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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345화 (345/542)

〈 345화 〉 첫 살인­2

* * *

자기를 욕하고 공격하는 건 무섭긴 했지만, 그 정도가 끝이었다.

엘라나 미스트, 미네르바와 아샤가 자기를 지켜줄 거고 안심시켜줄 거라는 걸 확신하고 있으니까 일상생활을 못 할 정도로 무섭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욕하는 것도 괜찮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욕먹는 건 무척이나 화가 나는 일이지만, 그들이라면 내가 그런 이유로 화를 내는 것을 더 싫어할 테니까 참을 수 있었다.

거기에다가 엘라나 다른 사람을 죽이겠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진짜로 그들과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에일렌을 죽이겠다고 하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내 아이를……, 사랑하는 엘라와의 아이를 죽이겠다고 말하는 건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고 말 정도로 참을 수가 없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화를 낸 적이 있을까 의심이 될 정도로 치솟는 분노.

사람을 죽였음에도 지금 당장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오르자 레이시는 무언가 실이 끊어진 것처럼 오히려 무덤덤해지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흉내를 내듯 고개를 확 꺽은 채 눈을 굴리며 날아오는 칼들을 쳐다봤다.

전에 만났었던 사람들이 던지던 것보다는 조금 빠른 단검의 속도.

하지만 레이시는 그 칼들이 이상하게 느리다고 생각하면서 칼을 허공에서 낚아챘고, 이내 아샤가 보여줬던 투척술을 그대로 흉내내듯 칼을 집어던졌다.

아샤처럼 회전 없이 일직선으로 던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철물.

몇백 그램이나 되는 철이 머리에 꽂히자 그대로 수박이 터져나가듯 머리가 터졌고, 레이시는 그 모습에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채찍을 회수한 다음 왼쪽에서 달려오는 사람의 몸통을 후려쳤다.

소리가 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후려친 채찍.

그 결과는 절단으로 이어졌다.

절단면이 뭉개진 것처럼 나더니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는 암살자.

그들을 통솔하던 여자는 그런 레이시의 전투가 기술이 좋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저 타고난 힘과 마력으로 짐승처럼 상대방을 죽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합리적이었다.

힘이 강하다면 기술이 왜 필요할까?

동서고금 막론하고 무술이 개발된 건 힘만으로는 상대하기 힘든 녀석을 죽이기 위해서이니 힘만으로 이렇게 적을 처리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게 합리적이겠지.

그렇게 생각한 여자는 일회용 암살자들을 계속 레이시에게 보내면서 자기도 마약을 입에 털어넣었다.

침과 섞여 들어오는 마약.

혈관이 팽창하고 심장은 평소의 3배 이상 뛰기 시작한다.

머리는 녹아내려서 죽인다는 것 외에는 생각할 수 없었고, 세상의 색감이 지워진다.

흑색과 백색, 적색의 세상.

선과 점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자 여자는 옆에 있던 최신의 암살자들에게 레이시의 사살을 명령했고, 가장 덩치가 큰 사람은 여러 날붙이를 붙인 망치를 레이시에게 휘둘렀다.

그리고 그걸 본 레이시는 망치에 가속도가 붙기 전에 망치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러자 우뚝 멈추는 망치.

마약과 온갖 물약으로 근육을 만든 2m의 덩치와 기껏해야 160을 간신히 넘길 거 같은 여자가 힘을 겨루는 그 모습은 아무리 봐도 기괴했지만, 레이시는 망치의 손잡이를 잡은 채로 암살자를 들어올렸다.

무게 중심이 뭐 어떻든 간에 신경 쓰지 않고 왼손으로 암살자와 무기를 같이 드는 레이시.

그런 다음 레이시는 그대로 망치를 휘둘러 남자를 떨어트린 다음 망치를 똑바로 잡았고, 그대로 고기를 다지듯이 남자를 내려쳤다.

우지끈­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라지는 상체.

레이시는 그러고도 모자란 지 몇 번이나 망치로 더 내려찍기 시작했고, 동료 암살자는 그 틈을 타 레이시의 몸을 칼로 찔렀다.

하지만 피부도 제대로 찢지 못하고 빗나가는 칼.

암살자는 그 결과에 잠시 멍하니 있다가 그대로 뒤로 빼려고 했지만, 레이시가 먼저 손을 뻗어 암살자의 머리를 잡아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으적거리는 소리와 함께 점점 어긋나기 시작하는 뼈.

암살자는 마약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몰려오는 고통에 레이시의 몸을 차고 때리고 난리를 피웠지만, 레이시는 그대로 손가락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엄지, 검지, 중지, 약지, 소지.

차례대로 힘을 주기 시작하자 레이시의 손가락은 암살자의 머리로 파고들기 시작했고, 뼈가 부서지고 핏줄이 끊어지기 시작하자 암살자는 점점 축 늘어지더니 머리가 엉망진창으로 쥐어뜯긴 채 던져지자 그대로 축 늘어져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레이시는 보기 싫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리고 엘라를 흉내내듯 손가락에 마력을 모아보는 레이시.

마탄이라고 하던가.

마법을 익히지는 않았지만, 쓸 수 있다고 느낀 레이시는 그대로 마탄이라고 중얼거렸고 녹색의 마탄은 그대로 레이시의 손가락을 떠나 암살자의 몸을 박살냈다.

엘라처럼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깨끗하게 지우지는 못했지만, 시체가 사라지자 만족스럽게 웃는 레이시.

그리고 남은 사람의 수를 확인한 레이시는 미스트라면 여기에서 어떻게 할지 상상하면서 입을 벌렸다.

“릴리트.”

들어본 적도 없는 이름.

하지만 레이시는 이 이름을 부르면 자기에게 해결 방법이 생길 거라고 느끼고서 이름을 불렀고, 릴리트는 그런 레이시의 목소리에 응하며 현실에 나타났다.

“어머. 후후……, 너는 분명 계약자의 애인이었지?”

“……?”

“미스트와 계약한 애정의 악마, 릴리트, 소환에 응했습니다.”

“죽여줘요, 저것들. 에일렌을 죽이려고 했어요.”

“에일렌?”

“저와 엘라의 딸이에요.”

“아하…….”

레이시의 말에 깨달았다는 듯 웃는 릴리트.

릴리트는 레이시가 저번에 봤을 때와는 다르게 사랑의 부정적인 면모도 깨달으면서 성장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자기를 보고 웃기만 하는 릴리트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한번 상대를 가리켰다.

얼른 죽이라고 말하는 레이시.

레이시의 눈은 완전히 맛이 가서 미스트처럼 공허하게 빛나고 있었고, 릴리트는 그런 레이시의 시선에 싱긋 웃더니 알겠다면서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자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더니 비명을 지르며 스스로의 목을 잘라내는 암살자들.

레이시는 처음에는 그 반응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그 사람들의 몸에서 애정이 느껴지기 시작하자 릴리트가 뭘 했는지 깨달았다.

마약을 뚫고 나를 사랑하게 만들어서 자기 혐오를 불러일으켰구나.

레이시는 그런 릴리트의 행동을 보더니 마지막으로 남은 여자를 쳐다봤고, 여자는 레이시가 자기를 쳐다보자 코에서 피가 흐를 정도로 전력으로 달려 레이시를 찔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레이시가 아샤가 자신의 채찍을 손에 쥐고서 살갗만 찢어진 것을 떠올리고는 그대로 칼날을 움켜쥐었고, 여자는 몸을 던지든 말든 꿈쩍도 안 하는 칼에 당황하며 레이시를 올려다봤다.

“분명 이렇게였지.”

그리고 연정의 야차의 발동을 통해 여자를 세뇌해 억지로 자기를 좋아하게 만들어보는 레이시.

여자는 그런 레이시의 행동에 발을 버둥거리며 저항했지만, 이내 점점 몰려드는 애정의 감각에 눈과 코에서 피를 흘리면서 저항에 실패하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그런 여자의 모습에 작게 속삭였다.

“죽어, 쓰레기. 너 같은 거 싫어.”

“아, 아아아…….”

여자는 레이시의 말에 충격을 받은 듯 부르르 떨더니 천천히 칼을 쥔 손에 힘을 빼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그런 여자의 반응에 천천히 칼을 손에 놓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자는 칼을 쥐고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여자의 반응에 천천히 떨어져서 주저앉은 여자를 내려다봤다.

“아아, 아아아……!”

차가운 시선.

레이시의 시선을 받은 여자는 눈물을 펑펑 흘리기 시작하더니 레이시의 다리를 붙잡고 빌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그런 여자를 죽일까 말까 고민하다가 미스트와 엘라의 대화를 떠올리고는 살려두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릴리트를 보면서 기절시켜달라고 부탁하는 레이시.

릴리트는 레이시의 명령에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그대로 여자를 기절시켜주었고, 레이시는 여자가 기절하자 짐을 잡듯 하양이의 등에 여자를 태우고 주변을 둘러봤다.

시체 투성이의 주변 풍경.

전부 자기가 만든 것.

그렇게 생각했지만, 레이시는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성이 느껴지지 않다고 생각하며 눈을 깜빡이다가 숲속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엘라와 미스트가 레이시에게 달려왔고, 레이시는 두 사람과 눈을 마주치자 천천히 현실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는지 바들바들 떨다가 그대로 축 늘어지며 기절하고 말았다.

“레이시!?”

그 모습을 보고 레이시가 당했다고 생각하고는 다급하게 달라겨 레이시의 몸 상태를 살피는 미스트.

미스트는 레이시의 몸 이곳저곳을 만지다가 레이시가 부상을 입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레이시를 껴안았고, 엘라에게 스트레스로 기절한 것 같다고 보고했다.

“그럼 그 피는……?”

“아마 암살자들의 피겠죠. 하양이의 몸에 묻은 피와 숲 안에서 나는 냄새를 생각해보면……. 레이시가 전부 죽였어요.”

그렇다고 생각하기 힘들지만, 그거 외에는 가능성이 없다.

미스트가 그렇게 말하자 엘라는 레이시의 뺨을 만지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돌아가서 레이시를 씻기자고 말했다.

그러자 미스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레이시의 몸에 남은 흔적을 보고는 릴리트를 소환했고, 엘라는 미스트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릴리트가 소환되자 릴리트를 가만히 바라봤다.

“이번에는 계약자가 소환했네.”

“당신, 레이시에게 소환됐었죠?”

“응.”

“……레이시에게 악영향을 줬습니까?”

“아하하, 아니이이~? 저 야차는 스스로 애정의 부정적인 면을 깨달았을 뿐이야. 아마 곧 한 단계 벽을 깨고 앞으로 나오겠지. 야차라는 건 스스로 부정적인 감정과 긍정적인 감정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되니까.”

자기 같은 악마의 경우에는 부정적인 부분을 더욱 깊게 파고들고, 악마의 대척점에 있는 천사의 경우에는 긍정적인 부분을 더욱 깊게 파고들겠지만, 야차는 아니다.

그렇게 말한 릴리트는 레이시의 성장을 축하해달라고 부탁했고, 미스트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자기를 바라보는 릴리트의 모습에 입술을 꽉 깨물고 릴리트를 역소환했다.

“미스트.”

“……네.”

“레이시랑 돌아가.”

“공주님은요?”

“레이시랑 돌아가. 아무 말 하지 말고. 네 잘못이고 뭐고 다 아니니까. 그냥 돌아가. 뒤처리는 나랑 아샤. 둘이서 할 수 있으니까. 레이시랑 같이 있어줘.”

“…….”

진지한 얼굴로 명령을 내리는 엘라.

미스트는 엘라의 명령에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엘라는 미스트에게 다시 한번 그냥 돌아가라고 말하며 거절은 허락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아래로 푹 숙이면서 하양이의 고삐를 잡는 미스트.

엘라는 그런 미스트의 반응에 다시 한번 괜찮다고 말해준 다음 숲의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미스트는 엘라가 숲 안으로 들어가자 하양이의 고삐를 잡고서 천천히 여관으로 돌아가 레이시를 씻겼다.

다시 한번 살펴봐도 큰 부상은 없는 레이시의 몸.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몸에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레이시의 몸을 씻기기 시작했다.

……능력만 생각해본다면 이상할 건 전혀 없다.

하지만…….

하지만 동물 한 마리 죽이는 것도 그렇게나 신경 쓰면서 고민하고 최대한 살릴 방법을 생각하던 레이시가 이렇게 사람을 죽이다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무슨 이야기를 들었기에 레이시가 이렇게 화를 낸 걸까?

그렇게 생각하던 미스트는 물기 어린 눈으로 레이시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레이시를 끌어안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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