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0화 〉 인어 이주 계획2
* * *
“배를 말입니까……. 장거리 항해인데 괜찮겠습니까?”
“어차피 내가 빌린 배에는 선원이 필요 없잖아? 괜찮아. 다만 다량의 과일과 육류를 준비해줘. 바다에 나가서 한 달 동안 돌아다닌다고 해서 해산물만 먹으면 질릴 테니까. 그리고 정말로 사업 확장의 기회를 포기해도 괜찮아?”
“네, 괜찮습니다. 저희 가문의 이 사업체는 왕가에 서비스하기 위해서 다른 것을 모두 포기하는 가문. 괜한 사업 확장을 시도했다가 큰 손해를 보는 것은 지양하고 싶습니다.”
“흐으응……, 미안한 제안을 했네. 다른 원하는 게 있을까? 배를 두 달이나 빌리게 될 텐데 그 부분에 대한 건 어떻게 값을 치르고 싶네.”
배를 빌리는 일은 의외로 쉽게 끝났다.
배를 빌리는 대가에 대한 건 아직 합의되지 않았지만, 배를 빌리는 것 자체는 이미 결정되었고 사용인들에 의해서 장기간의 항해를 위한 옷과 식량, 의약품이 준비되고 있었다.
“소속 보부상이나 작은 상단 같은 게 있을 거 아냐? 그 상단이 아멜리아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어. 아멜리아에서 얼마만큼의 활약을 보이는 가는 그 상단의 역량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제 막 이 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한 장식품을 구할 수도 있다고?”
“그런 거라면 확실히 부탁드리고 싶군요.”
“음, 보안상의 문제로 우리랑 같은 배에 태울 수는 없겠지만, 같이 따라오거나 그런 거는 못하겠지만 추천서를 써줄게. 상단의 책임자와 상단의 구성원, 그리고 상단의 이름과 마크를 보여줘. 되도록 길드 소속이란 증거도 보여주면 좋겠고.”
“알겠습니다. 10분만 기다려주시면 됩니다.”
엘라의 말에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나가는 상인.
레이시는 그 둘의 대화를 보고 있다가 사용인들이 차를 내려오자 고개를 꾸벅 숙인 다음에 엘라의 귀에다 대고 귓속말을 속삭였다.
“어음……, 엘라. 뭐 하나 물어봐도 괜찮아요?”
“응? 응.”
“이번 거래, 엘라가 일부러 저 분에게 양보를 하는 거예요?”
“헤에~? 왜 그렇게 생각해?”
“으응, 다른 거래를 할 때보다 너무 상대방에게 유리하게 하는 거 같아서요.”
레이시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감탄하면서 레이시의 뺨에 입을 맞추는 엘라.
엘라는 레이시의 어깨를 꽉 끌어안더니 점점 똑똑해진다면서 레이시를 칭찬해주었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얼굴을 붉히며 다른 사람이 있다고 말하다가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왜 굳이 엘라가 더 많이 양보를 해주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공평한 거래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왜 이번에는 엘라가 상대방에게 더 많은 양보를 했을까?
“왕가에게 봉사하는 가게가 아멜리아에 들어간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홍보가 되기 때문에 그래.”
“네?”
“왕가에게 봉사하는 상단이 있는 도시는 한 마디로 오라토리엄 왕국에서 그 분야에 대해서는 목에 힘을 줄 수 있는 도시가 된다는 거야. 예로 들어서 음악궁이 있겠네. 알지?”
“실……, 음, 실로트 왕자님이 있는 궁전이었죠?”
“그래, 그 궁전. 그 궁전에 악기를 대는 상단은 총 2곳이야. 한 상단은 악기의 개발, 판매를 도맡고 있고 다른 상단은 조율에 대해서 맡고 있지. 그리고 그 두 상단이 있는 도시는 현재 음악의 도시라고 불리면서 음악 대학이 있고 온갖 콩쿨이 열려. 그리고 귀족들은 그 도시에서 친목을 쌓지.”
“어……, 그러니까 아멜리아에 저 선박회사가 정착하면 아멜리아가 선박의 도시가 된다는 거예요?”
“음, 선박의 도시라고 할까……, 아마 유람선의 도시? 잘 모르겠네. 하여튼 연을 닿아놓으면 도시를 발전시키기 쉬워. 그래서 수많은 영주가 왕가에 연을 대고 있는 상단을 어떻게든 자기 영지로 끌어들이려고 하고 있어.”
“으응, 그러면 지금 이 상단은 아멜리아에 가도 되는지 안 되는지 몰라서 휘하의 상단을 보내는 거예요?”
“응. 그렇지. 아멜리아는 생긴지 1년도 안 된 도시니까.”
반대로 이쪽은 생긴지만 200년이 더 된 상단.
30년에 한 번 상단주가 바뀌었다고 해도 벌써 6대, 7대를 넘긴 상단이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도시보다 더 오래 살아남아 오라토리엄의 역사를 장식하고 있었다.
고작해야 1년 남짓한 역사를 지닌 아멜리아에 가는 건 도박수도 아니고 그냥 자충수겠지.
아마 휘하 상단을 보내서 도시를 파악하고 어느 정도로 관여하는 게 좋은지 탐색하는 게 최고의 투자일 것이다.
이러면 실패하더라도 내 이름을 대고 자기는 왕가에 대해 봉사했을 뿐이라며 다른 상단주에게 목에 힘을 주고 다닐 수 있으니까.
“정치와 경제는 언제나 붙어 있어서 내 말을 어떻게 거절할 수는 없었을 거야. 그래서 방금 난 처음에는 일부러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을 한 다음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을 한 거야.”
“그렇구나.”
엘라의 말에 전생에서 봤었던 잡학 상식을 떠올리는 레이시.
다른 건 다 몰라도 무리한 부탁을 했다가 원래 원하는 부탁을 하면 상대방을 쉽게 설득할 수 있다던가?
아무래도 좋은 잡학이지만…….
레이시가 그렇게 생각하며 엘라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상단주는 다시 들어와서 상회의 조직 구성원과 재산과 교역의 내용이 적힌 서류를 건네주었고, 엘라는 상단주가 건넨 서류를 읽은다음 계약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럼 잘 부탁하지.”
“거래, 감사했습니다. 또다시 오라토리엄의 공주님이신 엘라 파우스트 오라토리엄 님께 봉사하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음. 그럼 수고해.”
상단주의 인사에 손을 가볍게 흔들고 나가는 엘라.
레이시는 상단의 사용인들이 짐을 옮기기 시작하자 짐을 대신 들고서 걷기 시작했고, 엘라는 레이시의 모습을 흘깃 쳐다보고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자기 키보다 2배는 더 높게 물건을 쌓아올리고 태평하게 걷는 레이시.
몸의 오른쪽에만 300kg 이상의 짐이 쌓였는데 중심이 흔들린다거나 몸이 기울어지는 것 없이 태평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걷는 모습에 엘라는 레이시에게 만약 자기에게 스팽킹할 거면 힘조절을 해달라고 부탁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귓속말에 얼굴을 확 붉히며 엘라를 노려봤다.
“그, 그런 말을 무슨 밖에서 하는 거예요!?”
“안에서는 해도 돼?”
“그, 그때는 저희들밖에 없으니까……. 그래도 에일렌 앞에서는 안 되는 거 알죠?”
“그 정도는 알지.”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추고 배에 올라타는 엘라.
엘라는 사용인들에게 사용인들은 여기까지 따라오라고 말한 다음 짐을 안쪽으로 옮기기 시작했고, 한 달 분량의 식량과 인어에게 줄 과일들을 전부 옮긴 레이시는 기지개를 켜면서 배 안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미스트에게 다가갔다.
“아직 일하는 중이에요?”
가볍게 노크한 다음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입을 벙긋거리는 레이시.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을 용케 알아듣고는 그냥 말해도 괜찮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서 옆으로 오라고 말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미스트의 옆자리에 앉아서 수정구를 바라봤다.
“그 목소리는 레이시 씨인가요?”
“아, 엘레오놀 공주님. 안녕하세요~. 루룬 씨는 어디에 계신가요?”
“루룬 씨는 의사하고 같이 있어요.”
“네……?”
“슬슬 배가 불러서 의사한테 주의사항을 듣고 있어요.”
“아…….”
그러고 보니까 결혼하셨었지.
레이시는 엘레오놀의 말에 자기가 봤었던 주례를 떠올리고는 어색하게 웃기 시작했고, 엘레오놀은 레이시의 웃음소리에 인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정말 다행이에요. 안 그래도 인어의 이주를 계획해야하나 고민했거든요.”
“네? 왜요?”
“음, 그러니까 오라토리엄 왕국이나 도스토 연맹국과는 다르게 다르게 동쪽의 나라에서는 아무래도 종족 간의 교류가 원활하지 않은 모양이에요. 교류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각 종족의 개성을 살리기보다는 집단의 특색을 살리는 느낌이 강해요. 따라서 종족 전통이 아니라 집단의 특성에 더 가깝죠.”
“으응~, 많이 차이 나나요?”
“네, 당장에 호위병들의 무기만 봐도 꽤 차이가 나네요.”
그런 걸로 알 수 있는 걸까?
레이시는 엘레오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그런 부분은 자기보다 엘레오놀이 더 잘 알겠다 싶어 대충 고개를 끄덕인 다음 수정구를 향해서 인어들이 살 수 있는 곳을 찾아주겠냐고 물어봤고, 엘레오놀은 레이시의 말에 이미 조사를 지시했다고 말했다.
“사실 해저면에 대한 것이나 이 근방의 수생식물, 물 온도나 다른 것들은 이미 조사를 끝낸 상황이지만요.”
“감사해요오오~.”
“뭘요. 제가 오라토리엄 왕국에 더욱 관여되면 관여될수록 뇌가 근육으로 가득 찬 불멸의 장군이 전쟁을 일으킬 수 없게되니까 훨씬 좋죠. 아, 그나저나 그 이야기 들었어요.”
“네?”
“검성 씨를 고자로 만드셨다면서요.”
“프헷……!?”
“잘하셨어요. 뇌가 하반신에 달린 그 사람은 그걸 잘라내야만 했어요. 아아~ 불쌍한 검성. 왜 그런 몹쓸 병에 걸려서……. 레이시 씨가 치료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벼, 병이요?”
“네, 제가 방금 명명했는데, 그러니까……. 아~! 그러니까 뇌수 대신에 정…….”
“우와아아아! 알겠어요! 알겠으니까 그 이상 말하지 마세요!”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와 헛기침을 하는 걸 보면 그 삿된 말 노트를 꺼내는 게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엘레오놀이 엄한 말을 하려고 할 때 곧바로 반응하면서 엘레오놀에게 그 이상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고, 엘레오놀은 레이시의 다급한 고함에 웃음을 터트리며 아쉽다고 말했다.
“다음에는 꼭 이야기하고 싶네요.”
“괜찮아요!”
“후후, 네. 하여튼 조사는 끝내뒀고, 시간을 벌어야 하는 걸 알고 있으니까 제가 제 이름을 사용해서 레이시 양이 시간을 벌 수 있도록 해줄게요. 참, 이 근방에 좋은 온천을 발견해서 온천거리를 만들고 있는데 거기에서 목욕해보시겠어요? 연금술사의 말로는 피부가 좋아진대요.”
“정말요? 온천이라……, 꼭 가보고 싶어요!”
전생에서는 일본이 아니라면 온천이라는 이미지를 쉽게 상상할 수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오라토리엄의 건축양식은 서양의 건축 양식을 따르는 편인데 그러면 고대 그리스의 목욕탕 같은 게 나오려나?
어느 쪽이든 좋지만…….
레이시는 기대감에 부푼 목소리로 엘레오놀에게 온천에 대한 걸 계속해서 물어봤고, 엘레오놀은 레이시의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이야기할까요? 남은 건 다음의 선물로……. 직접 보는 게 또 재미있잖아요?”
“네~! 다음에 또 대화할 수 있길 기다릴게요. 즐거웠어요. 엘레오놀 공주님.”
“네, 다음에는 저를 꼭 엘레오놀이라고 불러주시길.”
“아하하……, 노력해볼게요!”
엘레오놀의 장난기 섞인 말에 대답한 다음 미스트를 바라보는 레이시.
미스트는 레이시의 시선에 수정구의 연결을 끊고서 레이시를 끌어안았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포옹에 미스트를 껴안고 부비적거렸다.
“잘 다녀왔나요?”
“다녀왔어요오~.”
“그나저나 한 달간 뱃사람 생활이라……, 시간이 넘치겠네요.”
“그러게요.”
“그럼 아이의 이름을 같이 정해볼까요? 한 달이나 머리를 비우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요.”
싱긋 웃으면서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얼굴을 붉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미스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고, 미스트는 레이시가 품에 안기자 레이시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수첩을 펼쳤다.
“……힉!?”
“왜 그러세요?”
“아, 아니……. 응……, 이, 이 중에서 고르는 거죠?”
“아뇨? 좀 더 생각해야죠. 고대의 언어까지 전부 섭렵했답니다~?”
……고를 수는 있을까?
레이시는 엘라 때보다 더 심해진 광기의 편린에 어색하게 웃다가 이내 미스트의 품에 얼굴을 파묻어버리며 생각하는 걸 멈추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