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4화 〉 일은 대충 임기응변으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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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의 마력을 느끼고는 헐레벌떡 달려오는 엘라와 아샤.
엘라는 레이시에게로 달려가는 와중에도 자기가 실수했다면서 혀를 찼다.
지금 여기에서 레이시를 공격하지 않고 자기가 가는 걸 꾹 참으면 어떻게든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확실하게 죽는 선택지를 선택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아갈레타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말았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암살자의 기준을 미스트로 삼았더니 이런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레이시가 보이자 헐레벌떡 뛰어와서 괜찮냐고 물어봤고, 이내 상처하나 없이 멀쩡해 보이는 레이시의 얼굴에 안심하면서 무슨 일이냐면서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었다.
“에에……, 그게요…….”
“응.”
“미네르바랑 데이트 갔는데 바가지를 씌워서 어음에 10만 하랑이었는데 갑자기 왜 20만 하랑이 됐냐고 따지고 이러니까 웃옷을 벗으면서 문신을 보여주더라고요.”
“그래, 그래서?”
“그러더니 자기 뒷배가 아갈레타 가문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 가문, 저번에 에일렌을 죽이려고 했던 가문이잖아요? 그래서……, 응, 그 이후로 그 사람들을 혼냈었어요.”
“안 다쳤어?”
“네, 다치지는 않았어요.”
“……괜찮아?”
“네. 괜찮아요.”
엘라의 질문에 싱긋 웃는 레이시.
레이시는 엘라가 자기 몸에 상처가 없는데도 질문을 이어나가자 엘라가 몸이 아닌 정신적인 건강을 신경 쓰는 거라는 걸 깨닫고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기가 괜찮은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가만히 있으면 에일렌이 위험해진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니까 이런 것뿐이에요. 거기에다가 이 사람들이 먼저 칼을 뽑고 달려들었는 걸요.”
“그렇구나.”
그리고 그런 레이시의 설명에 엘라는 레이시가 정말로 괜찮은 거구나 싶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나비의 얼굴과 손바닥을 씻겨준 다음 미스트에게로 돌아가달라고 부탁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미네르바를 바라보다가 미네르바에게 사과하면서 나비의 등에 올라탔다.
그러자 대신 낮잠을 자자면서 레이시를 끌어안는 미네르바.
미네르바는 승자의 미소를 지으면서 레이시를 껴안고 있다가 나비와 함께 여관으로 떠났고, 엘라는 두 사람이 나비와 함께 사라지자 한숨을 푹 내쉬면서 자기 이마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때렸다.
계산 미스다.
성장이라고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레이시의 공격성이 강해졌고 정신력도 꽤 강해졌다.
그리고 아갈레타 가문은 자기 생각보다 비이성적이었으며 레이시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했고, 레이시와의 대화를 통해서 뭔가를 하려고 했든 납치해서 레이시를 어떻게 하려고 했든 레이시의 전투력을 너무 낮게 평가했다.
애초에 레이시는 신체적으로는 완전히 완성된 상태였고, 그동안 레이시가 나비와 하양이 같이 강한 짐승을 가지고도 일반 병사보다 조금 더 강한 사람에게 밀렸던 건 공격성이 없어서였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 일로 에일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사람을 적대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으니, 전면전에 약한 주제에 독도 없이 덤벼들었으니 이 모양 이 꼴이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아갈레타의 당주에게 천천히 다가가서 그러기에 누가 되지도 않는 전투를 벌이라고 했냐며 비아냥거렸고, 당주는 엘라의 비아냥에 침음성을 흘리다가 이대로 끝나지는 않을 거라고 엘라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눈을 깜빡이다가 웃음을 터트리는 엘라.
엘라는 설마 본가에 숨어 있는 사람과 분가를 믿고서 그러는 거냐면서 고개를 갸웃거렸고, 당주는 엘라의 말에 움찔 떨면서 엘라를 올려다봤다.
“계획이 상당 부분 뒤틀리긴 했는데……, 데이 드렁커를 데리고 왔거든?”
“그 술주정뱅이들이 뭔가 할 수 있을 거 같나?”
“아, 하긴 알고 있겠지. 그 녀석들이 암살자와 비교하면 무척이나 합법적인 일을 하고 있고, 다른 영지에서 음지에 들어서지도 못할 일만 하고 있다는 거. 아무리 하찮은 녀석들이라도 기억은 하고 있겠지. 그런데 너무 무시하는 거 아냐?”
“흥……, 아무리 전투요원들이 죽었다고 해도 암살부대는 그대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 암살대원들에게는 내가 죽으면 에일렌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려놓은 상태지. 흐흐……, 레이시가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지만, 너는 나를 죽일 수 없어.”
“뭔 헛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 너, 아직도 미스트를 뚫고 암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면 여기에서 몇 명 안 들키고 빠져나가서 계속해서 두려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갈레타 가문은 캘러미티 가문이 사라질 때처럼 기밀이 유출되지 않았고, 엘라가 기밀문서를 발견한다고 해도 암호를 해독하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계속해서 불안감을 준다면 레이시를 끔찍이도 사랑하는 엘라로서는 다른 방법을 생각하겠지.
그래도 꼴에 암살자라고 그렇게 생각한 당주는 히죽 웃으면서 어떻게 하겠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그런 당주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면서 아샤에게 단검을 받았다.
“대체 팔다리가 부러진 채로 뭘 웃고 있는 거야?”
“뭐……? 자, 잠깐! 내 이야기를 듣기는 한 거냐!?”
“계획 변경이야. ……원래라면 이렇게 되길 원하지 않았지만, 레이시가 에일렌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무기를 들 수 있게 되었으니까 너는 그냥 시작부터 행방불명 됐다고 하자.”
이렇게 된다면 다른 불법폭력단체나 암살자 가문이 세크트에 들어오기 위해서 발악하면서 데이 드렁커를 피곤하게 만들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그 녀석들이 신경 쓸 것.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국왕에게 연락을 취해뒀으니 국왕의 지원이 아래로 내려올 거다.
캘러미티와 아갈레타와는 다르게 불법적이지도 않은데 정보를 용케 이리저리 구하는 조직이니까 고위급 인사가 아닌……, 말단이나 중역의 정보를 캐는 첩보단체로 쓰려고 하겠지.
지금 이건 그 시련이고.
레이시 덕분에 시련의 난이도가 올라간 건 사실이지만 이 정도 시련도 견디지 못한다면 국왕의 눈에 들지 못 할 거니까 상관없다.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천천히 단검을 위로 치켜들다가 뭐라고 떠들어대는 당주의 머리통에 그대로 꽂아버렸다.
“후우……. 그럼 나는 이 광경에 대해서 설명해야 하는 건가?”
“응. 그리고 영주에게 이런저런 횡령 혐의가 있으니까 조사하고.”
“너는 어떻게 할 건데? 네가 지금 데이 드렁커를 만나는 건 좋지 않을 거 같은데.”
“나는 레이시에게 돌아가서 미네르바와 함께 레이시의 호위. 미스트는 아갈레타 가문의 잔재를 뿌리 뽑게 시킬 거야. 자, 움직이자.”
“……하아, 알았어.”
엘라의 말에 한숨을 푹 내쉬더니 시체를 한 곳에 모으는 아샤.
전원 짐승의 흔적으로 가득 찬 사체에 아샤는 이걸 어떻게 속여 넘겨야 하냐면서 한숨을 푹 내쉬다가 뒤늦게 현장으로 달려오는 경비병의 소리에 한숨을 내쉬면서 당주의 머리통에 꽂혀있던 칼을 뽑아냈다.
“헉!? 이, 이게 다 무슨……!”
“엘라 파우스트 오라토리엄의 기사, 아샤다. 이 녀석들이 먼저 엘라 공주님의 일행을 공격했고 설득에 실패해서 전원 사살했다.”
“그, 그게…….”
아샤의 말에 움찔 떨면서 서로 눈치를 보는 병사들.
아무래도 여기에 있는 게 아갈레타의 암살자들이라는 걸 아는 눈치였기에 아샤는 눈을 천천히 가늘게 뜨다가 자기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냐고 물어보면서 병사들에게 다가갔고, 병사들은 아샤가 다가오자 숨을 삼켰다.
암살자들을 누가 죽였는지는 모른다.
그렇기에 병사들은 왕국 최강의 기사라고 불리는 아샤를 본능적으로 경계하면서 무기를 쥔 손에 힘을 주기 시작했고, 아샤는 그런 병사들의 모습에 헛웃음을 흘리다가 입을 열었다.
“손에 힘 빼라. 시체를 보고서 바로 뭐로 죽었는지 파악하지도 못해? 이런 병신들이 치안을 담당한다니 웃기지도 않아.”
“네, 넷!?”
“그것보다 그 반응을 보면 나름 윗선에서 노는 병사 같은데……. 왜 사령술사나 주술사를 부르지 않았지? 영혼이든 땅의 기억이든 읽어야 할 거 아냐? 안 그래? 이 도시에 사령술사가 없다거나 주술사가 없다는 이야기는 하지 마. 오면서 너희랑 똑같은 문장을 단 주술사를 봤으니까 하는 말이니까.”
그 주술사와 만나서 협상을 가장한 협박을 한 다음에 일을 진행시킬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그냥 협박도구로라도 써야지.
애초에 지금 이렇게 협박도구로 쓰고 있다고 해서 주술사가 나쁜 일을 당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왜 주술사를 불러서 땅의 기억을 읽어 자신의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판별하지 않았냐고 물어보며 병사를 추궁했고, 병사는 아샤의 추궁에 주춤거리다가 이내 이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기에 주술사를 대동하지 않았다며 고개를 크게 숙였다.
“왕국법상 치안을 유지하는 사람은 주술사나 사령술사를 대동해야 할 텐데?”
“죄송합니다!”
“아하……, 여기는 수도랑 다르게 죄송하다고 하면 일이 끝나는 것 같군. 야, 난 너 때문에 지금 범죄자로 몰리게 생겼거든? 빨리 주술사 데려와.”
“그, 그게……!”
아샤의 말에 침을 꿀꺽 삼키는 병사.
죽은 사람이 외부의 모험가나 일반인이었다면 아샤의 말대로 주술사를 데려왔을 것이다.
그 편이 일처리가 훨씬 쉽고, 재판도 훨씬 쉽게 끝나고, 엘라에게 점수를 딸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 여기에 죽어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전원 아갈레타의 사람들.
아갈레타의 사람들이 엘라의 일행을 먼저 공격한 게 밝혀지면 아갈레타 가문은 사라지고 그동안 받던 부가 수입이나 여자, 그리고 약물을 구할 수 없게 된다.
지금 자신의 생활은 그런 것들이 늘 있는 쪽으로 맞춰져 있기 때문에 가문이 사라져서 지원이 없어지면 버티지 못한다.
그 때문에 병사는 어떻게든 여기는 자기가 대충 묻어둘 테니 아샤에게 돌아가면 된다고 말했고, 아샤는 병사가 안달하는 채로 자기를 돌려보내려고 하자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눈과 입의 점막이 피부와 비교했을 때 이상하게 메마른 것을 보고 대충 예상은 했지만……, 설마하니 병사가 약물에 절여져 있을 줄이야.
병사가 완전히 망가지면 안 되니까 여러 약한 약물을 블랜드해서 주사한 다음 술과 여자로 아예 정신을 놓게 만든 걸까?
그것도 한, 두 명이 아니라 여기에 온 전원이…….
약자를 지키고 그들에서 오는 경외심과 우월감을 먹고 사는 아샤는 그런 병사들 추태에 서서히 화가 나기 시작해 그냥 도끼로 사명감도 잊어버리고 저급 약물에 절여진 대가리를 찍어버릴까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럼 공주님을 부르지.”
“네!?”
“공주님을 불러서 공주님의 권한으로 이 사건 현장을 조사하도록 하지. 그러면 되겠지? 병사들이 이렇게 써먹지도 못할 쓰레기였다니……, 이곳의 영주도 참 고달프겠어? 안 그래? 마약중독자 벌레.”
“……헉!?”
“마약 중독자의 즉결 처형이 어떻게 되더라? 그래……, 혀의 절단이던가? 마약을 빨고 조를 뿐인 혀는 쓸모가 없으니까 혀의 절단이야. 즉결 처형의 매뉴얼은 전부 외우고 있으니까 말이지. 좆 같은 사회의 암 덩어리들. 처죽여주지.”
송곳니를 드러내더니 도끼를 뽑는 아샤.
그 순간 병사들은 미약하게 남아있던 약물의 효과가 모조리 사라질 정도의 공포를 느끼면서 그대로 바닥에 머리를 찧었고, 아샤는 그런 병사들의 모습에 두 가지 선택지를 건네줬다.
하나는 이대로 자신에게 죽거나 혀가 잘린 채 살아가는 것.
다른 하나는 주술사를 불러와서 아갈레타 가문의 사람들이 레이시를 먼저 공격했고 그 때문에 역으로 탈탈 털려서 죽었다는 것을 공표할 것.
어느 쪽을 선택하든 아샤는 자유의사를 존중해주겠다면서 도끼를 빙빙 돌리기 시작했고, 마약보다는 아무래도 목숨이 더 소중했던 병사들은 아샤의 말에 그대로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에휴.”
엘라와 같이 일하면 기사단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이 약자를 직접적으로 도와줄 수 있고 거기에서 나오는 경외심도 먹을 수 있지만……, 이런 점이 안 좋다.
그렇게 생각하던 아샤는 눈을 깜빡이다가 시체를 산처럼 쌓은 다음 근처 나무 상자에 앉아서 병사가 올 때까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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