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8화 〉 이 도시는 누구의 것?3
* * *
“흐꺄아우우.”
“기분 좋아요?”
나비의 등 뒤에 올라타 아멜리아로 가자 중간에 깨버렸는지 눈을 깜빡거리는 에일렌.
에일렌은 마차 안에서 느껴보지 못한 바람이 느껴지자 재미있는지 꺄르륵 웃으면서 레이시를 꽉 끌어안았고, 레이시는 그런 에일렌의 행동에 포대기의 끈을 꽉 묶으면서 에일렌의 뺨을 콕콕 찔러댔다.
그러자 에일렌은 레이시의 손을 잡고 다시 꺅꺅 웃었고, 레이시는 에일렌의 반응에 종종 이렇게 산책하자고 생각하면서 마차로 올 때와 다르게 빠르게 가까워지는 아멜리아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마차는 시속 제한이 있어서 온천까지 가는데 4시간이나 걸렸는데.”
“시속 제한이 5km/h였던가? 지금은 60km/h니까 12배는 빨리 도착하겠지. 한 20분?”
“나비가 빠르긴 하네요.”
“빠르다는 수준이 아닐걸? 나비보다 빠른 동물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는데 이 정도면 최고속이라고 말해도 좋을 수준이야.”
“그래요?”
“응, 물론 미네르바가 더 빠르겠지만.”
아샤는 자기도 이렇게 달리라면 달릴 수 있지만, 지금처럼 사람을 업고 달리지는 못한다고 말하면서 나비를 칭찬해주었고, 나비는 아샤의 칭찬에 기분이 좋은 듯 경쾌한 발걸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도 성벽이 없네요.”
“농사를 짓기도, 다른 나라와 교역하기 애매한 땅이라 그렇지 몬스터나 맹수가 없어서 살기에는 좋은 땅이라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있었어.”
“그랬어요?”
“응, 해군이 훈련 도중에 휴식할 때 이 근처에서 휴식하거든.”
“아하, 그런 의미에서 아시는 거였군요.”
“나는 미스트가 아니니까 말이야.”
레이시의 말에 쓰게 웃던 아샤는 하여튼 동양과의 무역이 연결되면서 아멜리아의 가치가 높아졌다고 말해주었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죽을 거 같단 얼굴을 했다.
새로운 무역로로 가치가 폭등한 땅에 생긴 계획 도시.
그런 곳에 아무런 가치도 없는 건물을 짓지 않으면 안 된다니…….
레이시로서는 왜 그게 필요한 건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좌우로 저었고, 아샤는 레이시의 얼굴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쓰게 웃으면서 레이시를 안아주었다.
“같이 나름 쓸만한 걸 찾아보자.”
“으으응, 그래봐요.”
이건 꼭 필요한 일.
나중에 엘라를 통해 명령으로 내려올 일이었기에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같이 힘내자고 말했고, 아샤는 레이시가 각오를 다지자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나비의 등 뒤에서 내려왔다.
어느 새 아멜리아에 도착한 레이시와 아샤.
미네르바는 하늘 위에서 내려오더니 레이시에게 안겼고,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경비병에게 신분증을 내민 다음 아멜리아의 안으로 들어갔다.
전에 왔을 때와 다르게 엄청 발전된 도시의 풍경.
레이시는 그런 풍경에 눈을 깜빡이면서 걷다가 아샤에게 어디로 갈지 물어봤고, 아샤는 레이시의 질문에 우선 항구는 피해서 가자고 말했다.
“항구는 위험한 사람이 많으니까.”
“으응, 그럼 시장……?”
“그럴까? 간식 먹고 싶어?”
“네에.”
그나마 안전한 곳을 고르다 보니 결국 선택된 곳은 늘 가는 시장.
레이시는 자신의 선택에 매번 가는 곳만 가서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어색하게 웃었고, 아샤는 레이시의 말에 괜찮다면서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일단 움직이자고 말하면서 레이시의 손을 잡아당겼다.
미네르바는 아샤의 행동에 자기도 질 수 없다는 듯 레이시의 손을 잡았고,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의 질투에 어색하게 웃다가 에일렌의 포대기를 다시 한번 묶은 다음 에일렌의 등을 받쳐주면서 걷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여기 시장은 딱딱 구분되어 있네요.”
“아마 오라토리엄의 물건을 파는 곳과 동양의 물건을 파는 곳을 나눈 거겠지. 그나저나 동양의 간식은 조금 특이하네.”
눈을 깜빡이면서 길에서 파는 간식을 바라보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특이한 간식이 뭐가 있냐면서 고개를 갸웃거렸고, 아샤는 레이시의 말에 직사각형의 철통을 가리켰다.
회색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철통.
아샤는 저런 거에서 어떻게 간식이 나오는지 모르겠다면서 고개를 갸웃거렸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오라토리엄 왕국의 간식을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간식은 핫도그.
긴 빵에 고기를 담은 것이라던가 닭꼬치 같은 꼬치구이가 주를 이루었고, 과일도 갈아서 에이드로 만들어서 팔았지 지금 저거처럼 구워서 파는 건 거의 없었다.
그 전에 오라토리엄 왕국에서는 뿌리 작물 자체를 많이 안 먹는 느낌이었다.
쌀이나 밀은 자주 먹는 느낌이었지만, 감자나 고구마는 잘 안 먹는 느낌이었다.
먹는 뿌리 작물이라면 당근과 무 정도려나?
하지만 당근이나 무 같은 건 간식으로 먹기에는 어려운 느낌이었으니 확실히 저런 종류의 간식은 오라토리엄 왕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래도맛있을 거 같아요.”
“저런 걸 보고서?”
“으응~ 고기도 훈연하면 맛있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하나 사올까?”
“네, 부탁할게요.”
아샤의 말에 배시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아샤는 레이시의 웃음에 한 번 시도해보겠다면서 군고구마를 하나 샀고, 상인은 아샤의 주문에 투명한 기름종이로 군고구마를 감싸서 건네주었다.
“뜨겁네.”
“많이 뜨거워요?”
“응? 아니, 그렇게 뜨겁지는 않아. 그냥 바로 입으로 넣으면 화상을 입을 정도라는 거지.”
고구마의 껍질을 벗기더니 레이시에게 건네주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에게 건네받은 군고구마를 입김으로 식히더니 작게 뜯어서 에일렌의 입가에 가져다줬고, 에일렌은 레이시의 손을 빤히 쳐다보다가 조심스럽게 고구마를 입에 넣었다.
“아무아무.”
충분히 식혀서 에일렌도 무리 없이 먹을 수 있는 군고구마.
에일렌은 처음 먹어보는 맛이라 그런건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고구마를 오물거리다가 이내 레이시의 손가락을 혀로 핥으면서 고구마를 먹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자신의 손을 잡고 손가락을 빠는 에일렌의 모습에 작게 웃다가 에일렌의 입에서 손가락을 빼낸 다음 작은 그릇에 물을 받아 손가락을 씻었다.
그런 다음 고구마를 다시 찢은 레이시는 에일렌에게 계속 고구마를 먹여주었고, 아샤와 미네르바는 에일렌이 고구마를 먹는 걸 보고는 의외로 괜찮은 음식일지도 모르겠다면서 군고구마를 하나 더 사서 둘이서 나눠먹기 시작했다.
“다네. 너무 달아서 못 먹겠어.”
“나도 그다지 안 익숙하다.”
맛이 없지는 않다는 아샤와 미네르바.
하지만 취향이 영 아니였는지 두 사람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에일렌과 레이시를 바라봤고, 레이시는 에일렌에게 고구마를 먹이다가 쏟아지는 두 사람의 시선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시장을 둘러봤다.
“그나저나 여기에 있으면 있을수록 여기에 필요한 건물을 떠올릴 수가 없네요……. 이 자체만으로도 잘 지내는데 괜히 제가 설치다가 망가트리는 거 아닐까요?”
“반대로 생각해. 이 정도로 완성되어있으니까 네가 혼자서 이상한 짓을 한다고 해서 흔들리지 않을 거야.”
“그런 거라면 좋겠지만요.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잖아요.”
“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주인. 잘 모르겠지만.”
“아하하하…….”
두 사람의 대답에 어색하게 웃다가 에일렌을 바라보는 레이시.
에일렌은 레이시가 먹여주는 고구마를 열심히 오물거리며 먹다가 이내 배가 부른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안 먹겠다고 말했고, 레이시는 에일렌의 행동에 남은 고구마를 입에 넣은 다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른데로 가보죠.”
잘 모르겠으니 두 눈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보고 정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빨리 가자면서 아샤와 미네르바의 손을 잡았고, 두 사람은 레이시의 손길에 레이시의 뒤를 따라가면서 아멜리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거의 세 시간을 쉬지 않고 걸은 레이시 일행.
레이시는 한참을 걷다가 다리가 저리기 시작하자 근처의 카페에 들어가서 레모네이드를 주문했고, 아샤는 레이시가 자리에 앉자 뭔가 좋은 게 떠올랐냐고 물어봤다.
“전혀요…….”
“응? 왜?”
“도시가 조금 이상한 느낌이라서 집중을 못 했어요.”
“뭐가 이상했는데?”
딱히 이상한 건 없었는데?
동양의 문화가 섞이고 퓨전 스타일인 곳이 많아서 낯설기는 했지만, 그거 외에는 딱히 이질적인 건 없었다.
치안이 나빴던 것도 아니고 완전히 기본 상식에서 동떨어진 문화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아샤가 생각할 땐 레이시가 이상하다고 말할 정도의 것은 없었기에 아샤는 레이시에게 뭐가 그렇게 이상했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아샤의 질문에 어색하게 웃다가 아이가 안 보여서 조금 이상했다고 말했다.
“아……, 그거야 뭐, 그럴 수밖에 없지.”
“네? 어째서요?”
“이주라는 건 아이가 있으면 조금 선택하기 힘든 일이거든. 그러다 보니 아직 결혼을 안 했거나, 결혼을 했어도 아이가 없는 젊은 부부나 자녀가 다 자라서 성인이 된 중년의 사람들이 오는 거야.”
“아하…….”
“그래도 슬슬 아이가 태어나거나 그럴 테니까 내년이나 내후년쯤에 오면 아이들이 보이지 않을까?”
“그런가요…….”
“응.”
레모네이드를 마시면서 생각에 잠기는 레이시.
아샤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다가 그렇게 아이가 신경 쓰이는 거냐며 말을 걸었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에일렌의 볼을 찌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일렌이 있으니까 어딜가도 아이부터 찾게 되더라고요. 아예 아이가 없는 곳이라면 아무래도 신경이 안 쓰이지만……, 도시라는 곳은 원래 아이가 있어야 하는 곳인데 아이가 없어서 신경 쓰였어요.”
“흐응. 그래?”
“네.”
“그럼 레이시.”
“네?”
“아이를 위한 건물을 지어달라고 부탁하는 건 어때? 학교라거나 보육소라거나. 그런 곳 말이야.”
“아!”
아샤의 말에 그런 수가 있었던 거냐며 놀라는 레이시.
아샤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찌됐건 네 이름과 엘라의 문장을 공식으로 달아놓을 수 있는 건물이 필요한 거니까.”
“에, 에에에에에…….”
“뭐라고 생각한 거야?”
“아뇨, 다들 제가 건물을 지으라고 해서 제가 개인적으로 사용하라는 건물을 지으라는 줄 알았어요.”
“음……, 하긴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네. 다들 건물을 지으라고 닦달하기만 했고 다른 부분은 전혀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그렇죠?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으면 병원을 짓던 학교를 짓던 보육원을 짓던 그런 건물을 하나 지어달라고 부탁하는 건데.”
“음, 학교를 지으면 뭘 기초적으로 가르쳐달라고 부탁할 거야?”
“글쎄요? 수학, 과학……?”
전생에서 다른 건 몰라도 수학이랑 과학만큼은 꽤 열정적으로 가르쳤으니까 수학이랑 과학은 반드시 배워야 하지 않을까?
물론 한국에서처럼 인간 닭장을 만들어서 가르칠 생각은 없지만.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아샤와 미네르바가 자기를 빤히 쳐다보자 어색하게 웃으면서 다급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왜, 그, 배에서 미스트가 말했잖아요. 항해 같은 거 하려면 삼각함수라던가 그런 거 잘 알아야 한다고. 그래서 수학이랑 과학 같은 건 배워두는 게 배 타는 데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하긴 해군에서는 수학과 천문학을 가르친다고 했었지. 나쁘지 않네. 여기 사람들은 좋든 싫든 항해를 배워야 하니까. 그리고?”
“네?”
“그리고 또 뭘 가르치고 싶어? 수학이랑 과학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잖아?”
아샤의 말에 눈을 깜빡이던 레이시는 에일렌을 바라보다가 이내 아멜리아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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