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7화 〉 나쁜 사람에게는 벌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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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을 입고 밖으로 나간 레이시와 미스트.
레이시는 바깥의 따스한 햇살에 눈을 가늘게 뜨다가 고개를 아래로 숙이면서 햇빛을 피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손을 잡고 아무 말 없이 도시 안을 천천히 걸어다녔다.
“레이시.”
그러다가 천천히 입을 여는 미스트.
미스트는 레이시의 손바닥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간질이다가 미안하다면서 사과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사과에 움찔 떨다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 자기가 해야만 했다고 말하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래, 자기가 해야만 한 일이다.
안 그러면 미스트가 암살자가 되어서 지금처럼 부드럽게 웃을 수 없게 됐을 테니까, 자기가 그렇게 미끼로 나서고 미스트나 다른 사람이 오는 걸 기다렸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이 에일렌을 협박 도구로 삼았고, 자기는 그 말을 듣고 이성을 잃고 원래 작전을 잊은 채 사람들을 죽이고 말았다.
그러니 둘 중 누군가가 사과해야만 한다면 미스트가 아니라 작전을 무시하고 움직였고 멋대로 괴로워하는 자기가 사과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미스트의 손을 잡다가 이내 미스트를 끌어안으면서 미스트에게 몸을 파묻었고, 미스트는 길에서 레이시가 길에서 안기자 당황하다가 이내 레이시를 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면서 공원에 가자고 말하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주변의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끄덕였고, 미스트는 레이시를 반쯤 안은 채로 레이시와 함께 공원에 가서 벤치에 앉았다.
그런 다음 미스트는 레이시를 껴안고 조용히 등을 토닥이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손길에 다시 눈물이 차오르다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억지로 눈물을 참기 시작했다.
잘못한 건 자기라고 생각하면서 눈물을 억누르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레이시의 눈가를 조심스럽게 닦아주다가 레이시의 이마에 입을 맞춰주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입맞춤에 천천히 시선을 들다가 미스트를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꾹 닫는 레이시.
미스트는 레이시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었지만, 레이시가 계속해서 답을 하지 않자 이내 입을 닫고 조용히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어주기 시작했다.
“미스트.”
“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레이시는 미스트의 이름을 부르면서 미스트와 다시 눈을 마주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싱긋 웃으면서 레이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레이시는 자기는 잘못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어떻게 대답할지 망설였다.
긍정할까? 아니면 조금 더 침묵을 지킬까?
남을 부수는 거라면 많이 해봐서 쉽지만, 남을 치료하는 건……, 그것도 정신적인 측면을 치료해본 적은 거의 없었기에 미스트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망설이면서 레이시를 바라봤다.
그러자 레이시는 말을 이어나가며 미스트에게 머리를 기대었다.
“저는 잘못되지 않았어요. 제가 한 일은 옳은 일이고……, 왕궁에 있는 그 누구에게 물어봐도 옳다고 대답할 거예요. 볼케릭 왕자님 같으면 그런 일로 흔들린다면서 뭐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러네요. 볼케릭 왕자님이라면 그럴 거예요.”
“그런데……, 그런데 에일렌을 보면 그런 생각이 전혀 안 들어요. 에일렌을 볼 때마다 제가 죽인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라요. 그들은……, 그들은 미스트의 말대로라면 전원이 사형이 확정된……, 구제할 도리가 없는 범죄자였겠지만, 법의 심판을 받을 권리가 있었을 건데, 그냥 제가 죽였어요.”
법의 심판을 받게 하고 죽게 됐다면 자기가 체포해서 경찰에게 넘겼다고 해도, 그리고 사망 소식을 들었다고 해도 레이시는 무서운 이야기라고 말하면서 에일렌을 안아주었을 것이다.
세상에는 무서운 범죄자도 있지만, 경찰과 법관들처럼 세상의 안전을 위해서 노력하는 아름다운 사람도 있으니 그 사람들에게 감사하자고 말하면서 젖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놀았을 것이다.
하지만 레이시는 그러지 않았었다.
전부, 전부 자기 손으로 죽였다.
망치로 내려찍고, 채찍으로 몸을 자르고, 손으로 머리를 뼈 채로 뜯어서 뇌수와 피를 쏟게 하고, 마탄을 쏘아내고, 하양이에게 사살을 명령하고……, 그렇게 해서 한 명을 제외하면 전원 죽이고 남은 한 명도 제대로 살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아무리 정당방위에 옳은 행동이라고 해도 내가 그런 짓을 해도 괜찮았을까?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미스트에게 안겼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네……?”
“기억을 봉인해드릴 수도 있어요. 레이시가 이런 생각을 못 하도록 암살자 세력을 만들어드릴 수도 있고요.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천천히 트라우마를 이겨낼 수도 있어요. 레이시가 원한다면 뭐든 해드릴게요.”
약물이 없는 치료든 뭐든 어떤 걸 선택하더라도 레이시를 좋아할 것이다.
자기가 싫어할 일은 없고 에일렌을 돌보는 것도 같이 힘내자고 말하는 미스트.
레이시는 그런 미스트의 말에 눈물을 글썽이다가 미스트에게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다시 한번 더 사과했다.
어떻게 하면 좋은 걸까…….
에일렌을 안고 싶고, 귀여워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에일렌을 지키기 위해서 죽였던 사람들의 모습이, 신음이, 목숨이 사라지는 감촉이 떠오르고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에일렌이 자기를 무서워하고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할 때마다 손이 떨린다.
지금 이 세상에서는 자기가 에일렌을 지키기 위해서 사람을 죽였다고 한다면 누구도 뭐라할 수 없다.
하지만 전생에서의 감각이 그렇게 충격을 떨쳐내려는 레이시를 잡고 늘어졌다.
레이시는 20년을 넘게 범죄자의 자식이라는 것만으로도 비난을 받던 세계에서 살았고, 여러 범죄중 중 가장 악독하다고 할 수 있는 살인을 저질렀으니 에일렌이 비난을 받는 게 아닐까?
그런 걸 생각하면 무서워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게 된다.
레이시는 그렇게 말하면서 미스트에게 기대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군인이 자주 호소하는 PTSD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무리는 아니다.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도 무서워해서 아샤의 수업을 받으면서도 덜덜 떨고 울음을 보일 정도로 전투에 적합하지 않은 성격을 지닌 레이시가 사람을 죽인 것이다.
그것도 군인처럼 여러 명이서 한 명을 죽인 게 아니라 한 명이 수십 명을 죽였다.
PTSD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면 오히려 걱정할 정도의 커다란 일이다.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다가 천천히 레이시와 눈을 마주치고는 레이시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며 레이시의 주의를 자기에게로 돌렸다.
“레이시.”
“네?”
“그럼 그냥 같이 나빠져버릴까요?”
싱긋 웃으면서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어주는 미스트.
미스트는 레이시가 그 사람들을 죽인 것으로 죄를 지었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고, 교회에 가도 교회의 사람들도 레이시를 칭찬해줄 거라고 말한 다음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는 그래도 레이시가 자기가 나쁜 사람처럼 느껴진다면 자기가 같이 나쁜 사람이 되어주겠다고 말하면서 레이시를 껴안았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당황하다가 이내 뭔가 긴장하던 게 탁 풀리는 감각에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천천히 미스트를 꽉 끌어안기 시작했다.
레이시가 착하든 나쁘든 언제나 같은 곳에서 같이 있겠다면서 레이시의 등을 토닥여주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포옹에 어깨를 점점 크게 들썩이다가 이내 울음을 억지로 억누르면서 계속해서 자기의 곁에 있어달라면서 미스트에게 조르기 시작했고, 미스트는 레이시가 어떤 사람이든 떨어지지 않고 옆에 있어주겠다고 속삭였다.
“정말이죠……?”
“네, 레이시가 어떻게 되어도 같이 있어줄게요. 나쁜 사람이 되든, 좋은 사람이 되든 언제나요.”
“그럼 안아주세요.”
“안아주고 있는데요?”
“더요.”
손에 힘을 주면서 미스트를 껴안는 레이시.
야차의 힘 때문에 조금 갑갑할 지경이었지만,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포옹을 받아주면서 천천히 레이시의 등을 쓸어내려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미스트는 레이시에게 진정될 때까지 여기에서 이러고 있자면서 부채를 소환해서 레이시에게 부채질을 해주었고, 레이시는 자기 몸에 부딪혀 사라지는 작은 바람에 숨을 고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름도 한참이네요.”
“그러……, 큼, 그러게요.”
“후후. 뭐 좀 마실 걸 살까요?”
한참 울어서인지 목이 막힌 듯한 레이시의 목소리에 작게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미스트.
아무리 야시장이 메인인 축제라고 해도 낮에 사람들이 안 논다는 건 아니고, 오히려 어린애는 낮에 노는 게 더 많았기에 공원 근처에는 많은 노점상이 장사하고 있었다.
음료수부터 시작해서 닭꼬치나 이런저런 군것질거리를 파는 노점상들.
평소라면 사기 전에 많이 고민할 요리들이었지만, 미스트는 레이시의 상태를 살피고는 음료수를 사오겠다고 말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헛기침을 하다가 어색하게 웃다가 같이 가자고 말하며 미스트의 손을 잡았다.
“맛있나요?”
“그……, 네. 에헤헤…….”
아직 완전히 괜찮아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괜찮아진 것 같은 레이시의 모습에 작게 웃는 미스트.
미스트는 조금 더 돌아다니자면서 음료수를 마시면서 레이시의 손을 잡아 끌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손을 잡고 가다가 이내 손을 맞잡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미스트와 팔짱을 끼고는 머리를 살짝 기대면서 걷기 시작했다.
조금은 불편한 자세.
하지만 미스트는 별로 개의치 않아 하면서 레이시와의 산책을 이어나갔고, 레이시는 미스트와 한참 걷다가 에일렌이 걱정되기 시작했는지 미스트에게 에일렌에게 가자고 말하며 미스트를 올려다봤다.
“괜찮죠?”
그러자 앞뒤 다 자르고 괜찮은 거냐고 물어보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잠시 입을 다물다가 괜찮을 거라고 말하며 어색하게 웃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어떻게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면서 돌아가자고 말했다.
“단, 옆에서 지켜볼 거예요.”
“네.”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어차피 평소에도 옆에 있었으니까 오늘도 옆에 있어도 별로 달라지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미스트와 함께 에일렌에게 돌아갔고, 이번에는 눈을 뜨자마자 레이시가 있는 걸 확인한 에일렌은 빨리 일으켜 달라는 듯 레이시를 보고 손을 내밀었다.
“마망 여깄네~.”
아직 조금 딱딱하게 경직된 목소리지만,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목소리에 조금은 안심하면서 레이시를 도와서 에일렌이 잘 때까지 돌보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에일렌이 웃을 때마다 움찔 떨면서도 미스트에게 기대면서 에일렌과 놀아주었다.
“후우우…….”
“수고하셨어요.”
“아하하…….”
미스트의 말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시선을 피하는 레이시.
미스트는 레이시의 눈동자에 죄책감 같은 게 서려 있다는 걸 느끼고는 조심스럽게 레이시의 뺨에 입을 맞추면서 레이시를 안아주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손에 자기 손을 겹치고는 살짝 겁을 내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미스트…….”
“네.”
“저, 엄마…… 될 수 있겠죠?”
“지금까지 잘 했었잖아요. 안 그래요?”
“미스트…….”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다시 한번 입을 맞추면서 웃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웃음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미스트의 손등을 가볍게 간질이기 시작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손장난에 똑같이 손장난을 치다가 레이시를 껴안고 깍지를 쥐었다.
자연스럽게 침대에 눕혀져서 미스트를 올려다보는 레이시.
잠시 어색한 공기가 흐르면서 미스트와 레이시는 서로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지키다가 이내 미스트의 손을 잡으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기 미스트.”
“네?”
“……안아주실래요?”
데이트할 때 했었던 안아달라는 말.
하지만 그 말의 의미가 다르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레이시의 손을 놓더니 레이시를 안고서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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