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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388화 (388/542)

〈 388화 〉 아멜리아로 가는 길­3

* * *

“항구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정말이네.”

갑판 위에서 레이시의 허리를 쓰다듬는 엘라.

엘라는 수평선 너머에서 불빛이 아른거리자 레이시에게 커피를 마시겠냐면서 다른 손에 들고 있던 커피잔을 건네주었고, 레이시는 엘라의 커피잔을 받아들더니 오랜만에 가는 거라 들뜬다며 배시시 웃었다.

“그렇게 좋아?”

“음, 아무래도요. 오랜만에 루룬 씨도 만나고 재미있을 거 같아요.”

“루룬이 좋아?”

“아무래도요? 왕궁에서 보는 마리아 씨나 다른 분들도 재미있지만 그 분들하고는 개인적으로 놀 수 있지가 않으니까요.”

“레베카 언니는?”

“엮이면 왕족이니 뭐니 해서 귀찮아지니까……. 거기에다가 레베카 님이 부르는 곳에 가면 다른 귀족분들이 엮여서 미네르바에게 몬스터라고 험담을 한다거나 귀족이라면 다들 하는 거라면서 좋지 않은 일을 권유하기도 해서 귀찮아요.”

“흐음, 그래?”

레베카는 귀족으로서의 권위 의식이 별로 없어서 그런 짓을 안 하는 줄 알았는데…….

하긴 레베카 본인이 그런 생각이 없다고 해도 세력을 만들기 위해 더러운 녀석들도 받다 보면 이런 일도 생기겠지.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그렇게 생각하다가 하긴 루룬은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이라며 레이시의 등을 토닥여주었고, 레이시는 엘라의 손길에 조금은 복잡한 얼굴을 했다.

적어도 자기는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칭찬을 받는 거니 기뻐해야 했지만, 루룬의 과거가 과거라서 그런 건지 좀처럼 기뻐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다가 그렇게 기뻐하지 못하니까 왠지 못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도 들고…….

엘라나 루룬이나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지만 왜인지 모르게 그런 기분이 들은 레이시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엘라에게 기댔고, 엘라는 레이시가 자기에게 기대자 레이시의 턱을 가볍게 끌어당기더니 입을 맞추며 키득키득 웃었다.

“내가 좋아하는 건 레이시 밖에 없는데?”

“앗, 그, 으응……. 에헤헤…….”

“그나저나 바닷바람이 꽤 차갑네. 이제는 완전 가을이야. 육지에 다가가니까 그게 더 확실히 느껴진다. 그치?”

“네. 그러게요. 이제 꽤 춥네요…….”

전에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별자리를 보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런 건 전혀 못 하겠다면서 아쉽다고 말하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다음에 별이 잘 보이는 곳으로 데려다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레이시는 드래곤을 때려눕혀야 갈 수 있는 곳은 두 번은 가고 싶지 않다며 몸서리쳤고, 엘라는 레이시의 반응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다시 한번 입을 맞추며 별이 잘 보이는 곳이 어디인지 말해주기 시작했다.

“레이시가 생각하는 그런 곳은 아냐. 학자들이 별자리를 연구할 때 쓰는 곳이거든. 전국에서 제일 별을 잘 볼 수 있는 곳이야.”

“아, 아아~, 천문대에요? 전 또 이상한 곳에 가는 줄 알았잖아요.”

“천문대랑 비슷해. 정확하게는 대학도시라고 말할 수 있겠네.”

“대학도시요?”

“응, 처음에는 레이시가 말한 것처럼 천문대로 시작했는데 눈사태를 자주 겪으니까 지질학자와 연금술사를 불렀고, 눈은 해결했는데 설산의 몬스터가 해결이 안 되니까 군사학자와 기사들을 불렀거든. 그렇게 모이고 모이다 보니까 천문학에 연금술에 지질학에 특수 군사학까지 배우는 도시가 되어버렸어.”

“헤에에~. 그렇구나.”

“일 다 끝나면 가자. 거기로 사찰을 가는 임무는 늘 있으니까 한 번 확인하고.”

“네에~.”

“슬슬 내릴 준비하자. 피곤하지? 가자마자 일단 숙소부터 잡고 잠부터 자자. 일은 내일부터 해도 괜찮으니까.”

“그럴게요.”

엘라의 말에 늘어지게 하품하던 레이시는 미스트에게 가서 배가 언제 항구에 정박할 거 같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항구와 신호를 주고받다가 레이시의 질문에 지금 항구에 드나드는 배가 꽤 많은 것 같아 20분은 걸리겠다고 대답했다.

“으응, 하긴 다른 배하고 충돌 사고 같은 걸 일으킬 수는 없으니까 조심하는 게 좋겠네요.”

“그렇죠? 특히 배 같은 건 마차보다 방향전환이 어려우니 더욱 조심해야 해요.”

“아, 들어봤어요.”

차보다는 배가, 배보다는 비행기가 더 힘들다고 했던가?

배가 차보다 방향전환이 어렵다는 건 대충 예상했기에 그다지 신기하지는 않았지만, 비행기가 배보다 힘들다는 건 아무래도 신기했었기에 기억하고 내용.

레이시는 그 정보를 떠올리다가 그리폰 같은 건 어떠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질문에 그리폰이나 와이번을 사용할 경우에는 오히려 이런 일이 없다고 말해주었다.

“거의 안 타니까요. 기껏해야 기룡기사단이나 급한 일을 받은 신하들밖에 안 타는데 그런 일이 얼마나 있겠어요?”

“아……, 기룡기사단들끼리 진형이 무너지면요?”

“그럼 좀 난리가 나는데 그래도 힘이 강한 와이번이나 그리폰부터 지상에 착지하니까 진형이 무너지더라도 그다지 큰 난리는 일어나지 않아요.”

“그렇구나.”

비행기와 다르게 살아있어서일까?

레이시는 미스트의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생각하다가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들뜬 얼굴을 하면서 배 뒤편에 있는 인어들에게 다가갔다.

이미 아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인어들.

레이시는 그 인어들에게 20분 뒤면 항구에 정박할 테니 적당한 해안 근처에서 대기해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고, 인어들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분위기가 부드러운 레이시의 목소리에 인어의 보물을 얻기 위해서 협상하려고 했다.

“레이시, 에일렌은?”

“아직 자고 있는데……, 슬슬 정박하니까 안고 있는 게 좋을까요?”

“응, 그래.”

아샤가 곧바로 막긴 했지만.

아샤는 레이시를 여기에 두면 귀찮은 일이 된다는 걸 직감하고는 레이시를 곧바로 에일렌에게 돌려보낸 다음 인어들을 노려봤고, 인어들은 아샤의 시선에 혀를 차면서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

“후우……, 조금만 틈을 보이면 이런 짓을 하려고 하니……. 저기 미스트!”

“응? 왜 그러세요?”

“인어라는 건 특출나게 강한 개체가 없는 거야? 왜 이렇게 얕보는 거야?”

“아아~ 인어는 평균적으로 강하고 개체의 역할이 거의 정해져 있는 편이에요. 태어날 때부터 강한 사람은 전사가 되고 약한 사람은 농부나 대장장이로 정해져 있죠. 그리고 그 특징이 외형으로 드러나 있고요.”

“……그래?”

“사람들과 오래 산 인어들의 경우에는 그런 경향성이 사라진다지만, 이 인어들은 그런 게 아니니까요. 예전에 그런 전설 있었잖아요? 해군이나 해적이 인어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노랫소리로 유혹한 다음 바닷속으로 끌고 가서 씨앗을 얻은 뒤 죽인다는 거. 그게 외형적으로 강해 보이는 씨앗을 얻기 위해서 그런 거라는 학설도 있어요.”

“하아……, 그래?”

“그렇답니다.”

국가를 이루지 않고 부족 단위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는 자주 보이는 현상이니 그냥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미스트.

아샤는 미스트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자기는 야차라서 그런 건 잘 모르겠다고 어깨를 으쓱거렸고, 미스트는 아샤의 말에 아샤가 이해하긴 힘든 내용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흔쾌히 수긍했다.

“그럼 그냥 그러려니 하세요.”

“쯧, 알았어. 그것보다 여관을 구할 수 있겠어? 아무리 이 배가 흔들리지 않는다고 해도 섬에 도착할 때마다 간이 천막을 치고 야영한 걸 보면 레이시, 커다란 배게와 침대에 몸을 파묻고 따뜻한 방에서 자고 싶은 거 같던데…….”

“으음, 글쎄요. 저번 명명식 이후로 꽤 발전한 거 같은데 고작해야 6개월이잖아요? 공주님이 마음 놓고 잘 수 있을만한 여관이 만들어졌을까 싶네요.”

오라토리엄 왕국과 도스토 연맹국 공주의 지원을 받고 있고 지속적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계획도시라고 해도 아직 6개월 밖에 지나지 않은 도시.

아무래도 충분히 발전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고, 온갖 이민 희망자를 받아 규모를 키웠다고 하더라도 내실이 탄탄하게 받쳐줄지는 미지수.

지금 당장 왕궁에 찾아가도 중간역을 차지할 수 있을 정도의 재능을 지닌 사람이 활동하고 있다면 그 사람이 일하는 곳의 내실은 튼튼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전체적인 평가는 어떻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굳이 한다면 엘레오놀 공주와 루룬이 자는 저택에서 하룻밤을 잔다거나 아니면 이제 막 지어진 여관을 빌려서 자신이 준비를 하고 일행을 들일 수밖에 없다.

여관 쪽에서는 엘라 공주의 취향으로 맞춰진 여관이라고 홍보하면 여관의 수준이 높아지는 거니 기뻐하겠지만…….

“곤란하네요.”

“으응?”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차라리 폐관된 여관이 있으면 좋겠는데……. 저희가 썼다고 하더라도 무너트리고 다시는 안 쓸 건물.”

“그런 사정 좋은 건물이 있을 리가 없잖아. 나나 네가 쓰는 거라면 몰라도 엘라가 쓰는 건 얄짤없고 레이시도 아슬아슬해. 이미 소문은 여기까지 퍼졌을 테니까.”

“아하하하, 아샤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까 참 이상하네요. 마치 어린애한테 요리에 대한 지적을 들은 기분이에요.”

“뒤진다.”

“뭐, 미스트가 말한 게 맞긴 해요. 루룬 님과 엘레오놀 공주님이 힘써준다고 해도 여관 주인이 뭐라고 하겠죠. 그렇다고 여관 주인에게 돈을 줘버리면 나중이 귀찮아지고……. 그냥 조용히 사라져주면 좋을 텐데 말이죠.”

“죽이는 건 안 돼.”

“죽이기는요.”

싱긋 웃으면서 어디까지나 살려는 준다고 말하는 미스트.

아샤는 그런 미스트의 말에 한숨을 내쉬면서 어련히 그러겠다고 말한 다음 아래로 내려가 하양이에게 고삐를 채웠고, 하양이는 오랜만에 찬 마차의 고삐가 낯선지 가볍게 투레질한 다음 배의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그리고 천천히 배의 문이 열리자 하양이는 나비가 먼저 나간 다음 천천히 배에서 내려 항구에 마차를 내려놓기 시작했고, 그 다음 레이시와 다른 사람들도 배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그럼 배를 맡기고 올 테니 공주님은 루룬 마케르크님과 엘레오놀 공주님을 뵙고 와주세요.”

“알았어.”

“아샤, 아샤는 인어들에게 다시 한번 주의를 주시고요.”

“그래.”

“레이시, 오늘은 레이시가 잠들고 나서야 갈 수 있을 거 같아요. 먼저 주무세요. 미네르바, 레이시를 부탁할게요.”

“네에~ 조심해서 일하고 오세요.”

“천천히 와라. 주인 옆에는 내가 잘 거다.”

미스트의 지시에 빠르게 움직이는 일행들.

레이시는 미스트에게 조심해서 돌아오라고 말한 다음에 엘라를 따라 움직였고, 엘라는 레이시와 미네르바가 따라오자 저번에 방문했었던 건물로 들어갔다.

연이은 증축 때문에 원래의 흔적을 찾기 힘들었지만 어떻게든 엘레오놀의 집무실에 들어간 엘라는 엘레오놀과 마주 보고 앉았고, 엘레오놀은 오랜만에 보는 세 사람의 얼굴에 반갑게 맞이했다.

“인어들은 바다에 있겠죠?”

“응, 아직 바다에 있어.”

“아직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인어 같던데 쉽게 따라오던가요?”

“안 그래도 데리고 오는 길에 쉬는 시간하고 그런 것 때문에 꽤 많이 싸웠어. 지들이 무슨 상전인 줄 알아. 해적들을 피해서 살려달라고 부탁하는 건 저쪽인데 말이지.”

“남성 위주의 부족 사회만 겪은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죠. 남자가 가서 명령하면 잘 듣는데 저나 엘라 공주님 같이 여자가 가면 이야기를 잘 안 들어요. 모계 사회의 사람들은 그럭저럭 듣는데 말이죠. 보고 느낀 게 그거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지만요.”

“하아……, 여하튼 건물을 하나 구해줬으면 좋겠는데 괜찮겠어?”

“수면을 취할 건물이죠? 한 달 전부터 밑준비를 해뒀어요. 지도를 드릴 테니 미스트 씨가 오면 건네주세요.”

“고마워.”

“뭘요.”

싱긋 웃으면서 레이시를 바라보는 엘레오놀.

레이시는 엘레오놀의 시선에 어색하게 웃다가 미스트가 숙소를 청소할 때까지만 엘레오놀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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