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6화 〉 나들이1
* * *
“다녀왔어.”
“다녀왔어요?”
“응, 에일렌이 오늘은 장난을 많이 치나 보네.”
에일렌을 안고서 열심히 여관을 돌아다니고 있자 들어오는 엘라와 아샤.
저녁을 먹기 전에 딱 맞춰서 들어 온 엘라는 레이시의 머리를 잡고서 이번에는 저기로 가자면서 옹알이하는 에일렌을 보고는 레이시에게서 에일렌을 받아 안았고, 레이시는 머리를 정리하다가 엘라의 볼에 입을 맞추면서 자기에게 할 말이 없는지 물어봤다.
그러자 엘라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레이시를 바라봤고, 레이시는 배시시 웃으면서 엘라의 볼을 콕콕 찌르기 시작했다.
“할 말?”
“네. 없어요? 정말요?”
레이시의 말에 미스트를 힐끗 쳐다보는 엘라.
미스트는 엘라의 시선에 어색하게 웃다가 다 들켰다는 듯 수화했고, 엘라는 미스트의 손짓에 어색하게 웃다가 눈을 돌렸다.
“미안해, 말을 안 하려고 한 건 아닌데…….”
“괜찮아요. 저를 위해서 하는 일이잖아요? 그리고 숨길 만한 일이기도 했고……. 그래도 조금은 말해줬으면 했는데.”
“아하하……. 앞으로는 그럴게. 그래도 위험할 수 있는 일은 얼버무리거나 거짓말할 수도 있다는 거, 이해해줄 거지?”
“네. 그럴게요.”
엘라가 거짓말을 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건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일이 끝나고 나서라도 자기에게 말해달라고 부탁했고, 엘라는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다면서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추고서 에일렌을 안아주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안에서 뭐 끓이고 있어?”
“네, 뱅쇼를 끓이고 있어요. 2시간 정도 끓였네요.”
“레이시 때문에?”
“네. 애초에 도수가 낮고 포도향이 강한 걸 선택했지만, 혹시 모르니까 2시간 정도 끓여서 알코올을 날리고 있답니다.”
“그럼 슬슬 끝났겠네. 맛있게 마셔, 레이시.”
“엘라는요?”
“나? 나는 뱅쇼 별로 안 좋아해.”
“왜요?”
“따뜻한 술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거든.”
술은 차가운 게 좋다.
애초에 생각을 비우려고 술을 마시는 건데 따뜻한 술은 벌컥거리면서 마시지도 못하고 속을 비워주지도 않으며 취기도 늦게 올라온다.
그러니 술은 이빨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게 좋다.
엘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래서 와인은 별로 안 좋아한다고 말했고, 레이시는 다소 걱정스러운 얼굴로 엘라를 쳐다봤다.
“술을 너무 좋아하면 안 되는 거, 알죠?”
“응, 건강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만 마실게. 그리고 와인은 뭔가 좀 그렇단 말이지.”
“왜요?”
“뭔가 틀딱 꼰대들이 마시는 술 같아서. 다른 술은 그런 게 적은데 이상하게 와인에는 깐깐하게 구는 사람이 많으니까 싫어. 잔을 잡는 방법 같은 건 주도니까 이해를 하겠는데 조금 심한 사람은 병의 형태까지 신경 쓰는 경우가 많으니까 더더욱.”
오크통을 만들 때 어떤 나무를 쓰는지, 훈연을 했는지, 오크통의 구조는 어떤지에 따라서 와인의 맛이 달라지는 건 이해하고 있다.
그런 것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병의 형태가 어떻고 잔의 온도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까지 들어줄 생각은 추호에도 없다.
거기에다가 와인은 고급 술이라는 인식이 퍼져서인지 한 병에 몇천만을 호가하기도 해서 괜히 돈을 때려 붓는 것 같아서 더 싫다.
“술은 스트레스 풀려고 마시는 거지 스트레스 쌓으려고 마시는 게 아니잖아? 그런데 그렇게 신경 써야 할 게 많다면 아예 안 마시고 말지.”
어깨를 으쓱이면서 주도가 복잡한 술은 취향이 아니라고 말하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몰라 어색하게 웃다가 고개를 끄덕거렸고, 엘라는 레이시의 반응에 눈을 깜빡이다가 아쉽다면서 레이시의 옆에 앉아 레이시의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애만 아니었으면 마음껏 마셨을 건데.”
“술 먹이고 뭘 하려고요.”
“말로 할까? 아니면 몸으로?”
“부우,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엘라의 말에 볼을 부풀이면서 엘라를 쳐다보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이러니까 놀리는 거 아니냐면서 레이시를 끌어안았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잠시 눈을 치켜뜨다가 이내 배시시 웃으면서 엘라에게 안겨 이 도시에는 며칠동안 머물거냐고 물어봤다.
“음, 며칠 정도 묵는 게 좋을까?”
“으음~ 글쎄요? 원래 하려던 일은 며칠 정도 걸릴 거 같나요?”
“짧으면 4일? 길면 일주일이니까 넉넉잡아 10일 정도는 머물지 않을까 싶네. 왜? 하고 싶은 거 있어?”
“글쎄요? 여기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오?”
“하긴 여긴 다른 도시랑 다르게 술이 중심이니까 에일렌하고 뭔가 하기는 힘들겠네. 포도 같은 거 따봤자 와인용 포도라서 그냥 맛있는 포도랑은 맛이 다를 거고.”
“그래요?”
“응, 조금 신맛이 강할걸? 나는 잘 모르겠는데 종자 자체가 다른 종자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
“흐으으응…….”
“미스트랑 같이 아이 이름을 짓는 건 어때? 그리고 논 알코올 음료수도 있다는 것 같으니까 그거 구해줄게. 아니면 산책해도 좋고.”
에일렌은 미스트에게 맡기고 미네르바와 산책을 다녀오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보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제안을 듣고는 잠시 고민하다가 배시시 웃으면서 미스트에게 아이의 이름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질문에 흠칫 떨더니 이내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내일 산책 나가면서 같이 정해보지 않겠냐고 물어봤다.
“안 정했군요?”
미스트의 대답에 능글맞게 웃으면서 미스트를 바라보는 레이시.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미소에 흠집이 가더니 한숨을 크게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거렸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반응에 미스트도 그런 얼굴을 하는 거냐면서 배시시 웃었다.
그러자 미스트는 한숨을 내쉬면서 자기도 이렇게 우유부단하게 될 줄은 몰랐다면서 고개를 좌우로 저었고, 이내 레이시를 뒤에서 끌어안으면서 작게 투덜거렸다.
“애초에 그렇게 쉽게 정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에헤헤…….”
“거기에다가 지금까지 제가 외운 이름은 사형이 확정된 죄인의 이름이나 사무적으로 외워야 하는 이름, 그리고 공주님의 이름뿐이라고요? 사랑스러운 여자애의 이름 같은 건 잘 모른다고요.”
“그래요?”
“정말……, 레이시도 능글능글해져서는…….”
한숨을 내쉬면서 레이시의 볼을 콕콕 찌르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손장난에 이게 다 누구 때문인 것 같냐면서 키득키득 웃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엘라를 가만히 쳐다보면서 엘라에게 할 말이 있지는 않냐면서 조용히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엘라는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면서 어깨를 으쓱이더니 레이시에게 저녁이나 먹자면서 미스트가 만든 음식을 적당히 나눠서 들고 오기 시작했고, 미스트는 그런 엘라의 행동에 한숨을 푹 내쉬더니 같이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녁 식사가 끝나자 엘라는 방을 나눠서 각자 좋아하는 방을 쓰게 만든 다음 레이시만 나중에 마음에 드는 방에 들어가 달라고 부탁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부탁에 어색하게 웃다가 조심스럽게 미스트의 방에 들어갔다.
“어머, 미네르바랑 같이 안 자도 괜찮아요?”
“으응, 여기 오기 전에 미네르바에게 양해를 구하고 왔으니까 괜찮아요.”
“그래요? 어서와요.”
이불을 살짝 들춰서 레이시에게 들어오라고 말하는 미스트.
레이시는 슬립만 입고서 팔을 벌리는 미스트의 모습에 얼굴을 붉히면서 꼭 그렇게 유혹할 필요가 있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질문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레이시를 안아주었다.
“으으응…….”
그러자 자연스럽게 미스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으면서 부비적거리는 레이시.
미스트는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이러면 누가 아기인지 모르겠다며 레이시를 놀렸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농담에 얼굴을 붉히다가 얼굴을 미스트의 가슴에서 떼어낸 다음 미스트의 볼을 약하게 꼬집었다.
“아야야~, 아파요. 레이시.”
“흥흥. 아프라고 하는 거예요.”
“푸훗, 그래요?”
“네에~. 아파라고 한 거랍니다.”
미스트의 말에 배시시 웃다가 다시금 미스트에게 포옥 안기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레이시에게 아이의 이름은 어떻게 지어주고 싶은 거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질문에 눈을 깜빡이다가 잘은 몰라도 서로 자매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는 이름이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쌍둥이가 된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자기와 똑같은 날에 태어난 자매니까 쌍둥이라는 걸 누구든지 알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하자 미스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같이 고민해보자고 속삭였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속삭임에 얼굴을 붉히다가 미스트의 허리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잘까요? 지금은 뭔가 잘 안 떠오르는 시간이니까요.”
레이시의 얼굴을 자신의 가슴골에 파묻으면서 쓰다듬어주는 미스트.
레이시는 강하게 풍기는 미스트의 체취에 얼굴을 붉히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러자고 말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레이시가 잠에 빠지자 내일 있을 일을 생각하면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새벽 3시 반.
미스트는 시간이 되자 기계적으로 눈을 뜨더니 몸을 깨끗하게 단장한 다음 아침 식사를 준비했고, 4시가 되어서 레이시가 일어날 때 쯤에 방으로 돌아가 레이시의 입술에 입을 맞추면서 레이시를 깨웠다.
“아으으응…….”
“일어났어요? 그럼 씻고 하양이와 나비에게 밥을 주겠어요?”
“후아아암, 네에…….”
미스트의 입맞춤에 눈을 비비면서 일어나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면서 혀를 레이시의 입으로 집어넣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키스에 얼굴을 붉히다가 아침이라 입냄새가 날 거라며 미스트를 떼어냈다.
“저는 이렇게 짙은 냄새가 더 좋은 걸요.”
“……미스트, 변태. 저는 부끄럽다고요……. 좋은 모습만 보여줘도 모자란데…….”
“후후, 어떤 모습이라도저는 레이시를 사랑하는 걸요?”
“으뷰우…….”
“그럼 부탁드릴게요.”
레이시가 어깨를 가볍게 투닥거리자 레이시의 이마에 입을 맞추면서 자리를 뜨는 미스트.
레이시는 그런 미스트의 모습에 얼굴을 붉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내 미네르바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미네르바를 깨워 같이 나비와 하양이에게 밥을 주기 시작했다.
“후아아암~, 오늘은 나비가 저희랑 산책할래요?”
이제 막 도시에 도착해서인지 게으름을 피우는 하양이.
레이시는 그런 하양이의 모습에 나비에게 소의 몸통을 먹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고, 나비는 이마를 쓰다듬어주는 레이시의 말에 작게 그르릉거리며 기분 좋다는 듯 소리를 냈다.
“그렇게 좋아요?”
에일렌과 대화하는 습관이 생겨서인지 작게 웃으면서 나비의 이마를 쓰다듬어주며 웃는 레이시.
도중에 사람들이 지나가다 보고 겁을 먹는 불상사가 생기긴 했지만, 아무튼 나비와 함께 산책할 준비를 끝낸 레이시는 여관으로 들어가서 미스트에게 준비가 다 됐다고 말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아침을 먹자면서 다른 사람을 깨워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이미 일어났다면서 완전 무장을 하고 내려오는 엘라와 아샤.
두 사람은 오늘도 좀 바쁠 거니까 산책갔다가 돌아오면서 영주에게 인사해달라고 부탁했고, 레이시는 두 사람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인사할 때 해줬으면 하는 말이 있냐고 물어봤다.
“음, 그러네, 어제 안 찾아가서 신경 쓰고 있을 테니까 어제는 너무 피곤해서 못 갔다는 식으로 대충 둘러줘.”
“네, 그럴게요. 그거 외에는요?”
“응, 우리가 뭔가 할 건데 방해하지 말라고 해줘.”
“아……, 응, 그럴게요.”
어떻게 말하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하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아침을 먹으면서 미네르바, 미스트와 함께 어디로 산책갈지 물어보며 떠들고 웃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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