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7화 〉 나들이2
* * *
“알겠습니다.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남작닙.”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작님.”
엘라의 부탁을 받고 나온 레이시.
레이시는 처음에는 엘라의 부탁을 어떻게 들어줘야 하나 고민했었지만, 미스트가 도와준 덕분에 어렵지 않게 엘라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었다.
그리고 엘라의 부탁을 들어준 레이시는 조금은 들뜬 얼굴로 밖으로 나왔다.
“포대기도 됐고……, 바깥 날씨도 좋고……!”
레이시가 들뜬 얼굴로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오늘 산책은 에일렌과 함께 나간다.
그동안 레이시는 에일렌이 다칠까 봐 망설였지만, 에일렌의 신체 나이가 만 1세를 넘어가자 안고서 산책하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물어봤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질문에 에일렌을 바라보다가 괜찮을 거라고 대답했다.
평소보다 주변을 더 경계해야 하겠지만, 자기와 미네르바가 동시에 같이 가면 어지간한 적은 공격하기도 전에 색적하고 도망칠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레이시에게 포대기를 메주면서 몇 가지 주의사항을 말해줬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주의사항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에일렌을 안아주어다.
평소와 다른 준비 과정에 이해가 안 된다는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에일렌.
레이시는 그런 에일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오늘은 밖으로 나간다며 에일렌에게 말해주었고, 에일렌은 레이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레이시의 목소리를 듣고서 뭔가 신나는 걸 한다는 걸 깨닫고 꺄르륵 웃기 시작했다.
“아우아우!”
“에헤헤…….”
그 웃음에 똑같이 웃으면서 에일렌의 뺨을 쓰다듬는 레이시.
레이시는 에일렌을 껴안더니 몸을 한껏 엎드려 있는 나비의 털을 잡더니 그대로 나비의 위에 올라탔고, 나비는 레이시가 올라타자 그대로 쭉 일어나며 몸을 털었다.
그러자 에일렌은 2층의 사람과 눈이 마주쳤고, 저택에서 일하는 메이드는 에일렌의 웃음에 어색하게 웃다가 나비가 앞발을 들어 그르릉거리자 그대로 철썩 주저앉았다.
“아, 아하하하……. 수고하세요.”
그 모습에 어색하게 웃다가 손을 흔든 다음 나비의 몸을 쓰다듬어주면서 산책하기 시작하는 레이시.
레이시는 우선 포도 농장으로 가보자면서 미스트를 바라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나비의 고삐를 잡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조금 과하다 싶은 호위였지만, 에일렌의 안전을 위해서니까.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에일렌의 뺨을 쓰다듬으면서 남들보다 높은 곳에서 마을의 풍경을 감상했고 포도 농장이 보이기 시작하자 눈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다른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 에일렌에게 손을 뻗었다.
“에일렌, 저거 보이세요? 포도 농장이에요. 늦여름에 딴다더니 지금 따는 포도도 있나봐요.”
“마우!”
“포도에요. 포도~.”
“모오오?”
“네에~ 포도에요. 후후.”
아직 혀도, 얼굴 근육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어서 옹알이를 내는 에일렌이었지만, 레이시는 그런 에일렌의 옹알이도 그저 좋다는 듯 배시시 웃으면서 손을 뻗는 에일렌의 손을 잡고서 포도를 만지고 싶은지 물어봤다.
물론 에일렌이 대답할 수는 없었지만…….
“미스트, 미스트. 혹시 포도를 살 수 있을까요? 괜찮다면 상품 가치가 없는 포도로요. 에일렌이 만지게 하고 싶어요.”
“네, 그럴게요.”
레이시는 에일렌의 옹알이를 마음대로 해석하면서 에일렌에게 해주고 싶은 것을 부탁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부탁에 어렵지 않다면서 나비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천천히 포도 농장 쪽으로 다가가는 나비.
농장의 사람들은 나비의 모습에 흠칫 떨면서 뒷걸음질 쳤지만, 미스트는 사람들의 반응을 예상하고는 농장의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나비의 정체를 설명한 다음 포도 파지를 구할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
상품을 사는 것보다는 싸게, 하지만 파지를 구하는 것보다는 약간 비싸게.
그렇게 사면서 왕가의 문장을 슬쩍 보이자 농부들은 왕가의 사람들은 전부 나비 같은 짐승을 길들이는 거냐며 감탄하다가 미스트에게 포도를 건네주었고, 레이시는 미스트가 포도를 건네주자 미네르바에게 손을 흔들어 신호를 줬다.
그러자 땅에 착지한 다음 레이시에게 팔을 벌리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나비의 몸을 잡더니 천천히 나비의 몸에서 내려와 에일렌에게 포도알을 줬다.
상품 가치가 없는 만큼 작고 껍질에 상처가 나 있는 포도.
하지만 맛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포도였기에 레이시는 에일렌을 마주 보는 방식으로 안은 다음 에일렌에게 포도알을 줬고 에일렌은 손에 든 포도알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손에 힘을 줬다.
“으부!?”
그러자 으깨져서 에일렌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오는 포도 과육.
레이시는 에일렌이 놀라자 웃음을 터트리면서 에일렌의 뺨을 쓰다듬어줬고, 에일렌은 놀란 눈으로 자기 손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입에 넣었다.
손가락에 묻은 과육을 빨아먹다가 껍질은 아무래도 맛이 없는지 손으로 입으로 끄집어내서 바닥에 던지는 에일렌.
레이시는 에일렌의 손동작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과육은 맛있냐면서 에일렌의 볼을 콕콕 찔러댔고, 에일렌은 레이시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손에 뭔가 묻어있는 감각이 싫은지 레이시의 가슴에다 손을 대고 문지르기 시작했다.
“꺄아~! 푸풋, 손이 끈적거려요?”
“마망!”
“네에~, 마망 가슴이랍니다. 그런데 마망의 가슴은 수건이 아닌데~.”
“으부부브!”
“닦아드릴까요?”
“므아아~!”
“네에~, 그럴게요.”
레이시와 에일렌의 대화에 어떻게 대화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미스트에게 손수건을 받다가 미네르바의 시선에 어색하게 웃기 시작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어색한 웃음에 아이와 엄마의 대화는 다들 이렇다며 레이시를 달래면서 에일렌의 손을 닦아주었다.
“그나저나 옷이 더러워졌네요.”
“괜찮아요, 에일렌~ 하나 더 먹을래요?”
“므아우우!”
“에헤헤. 밖에 나와서 신났나요?”
자기 옷이 더러워진 건 아무 신경도 안 쓰고 에일렌에게 새 포도알을 주는 레이시.
에일렌은 이번에는 포도알을 터트리지 않겠다는 듯 조심스럽게 포도알을 쥐다가 이내 포도알을 터트리지 않으면 과육을 먹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단 얼굴을 하기 시작했다.
포도는 먹고 싶다.
하지만 손을 끈적끈적하게 더럽히고 싶진 않다.
그런 딜레마에 빠진 에일렌은 자기 손에 있는 포도알을 보다가 레이시가 자기 뺨을 쓰다듬자 그대로 레이시에게 포도알을 그대로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자기가 잘 했다는 듯 당당하게 콧김을 내뿜는 에일렌.
레이시는 에일렌의 행동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나비의 몸에 기대어 포도알을 까서 에일렌에게 건네주었고, 에일렌은 레이시가 건네준 포도알을 오물오물 씹다가 이내 씨앗을 뱉어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으베베베!”
“푸하핫!”
눈을 찌푸리는 에일렌의 모습에 다시 웃음을 터트리는 레이시.
레이시는 이번에는 에일렌이 씨앗을 씹지 않도록 포도알에서 씨앗을 빼낸 다음 에일렌의 입에 넣어줬고, 에일렌은 이번에는 거슬리는 씨앗이 느껴지지 않자 배시시 웃으면서 작은 입을 연신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맛있어요?”
“아우우웁!”
“그래요? 맛있어요? 더 먹을까요?”
레이시가 포도알을 다시 건네주자 이번에는 자기가 해보겠다면서 레이시가 한 것처럼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에일렌이 손을 열심히 꼼지락거리자 나비에게 기대서 에일렌의 뺨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러자 점점 모여드는 사람들.
나비가 얌전히 있자 겁을 느끼는 것보다는 신기하다는 감정이 강해졌는지 농부들은 에일렌을 보러 모이더니 포도의 맛은 어떠냐고 물어보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농부들의 질문에 괜찮다고 말하면서 에일렌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 그 분이 엘라 공주님의 따님이신가요?”
“네. 귀엽죠?”
“네, 정말 그렇군요. 그런데 부군은 누구죠? 안 보이시는데…….”
“응?”
“레이시, 여기는 수도가 아니라서 그런 종류의 스킬이 없어요.”
“아…….”
수도라면 양성구유 스킬을 구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지만, 시골은 그렇지 않다.
그렇기에 여자끼리 결혼하는 일이 무척 드물다고 속삭여주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자기가 엘라와 함께 에일렌을 낳았다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농부들은 놀란 얼굴로 레이시를 바라보다가 그런 게 가능하냐고 물어보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그런 종류의 스킬이 있다고 말해준 다음 에일렌이 포도알을 제대로 까지 못하고 볼을 빵빵하게 만들자 포도알을 또다시 까주었다.
다시 나오는 초록색의 포도 과육.
에일렌은 그걸 가만히 바라보다가 레이시의 입에 넣어주었고, 레이시는 에일렌의 손짓에 포도알을 입에 넣고 에일렌의 뺨을 쓰다듬어주었다.
“마무.”
“네에~?”
“마우우우우!”
“이제 포도 싫어요?”
“아우으우!”
“후후, 알았어요. 다른 곳도 가봐요.”
자기 가슴이 더러워진 건 신경 쓰지 않고 에일렌의 손을 손수건으로 닦아주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레이시의 셔츠와 베스트를 말린 다음 나중에 옷을 세탁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레이시는 미안하다는 듯 미스트를 바라보면서 부탁하겠다고 말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사과에 괜찮다면서 레이시를 다시 나비 위에 태웠다.
“그럼 감사했습니다.”
농부에게 고개를 꾸벅 숙인 다음 자리를 뜨는 레이시.
레이시는 허벅지로 나비의 몸통을 가볍게 툭툭 건들면서 나비에게 걷자고 말했고, 나비는 레이시의 명령에 미스트의 안내대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기분 좋은 나무 향기가 나는 길.
간혹가다 마을 동네 아이들이 나비를 보고 감탄하면서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피웠지만, 에일렌은 그 소리도 재미있다는 듯이 꺄르륵 웃으면서 레이시의 몸을 투닥투닥 때렸고, 레이시는 그런 에일렌의 뺨을 쓰다듬으면서 계속해서 다른 두 사람과 함께 산책을 이어나갔다.
에일렌과의 첫 나들이기 때문인지 레이시는 시간이 흘러가는지 모르고 산책을 이어나갔고, 저녁이 되어 에일렌이 춥다고 칭얼거리고 나서야 레이시는 산책을 끝내고 저택으로 돌아갔다.
“우아으으으!”
“에헤헤, 자, 이제 꽃은 버려요.”
따뜻한 여관에 돌아오자 부드러운 꽃잎을 쥐고 흔들면서 웃는 에일렌.
레이시는 그런 에일렌의 손을 잡아주고 장난을 쳐주다가 꽃물과 포도물이 잔뜩 물들어서 엉망이 된 셔츠를 벗었고, 에일렌은 레이시가 옷을 벗자 자기 배를 보더니 레이시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 으응, 배고파요?”
“아우!”
“알겠어요.”
그러자 옷을 갈아입다 말고 그대로 에일렌에게 젖을 먹이는 레이시.
밤바람을 쐬다가 따뜻한 곳에서 따뜻한 레이시의 가슴을 입에 물자 에일렌은 기분이 확 풀리는지 느긋한 얼굴로 축 늘어지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그런 에일렌의 뺨을 콕콕 찌르다가 담요로 에일렌의 몸을 감싸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후후, 그렇게 꽉 안 잡아도 마망은 안 도망쳐요.”
“으응? 밥 주고 있나요?”
“네, 밖에 나갔다 오더니 배가 고픈 거 같아요.”
“그래도 너무 옷을 벗고 있으면 감기 걸리니까 이거라도 덮어요. 그리고 공주님이 곧 있으시면 오신다는 거 같아요. 아까 신호가 왔어요.”
레이시의 어깨를 담요로 덮어주면서 싱긋 웃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엘라와 아샤가 뭘 하고 있는지 물어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질문에 어색하게 웃다가 좋은 일은 아니란 것만 알아달라며 대답을 피했다.
“……아하하.”
“후후. 그럼 저 먼저 씻고 나올게요. 레이시는 미네르바랑 같이 씻어요.”
“네에~.”
……심한 일은 안 하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던 레이시는 미스트가 욕실에 들어가자 에일렌을 다시 조심스럽게 껴안았고 입을 연신 오물거리는 에일렌의 모습에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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