이시는 우물쭈물 거리다가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고, 엘라는 레이시의 반응에 레이시의 뒤에서 눈을 찌푸렸다.
회의 도중에 이야기를 집중하지 못한 건 확실히 레이시의 잘못이긴 했다.
하지만 저렇게 대놓고 불평을 할 수 있을만한 큰 실수인가 물어보면 그건 아니었다.
기껏해야 회의에 집중해달라고 나중에 부탁하는 게 끝.
그런데 저렇게 대놓고 레이시에게 눈치를 주는 걸 보면 둘 중 하나였다.
하나는 귀족과 일해본 적이 없는 능력 좋은 사람, 다른 하나는 자신의 편리함이나 이익을 위해서 레이시에게 기싸움을 하려고 하는 쓰레기.
전자라면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능력주의자니 한 번은 봐줄 수 있었지만, 후자라면…….
엘라는 눈을 가늘게 뜨다가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살피기 시작했다.
“흐응…….”
레이시에게 압박을 넣을 때와 다르게 곧바로 시선을 피하는 사람들.
엘라는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사람들이 레이시가 어떤 사람인지 알면서도 기싸움을 걸었다는 걸 깨닫고 히죽 웃었다.
“어이없네. 씨발놈들이.”
“에, 엘라?”
“으음, 너희가 착각하는 게 하나 있는 거 같아서 말해야겠는데. 이 도시는 너희 것이 아니거든? 착각하지마.”
엘라의 급발진에 당황하며 엘라를 말리는 레이시.
하지만 엘라는 레이시의 만류에도 멈출 생각이 없는 듯 한참을 머리를 긁다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방 안의 사람들을 쳐다봤다.
“이 도시는 왕가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도시.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레이시에게 이 일의 전권을 맡겨둔 상태야. 그걸 레이시가 다시 루룬에게 맡긴 거고. 그런데 그런 도시에 레이시가 건물을 짓겠다는데 일하기 귀찮다고 레이시에게 기싸움을 걸어?”
천천히 강해지는 압박.
몸을 짓누르는 그 느낌에 사람들은 엘라에게 그게 아니라고 말하면서 당황해하기 시작했고, 엘라는 사람들의 반응에 싱긋 웃으면서 변명을 할 거면 해보라고 말했다.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하겠지만……, 마음대로 해봐. 응, 이 도시가 누구의 것인지, 그리고 이 도시의 진정한 주인에게 너희가 무슨 짓을 했는지 잘 생각하고 말하라고. 알겠어?”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면서 웃는 엘라.
사람들은 엘라의 웃음에 숨을 크게 내쉬다가 엘라의 찻잔을 바라봤고, 찻잔 안의 물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시꺼먼 물체로 바뀌어져 있자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서 레이시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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