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9화 〉 뱃놀이1
* * *
다음 날 아침, 엘라의 말대로 세크트에 여러 사람이 와이번을 타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 도착한 건 기룡기사단 소속의 사람들.
임시 영주나 심판관을 호위하기 위해서 무기를 든 사람들이 먼저 내려서 영주와 영주의 가족을 제압했고, 그렇게 제압과 호송이 끝날 때쯤 임시 영주와 심판관이 차례대로 내려와서 엘라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레이시도 골목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공격 받았던 이야기를 증언했고, 증언이 끝나자 약식 재판이 열렸다.
그리고 약식 재판은 30분도 안 돼서 끝났다.
횡령한 자산과 그 증거인 장부가 버젓이 있고 증언까지 나왔으니까 애초에 제대로 재판할 필요가 없다는 걸까?
심판관은 깔끔하게 가자면서 3만 명에 대한 사기죄에 대해서 징역 3만 년을 내리고 끝내버렸고, 엘라는 심판관의 심판에 귀족 작위는 박탈되지 않는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이다가 임시 영주에게 다가갔다.
“그럼 부탁하지. 저 상인에게 부탁하면 정보를 내어줄 거다.”
“아갈레타를 대신할 정보원이 저 사람이군요.”
“고급 정보는 첩자나 스파이를 사용하면 된다지만 중, 저급의 정보는 저 녀석을 이용해. 범죄는 회색 영역에 있는 것들 밖에 없으니까 잘 말해주고.”
“알겠습니다.”
임시 영주를 전문적으로 하는 귀족에게 불탄을 부탁하는 엘라.
엘라는 영주가 고개를 끄덕이고 알아들었다는 듯 말하자 곧바로 발걸음을 불탄에게로 옮겼고, 불탄은 엘라가 다가오자 멍하니 있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엘라를 바라봤다.
일이 이야기한 것과 틀리지 않습니까?
불탄은 그렇게 말하듯 억울하고 난처하다는 얼굴로 엘라를 쳐다봤고, 엘라는 불탄의 시선에 미안하다는 듯 웃다가 공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되는데 이 정도 시련은 어떻게 해낼 수 있지 않냐며 불탄의 어깨를 두들겼다.
“다른 조직을 떨쳐낼 때와 비교하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목숨이 걸린 일도 아니고 며칠 과로로 구르다가 기절하면 되는데.”
“그게 싫습니다.”
“아하하, 어쩔 수 없네. 그럼 여기서 죽을까?”
“커흑…….”
불탄에게 선택지가 있을 거 같냐고 물어보는 엘라.
불탄은 엘라의 협박에 너무하다면서 눈물을 훔치다가 이내 여기에서 뭔가 더 말해봐야 아무것도 안 되겠다는 생각에 최소한의 지원 정도는 해줬으면 한다고 부탁했고, 엘라는 불탄의 부탁에 합리적인 부탁이라면서 불탄에게 한 도장을 건네주었다.
“이, 이건!?”
“임시 영주의 가신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증거야. 내가 잘 말해뒀으니까 너를 적당히 써먹겠지. 불만 가득한 사람들은 잠재우는데 가장 효과적인 건 고기와 술이니까 네 역할이 커. 부담감이 크겠지만, 성공하면 왕가에서의 네 평가가 올라갈지도 모르니까 열심히 하라고.”
“……이거 성공하면 뭔가 더 굴려질 것 같습니다.”
“응, 하지만 사람의 위에 서는 자는 죽기 직전까지 굴리는 게 맞잖아? 일 할 때는 빡세게 해야지. 나도 그렇게 하는데.”
차라리 그 때 그냥 순순히 잡혀갈 걸…….
불탄의 머릿속에는 뒤늦게 그런 생각이 지나쳤지만, 이내 이미 엎지른 일,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불탄은 임시 영주에게 가서 아양을 떨기 시작했고, 엘라는 그런 불탄을 보다가 피식 웃으면서 레이시에게 갔다.
미스트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눈을 깜빡이다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엘라의 질문에 별 거 아니라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약식 재판에 대해서 묻고 있었어요.”
“왜?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
“그게……, 증언을 듣는 게 너무 빨리 끝나서요.”
“그거라면 미스트가 주술사와 함께 가서 증거를 채증해둬서 그래. 그런 종류의 증거는 거의 거짓말을 못 하니까.”
“할 수 있어요?”
“미스트라면 할 수 있을걸? 땅의 정령에게 부탁하거나 강제적으로 입을 막아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그러면 마력 잔향이 강하게 남아서 뭔가 했다는 걸 확실하게 알리는 꼴이라서 조사를 받아야 해.”
“아하…….”
조작했다는 의심의 여지도 없는 증거가 있어서 증인이 필요 없다는 거구나.
확실히 술집에서 싸움이 붙었어도 cctv가 찍혀 있으면 사정 조사만 하고 증인을 부르거나 하지는 않지.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배시시 웃었고, 엘라는 레이시의 웃음에 똑같이 배시시 웃다가 레이시의 볼을 약하게 꼬집어 당기면서 마차에 올라가자고 말했다.
마차에 올라타서 다른 지역으로 가자.
다음에 갈 곳은 강 위.
하류에서 커다란 배를 빌린 다음 그 위에서 한동안 놀자.
한 달이 됐든, 두 달이 됐든 최대한 시간을 끌고 끌어서 검성이 돌아가서 연맹국이 지나가길 기다리자.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레이시의 볼을 꼬집으면서 레이시에게 배 위에서 먹고 싶은 게 있는지 물어봤고, 레이시는 엘라의 손장난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딱히 없다고 말하면서 하품을 늘어지게 했다.
“아, 그래도 이번에는 아무도 없으면 좋겠어요.”
“그건 그러네. 방해 받지 않는 곳에서 놀자.”
어차피 배 위라서 방해를 받고 싶어도 방해를 받을 수가 없지만.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피식 웃으면서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연신 볼에 입을 맞췄고, 레이시는 엘라의 입맞춤 세례에 몸을 버둥거리다가 몸을 뒤집고 엘라를 밀쳐 넘어트리고 엘라의 품에 안겼다.
엘라는 그제야 입맞춤을 멈추고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레이시는 엘라의 손길에 눈을 깜빡이다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에일렌을 안고서 다시 엘라에게 안겼다.
레이시의 손에 안겨서 갑자기 요람에서 일어나게 된 에일렌은 아무래도 조금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을 했지만, 이내 엘라와 레이시가 조심스럽게 껴안자 얼굴 양쪽에서 전해지는 부드러움에 다시 꾸벅거리면서 졸기 시작했다.
그러자 작게 웃다가 이내 엘라의 팔베개를 베고 천천히 자는 레이시.
엘라는 사이좋게 자는 레이시와 에일렌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담요를 가슴까지 올린 다음 미스트에게 잘 부탁한다며 사과했고, 미스트는 엘라의 사과에 드물다며 웃다가 이내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꽤 멀리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아샤와 잡담을 나누면서 마차를 모는 미스트.
아샤는 미스트의 옆모습을 빤히 쳐다보다가 레이시가 미스트의 아이를 언제까지 품을지, 그리고 안정기는 언제인지 물어봤고, 미스트는 아샤의 질문에 꽤 야하다면서 입을 막다가 이내 웃음을 터트리면서 아샤의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앞으로 한 일주일 정도만 지나면 안정기는 지나지 않을까요?”
“그래?”
“네, 인간으로 따지면 3개월쯤 품은 게 되니까요. 아, 그래도 안정을 위해서는 10일 정도는 흐르고 제가 검사를 한 번 하는 게 좋을 거 같네요.”
“그래.”
“그렇게 급하셨나요?”
히죽거리면서 아샤의 옆구리를 콕콕 찌르는 미스트.
아샤는 미스트의 손짓에 얼굴을 붉히다가 도끼로 확 그냥 찍어버릴까했지만, 이내 질문한 건 자기라는 걸 떠올리고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런 다음 아샤는 미스트에게 어떤 종류의 배를 빌릴 거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아샤의 질문에 우선 마정석으로 움직이는 배를 빌릴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대형을 빌리지 않을까요? 배가 흔들리면 배멀미가 심해지니까요.”
“며칠 동안 계속 배 위에 있을 거야?”
“네에, 그러겠죠? 아마도. 레이시가 원한다면 나루터에 배를 대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줄일 거예요. 그러기 위한 커다란 배를 빌리는 거잖아요.”
“으으음…….”
미스트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아샤.
아샤는 마차 안으로 연결된 창문을 열어 레이시가 자는 걸 바라보다가 자다가 일어난 에일렌과 눈이 마주치자 눈웃음을 지으면서 손을 가볍게 흔들었고, 미스트는 그런 아샤의 눈웃음을 쳐다보다가 키득 웃으면서 계속해서 아샤를 놀렸다.
그리고 그렇게 한쪽이 놀리고 한쪽은 놀림 당하는 채로 계속 움직인 두 사람은 야영지에 도착해 레이시를 깨웠고, 레이시는 다시금 늘어난 잠에 하품을 늘어지게 하다가 눈을 깜빡이며 곤란하다는 얼굴을 했다.
“벌써부터 이렇게 자면 잠탱이가 되는데…….”
“괜찮아요. 레이시라면 살이 쪄도 귀여울 거예요. 오히려 가슴이 커져서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일지도?”
“그, 그건 좀…….”
미스트의 말에 난처하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젓는 레이시.
레이시는 자기 배를 바라보다가 뱃살이 생기면 싫다면서 난처하다는 얼굴을 했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레이시를 뒤에서 꽉 끌어안았다.
그런 다음 미스트는 야영 준비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에일렌을 돌보자면서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췄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하긴 슬슬 밥을 먹일 시간이라면서 셔츠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자, 맘마 먹어요~.”
“맘마.”
“네, 맘마에요오오~.”
말 끝을 늘어트리면서 에일렌에게 글을 가르쳐주듯이 말하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작게 웃다가 레이시의 어깨에 담요를 둘러서 춥지 않게 도와줬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담요에 고맙다며 고개를 꾸벅 숙인 다음에 에일렌에게 젖을 먹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레이시는 한 가지 걱정이 들기 시작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얼굴이 심각해지자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다.
“그게, 앞으로 3달이면……, 그러니까 가을이 갈 때쯤에는 출산 예정일이잖아요.”
“네, 그렇죠.”
“애들까지 태어나면 저 젖을 3명에게 물려야 하는데 어떻게 해요……?”
가슴은 두 개.
번갈아가면서 배가 고파 번갈아 가면서 아기들에게 밥을 준다면 괜찮지만, 동시에 세 명이 배가 고프다고 울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리 짜내서 팩에다 담아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리송한 표정을 짓자 미스트는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추면서 자기도 아이에게 밥을 줄 수 있다면서 번갈아 가며 먹이면 되지 않겠냐고 속삭였다.
“아…….”
“후후, 그나저나 벌써 고민하세요?”
“으응~ 아무리 빨라도 늦으니까요!”
활기찬 눈으로 미스트를 바라보는 레이시.
레이시는 자기 배에 에일렌을 껴안지 않은 손을 올리더니 얼굴을 붉히며 배시시 웃었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행동에 조심스럽게 에일렌을 안아서 받쳐주면서 나머지 한쪽 손으로는 레이시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그러자 레이시는 눈을 감으면서 미스트에게 머리를 기댔고, 미스트가 자기 볼에 입을 맞춰주자 눈을 가늘게 뜨면서 아이의 이름은 정했냐면서 미스트의 가슴을 머리로 툭툭 때리기 시작했다.
“아, 읏…….”
“엘라, 엄청 놀렸으면서…….”
“세상 일은 뭐든 자기가 직접 한 번 해봐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요.”
“푸흣!”
“일단 공주님의 도움을 받아서 몇 개 고르긴 했는데……. 아무래도 쌍둥이라서 쉽게 고르지 못하고 있네요. 의미가 있는 이름으로 해주고 싶어서 골라보면 조금 험한 의미란 말이죠.”
“네에? 왜요?”
“저는 예술가의 뒷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거든요. 근데 들어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답니다. 기본이 대마초니까요.”
“…….”
“그런 거에 져버린 사람들의 이름을 저와 레이시의 아이에게 주고 싶지 않아서요.”
미스트의 말에 떨떠름한 얼굴을 하는 레이시.
마치 연예인의 사적인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 감각에 레이시는 한참을 어색하게 웃다가 에일렌이 가슴에서 입을 떼자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반응에 싱긋 웃더니 레이시의 볼을 가볍게 찔러주었다.
“후후,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마망.”
“읏……, 에헤헤, 조금만 더 기다릴게요. 엄마.”
미스트의 말에 얼굴을 붉히면서 배시시 웃는 레이시.
미스트는 레이시의 얼굴에 최대한 빨리 아이 이름을 생각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수첩을 넘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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