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2화 〉 암살자의 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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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샤가 미네르바가 잡아 온 사람들을 고문하고 있을 때, 엘라와 미스트는 블랙마켓에 가서 미스트를 협박한 사람에 대한 정보를 캐묻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위험하니까 안 엮이는 게 좋습니다. 저희는 그들과 엮인 게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습격받아서 네 명이나 죽었습니다.”
“마약을 썼나?”
“네, 처리한 녀석들을 해부해서 확인했는데 질이 좋은 마약은 아니더군요. 죽은지 하루, 이틀만에 살이 썩어 녹을 정도로 저급의 마약을 썼습니다.”
“흐으으음…….”
“암살자들은 원래 다 그렇죠. 뭐.”
누군가를 몰래 죽여서 이익을 볼 수 있는 사람, 단체가 얼마나 있을까?
왕족이나 귀족처럼 대놓고 악한 짓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몰래 사람을 죽이는 엘리트 인력을 기르겠지만, 여기에서 굴러다니거나 귀족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말단 중에 최말단이라면 그런 게 없다.
그냥 마약을 먹고 정신이 오락가락할 때 대로변에서 사람들이 다 있는 곳에서 그 사람을 최대한 잔혹하게 죽이고 경고의 의미를 담은 살인을 저지른다.
그게 끝이다.
캘러미티 가문에서도 질릴 정도로 그런 수단을 썼었기에 미스트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엘라에게 자기를 찾아온 사람들은 자기 가문의 하수인 같으니 그런 수단은 익숙할 거라고 말했다.
“시체를 보여주실 수 있나요?”
“……지금은 완전히 녹아서 고기 죽이 됐습니다만.”
“괜찮아요. 보여주세요.”
미스트의 요구에 싫다는 얼굴을 하는 블랙마켓의 주인.
하지만 엘라의 말을 거절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인지 주인은 부하에게 관을 들고 오라고 말헀고, 미스트는 싸구려 관에 담긴 시체를 보고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완전히 녹아서 뼈만 남아있는 시체.
죽은지 4일 정도가 지났으니까 구더기가 자랄만도 하지만 관 안에 있는 살에는 파리 한 마리, 구더기 한 마리도 없었고 미스트는 그런 시체의 모습에 싱긋 웃으면서 시체의 뼈를 가볍게 눌렀다.
그러다 그대로 풀썩 주저 앉으면서 망가지는 뼈.
미스트는 그런 뼈를 보고 피식 웃으면서 자기를 찾아온 사람은 캘러미티 가문의 사람이 확실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아무런 정보도 안 남기는 방식으로 시체를 만드는 걸 보면 그 사람들의 사용인들이 맞는 것 같아요.”
“그래?”
“네, 어떻게 저를 찾아낸 건지……. 분명 저는 여러 처리를 거쳐서 완전히 다른 사람일 건데 말이죠…….”
얼굴을 보고 찾았다기에는 인피면구 같은 도구도 있으니 자기를 특정하기 힘들 것이다.
거기에다가 자기처럼 캘러미티 가문에서도 엘리트 축에 속하는 사람이라면 얼굴 기록을 남을 때 일부러 이상하게 만든 얼굴을 기록해두고 개개인에게 부여된 암호를 풀어서 얼굴을 해독하게 하고 그 암호는 당주에게만 일자전승된다.
대체 어떻게 찾아온 걸까?
미스트는 그런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관 뚜껑을 닫았고, 엘라는 미스트에게 짐작가는 구석이 없냐고 물어봤다.
“글쎄요. 저는 제 정보를 전부 처리하면서 다녔는데……. 제가 그 가문의 사람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정보를 줬을까요? 그렇다면 아마 귀족파겠네요.”
아이야트의 지지자든 슈레이의 지지자든 지금 당장 엘라와 척져서 좋은 일은 없다.
단순히 엘라의 지지를 못 받는다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의 세력이 비등비등한 상황 속에서 국왕도 두 사람 중 어느 쪽 후계자가 좋은지 계산하는 중이니 괜히 찝찝한 짓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러니 자기에 대한 정보를 퍼트린 인간이 있다면 그건 아마 귀족파 귀족일 것이다.
아직 엘라를 공격한 이유는 전혀 모르겠지만……, 아마 별 시답잖은 이유로 이 지랄을 벌이는 건 확실하다.
굳이 생각하자면 엘라가 레이시를 만난 이후 활동을 뜸하게 해서 귀족들의 힘이 세지려고 했는데 에일렌이 성장하며 엘라가 다시 활동하기 시작하자 안 될 거 같아서 자기의 정보를 퍼트렸다는 가설이 가장 신빙성 있겠지.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한숨을 깊게 내쉬다가 엘라에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미스트의 질문에 고민하다가 이내 어깨를 으쓱이면서 미소를 지었다.
“뭐, 어떤 녀석이든 내가 할 짓은 정해져 있어. 나를 건들면 후회하게 해줘야지. 응. 우리를 건들였으니까 죽여줘야지.”
거기에다가 미스트의 정체를 알고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엘라는 살릴 생각이 없으니 죽이자고 말했고, 미스트는 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블랙마켓의 주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사람을 보내라고 말한 다음 엘라와 함께 블랙마켓에서 빠져나왔다.
“안녕히 가세요.”
“네, 수고하세요.”
연금술사 가게로 위장한 블랙마켓에서 빠져나온 엘라는 주변을 슥 둘러보다가 시선이 느껴지지 않자 고개를 갸웃거렸고, 미스트는 엘라의 반응에 어쩌면 레이시의 주변에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저를 죽이려는 게 아니라 저를 이용하는 거라면 약점을 쥐고 흔드는 게 가장 좋을 거니까 레이시를 덮쳤겠죠?”
“음, 그래? 그럼 여관으로 돌아갈까?”
이미 레이시를 습격했으면 레이시는 지금 여관에 있을 거다.
습격당하지 않았다고 해도 여관으로 돌아올 테니 여관으로 돌아가면 레이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미스트와 함께 여관으로 돌아갔고, 여관에 들어가기 전에 쓰레기 자루를 들고 밖으로 나오는 아샤와 눈을 마주쳤다.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호위를 받고 있어. 부상 없고, 조금 놀란 거 같긴 하더라.”
“그건 뭔데?”
“미네르바가 잡아 온 사람의 손가락이랑 코랑 귀.”
“어머, 뭔가 얻은 게 있나요?”
“음, 대부분은 아무것도 아는 게 없고 시키니까 한 녀석들인데 한 명은 뭔가 알더라.”
“뭔데?”
“네가 어디에 있는 지 알아낸 방법.”
미스트를 바라보면서 대답하는 아샤.
미스트는 아샤에게 좋은 정보를 얻었다면서 어떻게 자기가 캘러미티 가문의 사람인걸 알게 됐냐고 물어봤다.
“그 녀석들, 너를 되찾아서 아갈레타 가문을 역으로 삼키려고 하는 거 같더라고.”
“아하, 하긴 저만 있으면 가능하긴 하죠.”
아샤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이는 미스트.
그러다가 미스트는 그렇게 된다면 의문점이 또 하나 있다고 말하더니 아샤에게 아갈레타의 사람들이 자기가 역습당할 걸 모르지도 않을 텐데 왜 자기를 포섭하려고 할지 물어봤다.
아갈레타의 사람들이라면 암살자답지 않게 비이성적으로 캘러미티를, 그리고 자신을 미워한다.
그런 사람들이 자기를 포섭하려고 한다?
당주가 변했으면 캘러미티에 대한 증오를 잊고서 자기를 포섭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큰 사건이 있었으면 블랙마켓에서 엘라를 보자마자 곧바로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단 걸 생각해본다면 그런 것 같지도 않고…….
블랙마켓이 정보에 둔하다거나 아갈레타에서 숨기고 있다는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미스트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면서 엘라와 아샤를 번갈아 봤고, 아샤는 그런 미스트의 시선에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것보다 안에 시체나 치워줘. 레이시가 못 내려올 거야.”
“으음, 알겠어요.”
아샤의 말에 일단 습격 이유보다는 레이시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는지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는 미스트.
엘라는 그런 미스트를 바라보다가 시체를 청소하던 미스트에게 아갈레타의 사람을 한 명 죽이지 않았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엘라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비전 기술을 가지고 있던 사람을 죽였다고 말했다.
“그 사람은 스킬을 제대로 못 썼지만요.”
“흠, 비전 기술을 잃어버려서 너를 포섭하려는 거 아닐까? 그래서 참고로, 그 비전기술은 뭐였어?”
“여러 저주와 독이 뒤섞인 신체 변형 스킬이에요. 흑살지주란 이름의 스킬이었던 것 같은데……, 이런 스킬이에요.”
“응, 레이시 앞에서 쓰지 마.”
관절이 세, 네 개로 늘어나고 팔이 1m 이상 늘어날 정도로 이상하게 뒤틀리더니 온갖 저주와 독이 섞이기 시작한 미스트의 팔.
자기가 봐도 기괴하다고 느낄 수준인데 레이시라면 기겁하고 졸도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스킬을 취소하라고 말했고, 미스트는 엘라의 말에 팔을 원래대로 되돌린 다음 스킬의 설명을 이어나갔다.
“6위계 수준의 독살 스킬과 6위계 수준의 신체 변형, 그거 외에는 7위계 버프 마법 수준의 필중, 방어불능 스킬. 마지막으로는 5위계 수준의 공간왜곡 스킬이 들어간 스킬이에요. 이런 식으로 스킬을 조합하는 건 사용자에게 꽤 부담을 주니 이 스킬을 익힌 자가 당주가 된다는 건 이해할 수 있는데……. 제가 상대한 사람은 이 스킬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더라고요.”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자기 신체밖에 개조를 못 했거든요. 6위계급 신체 변형 스킬이라면 이런 식으로 타인의 몸에도 적용할 수 있거든요. 이렇게요.”
“하지 말라니까. ……그나저나 그렇다면 그거 때문에 너를 어떻게 하려는 것 아냐? 네가 아갈레타의 비전 스킬을 가지고 있으니까 아갈레타의 당주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면서 너를 영입, 다시 한번 입지를 다지려는 건?”
“아하,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자존심도 없는 걸까요?”
“자존심이 뭔 소용이야? 캘러미티가 사라지고 1등이 됐는데 다시 2등, 3등이 되게 생겼는데.”
“흐흥, 그 사람들은 그런 식이라면 절대로 1등이 못 될 걸요? 암살자 주제에 묘하게 감정을 없애려고 하니까 문제에요.”
“뭐, 잡담은 이쯤하고 청소 끝났으면 레이시에게 갈까?”
대충이지만 누가 배후에 있고 왜 습격했는지 대충 알게 됐으니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면 된다.
엘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레이시에게 돌아가자고 말했고, 미스트는 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2층으로 올라가 레이시의 방에 노크했다.
“들어오세요.”
“들어갈게요. 어때요? 괜찮아요? 많이 놀랐다던데.”
“저, 저는 괜찮아요.”
바짝 굳은 얼굴로 억지로 웃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웃음에 진정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손길에 천천히 떨기 시작하더니 이내 미스트에게 얼굴을 파묻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에일렌이 잠들기 전까지는 놀랐어도 놀란 티를 못 냈지만, 지금은 에일렌이 자니까…….
그렇게 생각하던 레이시는 손끝을 파르르 떨면서 미스트와 깍지를 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반응에 레이시를 껴안고 등을 토닥여주기 시작했다.
“후, 후우. 괜찮아졌어요……. 그래서 무슨 일이에요?”
“저번에 레이시가 습격 받아서 죽을 뻔 했을 때 기억하시나요? 눈이 반쯤 멀었었잖아요.”
“아……. 네. 기억하고 있어요.”
“제가 그때 죽인 암살자가 아갈레타 가문의 비전 스킬을 익힌 암살자였는데, 그 사람이 죽자 아갈레타 가문의 힘이 떨어진 것 같아요. 그래서 아갈레타 가문에서 그 사람들……, 자칭 캘러미티 가문의 사용인들에게 제가 미스트 T 캘러미티라는 걸 알려준 것 같아요.”
“그, 저희를 습격한 사람은 캘러미티 가문의 사람들인 게 맞아요? 저번에는 조금 애매한 것 같다고 했잖아요.”
“음, 네. 신분 세탁이 잦아서 증거가 없으면 캘러미티 가문에서 일회용품으로 사용했다고만 말하면 누구라도 속일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오늘 봤었던 시체에서 캘러미티 가문 특제의 마약의 사용흔적을 발견했어요. 그들은 명실상부한 캘러미티 가문의 사용인이에요.”
“미스트…….”
미스트의 말에 눈물을 글썽이는 레이시.
미스트는 레이시의 반응에 레이시의 눈가를 손으로 훔쳐주더니 레이시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저는 괜찮아요.”
“그래도요…….”
“괜찮아요. 오늘은 이만 잘까요?”
레이시의 옆에 앉으면서 레이시를 재워주는 미스트.
엘라는 레이시에게 에일렌은 자기가 돌볼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며 미스트를 도와줬고, 아샤와 미네르바도 레이시를 안심시키기 시작했다.
그러자 레이시는 천천히 눈을 감으면서 미스트의 손을 꽉 잡았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를 보면서 자장가를 부르며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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