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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379화 (379/542)

〈 379화 〉 인어 이주 계획­1

* * *

그 뒤로는 며칠 동안 별 일이 없었다.

가끔 항구에 정박해서 나비와 하양이, 두 마리의 애완동물과 함께 산책하고 미네르바와 아샤가 낚은 물고기로 밥을 먹거나 때때로는 부부의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상.

레이시는 할 게 워낙 없다 보니까 산책을 다녀 오거나 에일렌을 재운 다음에는 배 위에서 사용하는 깃발 신호에 대해서 배우기 시작했고, 수평선 너머로 보이는 신호를 보고 다른 일행에게 말해서 정답을 확인 받는 것으로 놀기 시작했다.

“으응?”

그리고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

레이시는 에일렌이 자기 품에 안겨서 자자 에일렌을 소중하게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주다가 어떤 배가 붉은 깃발을 위로 들어올리자 눈을 깜빡이면서 엘라에게 붉은 깃발이 올라왔다고 소리쳤다.

“깃발이 몇 개야?”

레이시의 말에 하품을 하다가 천천히 레이시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가 올라오자 깃발이 2개라고 말해줬고,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가볍게 혀를 차면서 기지개를 켰다.

“으음, 몬스터인가보네.”

“네?”

“깃발 하나는 이상해류 발생, 두 개는 몬스터, 세 개는 수적의 등장을 알리는 거거든. 참고로 4개면 무슨 일이든 절대 항해 금지 신호야.”

깃발이 2개 올라가 있으니 딱히 배가 부서질 정도의 위험은 아니라고 말하는 엘라.

엘라는 귀찮다는 듯 눈을 깜빡이다가 이 거리라면 그냥 마탄을 쏴서 없애 버릴 수도 있다며 레이시에게 어떻게 할지 물어봤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대화가 통할 수도 있잖아요?”

“글쎄? 바다 몬스터 중에 대화가 통하는 건 기껏해야 인어 족이라거나 그런 녀석들 밖에 없는데…….”

시 서펜트나 크라켄 같은 대형 몬스터의 경우에는 지능을 가진 것 같지만, 그런 몬스터가 떴으면 아마 깃발이 네 개가 올라왔겠지.

하지만 지금 올라온 깃발은 두 개.

머맨이나 괴물 물고기 같은 여러 몬스터 중에서 지능이 있는 몬스터는 몇이나 되더라…….

엘라는 레이시의 얼굴을 보면서 눈을 깜빡이다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반응에 혹시 싫다면 안 해도 된다며 어색하게 웃기 시작했다.

“아니, 안 하고 싶은 건 아냐. 레이시의 말대로 대화를 할 수 있으면 대화를 하는 게 좋지. 응. 너무 폭력적인 것도 좋지 않지. 미스트!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공주님. 레이시, 도와주겠다고 신호를 보내겠어요?”

“네에~.”

뭐든지 폭력으로 해결하면 안 좋다는 엘라의 말에 결정된 일.

레이시는 엘라에게 고맙다면서 엘라의 볼에 입을 맞춘 다음 초록색 깃발을 꺼내서 크게 흔들었고, 미스트는 몬스터가 나타났다고 말한 배를 향해 배를 몰기 시작했다.

“도, 도와주신다고 하셔서 감사합니다!”

“됐고……, 뭔데? 몬스터가 나타났다는 것 치고는 평화로워 보이네?”

“아, 그게……. 그, 처음에는 당황해서 되는 대로 막대기를 쥐었는데…….”

“쥐었는데?”

“수면 위로 나타나니까 인어들이었고 적대하지 않고 도와달라고 해서 수신호를 바꿀 생각이었습니다.”

“아하…….”

운도 좋네.

엘라는 어부의 말에 그렇게 생각하면서 바다를 바라봤고, 머리를 빼꼼 내민 채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인어와 눈을 마주치게 되었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인어들.

지상의 사람들과 연락이 닿지 않은 순수한 야생의 인어들이라 아무 옷도 안 입은 인어들의 모습에 엘라는 신기하다고 생각하면서 무슨 일로 두려움을 이기고 이렇게 나왔냐고 물어봤고, 인어 중에서 사람의 말을 아는 걸로 보이는 인어는 자기가 손을 들었다.

“도움이 필요해. 진주랑 조개 같은 걸 줄게. 도와줘.”

“무슨 일인데?”

“바다에 병이 생겼어. 그리고 몬스터도. 도와줘.”

“병?”

“아마도 과일을 먹지 못해서 생기는 병이 아닐까요?”

“아……. 그럼 몬스터는?”

“병이 생겨서 못 건드는 거겠죠? 지성을 가진 대형 몬스터라면 아예 인어들이 단체 이주를 했을 거고 중형급 몬스터부터는 인어들이 단체로 행동해서 어떻게든 사냥할 수 있는 수준이니까요.”

“그렇겠네.”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엘라.

대표로 나온 인어도 미스트의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고, 레이시는 그런 인어의 말에 괴혈병에 걸린 거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괴혈병은 아니에요. 괴혈병은 해초류나 바다 안에서 자라나는 과일을 먹고 치료할 수 있는 병이니까요. 아마도 햇빛을 받고 자라는 과일을 못 먹어서 태양의 자애를 받지 못해서 생긴 병이겠죠.”

“그런 병도 있어요?”

“네, 신화 속의 이야기지만, 인어는 원래 물 근처에서 살던 물의 사제들이었는데 신과 악신 사이의 대전쟁시기 태양신의 자애로 악신을 피해서 바다로 들어갔다는 종족이니까요.”

어디까지나 신화라 어느게 진실인지는 모른다고 말하는 미스트.

하지만 미스트는 일단 태양의 마력을 지닌 과일이나 고기를 먹지 못하면 인어들은 배를 아무리 채워도 굶주림을 느끼며 힘을 못 쓰게 되어 전부터 사람들과 거래하거나 아니면 사람들을 습격했다고 말해주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배 냉장고에 있는 걸 건네줘도 되냐고 물어봤다.

“괜찮아요. 도와주고 싶으신 거죠?”

“에헤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아뇨, 싸우지 않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안 싸우는 게 좋죠. 전에도 이랬는걸요.”

레이시가 오기 전에는 좀 더 공격적이긴 했지만, 대강은 이런 방식이었다.

미스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어색하게 웃는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손길에 배시시 웃다가 아래로 내려가서 과일을 담아두고 있던 바구니를 몇 개 들고 와서 인어들에게 보여주었다.

“이 정도면 될까요?”

“많아. 고마워.”

“다행이네요.”

인어의 말에 배시시 웃는 레이시.

인어는 레이시의 웃음에 저도 모르게 안심하면서 축 늘어지더니 레이시가 자기 몸보다 몇 배는 큰 바구니를 내려주자 자기 생각보다 크다며 바구니를 팔에 받았다.

그리고 자기 생각보다 몇 배는 무거운 바구니에 당황하며 레이시를 바라봤고, 레이시가 커다란 바구니를 하나 더 내려주자 당황하며 레이시를 바라봤다.

“저, 저기.”

“응? 왜?”

“사람들은 전부 다 저렇게 세?”

“아니? 레이시가 센 거야.”

단순히 물리적인 힘이라면 자기보다도 강하겠지.

엘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레이시를 바라봤고, 레이시는 엘라의 시선에 배시시 웃다가 엘라에게 기댔다.

“저는 그렇게 안 세다구요.”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순수한 물리적인 의미로. 그런 의미라면 레이시가 나보다 몇 배는 센 게 맞잖아?”

적어도 자기는 한 손만으로 100kg을 드는 기행은 벌이지 못한다.

엘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레이시를 바라봤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얼굴을 붉히더니 볼을 부풀이면서 아무리 그래도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면서 엘라의 볼을 약하게 꼬집었다.

“킥킥, 미안, 미안.”

“흥흥.”

엘라의 웃음에 삐졌다는 듯 고개를 돌리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를 달래주면서 레이시를 꽉 껴안아주었고, 레이시는 엘라의 달램에 눈을 힐끗힐끗 쳐다보다가 배시시 웃으면서 엘라를 껴안았다.

“그런데 인어 씨.”

“응? 왜? 조개는 3일 뒤에 올게.”

“아뇨, 아뇨. 그런 게 아니라요, 마을을 습격했다는 몬스터가 어떤 몬스터인지 궁금해서요.”

“거북이야. 등껍질이 딱딱하고 이빨이 달려서 지금 이주를 생각 중이야.”

“이주요?”

“응. 어차피 이 근방에 머문 것도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였으니까. 애들이 이주할 수 있을 정도로 커졌으니까 사람들이 있는 곳이나 과일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이주할 생각이야.”

“으으응. 그렇구나.”

레이시는 인어의 말에 눈을 깜빡이더니 엘라를 바라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시선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레이시의 허리에 손을 올리고 뭐든 말해보라고 부탁했다.

“그, 엘레오놀에서 여기까지 꽤 먼가요?”

“꽤 멀지? 으음, 그래도 못 갈 정도는 아니야. 한 14일 정도 이동하면 이동할 수 있을 정도? 인어들하고 같이 간다면 한 30일 걸리려나? 미스트, 어느 정도로 걸려?”

“공주님 말씀대로 한 30일은 걸릴 거예요.”

“그런데 어차피 시간 죽여야 하잖아. 레이시가 도와주고 싶다는 것 같은데 도와주는 거는 어때?”

“아멜리아 근방의 바다가 인어가 살기 좋던가?”

“아멜리아면 남부 근처 아냐? 해류도 급하지 않고 조개나 바다 과일 같은 걸 양식하기에는 좋을걸? 이 인어들이 양식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뭐, 인어들은 제안해주면 좋아할걸?”

레이시의 말 한 마디에 빠르게 대화를 주고받는 엘라와 미스트, 아샤.

레이시는 세 사람의 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가 굳이 억지로 자기 부탁을 들어줄 필요는 없다면서 손사래를 쳤지만,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레이시의 볼을 꼬집으면서 이미 말한 주제에 무슨 말을 하는 거냐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리고 딱히 손해는 아니야. 바다 과일 같은 건 사람이 기르기 힘들거든. 인어가 있으면 훨씬 기르기 쉬워지니까 몇몇 무역항에서는 인어와 계약을 맺고 정기적으로 교류하기도 해.”

애초에 인어는 사람의 기준에 전부 부합하는 사람이라 교회나 학회에서는 인어를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엘라는 레이시에게 인어를 이주시키려고 하는 것은 딱히 없는 일은 아니라며 레이시를 끌어안았고, 레이시는 엘라의 포옹에 배시시 웃다가 어떨 거 같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어들만 괜찮다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동쪽에도 인어가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다 과일 자체는 수입을 안 하는 걸 보면 바다 과일은 충분히 교역 물품이 될 수 있을 거니까.”

“그렇구나. 인어분들은 어때요?”

“우리야 정착할 수 있는 곳은 안내해주면 좋지. 거기 사람들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양식장을 만들어주고 우리에게 물건을 준다면 우리도 똑같이 물건을 줄 수 있어. 거기에서 쓰는 언어도 배울 거고.”

“에헤헤,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

인어의 말에 고개를 꾸벅 숙이는 레이시.

인어는 레이시의 인사에 고개를 같이 꾸벅이다가 옆에서 엘라가 자기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엘라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엘라는 인어에게 됐다면서 손을 휘휘 저으면서 과일을 빨리 먹이고 오라고 말했고, 인어는 엘라의 말에 알겠다고 대답한 다음 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럼 우리는 배를 어디로 끌고갈지 알리고 협상하러 갈까?”

“으웅. 죄송해요. 제가 일을 크게 만들어서.”

“괜찮다니까. 어차피 인어인 걸 확인한 시점에서 대충 이럴 생각이었어.”

레이시의 사과에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웃는 엘라.

엘라는 왕가의 가르침 중에 교섭법이 있는 이유는 왕가에 적대적이지 않은 유랑민족이나 난민을 발견하면 왕국의 국민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라면서 레이시가 아니여도 이랬을 거라 말하며 레이시를 달랬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엘라의 눈치를 바라보다가 엘라의 볼에 입을 맞춘 다음 머리를 기대었다.

“그나저나 미스트.”

“네.”

“교섭 내용으로 던져줄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아멜리아에 선박회사가 있던가?”

“글쎄요? 아직 회사 단위의 기업체는 못 들어가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루룬에게 연락을 넣어봐, 어차피 인어들이 회복하려면 하루 정도는 걸릴 테니까 수정구로 연락하면 할 수 있지? 거기에는 연맹국의 공주와 협력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해볼게요.”

엘라의 말에 배 아래로 들어가는 미스트.

아샤는 미스트가 안으로 들어가자 따라 내려가면서 미스트를 돕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두 사람이 움직이자 자기도 돕고 싶다면서 엘라를 바라봤다.

“레이시는 나랑 같이 협상하러 가자. 아멜리아는 레이시가 도와줘야 하는 도시니까.”

“네에~.”

뭘 어떻게 협상해야 하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내가 일을 만들었으니까 어떻게든 도와줘야지!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눈을 빛내기 시작했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트리면서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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