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2화 〉 해적들과의 해상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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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와 잠자리를 약속하고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레이시는 나비를 씻기고 하양이와 놀아주고 배에서 나오는 배설물을 처리하는 슬라임의 증식 상태를 확인하고는 슬라임 제초제를 뿌리는 등의 일을 열심히 했고, 미스트는 레이시가 쉬는 시간이 될 때마다 레이시와 함께 아이의 이름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매이니 조금 비슷한 이름을 해주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도 그게 좋을 거 같아요.”
한동안 좋은 이름을 생각하지 못해서 망설이던 미스트와 레이시.
미스트는 이런 식이라면 엄청 걸릴 거라고 말하면서 조건부터 정하기로 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자매이니까 비슷한 구조에 여자애 같은 이름이 좋다며 미스트에게 안겨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름이 좋을까?
만약 자기가 쌍둥이였다면 좀 더 쉽게 이름을 지어줄 수 있었을 건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미스트의 수첩을 바라보던 레이시는 문득 좋은 이름이 보여서 이 이름은 어떠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질문에 레이시가 가리킨 곳에 적힌 이름을 보다가 이 이름이 좋냐면서 손가락으로 레이시에게 한 번 확인했다.
“메아랑 레아요?”
“네, 어때요? 미스트의 ‘ㅁ’이랑 레이시의 ‘ㄹ’자가 들어가잖아요.”
“으응~. 메아랑 레아……. 메아랑 레아…….”
“……별로에요?”
“아뇨. 조금 더 고민해봐도 괜찮을까요? 소중한 이름이잖아요?”
“에헤헤…….”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아랫배를 잡는 레이시.
미스트는 레이시의 반응에 레이시의 배를 끌어안으면서 요즘에 피곤하지는 않은지 물어보면서 낮잠은 어떤지 물어봤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질문에 안 그래도 요즘에 낮잠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며 어색하게 웃었다.
“애가 크면서 피곤해지는 거니까 어쩔 수 없죠.”
레이시의 말에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말하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다독임에 어색하게 웃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애 이름을 다시 생각해보자고 말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이내 고개를 위로 들더니 침대에서 일어났다.
“죄송해요. 섬에 도착했어요.”
“아, 정말요?”
“네. 분신에게서 정보를 받았어요. 약 3km만 더 움직이면 저희 섬에 도착해요.”
미스트의 말을 들은 레이시는 하양이와 산책을 갔다 온 다음에 낮잠을 자도 괜찮겠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같이 올라가자면서 레이시에게 손을 내밀었다.
“왔어? 그럼 본체로 배 조종해.”
“네, 공주님.”
“레이시, 에일렌은?”
“지금은 미네르바랑 슬라임 블록으로 놀고 있어요. 재미있게 놀더라고요.”
레이시는 엘라의 질문에 대답하다가 말고 볼을 빵빵하게 만들더니 블록 놀이를 할 때는 엄마인 자기보다 미네르바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면서 질투를 보였고, 엘라는 레이시의 질투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레이시의 허리에 손을 두르고 왜 낮잠을 안 자고 위로 올라왔는지 물어봤다.
“하양이랑 산책하게?”
“네, 계속 낮잠만 자고 배 위를 산책하기만 했으니까요. 섬에 발을 디디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음, 그건 그렇지.”
이제는 육안으로도 보이는 섬을 보고 레이시의 배를 힐끗 쳐다보는 엘라.
거의 티가 나지는 않지만, 서서히 배가 부르기 시작하는 레이시의 배.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배에 조금은 복잡하고 미묘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레이시가 막상 다른 사람의 아이를 배에 품고 있자 질투는 물론이고 다른 감정까지 마구 끓어올랐다.
마치 녹아내린 납을 거푸집에 흘려보내듯이 무겁고 꿀럭거리듯 흘러넘치는 감정.
엘라는 그 감정에 레이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자기 가슴을 짓누르는 감정을 한숨 한 번에 털어버리고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고, 레이시는 엘라의 한숨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엘라를바라봤다.
“으응, 뭔가 고민 있어요?”
한숨이라니 엘라답지 않다.
레이시는 그렇게 말하면서 고민이 있다면 자기에게 말해달라고 부탁했고,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피식 웃더니 아무것도 아니라며 레이시의 머리를 가볍게 눌러 쓰다듬었다.
처음부터 독점욕을 느낄 거라고 생각하긴 했었지만, 그 부분은 각오한 부분.
자기가 각오한 것조차 못 이길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았기에 엘라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가볍게 젓더니 산책을 할 때 조심하라고 말했다.
“가끔 빈 섬을 점거해서 기지로 쓰는 해적 녀석들이 있거든. 그게 아니더라도 독을 가진 토착 생물이 있기도 하고. 하양이라면 똑똑해서 자기가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정도는 구분하겠지만, 웬만하면 아무것도 먹지 말고 있다가 미스트가 조사를 끝내면 그 때 밥 먹여.”
“네에~.”
해적인가.
이 일주일 동안 다른 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레이시는 전생에 봤었던 해적 영화를 떠올리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고, 엘라는 레이시의 반응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해적을 보는 건 엄청 힘드니까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저 정도 규모의 섬이면 30개 중에 하나 밖에 없으니까 안심해.”
“으응~. 3.3%인가요? 그럼 꽤 높은 거 아닌가요?”
“수학적으로 생각하면 그런데 실질적으로는 섬을 30곳 정도 돌아다녀도 해적을 한 번 이상 볼 확률은 63%정도 밖에 안 해. 생각보다 낮지?”
“에에, 왜 그런 거예요?”
“독립시행이라서. 해군 본부에서 낸 보고서에 적혀 있는 거니까 아마 맞을 거야.”
자세한 걸 설명하려면 이야기가 길어지니 대충 그렇다고만 생각하라고 말하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어색하게 웃다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배가 근처에 정박하자 하양이와 함께 섬으로 헤엄쳤고, 섬에 발을 디디자마자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키가 큰 나무가 많은 섬.
섬의 숲은 나무가 빽빽하게 자라 있지는 않지만, 키가 큰 나무밖에 없어서 도통 안을 알 수 없었고, 레이시는 그런 숲 안쪽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미네르바에게 하늘에서 정찰해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
“알겠다, 주인. 조심해서 따라와라.”
“네에~.”
미네르바의 위치라면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테이밍 스킬이 발전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연정의 야차가 발전해서 이렇게 된 건지…….
저번에는 한 번도 보지 못했었던 미스트의 악마를 소환해서 적과 싸웠으니까 아무래도 후자 쪽이려나…….
가만히 앉아 있어도 하양이가 자기에게 맞춰주기 때문일까?
레이시는 그런 잡스러운 생각을 하면서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휘파람 소리에 맞춰서 날다가 이내 나뭇잎이 흔들리는 걸 보고 레이시의 앞에 착지했다.
“주인. 저기로 400m 쯤 가면 뭔가 있다.”
“네?”
“나뭇잎이 인위적으로 흔들렸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살아있는 게 있다.”
“으응, 설마 해적일까요?”
확률상으로는 3.3%라고 했는데 설마…….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말에 작게 웃다가 미네르바에게 호위를 부탁한 다음 미네르바가 말한 곳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고, 이내 미네르바가 말한 존재들과 맞딱트렸다.
“와아~, 해적이네요.”
“그런가?”
“딱 봐도 해적이잖아요. ……이걸 운이 좋다고 말해야할지 아니면 운이 없다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땀에 쩔어서 누렇게 변한 셔츠와 술에 쩔은 얼굴.
딱 영화에서 보던 해적들의 모습이라 레이시는 한숨을 푹 내쉬다 저기에다 총만 있으면 완벽하겠다는 농담을 건넸고, 해적들은 레이시의 모습에 당황하다가 이내 레이시가 여자라는 걸 확인하고는 음심에 가득한 눈으로 레이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한 번 나가면 거의 육지에 돌아오지 못하는 뱃생활.
거기에다가 거금을 아무리 들이더라도 운이 없으면 안을 수 없을 정도의 미녀.
해적들은 레이시를 보고 몰래 납치하기로 한 다음 하양이의 등에서 내려오는 레이시에게 다가가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그런 해적들을 보고는 자기가 확실히 변했다는 걸 인지하기 시작했다.
예전 같았으면 저런 사람이라도 상처를 입히는 게 옳은 짓인지 고민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해적이 칼을 뽑아들자 그대로 채찍으로 칼의 옆면을 가볍게 쳤고, 칼이 깔끔하게 잘리자 채찍을 회수한 다음에 다른 해적을 쳐다봤다.
“으으음~, 으음……, 바다에서는 야차가 안 유명한 걸까요?”
“애초에 지상에서도 안 유명한 걸로 알고 있다.”
“아, 하긴 그렇겠네요. 다른 사람들도 그런 반응이었고…….”
태평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레이시와 미네르바.
해적들은 두 사람의 태평한 모습에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다가 하양이가 투레질하면서 거칠게 땅을 헤집기 시작하자 도주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하양이가 조금만 더 작았으면 모를까 저런 크기, 저런 근육의 산양이라면 나무를 무시하고 일직선으로 달려들어 자기를 짓밟을 것이다.
“하, 항복!”
그렇다고 싸우자니 레이시와 미네르바를 이길 수 없다.
두 사람의 정체가 뭔지 전혀 모르겠지만, 그것만은 확실히 느꼈기에 해적들은 곧바로 항복을 외친 다음 머리를 숙였고, 레이시는 그런 해적들의 모습에 눈을 깜빡이다가 손을 위로 들어 엘라를 흉내내보자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세한 건 알 수 없지만, 지금 이런 때에 연습하지 않으면 정작 필요할 때 쓰지 못할 테니까.
“와, 쏴지네요.”
“엘라와는 다르게 초록색이다.”
“아하하, 제 마력색이 초록색인가 봐요.”
“주인 머리카락이랑 잘 어울린다~.”
“아하하, 그래요? 참, 거기에 계신 분들, 도망치면 위험해요.”
미네르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해적들이 꼼지락거리자 고개를 돌리고 주의사항을 주는 레이시.
해적들은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하늘에서 아샤가 도끼와 함께 뚝 떨어지자 침을 꿀꺽 삼키며 아샤를 바라봤고, 아샤는 레이시의 몸에 상처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해적들을 쳐다봤다.
“힉…….”
“이 쓰레기 새끼들이…….”
바닥에 부러져 있는 칼, 풀려있는 레이시의 채찍과 레이시가 쏘아 올린 신호.
그 세 가지 정보를 종합한 아샤는 그냥 이 자리에서 즉결처형을 해버릴까 고민했지만, 이내 레이시의 배를 보고는 레이시와 미스트의 아이에게 악영향을 줄 거라며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일어나. 미네르바, 나를 도와줘. 레이시는 돌아가고.”
“으응……. 네, 조심해주세요.”
“그래, 저기로 걸어가면 엘라가 오고 있을 거야.”
“네.”
아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하양이의 등에 올라타서 발걸음을 옮기는 레이시.
레이시는 아샤의 말대로 엘라가 보이자 엘라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고, 엘라는 레이시의 인사에 안 다쳤냐면서 다급하게 다가갔다.
“네, 안 다쳤어요.”
“정말이지?”
“네, 그, 해적들하고 맞딱트리기는 했는데 잘 제압했고 엘라를 부르기 위해서 엘라의 마탄을 흉내낸 거였어요.”
“……휴우, 정말 다행이다. 난 또 다친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다음부터는 마탄을 쏘지 말고 하양이를 돌려보내 달라고 부탁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어색하게 웃다가 연정의 야차 스킬을 확인하고 싶어서 그랬다면서 엘라에게 사과했다.
“그래서 뭔가 좀 변한 거 같아?”
“으응……. 제가 다치면 엘라가 슬퍼하니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그건……, 잘 됐네.”
레이시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해적을 상대로 망설이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는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추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입맞춤에 배시시 웃다가 엘라에게 자기는 배로 돌아가겠다고 말하면서 하양이를 대신 산책시켜줄 수 있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하양이의 등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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