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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344화 (344/542)

〈 344화 〉 첫 살인­1

* * *

“빡치네. 이 나라가 무슨 자기들 권력 투쟁의 장이야?”

미스트의 이야기를 전부 들은 엘라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가볍게 욕을 내뱉었고, 미스트는 그런 엘라의 반응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가만히 숙이고 있었다.

그러자 한숨을 푹 내쉬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는 엘라.

미스트는 엘라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세 사람의 성향이 다 다르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전쟁을 어떻게든 일으키려는 사람이 2명이거나 전쟁을 어떻게든 막으려는 사람이 2명이라면 쉽게 무마했겠죠.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아니니까 문제고요.”

만약 엘라가 아이야트나 슈레이처럼 권력이 강하다면 그냥 무시하고 처리해버리면 된다.

아무리 그들이 연맹국에서 중요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그들은 고작해야 연맹국의 일개 귀족일 뿐이며 아이야트와 슈레이는 명실상부한 차기 국왕 후보들이라 태생에 차이가 있다.

증거가 있으면 누가 그랬든 상관없이 연맹국 자체를 압박할 수 있고, 그렇게 된다면 연맹국에서 알아서 범인을 만들어서라도 사과해올 것이다.

안 그러면 엘라가 전쟁에 참가하지 않더라도 주변 국가에서 연맹국을 규탄하고 연맹국을 어떻게 해버릴 가능성이 크니까.

하지만 엘라는 오라토리엄 왕가의 사람이기는 하지만, 국왕의 후계자는 아니다.

신분이나 맡고 있는 직책이 낮은 건 아니지만, 굳이 따지자면 엘레오놀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게 엘라다.

그렇다면 그저 그런 증거만으로는 모자라다.

엘라가 지금 이 상황을 컨트롤하기 위해서라면 누가 어떻게 내밀더라도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명백한 증거가 필요하다.

하지만 자기를 도발하고 있는 녀석들은 그런 걸 남길 정도로 멍청한 녀석이 아니다.

그렇기에 엘라와 미스트는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고, 그만큼 치밀어오르는 짜증을 어떻게 감당할 수가 없었다.

“후우우우……. 뭐, 일단 흥분하면 될 것도 안 되니까 진정하고 생각해볼까…….”

테이블을 탁탁 두들기면서 눈을 가늘게 뜨는 엘라.

엘라는 미스트에게 어떻게 하면 일을 빠르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엘라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다가 빠르게 정리하는 방법과 느린 방법이 있다고 대답했다.

“빠른 건 안 돼. 누구 하나 범죄자가 될 수 없어.”

“그럼 천천히 움직이는 것밖에 없는데 꽤 성가실 거 같아요.”

“신경 쓰지 말고 말해. 너를 위한 일이니까.”

진지한 눈빛으로 미스트를 바라보면서 뭐든 말하라고 명령하는 엘라.

미스트는 그런 엘라의 눈빛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다가 이내 배시시 웃으면서 예전에 처음 만나 계약을 했을 때가 떠오른다고 말하다 숨을 크게 내쉬었다.

“우선 아갈레타 가문과 협상해서 어떻게든 증거를 파악하는 방법이 있죠. 벌레 새끼들과 손을 잡는다는 게 마음에 안 들지만 지금 저희가 부족한 건 인력이니까요.”

“아갈레타를 지워버릴 계획은?”

“세우려면 할 수 있죠. 거기에다가 제가 신분 세탁을 여러 번 거치면서 몰락 귀족이라는 거짓 신분을 지니게 됐으니까 그 신분을 활용해서 분가의 사람들을 통합해서 아갈레타의 벌레를 쓰고 난 다음에 치워버릴 수도 있고요.”

“좋아.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한 번 고민해보자. ……물론 그렇게 되면 네가 편해지기 힘들 테니까 다른 방법이 있으면 다른 방법을 고르고. 그래서 다른 방법은?”

“……다른 방법은 레이시를 믿는 방법이에요. 저들은 저와 협상을 어떻게든 해야만 하니 협상 도구는 여러 개가 필요하죠. 거리를 1km를 정도 두고 레이시가 따로 움직이면 그들은 레이시를 납치하기 위해서 움직일 거예요.”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있겠지?”

“그렇죠, 하지만 레이시가…….”

레이시가 그 미끼 역할을 견디고 자기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미스트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라고 말했고, 엘라는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려 시선이 느껴지는 곳을 바라봤다.

그러자 에일렌을 껴안고 있던 레이시와 눈을 마주쳤고, 미스트와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던 엘라는 화들짝 놀라면서 레이시를 바라봤다.

“어, 언제 깼어? 에일렌이 깨서……, 아니, 아니다. 이야기 들었어?”

“……전부요.”

레이시의 말에 엘라와 마찬가지로 놀란 얼굴을 하다가 고개를 푹 숙이는 미스트.

그러다가 미스트는 이내 어색하게 웃으면서 자기는 괜찮으니 두 번째 작전은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고, 레이시는 처음 보는 미스트의 어색한 웃음에 입을 우물거리다가 그 작전이 얼마나 위험한 건지 물어봤다.

“시, 신경 쓰지 마세요! 다, 다른 방법도 있으니까! 이건, 그러니까, 레이시와 관련되서 조급해서 다른 작전을 생각하지 못 하는 거예요.”

“거짓말.”

미스트의 반응에 한숨을 내쉬더니 미스트를 앉히고 에일렌을 안겨주는 레이시.

레이시는 솔직하게 말해주면 좋겠다고 말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엘라를 보다가 엘라도 아무 말도 못 하자 입술을 꽉 깨물고 다른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마 별로 효과도 없고 엘라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확실하게 처리하는 방법은 아갈레타의 벌……, 암살자들을 받아들이고 다시 암살자가 빼지도 박지도 못하는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든, 아니면 레이시를 미끼로 삼아서 연결고리를 전부 부숴 제대로 경고하던가 그 방법밖에 없어요. 전자는 연맹국의 사람을 견제할 수 있고, 후자는 공주님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해요.”

“그렇구나.”

“네.”

“미끼가 되면 된다고 했죠? 혼자서 성벽에서 나가면 되나요?”

“……레이시, 위험해요. 차라리 제가.”

“싫어요.”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좌우로 젓는 레이시.

레이시는 미스트를 바라보더니 미스트의 손을 잡고 미스트가 다시 그런 곳에 가는 건 자기가 다치는 것보다 싫다고 말하며 두 번째 작전을 자기에게 설명해달라고 말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에헤헤, 미스트가 이렇게 반응하는 거 처음이네요.”

“레이시.”

“저는 미스트가 다시 그런 일을 하길 원하지 않아요. 그리고 나중에 저와 미스트 사이에 태어날 아이가 미스트에게 안기지 못하는 생활을 보내는 것도 싫어요. 그러니까 할거에요.”

“……해독제는 미리 먹고 가세요. 셔츠랑 베스트 사이에서 늑골과 흉골을 덮는 갑옷도 입힐 거고요, 비녀도 준비하고 가세요. 엘라 공주님과 제가 인챈트 해둬서 급할 땐 그걸 발동시키고 3m 정도 도망치세요. 휘말려도 레이시의 몸이라면 크게 다치진 않겠지만, 안전거리는 3m에요. 포션은 허벅지에 챙겨드릴 테니 상처가 생기면 허벅지에 깊숙하게 찌르세요. 부작용으로 피로가 몰려오겠지만, 급속도로 회복해서 상처를 곧바로 아물게 해줄 거예요.”

레이시의 대답에 레이시를 설득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말을 토해내는 미스트.

미스트는 언제나 여유롭게 움직였던 것과 다르게 흔들리는 눈을 주체하지 못하고 미스트의 어깨에 손을 올렸고, 레이시는 그런 미스트의 반응에 작게 웃으면서 그래서 다음은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내일 아침 하양이를 타고 도시의 남문으로 나가달라고 말하는 미스트.

미스트는 도시 남문으로 나가서 성문에서 1km 정도 떨어지면 경비가 눈으로 볼 수 없는 곳이 생기니 그쪽으로 들어가라고 말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지시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하양이 말고는 아무도 소환하면 안 되냐고 물어봤다.

“암살자들에게 있어서 나비는 천적일 거예요. 나비는 독에 대한 내성도 있고 가죽도 질기니 그들의 단검으로는 뚫을 수가 없거든요. 그러니 나비가 나타나면 저희가 도착하기 전에 그들을 지휘하는 사람이 도망칠 거예요. 그럼 레이시가 미끼가 된 이유가 없어져요.”

“그렇군요. 알겠어요.”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레이시는 알겠다면서 숨을 깊게 내쉬더니 미스트에게 안겨 눈을 감았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레이시는 미스트와 이야기한 대로 혼자서 하양이의 등에 올라타 자기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미네르바를 안심시켰다.

“괜찮아요. 그럼 다녀올게요.”

“……최대한 빨리 가겠다.”

“네, 믿고 있어요. 미네르바.”

레이시의 대답에 천천히 손을 놓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미네르바가 손을 놓자 이제 진짜라면서 침을 꿀꺽 삼키다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도시를 빠져나갔고, 이내 야시장에서 느꼈던 시선이 다시 느껴지자 손끝을 파르르 떨면서 미스트가 말한 숲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제는 숨길 생각도 없는지 대놓고 발걸음 소리를 내면서 레이시를 따라오는 사람들.

레이시는 그런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에 적당히 등을 가릴 수 있는 바위가 보이자 하양이의 등에서 내려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야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역시, 미끼였군요.”

“네. ……그러니까 얌전히 돌아갈 수 없을까요?”

레이시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뜨면서 나타나는 사람들.

레이시는 그 사람들을 보면서 침을 꿀꺽 삼키면서 제발 포기해줄 수 없겠냐고 물어봤고, 레이시의 말에 여자는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자기에게 뒤로 물러난다는 선택지는 없다면서 전원 무기를 꺼내고 마약을 먹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이상 당신을 죽이고 에일렌을 죽이겠습니다.”

“……네?”

“저희는 살인청부업자. 암살자가 아니라 어둠 속에 다시 숨는 법을 모르죠. 그러니 저희가 존재했다는 걸 미스트 님에게 새겨넣기 위해서 당신과 에일렌을 죽이겠습니다.”

“에일렌은 아무것도 몰라요.”

“상관 있습니까? 죽일 건데.”

“……그냥 도망쳐요. 그럼 여기에서 더 뭐라고 하지 않을게요. 엘라도, 미스트도 제가 설득해서 죽인 것처럼 꾸미도록 해볼게요. 방금 그 말도 저 혼자 욕을 먹었다고 생각하고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요. 그러니까 제발 도망쳐주세요. 네?”

고개를 푹 숙이고 바들바들 떠는 레이시.

여자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전에 죽인 젊은 애 엄마도 저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다 죽이긴 했지만……, 평범한 엄마라는 건 다들 저런 걸까?

자기는 겪지 못한 애정에 그렇게 생각하던 여자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면서 고개를 좌우로 저은 다음 몸에 마약을 투약하면서 전투를 준비했다.

그러자 어깨를 들썩이면서 팔뚝을 감싸쥐는 레이시.

여자는 그 모습에 일단 부하 두 명을 시켜 레이시를 공격시켰고, 명령을 받은 남자들은 그대로 쿠크리 나이프를 들고 레이시를 토막 내기 위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터져버리는 남자의 머리.

반대쪽 남자는 갑자기 자기 동료의 머리가 터져나가자 그쪽을 쳐다봤고, 레이시는 그 남자의 머리를 잡더니 땅바닥에 내다 꽂았다.

그러자 그대로 몸이 앞으로 무너지더니 머리가 아예 사라져서 피가 솟구치는 남자.

레이시는 숨을 고르다가 팔꿈치까지 박힌 팔을 천천히 뽑아내면서 숨을 고르기 시작했고, 여자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당황하며 레이시를 바라봤다.

분명 아갈레타의 정보로는 성격이 전투에 적합하지 못해 일반 전투원도 제대로 이기지 못할 정도로 연약하다고 들었는데……, 정보가 잘못됐나?

아니, 왕궁에서 요양했었던 정보가 있던 걸 생각해보면 아갈레타의 정보는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갑자기 성격이 변했다?

그렇게 생각하던 여자는 레이시를 바라봤고, 전투가 익숙하지 않은지 전신에서 마력을 뿜어대면서 녹색의 기운을 내뿜던 레이시는 거친 숨을 내쉬면서 눈을 치켜떴다.

“에일렌은 안 돼.”

“……!”

“난, 도망가라고 했는데……! 에일렌은, 에일렌은……!”

이를 꽉 깨물더니 단검을 던지려는 사람을 보고 그대로 하양이에게 마력을 들이 부우면서 죽이라고 명령하는 레이시.

하양이는 레이시의 지시에 단검을 무시하고 그대로 달려들어 암살자를 들이박았고, 암살자는 하양이의 박치기에 그대로 몸이 터져나가서 뼈와 살점을 흩뿌렸다.

“하아, 하아……. 이제 나도 몰라……, 에일렌만큼은……, 에일렌만큼은 안 돼.”

뱀처럼 쭉 찢어진 눈으로 명령을 내리는 여자를 노려보는 레이시.

여자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죽음을 직감하면서도 캘러미티 가문의 분가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칼을 뽑아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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