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6화 〉 첫 살인3
* * *
레이시가 일어난 건 다음 날 점심이 지나고 나서였다.
“으, 으으으음…….”
자기가 누워있다는 것도 모른 채 몸을 뒤척이다가 천천히 일어나는 레이시.
레이시는 침대에서 일어났다가 목이 타는 듯이 마르자 물을 찾기 시작했고, 레이시의 옆에서 앉아 자고 있다가 레이시가 움직이자 다급하게 일어나서 레이시에게 물을 건네주었다.
그러자 레이시는 배시시 웃으면서 물을 마셨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웃음에 괜찮은지 물어보며 레이시를 꽉 끌어안았다.
“아픈 곳 없죠? 네?”
“미, 미스트?”
“레이시, 몸에 이상이 있으면 말해주세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레이시의 뺨을 만지는 미스트.
레이시는 그런 미스트의 손길에 당황하면서 자기는 괜찮다고 말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대답에 정말 괜찮은지 물어보다가 입술을 꽉 깨물고 레이시에게 어디까지 기억나는지 물어봤다.
그러자 움찔 떨면서 미스트를 바라보는 레이시.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입을 벙긋거리다가 이내 무슨 말이냐며 회피하려고 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대답에 숲에서 기절한 건 기억하고 있냐고 물어봤다.
그 말에 얼굴이 천천히 창백해지는 레이시.
마치 일부러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억지로 떠올린 사람처럼 레이시는 손끝을 파르르 떨면서 물잔을 잡고 있다가 다급하게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리고 레이시는 그대로 변기를 부여잡고 그대로 토하기 시작했다.
“웨에에엑!”
한참을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변기를 부여잡고 머리를 박고 있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등을 두들겨주다가 레이시를 데리고 욕실에 데려가 몸을 씻겨주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손이 닿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을 휘젓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 미스트의 손을 꽉 잡았다.
레이시의 손에 묻은 물기 때문에 덩달아 젖는 미스트의 소매.
하지만 미스트는 그런 물기는 신경 쓰지 않고 레이시의 몸을 씻겨주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흠칫흠칫 떨면서도 눈앞에 있는 사람이 미스트라는 걸 인지해서인지 버둥거리는 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심스럽게 레이시의 머리를 감겨주는 미스트.
미스트는 레이시의 머리카락을 옆으로 치우고 레이시와 눈을 마주치다가 떠올랐는지 물어봤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가 전부 죽였다.
어떻게든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에일렌을 주살하겠다는 말에 흥분해서, 어떻게 주체하지 못해서 날뛰었다.
그것도 평범하게 죽인 게 아니다.
시체를 찾을 수 없도록 짓누르고, 움직이지 않는 시체마저도 보기 싫다고 그것을 없애기 위해 마법을 사용했다.
마력을 줘서 평소에는 난폭한 짓을 하지 않는 하양이에게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고, 그것만으로 모자라서 마지막 사람은 세뇌해서 죽기 직전까지 몰아세웠다.
지금 일어난다고 해도 아마 내가 죽으라고 말하면 정보를 토해내라고 하면 토해내겠지.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안색이 파래지다 못해 납빛으로 물들자 레이시를 꽉 껴안고 괜찮다고 속삭여주었다.
“레이시가 한 건 오라토리엄 왕국법상 정당방위에요. 괜찮아요.”
“우읏, 읏, 으으윽…….”
미스트의 말에 울먹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하지만 대답은 그렇게 했어도 레이시는 좀처럼 떨림을 진정시킬 수 없는지 공포에 사로잡힌 얼굴을 하고 있었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얼굴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망설이다가 약이라도 먹일지 말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전장에 나간 병사들이 자주 먹는 약을 먹이면 불안증세는 가라앉힐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레이시에게 투약할 약물을 생각하다 고개를 좌우로 저은 다음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하양이를 씻겨주겠냐고 물어봤다.
“이미 씻겨뒀지만, 간식이라도 주지 않겠어요?”
지금은 약물보다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 일단 다른 일로 레이시의 관심을 돌려보자.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레이시에게 하양이를 돌보지 않겠냐고 물어보면서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질문에 움찔 떨다가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자기 때문에 몸에 피와 살을 뭍힌 하양이니까, 그런 하양이니까 자기가 씻겨줘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미스트의 도움을 받아 몸을 씻고 하양이가 있는 마구간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하양이는 상처 하나 없는 몸으로 레이시에게 다가갔다.
레이시에게 애교를 부리듯이 이마를 비벼대는 하양이.
레이시는 하양이의 애교에 환하게 웃다가 뿔에 남은 흠집을 보고는 울먹거리면서 하양이에게 사과했고, 하양이는 레이시의 눈물에 레이시의 몸을 툭툭 밀다가 레이시를 그늘로 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레이시에게 자기 몸을 내어줘서 낮잠을 자자고 조르는 하양이.
레이시는 하양이의 애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하양이에게 몸을 파묻었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레이시의 옆에 앉아 레이시의 손을 잡고 어깨를 쓰다듬어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천천히 떨림이 잦아드는 레이시.
하지만 미스트는 그냥 가죽 주머니 안에 날카로운 못을 넣어서 바로 다치지 않게 만들었을 뿐이라는 걸 느끼고 불안한 얼굴로 미스트를 바라봤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시선에 어색하게 웃다가 고개를 숙이고 다시금 그 때의 기억을 되살리기 시작했다.
필요한 일이었다.
그냥 제압해서 재판으로 넘기면 되는 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자기가 어떻게 하지 않으면 에일렌이 위험했었다.
엄마인 자기가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에일렌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을 공격한 건 엄마로서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고, 그 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견디기에는 너무나 충격적이고 역겨운 일이다.
“흐으으…….”
자꾸만 손 안에서 생명이 사라지는 감촉이 떠오르자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면서 미스트에게 안기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를 안아주면서 계속해서 다독여주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품에서 다시 작게 울면서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죽인 사람들의 모습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자기가 그렇게 무서워질 수 있다는 것이 무섭고, 합당하고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고 해도 자기는 이제 살인자라는 것도 무섭다.
이제 에일렌을 안아줄 수 있을까?
피 묻은 손으로 에일렌을 안아줘도, 에일렌은 자기를 보고 웃어줄까?
에일렌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자 레이시는 계속 눈물을 흘리면서 바들바들 떨었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머리를 계속해서 쓰다듬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자 여관 안에서 에일렌의 칭얼거림을 들렸고, 레이시는 그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가 흠칫거리면서 미스트를 바라봤다.
그러자 레이시를 데리고 위로 올라가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가 자기 손을 붙잡고 걷자 안 된다면서 미스트를 말리기 시작했다.
“에일렌이 울잖아요.”
“하, 하지만 전…….”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가요.”
붉어진 눈시울, 가만히 두지 못하는 눈.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서 미스트는 지금 여기에서 밀어붙이지 못하면 한참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하고는 레이시를 억지로 에일렌에게 데리고 갔고, 레이시는 주춤거리다가 에일렌의 칭얼거림이 커지자 어쩔 수 없이 에일렌과 미네르바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레이시가 들어오자 당황한 얼굴로 에일렌을 내밀어주는 미네르바.
“주, 주인을 찾는 거 같다. 주인이 안아줘야 할 거 같다.”
“아, 아으…….”
미네르바의 말에 침을 꿀꺽 삼키면서 손을 가리는 레이시.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었던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반응에 같이 움찔 떨다가 조심스럽게 에일렌의 등을 받치면서 레이시에게 에일렌을 건네주었다.
그러자 에일렌은 손을 뻗으면서 자기를 안아주라고 조르기 시작했지만, 레이시는 그런 에일렌의 조름에도 불구하고 손에 남은 감각 때문에 좀처럼 에일렌을 안아주지 못했다.
“우, 아우우우, 마망…….”
그러자 울먹거리면서 레이시를 부르는 에일렌.
칭얼거리기만 하고 잘 울지 않았던 에일렌이 울려고 하자 레이시는 저도 모르게 가리던 손을 들었지만, 그러고도 망설이게 되는지 손끝을 파르르 떨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반응에 조심스럽게 레이시에게 다가갔다.
레이시의 반응을 이해하는 건 아니었다.
자기라면 동족인 하피를 죽이든 뭘 죽이든 전혀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실제로 자기 어미와 자매들을 죽였을 때도 미네르바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에일렌을 죽이려고 한 인간을 죽였다?
그런 거라면 그냥 점심에 봤었던 구름이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잊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레이시는 지금 사람을 죽였다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고, 미네르바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에일렌이 레이시를 찾는 것 같다면서 어떻게든 에일렌을 안겨주고 레이시의 손을 받쳐주었다.
그러자 에엘렌을 어쩔 수 없이 안아주고 울먹거리기 시작하는 레이시.
에일렌은 레이시가 자기를 안아주자 그저 기분이 좋은 듯 웃었고, 레이시는 그런 에일렌의 웃음에 눈물을 글썽이다가 억지로 울음을 참아내고는 침대에 가서 앉았다.
혹여나 다리에 힘이 풀리더라도 넘어지지 않도록…….
그러자 에일렌은 레이시의 가슴에 고개를 파묻고 뺨을 비비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에일렌의 애교에 어색하게 웃다가 이내 다시 울먹거리면서 에일렌을 못 안겠다면서 조심스럽게 에일렌을 침대에 눕혔다.
“조금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에일렌, 재워드릴까요?”
마법을 사용하겠다고 말하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놀란 얼굴을 하다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재우는 것까지는 하겠다고 말했고, 그러더니 이내 다시 공포심이 먼저 올라오기 시작했는지 얼굴이 굳혔다.
“흐, 흐으으…….”
잔뜩 망설이는 얼굴로 에일렌의 뺨을 쓰다듬어주는 레이시.
그러자 에일렌은 칭얼거리느라 조금 지쳤는지 금방 눈을 깜빡거리다가 자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에일렌이 자자 조심스럽게 이불을 덮어준 다음 손끝을 파르르 떨면서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에일렌을 안아주고 사랑해주고 싶은데, 이 손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말하면서 미스트를 안은 레이시는 미네르바에게 에일렌을 부탁한다고 말하더니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밖으로 나갔고, 미스트는 미네르바에게 자기가 레이시를 따라가겠다고 말한 다음 미네르바에게 에일렌을 부탁했다.
그리고 곧바로 레이시를 따라가는 미스트.
레이시는 멀리 도망가지도 못하고 여관의 계단에 주저앉아 울먹거리고 있었고, 미스트는 레이시가 극심한 우울증의 증상을 보이자 걱정스러운 얼굴로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다가 우울증에 쓰는 약을 꺼내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내 레이시의 옆에 앉아서 약을 먹겠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미스트가 건네주는 약을 보다가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약을 먹으면 편해진다.
정신과 약에 대해서는 안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혹할 정도의 속삭임이었기에 레이시는 미스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리고 한참을 망설였지만 이내 고개를 젓기 시작했다.
“……에일렌에게 밥을 줘야 해요.”
“그 부분도 계산한 약이에요.”
“그래도 싫어요…….”
“……레이시.”
“네?”
“그럼 저희 산책할까요? 다, 잊게요.”
싱긋 웃으면서 레이시의 손을 잡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제안에 고개를 좌우로 저었지만, 미스트가 여기에 있어봤자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산책을 가자고 말하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스트는 싱긋 웃으면서 레이시에게 옷을 갈아입고 오겠다면서 원피스를 꺼내더니 이내 레이시에게도 사복을 건네주었고, 레이시는 미스트가 건네준 옷을 바라보다가 미스트와 같은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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