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1화 〉 암살자의 피1
* * *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난다.”
“아, 아하하하. 죄송해요.”
“주인이 미안할 일은 아니다.”
다음 날.
원래라면 미네르바와 데이트를 해야 할 차례였지만, 미스트와 레이시가 습격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레이시와 미네르바는 데이트 대신에 여관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엘라의 작전을 기다렸고, 미네르바는 그게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눈을 찌푸린 채 발을 달달달 떨기 시작했다.
그러자 레이시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미네르바를 달랬고, 미네르바는 레이시가 당황하며 자기 눈치를 살피자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깊게 내뱉으면서 레이시를 껴안았다.
레이시와 놀고 싶은 건 놀고 싶은 거지만, 위험하다니 어쩔 수 없다.
거기까지 떼를 쓰고 싶은 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 미네르바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이내 그 이름도 모르는 쓰레기들을 전부 죽이겠다면서 으르렁거렸고,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분노에 어색하게 웃다가 조심해달라고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자자, 집중. 어떻게 할지 정했어.”
“당연히 죽이겠지? 잘 모르겠지만, 그 녀석들 미스트를 괴롭히는 인간들이라고 들었다. 그럼 죽이는 게 깔끔하지 않나?”
“음, 일단 죽이는 게 좋겠지만, 일단 전부 산 채로 포획하지 않으면 안 돼.”
“왜지?”
“일단 어떻게 미스트를 찾아냈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서류 상으로 여기에 있는 미스트는 캘러미티 가문의 미스트가 아니라 내가 이름을 지어 준 사람이고 이런저런 장난질을 쳐놔서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없게 만들어놨거든. 어떻게 찾았는지 알아놔야지.”
불법조직이 알아서 처리했겠지만, 추측과 확답은 다르니까 알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말한 엘라는 미스트를 습격한 사람들을 체포할 계획을 짜기 시작했고, 아샤는 엘라의 계획에 한숨을 푹 내쉬면서 위험하지 않겠냐고 물어봤다.
“레이시를 미끼로 쓴다니……, 나는 조금 말리고 싶은데.”
“암살자라면 레이시가 나와서 돌아다니면 함정이라는 걸 알고 있어도 할 수 없이 레이시를 덮칠 거야. 그리고 레이시가 아예 방어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너랑 미네르바, 두 사람이 있으면 미스트가 말한 암살자 수준으로는 어떻게 뚫을 수 없을 거야.”
“너랑 미스트는?”
“블랙마켓에 가야지. 왕족이 블랙마켓에 가는 건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니까.”
그 사람 좋은 아이야트도 블랙마켓에 자주 들락거리면서 블랙마켓에서만 구할 수 있는 정보를 구한다.
마약과 독약은 어떤 것이 돌아다니고 어떤 암살자가 있고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구할 수 없는 귀족의 정보를 구하고…….
그러니 여기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자기가 블랙마켓에 가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렇게 말하자 아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다가 레이시에게 조심하라고 말했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조금 긴장한 얼굴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에일렌을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그럼 다들 조심하고, 두 사람은 레이시와 에일렌이 다치지 않도록 주의해줘.”
에일렌까지 데리고 움직이는 건 마음에 걸리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씩 나누기에는 불안요소가 많다.
어린아이를 호위하는 것과 몸도 못 가누는 아기를 호위하는 것의 차이는 한 쪽 팔을 그대로 못 쓰니 천지차이다.
그러니까 불안하더라도 레이시에게 에일렌을 안게 하고 미스트를 따라다니는 녀석을 처리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한숨을 내쉬다가 자기 목걸이를 에일렌의 목에다 감아주면서 레이시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레이시, 위험하다고 느끼면 곧바로 도망쳐. 에일렌에게 준 거 보호 마법이 걸려 있으니까 어지간한 공격은 막아줄 거야.”
“네, 그럴게요.”
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레이시는 조금 긴장한 얼굴로 미네르바와 아샤를 바라봤고, 두 사람은 레이시를 달래면서 위험하지 않을 거라고 속삭여주었다.
“그럼 작전은 그렇게 하도록 하고……. 오늘 레이시는 오늘 야시장에 나가서 적당히 돌아다니다가 와. 우리는 지금 나갈게.”
“네, 조심하세요. 엘라.”
“응.”
레이시의 이마에 입을 맞추더니 미스트와 함께 밖으로 나가는 엘라.
레이시는 두 사람이 나가자 한숨을 푹 내쉬면서 왜 지금 미스트를 괴롭히는 건지 모르겠다면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는데 이유가 어딨어? 싫어한다면 아무런 이유 없이도 사람을 죽이는 게 사람이야. 거기에다가 이번 일은 이익 관계가 얽혀 있으니 더 심하게 굴겠지.”
“그렇겠죠……? 후우우…….”
사이좋게 지내면 좋을 텐데.
전생에서 진상이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을 떠올리던 레이시는 그런 사람들은 적어도 자기를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다면서 고개를 좌우로 저었고, 아샤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자기가 호위할 때 주의할 점을 알려주었다.
“같이 있을 땐 내가 어떻게든 하겠지만, 도주할 때는 그게 안 될 테니까 도주할 때 계획을 세우자.”
“굳이 도망쳐야 하나? 협력 같은 건 안 하겠지만, 나랑 너랑 같이 있으면 어지간한 녀석들은 전부 죽일 수 있을 거다.”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잖아, 우리의 승리조건은 레이시와 에일렌을 무사하게 여관까지 호위하는 게 목적이야. 굳이 싸울 필요 없어.”
“……그건. 음, 그런가?”
“그래, 그러니까 도주할 때 너는 레이시를 보호하고 내가 암살자들의 시선을 강제로 붙잡아둘게. 이런 도심에서의 움직임이라면 네가 훨씬 자유로울 거야.”
“음, 그렇게 하겠다.”
아샤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그런 두 사람의 말에 고맙다면서 고개를 꾸벅 숙였고, 미네르바와 아샤는 레이시의 대답에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다는 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괜찮다면서 레이시를 안심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녁이 되자 레이시는 포대기로 에일렌을 곧바로 안을 수 있게 했고, 아샤는 위장하듯 가죽 갑옷과 작은 손도끼만 챙기고 레이시와 미네르바에게 출발하자고 말했다.
“으, 으응…….”
아샤의 말에 잔뜩 긴장한 채로 야시장에 나가는 레이시.
야시장의 분위기는 어제와 다를 게 하나 없었지만, 레이시는 뭔가 야시장이 달라진 것 같다고 느끼면서 마른 침을 계속해서 삼켰고, 미네르바는 에일렌을 안는 손에 힘을 주는 레이시를 보고는 주변의 사람들이 이상한 짓을 하지 않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오던 암살자도 안 오겠다고 생각하는 아샤.
하지만 미네르바라면 몰라도 레이시만큼은 일반인과 다른 게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레이시를 마님이라고 부르면서 야시장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 시간쯤 돌아다니자 아샤는 누군가 붙었다는 걸 깨닫고 눈을 가늘게 떴고, 미네르바는 아샤의 반응에 누군가가 붙었다는 걸 확인하고는 고개를 좌우로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네르바를 진정시키는 아샤.
아샤는 그렇게 고개를 돌리고 다니면 들킨 녀석들이 어떻게든 레이시를 공격할 지도 모른다면서 최대한 태평하게 자기를 따라오라고 말했고, 레이시는 아샤의 지시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샤의 말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쪽입니다. 마님.”
“네.”
“드시고 싶으신 게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십쇼.”
점점 많아지는 시선.
레이시는 그런 시선에 서서히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고, 아샤는 레이시의 얼굴에 괜찮다고 말하더니 레이시의 손을 잡았다.
“이쪽으로 따라오시죠.”
“네, 넷…….”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분들과 만날 수 있다고 해도 너무 긴장하셨군요. 5분 밖에 안 오시니 긴장을 놓으셔도 괜찮을 겁니다.”
“그, 그럴게요.”
지켜보고 있는 사람은 5명 밖에 안 된다.
레이시가 생각하는 것처럼 많지 않다.
아샤가 그렇게 말하자 레이시는 부르르 떨다가 숨을 깊게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미네르바는 아샤의 말에 눈을 힐끗 돌리더니 자기를 따라오던 사람을 전부 찾은 다음 아샤를 바라봤다.
그러자 잠시 망설이는 아샤.
아샤는 미네르바를 시켜서 사람을 처리하고 도망치는 게 맞을지, 아니면 이대로 도망친 이후에 따로 처리하는 게 맞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느 쪽이 좀 더 레이시를 안전하게 만들 수 있을까…….
“……미네르바.”
“응?”
“나는 레이시랑 곧바로 여관으로 돌아갈게. 처리해. 골목으로 들어갈 테니까 따라오면 죽이지만 말고 마음대로 해버려.”
“알겠다.”
그렇게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레이시를 따라 오는 사람을 처리하기로 한 아샤.
아샤는 레이시를 데리고 골목으로 들어가면서 사람들을 유도하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아샤를 따라서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단숨에 사라지는 하나의 시선.
레이시는 그런 시선의 사라짐에 흠칫 떨면서 뒤를 돌아보려고 했고, 아샤는 그런 레이시의 행동을 말리면서 레이시에게 에일렌을 지켜보라고 말했다.
“미네르바는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앞만 보고 걸어. 뒤를 돌아보면 확 달려들 거야.”
“힉…….”
“그러니까 이쪽으로.”
자꾸 모퉁이를 돌아다니면서 투척 무기에서부터 레이시를 지키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에게 여관으로 가고 있는 거 맞냐고 물어봤고, 아샤는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여관까지 남은 거리를 말해주었다.
“아마 25분 정도면 도착할 거야.”
“25분이요?”
“응, 일직선으로 가는 길에는 이미 사람이 배치되어 있을 거니까 빙 돌아서 가야 하니까 25분 정도 남았어. 다음엔 이쪽.”
“길, 알고 있어요?”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길은 대충 외웠어. 골목이라는 건 대놓고 짓는 게 아니라 건물을 짓다 보니까 생기는 거라 일정한 규칙이 있거든.”
“그, 그렇구나……. 죄송해요.”
“아냐, 불안하면 계속 이야기해도 괜찮아.”
“그, 그러면……. 저는 좀 다쳐도 괜찮으니까 에일렌만큼은 지켜주시겠어요?”
“……둘 다 지켜줄 테니까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마.”
“에헤헤, 그래도 만약에요.”
“그런 건 만약도 없어. 지킨다. 그게 전부야.”
“……알겠어요. 부탁할게요.”
아샤의 확답에 숨을 크게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아샤는 레이시가 고개를 끄덕이자 레이시의 손을 가볍게 잡고 놓더니 빠르게 움직이면서 여관으로 움직였다.
그러는 사이에 사람이 계속 달라붙었는지 미네르바가 사람을 제압하는 소리가 간간히 들렸고, 레이시는 에일렌의 귀를 조심스럽게 감싸준 다음 여관으로 들어갔다.
“후우, 후우…….”
“레이시, 앉으려면 저기에 앉아. 문 바로 앞쪽은 위험해.”
“네, 네에.”
여관에 도착해서 문을 닫자마자 스르르 쓰러지는 레이시.
아샤는 그런 레이시를 부축하면서 벽을 뚫지 않으면 레이시를 습격하지 못하는 곳에 앉힌 다음 미네르바를 기다렸고, 잠시 후 미네르바는 사람들을 질질 끌고 들어왔다.
아샤가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고 말했더니 미네르바는 정말로 죽이지만 않은 상태로 사람들을 끌고 왔고, 레이시는 그 모습에 움찔 떨다가 아샤가 단검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미네르바의 품에 안기며 침을 삼켰다.
“레이시.”
“네?”
“에일렌이랑 위로 올라가, 지금부터는 조금 잔인한 짓을 할 거거든.”
“윽…….”
“미네르바, 너도 레이시랑 같이 올라가. 만약에 무슨 일 있으면 그냥 죽여.”
“알겠다.”
아샤의 지시에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위로 올라가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아샤를 힐끗 쳐다보다가 아샤가 웃으면서 위로 올라가라고 말하자 이내 눈을 질끈 감고서 위로 도망치듯 올라갔고, 아샤는 레이시가 올라가는 걸 보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문은 딱히 특기가 아닌데.”
애초에 고통으로 인한 자백이 얼마나 신빙성 있을지도 모르겠고…….
…….
하지만 레이시를 위한 일이니까.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기절한 사람들의 팔다리를 묶고 사람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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