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7화 〉 이 도시는 누구의 것?2
* * *
“응헤에!”
“아하하핫!”
“꺄우우~!”
에일렌의 웃음에 똑같이 웃으며 에일렌을 바라보는 레이시.
레이시는 에일렌의 뺨을 쓰다듬다가 에일렌이 모래성을 만들고 그 위에다 또 그릇을 엎어서 2단으로 쌓자 박수치며 에일렌을 칭찬해주었다.
“꺄우, 꺄우우!”
그러자 모래성을 그대로 몸으로 무너트리는 에일렌.
걸음마를 연습하다 넘어지는 건 아파서 울었지만, 여기에서 넘어지는 건 아프지 않았기에 에일렌은 마음놓고 넘어졌고, 자기 배 아래에서 모래성이 무너지는 이상한 감촉에 꺄르륵 웃음을 터트렸다.
“에헤헤헤……, 재밌어요?”
“으웅! 응우!”
에일렌은 레이시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시 모래를 푸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모래 투성이가 되는 에일렌의 모습에 배시시 웃으면서 에일렌의 검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후후, 에일렌은 똑똑하네요오~.”
에일렌은 쉬지 않고 손을 놀리더니 이번에는 모래성을 세 개 연달아 쌓기 시작했다.
높이가 낮은 그릇이라도 모래성이 3개나 겹쳐지자 쌓기 어렵게 변했지만, 에일렌은 레이시에게 도와달라고 칭얼거리면서까지 꾸역꾸역 모래성을 3개나 쌓았고, 이내 눈을 빛내면서 그것을 있는 힘껏 발로 찼다.
푸석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방팔방으로 튀는 모래.
에일렌은 멀리 날아가는 모래의 모습에 발을 크게 앞뒤로 버둥거리면서 꺄르륵 웃었고,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샤는 엘라의 딸 답다면서 쓰게 웃었다.
“활기차거나 묘하게 공격적이거나 그런 걸 닮는 건다 좋은데 여자 취향 같은 건 안 닮아야 할 텐데 말이지.”
“아, 아하하하…….”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으응, 그건 역시 그럴지도.”
엘라를 좋아하니까 할 수 있는 말.
아샤는 레이시의 대답에 피식 웃으면서 레이시가 있으니까 아마도 그렇게 될 거 같지는 않다고 말해주었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헤픈 웃음을 지으면서 삽을 쥐고 싫증난 얼굴하고 있는 에일렌을 안아들었다.
“그만 놀까요?”
“마망! 마망!”
“네에, 마망이에요. 졸려요? 코오~하고 꿈나라에 갈래요?”
“우무?”
“네에, 꿈나라요. 코오~ 자요.”
에일렌의 옹알이에 싱긋 웃으면서 에일렌의 뺨을 쓰다듬어주는 레이시.
에일렌은 레이시가 하는 말은 잘 모르겠지만, 레이시가 일정한 리듬으로 등을 토닥여주자 천천히 눈을 깜빡이다가 늘어지게 하품하며 레이시의 옷을 꽉 잡았고, 레이시는 에일렌의 반응에 싱긋 웃으면서 에일렌을 데리고 방으로 돌아갔다.
몸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따뜻한 곳에 이부자리를 펼쳐 잠자리를 준비하고…….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자 에일렌은 지금은 자는 시간이라는 걸 깨닫고 레이시에게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으응, 더 놀고 싶어요?”
“먀아아아!”
“으응? 아닌가?”
“맘마!”
“아~ 배고파요? 맘마 먹을래요?”
“맘마! 맘마!”
에일렌의 요구에 쓰게 웃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미스트가 만들어두고 간 이유식을 데우는 레이시.
레이시는 이유식이 따땃하게 변하자 작은 접시에 덜어 에일렌에게 한 숟가락씩 떠먹여주었고, 에일렌은 레이시가 이유식을 먹이자 내심 아쉬운 듯 레이시의 가슴을 꾹꾹 눌러대면서도 별말 없이 이유식을 꿀떡꿀떡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레이시는 에일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가슴은 자고 일어나면 먹여주겠다고 속삭였고, 에일렌은 레이시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밥을 다 비우고는 그대로 레이시에게 얼굴을 파묻었다.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을 틈도 없이 포옥 안겨서 그대로 자버리는 에일렌.
노는 게 꽤 힘들어서 다른 때보다 빨리 잠들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빠르게 잘 줄은 몰랐던 레이시는 에일렌의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트리다가 이내 에일렌이 자는 걸 보자 똑같이 졸음이 몰려오는지 하품을 늘어지게 하면서 에일렌과 함께 얇은 이불을 덮었다.
공기 자체가 따뜻하게 데워지는 저택과는 다르게 등이 따뜻해지는 느낌에 레이시는 왠지 모를 향수를 느끼면서 그대로 잠에 빠졌고, 아샤와 미네르바는 에일렌과 자는 레이시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레이시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주었다.
“에헤헤…….”
“너도 레이시 닮아가네.”
“그런가?”
“응, 웃을 때라던가 그럴 때.”
“에헤헤헤.”
미네르바의 헤픈 웃음에 피식 웃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샤.
아샤는 미네르바에게 물을 마시겠냐고 물어보면서 컵에 물을 따르기 시작했고, 미네르바는 아샤를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누군가가 자기 방에 다가오는 걸 느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누구냐.”
“루룬이에요. 루룬 마케르크.”
“으응? 들어와도 된다. 근데 조용히 해라. 레이시 잔다.”
미네르바의 말에 조심스럽게 방에 들어오는 루룬.
아샤는 루룬이 방에 들어오자 컵을 하나 더 꺼내서 물을 건네주었고, 루룬은 아샤가 건네주는 물을 마시면서 방석 위에 앉았다.
“아샤 씨는 바닥에 앉는 게 익숙하지 않는 모양이네요.”
“아니, 바닥에 앉는 것 자체는 익숙해. 바닥이 따뜻한 게 익숙하지 않은 거지.”
“어머, 그렇군요. 군인분들에게는 이런 의자를 전해주는 게 좋을까요?”
“으응?”
의자에서 발을 잘라내 바닥에 앉는 의지를 건네주는 루룬.
아샤는 루룬이 건네준 걸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쭈뼛거리면서 의자 위에 앉았고, 루룬은 아샤가 앉자 어떠냐고 물어보며 수첩에다 필기하기 시작했다.
“으음, 편하네. 근데 군인에게 주는 게 아니라 오라토리엄 왕국 자체에 이렇게 바닥에 앉는 생활이 안 익숙하지 않아?”
“하긴 이거 동양의 문화니까요.”
“관광도시면 오라토리엄 왕국의 생활 방식을 그대로 꾸미는 게 좋지 않아?”
“상인분들을 대접하는 건 그렇지만, 관광을 위한 배에는 오라토리엄 형식으로 꾸며져 있거든요. 배에서 계속 오라토리엄 형식의 방에서 지내다가 나와서 보는 게 또 오라토리엄 왕국 형식의 방이라면 질리잖아요.”
“아하.”
“그래도 완전히 동양의 형식은 아니고 그릇이나 식기, 그리고 목욕용품 같은 것에서 미묘하게 오라토리엄 왕국의 형식을 섞어뒀으니까 그렇게 질릴 일도 없죠.”
“그런가……. 뭐, 나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 알아서 해줘. 그런데 왜 온 거야? 혹시 엘라의 말을 듣고?”
레이시가 부담을 느꼈으니 루룬이 직접 레이시에게 말하게 해서 부담감을 덜려는 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엘라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기에 아샤는 만약 그런 거로 왔다면 레이시에게 너무 부담을 주지 말라고 부탁했고, 루룬은 아샤의 말에 어색하게 웃다가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도시에 필요한 투자였는데 말이죠.”
“문제는 레이시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잖아.”
“아하하. 그렇죠. 이럴 때 보면 레이시 양이 일단은 평민이었단 게 실감하게 되네요.”
“귀족이 된 지 올해로 고작 1년이 지나가니까 귀족이라고 말하기도 좀 그렇지. 그리고 솔직히 나이만 따지면 에일렌과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된다고? ……야차에게 나이를 묻는 것자체가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그런가요?”
“나만하더라도 태어날 때부터 성인이었고, 사람도 죽일 정도로 완성된 존재였으니까 나이를 묻는 건 조금 애매하지. 그래도 레이시의 인생의 2/3정도는 평민으로 살았다는 것만큼은 기억해줘.”
“아하하…….”
루룬은 아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럼 어떻게든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거냐고 물어봤다.
“레이시 양의 건물이 있으면 좋겠는데. 이번에 방문하지 않았다면 이번 일이 끝나고 편지를 보낼 생각이었거든요.”
“흐으으음……. 꼭 필요해?”
“꼭은 아니지만,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필요한 편이죠. 평범한 관광도시와 왕족의 개인적인 건물이 있는 관광도시. 어느 쪽이 더 매력적으로 들리시나요?”
“어음……, 확실하게 후자가 더 매력적이네. 하지만 너무 무리시키지는 마. 레이시는 너와 엘레오놀 공주가 일군 도시에 자기가 이상한 걸 지어서 도시를 망가트리는 걸 신경 쓰고 있으니까.”
아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루룬.
루룬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면서 난처한 듯 뺨을 긁었고, 아샤는 루룬의 반응에 그 부탁을 하려고 온 거냐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루룬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엘라와 미스트가 지나가면서 부탁했다고 말해주었고, 아샤는 루룬의 말에 물을 마시다가 정 급한 일이라면 일이니까 명령 형식으로 하는 게 나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어머, 그러면 하극상이잖아요?”
“하지만 레이시에게는 그게 더 편할 거야. 병사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 있잖아. 부탁하는 것보다는 명령받을 때 더 편하게 일하는 사람들.”
“레이시 양은 그런 성격인 거 같기는 했죠. 하지만 그러면 엘라 공주님께 혼날 거 같아서요.”
“괜히 이것저것 간보다가 레이시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는 몇 배는 낫다고 생각해. 그리고 레이시에게 일을 부탁하려고 하면서 자기는 혼나지 않으려고 간을 보는 건 조금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후후, 그러네요. 죄송합니다. 그럼 레이시 양이 일어나면 그때 이야기해도 괜찮을까요?”
“응, 그러던지. 그건 레이시의 일이니까.”
아샤의 허락에 고개를 가볍게 숙인 다음 차를 마시면서 잡담을 이어갔고, 미네르바는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가 하품을 늘어지게 하다가 레이시의 이불에 파고들어가서 레이시를 날개로 안아주었다.
그 모습에 작게 웃는 루룬.
아샤는 루룬의 웃음에 인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루룬의 주의를 자기에게 돌렸고, 루룬은 한참 인어들과 협상하고 있을 엘라와 미스트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인어의 이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나누는 이야기라 그다지 영양가는 없었지만, 아예 아무런 영양가도 없었다고는 말하지 못할 그런 애매한 이야기.
그렇게 애매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레이시가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했고, 루룬은 레이시가 일어나자 반갑게 인사하면서 잘 쉬었는지 물어봤다.
“흐에……?”
처음에는 루룬을 인식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레이시.
하지만 잠시 후, 루룬을 인식한 레이시는 얼굴을 붉히면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고, 루룬은 레이시의 질문에 엘라가 한 말과 관련되서 할 말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아…….”
“혹시 원하시는 건물은 없나요?”
“그, 그으으…….”
“꼭 필요한 일이라서요. 빈 저택이라도 제가 관리해드릴 수 있으니 지어주셨으면 해요.”
“으으으…….”
루룬의 말에 한숨을 내쉬는 레이시.
레이시는 왜 자기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냐며 잠시 신세한탄을 하다가 꼭 지어야 하는 거라면 조금만 시간을 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고, 루룬은 레이시가 마음을 굳히자 싱긋 웃으면서 떠나기 전에만 말해주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으우우우웅…….”
루룬의 말에 한숨 돌린 레이시는 기지개를 쭉 켜면서 아멜리아에 필요한 건물이 뭐가 있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시 단위의 일을 배우지 않았던 레이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건물을 생각할 수가 없었고, 옆에서 레이시가 고민하던 걸 지켜보던 아샤는 레이시에게 도시를 구경하러 가보겠냐고 물어봤다.
“일단 눈으로 보면 뭐라도 좀 알 수 있지 않을까?”
“아……. 으응, 그럴까요?”
“그러자. 보고 정하면 편할 거야.”
아샤의 말에 그건 그렇다면서 고개를 끄덕인 레이시는 아직 꿈나라에 빠져있는 에일렌을 조심스럽게 포대기로 안아 자기 가슴을 베개 삼아 자게 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가 외출을 준비하자 자기도 일어나 외출의 준비를 끝냈다.
“그럼 가자, 주인.”
“나비도 데리고 가자. 하양이는 어제부터 피곤했는지 자더라.”
“네. 잠시만 기다려요.”
아샤의 말에 나비를 소환하고 산책가자고 말하는 레이시.
나비는 레이시의 말에 레이시와 아샤를 자기 등에 태우더니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미네르바는 그런 나비의 뒤를 따라가면서 아멜리아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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