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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343화 (343/542)

〈 343화 〉 암살자의 피­3

* * *

“자, 그럼 어떻게 할까요…….”

레이시가 잠들자 한숨을 내쉬면서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미스트.

일단 죽이는 건 확정이다.

세상에서 지워버린 캘러미티의 잔재에 귀찮은 벌레 새끼들의 하수인이니 지우지 않고서는 자기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중요한 건 어떻게 정리하는가?

어떻게 정리해야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인가?

아갈레타의 도움을 받고 있으니 암살자를 대비해서 레이시의 곁에는 무조건 한 사람 정도는 있어야 한다.

자기가 일하는 도중에 경비가 자기를 귀찮게 하지 않기 위해서 경비와 협력하면서 겉으로 움직여줄 사람도 필요하고, 동시에 도시에서 난리를 피우니 피투이 백작에게 뭔가 이익이 되는 걸 물려서 입을 다물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람의 분배는 이미 정해져 있는데, 그대로 해도 괜찮을까?

지켜야 하는 대상이 레이시 혼자라면 미네르바 혼자서 지키더라도 안심할 수 있지만, 이번에 미네르바가 지켜야 하는 대상은 레이시와 에일렌 두 사람.

암살자들이 막 들이닥친다고 했을 때 미네르바가 혼자서 두 사람을 지킬 수 있을까?

아마 100번 그런 일이 생기면 99번은 무사히 지키겠지만, 100번 싸워서 100번 지킬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안심할 수 없었던 미스트는 단검을 만지작거리다가 눈을 가늘게 뜨며 다른 방법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에일렌을 재우면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엘라는 미스트에게 혼자서 할 거면 나가지 말라고 말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레이시도 그런 걸 원하지는 않을 거야.”

“……그럴까요?”

“그렇지. 너 혼자서 그 사람들을 전부 죽이겠다고 범죄자 짓을 해버리면 레이시가 퍽이나 좋아하겠다.”

“그럼 범죄자가 아니면 되겠네요?”

“그냥 그만둬. 이건 명령이야. 내 가족에는 너도 포함된 거 알지? 죽이는 건 도와주겠지만, 혼자서 범죄자가 되겠다는 건 안 돼. 나와 계약할 때 캘러미티를 버리겠다고 했었잖아?”

“……그러네요. 죄송해요. 조금 흥분했어요.”

엘라와 단 둘이, 아샤와 미네르바만 있었더라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켜야 할 대상이 있고, 그 대상이 자기에게 있어서 소중한 사람이니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나중에 어떻게 해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 엘라도 허락하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니까 다른 방법을 생각하는 게 좋겠지.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레이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레이시의 이마에 입을 맞추면서 자리에서 일어났고, 엘라는 그런 미스트를 보고 위험한 건 안 된다고 한 번 일러주었다.

그러자 명심하겠다면서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미스트.

미스트는 아샤에게도 산책을 갔다 오겠다고 말하더니 그대로 밖으로 나가 여관 근처에 알람을 설치한 다음 야시장을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러자 천천히 느껴지는 시선들.

이번에 시체에 남은 흔적을 보고 자기 가문의 분가라는 걸 알게 돼서 일까?

미스트는 전에 미행당했을 때와 다르게 확실히 캘러미티 가문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면서 발걸음을 계속 옮겼고, 미스트를 미행하는 사람들은 미스트가 미행을 눈치챘다는 걸 느끼면서도 천천히 따라가기 시작했다.

전에는 최신의 암살자니 뭐니 하면서 미스트를 협박했지만, 그건 레이시가 있었기 때문에 통했던 협박.

미스트가 혼자 있는데 그런 협박을 한다면 운이 좋아야 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걸 모를 정도로 멍청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최대한 미스트의 신경을 건들지 않는 쪽으로 움직였고, 미스트는 그런 미행의 움직임에 속으로 헛웃음을 흘리면서 동전을 만지작거렸다.

“슬슬 나오실까요?”

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동전을 던져서 사람들을 제압하고 브레인 이터로 뇌를 강제로 탈탈 털어버리고 싶지만……, 그러면 피투이 백작이 무마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게 될 테니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저들이 원하는 게 들어줄 수 있는 수준의 일이라면 들어주고 끝내자.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벤치에 앉아서 자기 옆자리를 비웠고, 그러자 저번에 대표로 나왔었던 여자가 미스트의 옆자리에 앉아서 음료수를 홀짝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왜 저를 찾아오신 건가요? 제가 한 짓을 생각해본다면 어지간한 일로는 제게 접근하기 힘들 텐데요.”

자기의 심기를 건든다면 당장에 자기에게 죽는 걸 둘째치고 엘라에게 걸려서 기껏 만든 세력도 전부 사라질 수도 있다.

10년이나 들여서 세력을 키워뒀는데 괜히 멍청한 짓을 해서 그 세력을 없앨 필요가 어디에 있을까?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대체 왜 자기를 찾아왔냐고 물어보면서 동전을 만지작거렸고, 여자는 미스트의 질문에 입을 열었다.

“암살자들을 규합해주셨으면 합니다.”

“아하하, 그런 쓸데없는 일은 당신들이나 하세요. 저는 레이시와 결혼할 거고, 엘라 공주님에게 봉사하면서 시간을 보낼 거랍니다.”

“당신의 피가 그걸 허락할까요?”

“그런 피 같은 건 아무래도 좋은데요. 애초에 그런 ‘피’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제가 순혈인 것도 아니고요. 여러 재능 있는 사람을 짐승처럼 교배시켜서 만든 게 저잖아요? 그 덕에 저는 천악인이라는 기묘한 별명까지 얻게 되었고요.”

미스트의 말에 눈을 깜빡이는 여자.

여자는 그럼 다른 방식으로 말하면 어떻게 생각할건지 물어보면서 미스트와 눈을 마주쳤고, 미스트는 여자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뭔가 할 말이 있으면 뭐든 해보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자 잠시 숨을 고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연맹의 매, 그의 하수인인 매의 발톱단. 그들이 오라토리엄 왕국에 침입했습니다.”

“으응? 그래서요? 그게 암살자인 당신들과 무슨 상관이죠?”

그들은 군인.

이 나라에 정착할 생각은 없을 거고 이 나라에 들어와서 하려는 일도 검성과 불굴의 장군을 견제하기 위해서이지 뒷골목의 살인청부업자들을 밀어내려고 온 것이 아니다.

굳이 이들이 위협을 느낀다고 한다면 그건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불법조직을 처리하면서 생긴 항쟁이겠지.

그런데 그걸 굳이 자기가 알아야 할까?

연맹국의 매의 발톱단인지 뭔지 하는 사람들도 국가가 운영하는 불법 조직은 국가적인 문제가 될 테니 건들지 않을 거고, 적당히 눈치가 있는 조직이라면 휘말리지 않도록 알아서 뺄 것이다.

거기에 휘말린다면 그 집단의 수명이 거기까지라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여자를 빤히 쳐다보면서 계속 말해보라고 턱짓했고, 여자는 미스트의 신호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스트에게 찾아온 이유를 말해주었다.

“그들에게 휘말리지 않도록 왕국에 침입한 이유를 찾던 도중 그들의 목적이 뭔지 알게 되었고, 그것을 이용해서 미스트 님과 거래하러 왔습니다.”

“……?”

“거래 조건은 저희가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미스트 님께서 저희의 당주가 되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여자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자기가 굳이 그래야할 이유가 있냐고 물어보는 미스트.

미스트는 어차피 별 볼 일 없는 일이면서 그렇게 큰 정보가 있는 듯 구는 이유가 뭐냐고 물어봤고, 여자는 미스트의 질문에 여기에서는 따로 정보를 주지 않으면 거래가 안 되겠다 싶어서 매의 발톱단이 노리는 게 뭔지 말해주었다.

“그들은 에일렌을 노리고 있습니다.”

“…….”

“에일렌을 죽여서 엘라를 분노시키고 그 책임을 연맹국의 불굴의 장군에게 떠넘겨서 전쟁을 일으킬 생각입니다. 전쟁을 일으켜서 잘 풀리면 불굴의 장군을 도와줘서 연맹국의 3번째 서열을 차지하고 잘 안 되면 엘레오놀 공주와 협상해서 북쪽에 붙을 생각입니다.”

“아핫…….”

여자의 말에 작게 웃는 미스트.

미스트는 한참을 웃다가 아갈레타도 똑같은 생각이냐고 물어봤고, 여자는 미스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갈레타의 전언이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종이에 적힌 내용은 이들이 말하는 내용이 진짜라는 아갈레타의 대답이었다.

가문의 문장까지 찍혀있는 걸 보면 100% 확신하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던 미스트는 차갑게 식은 눈동자로 만약 자기가 이 일을 거절한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봤고, 여자는 미스트의 질문에 어차피 돌아가봤자 아갈레타에게 죽을 테니 레이시를 죽이겠다고 대답했다.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저희들은 전부 죽겠지만, 엘라에게 남은 상처를 에일렌에게 똑같이 남길 방법은 있습니다. 저희는 캘러미티의 분가, 암살자인 동시에 살인청부업자입니다.”

“흠, 그렇군요.”

목숨을 대가로 하는 마법, 혹은 저주.

그런 거라면 확실히 전원의 목숨을 바쳐서 에일렌을 공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같잖아서 웃음을 연신 터트려대다가 이내 마른 세수를 하면서 웃음기를 지우기 시작했다.

차갑게 식어서 공허한 빛을 띄기 시작하는 미스트의 눈.

미스트는 그 시체 같은 눈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천천히 한숨을 내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고, 여성은 미스트의 분위기에 겁을 먹었는지 작게 뒷걸음질치며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스트는 언제 노려봤냐는 듯 싱긋 웃으면서 여자에게 인사하더니 엘라와 상의하고 오겠다고 대답했고, 여자는 미스트의 대답에 움찔 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참……, 레이시와 에일렌을 건든다면, 저도 제가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겠으니까 건들지 말아주세요. 아시겠죠?”

싱긋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미스트.

미스트는 여자가 겁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한숨을 내쉬면서 자기가 얻은 정보를 전해주기 위해서 발걸음을 옮기는 동시에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저들이 한 이야기가 신뢰가 없는 건 아니다.

자기 입장에서야 벌레에 불과하지만, 그건 자기가 비정상적으로 뛰어나서 그렇지 아갈레타의 정보 수집 능력은 무시할게 안 된다.

거기에다가 그들의 계획은 확실히 연맹의 매가 생각할법한 행동이다.

검성이 우리를 도발하기 위해 덤볐다가 고자가 되었다는 것까지 생각한다면 뒤집어씌우기 쉬울 테니 더욱 더 그러려고 하겠지.

그렇게 되면 전쟁은 불가피할 거고 연맹의 매는 전쟁 후 엘라의 행적에 따라서 움직이면 된다.

엘라가 전쟁에 참여한다면 불굴의 장군을 비판하고 엘레오놀에게 가면 되고, 엘라가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오라토리엄 왕국을 미적지근하게 공격하면 된다.

그렇다면 전쟁에 이기면 개선장군이 되는 거고 전쟁에 져서 재판을 받을 땐 연맹의 하이킹의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전했지만, 자기는 오라토리엄 왕국의 사람들을 최대한 죽이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였다고 말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눈을 가늘게 뜨다가 단검을 휙휙 돌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엘라의 명령을 무시하고 움직이고 싶다.

메이드라는 입장만 없다면 매의 발톱단을 아주 간단하게 제거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레이시를 안전하게 만들고 싶고, 레이시를 웃게 만들고 싶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겠죠…….”

그래서는 레이시가 울어버린다.

자기가 과거에 당했었던 일을 듣기만 했는데도 울 정도로 마음이 약한데 자기가 범죄자가 되겠다고 말하면 그 충격으로 어떻게 될지 짐작할 수 조차 없다.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혼잣말을 내뱉은 자기 입술을 조심스럽게 매만지다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무기력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뭐……, 일을 아예 해결하지 못하는 건 아니니까, 여기에선 참을까요.”

피식 웃으면서 혼자서 여관으로 돌아가는 미스트.

엘라는 여관에 누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아샤와 미네르바에게 레이시와 에일렌이 잠든 침실의 경호를 맡긴 다음 아래로 내려갔고, 미스트는 엘라가 자기를 맞이하자 어색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무슨 일 있었지?”

“네. 전부 이야기해드릴게요.”

한숨을 내쉬면서 자리에 앉는 미스트.

엘라는 그런 미스트의 반응에 차를 가져오더니 미스트의 맞은편에 앉아 미스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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