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0화 〉 대형 지렁이를 사육하는 방법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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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으으응…….”
테이머에게서 불가능한 일을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은 레이시는 앓는 소리를 내면서 마차로 돌아갔고, 에일렌을 안은 채 장난을 치던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레이시를 쳐다봤다.
“무슨 일 있어?”
“어……, 그게, 이번에 군인분들과 함께 온 테이머께 잔소리를 들었어요.”
“……? 무슨 일인데?”
어지간히 간이 붓지 않았으면 왕족에게 대꾸를 못 할 텐데…….
그렇게 생각하던 엘라는 레이시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테이머가 웜의 여왕을 테이밍하지 못한다면서 쏟아냈던 말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그러자 눈을 깜빡이면서 어색하게 웃는 엘라.
테이머에게 어떤 벌을 줘야겠다고 생각하던 엘라는 그런 이야기라면 어쩔 수 없다고 어깨를 으쓱였다.
“근데 저는 그렇게 정신력이 강하지 않잖아요?”
“으음……, 확실히 그 테이머가 말한 것처럼 정신력이 강하지는 않지?”
성실하고 착하며 책임감도 있고 좋은 사람이기는 하지만, 레이시는 그렇게 정신력이 강하다고는 할 수 없다.
금방 패닉에 빠지고 상황판단 능력도 떨어지고 스트레스에 금방 부하를 느끼니까.
그렇게 생각해보면 확실히 레이시의 테이밍 능력은 어딘가 이상하긴 했다.
하양이는 그냥 신체적인 힘만 강하면 어떻게 테이밍 할 수 있는 존재라지만, 나비의 경우에는 그런 게 아닐 텐데도 잘만 테이밍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던 엘라는 미스트에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엘라의 질문에 레이시를 보고는 엘라의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일반적으로 테이밍은 강압적인 위치를 강요해요. 그래야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시킬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하려면 상대방의 정신력을 확 억눌러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그 테이머의 말대로 정신력이 강하지 않으면 안 돼요.”
“레이시는 그게 달라?”
“네. 레이시는 해주면 좋고 안 해주면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하잖아요? 그러면 몸에 가는 부담이 확 줄어들어요. 명령을 내리지 않으니 억압할 필요가 없거든요. 그러면 굳이 정신력이 강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대상과 협상만 잘 하면 되니까요.”
“아하, 하긴 레이시는 명령을 내리지는 않지. 매번 부탁한다고 말하고 그 뒤에는 확실히 놀아주고…….”
“에헤헤……. 아, 그럼 테이머 씨에게 미스트가 말해준 걸 그대로 전해주면 테이머 씨가 잘할 수 있을까요?”
“무리죠?”
“네?”
“우선 모험가시니까 자기가 필요성을 못 느끼면 모험가 생활 때 했던 것처럼 상대방을 억압시키고 명령을 내리는 방향으로 테이밍을 진행할 거예요. 그리고 그 전에 레이시처럼 하려면 레이시처럼 힘이 강하고 감정을 그대로 전해줄 수 있지 않으면 안 될걸요?”
“저 약한데…….”
“무력을 말하는 게 아니라 순수한 힘을 의미하는 거예요. 나비의 상체를 들어올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것도 자기에게 기대는 나비를요.”
나비가 보기보다 꽤 가벼운 편이라고 해도 몸무게가 톤 단위인데 그렇게 들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다고 말하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웜이니까 다를 거라면서 어색하게 웃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다.
“웜 몸무게만 생각해도 한 70kg는 될걸요? 물론 전직 모험가셨다고 하니 다리 한쪽이 불편하더라도 그 정도의 무게의 물건을 들지 못하는 건 아니겠죠. 하지만 그건 정지한 물건이고 이쪽은 살아있는 생명체잖아요? 몇 배는 힘들걸요?”
“에…….”
“거기에다가 웜이 눈치챌 정도로 겁을 먹고 있는 사람이 갑자기 웜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 움직인다는 것도 이상하죠. 그런 개체는 몇몇 특수한 스킬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 스킬이 뭔지 알기 전에는 겁을 먹고 뭔가 행동을 보이진 않을 거예요.”
“으으으응……, 착한 앤데.”
“사람들이 레이시처럼 편견 없이 생명체를 보지 않는다고요?”
미스트는 레이시가 시무룩하게 어깨를 늘어트리자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같이 방법을 찾아보자고 말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다독임에 눈을 깜빡이다가 배시시 웃으면서 미스트에게 기댔다.
그러자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엘라에게 어떻게 하겠냐고 물어보는 미스트.
엘라는 미스트의 질문에 눈을 깜빡이다가 어깨를 으쓱이며 테이머가 약한 게 잘못인 거 아니냐며 테이머를 비웃었다.
“그러니까 레이시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그 테이머는 웜이 아무런 짓도 안 했는데 웜에게 덜컥 겁을 집어먹고 자기는 못하겠다고 뻗댄 거잖아.”
“그렇죠?”
“그런 겁쟁이에게 해줄 조언은 없는걸.”
테이밍을 시도하고 실패했다면, 혹은 테이밍을 시도하다가 실패하면 큰 피해를 입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조언이라는 걸 해줬을지도 모른다.
테이밍에 대한 건 말하지 못하더라도 마력에 관한 건 조언해줄 게 많으니까.
하지만 위험하지도 않은 일을 시도도 안 하고 도망친 겁쟁이는 어떻게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도 없고, 애초에 도와주기도 꺼려진다.
그렇게 말한 엘라는 눈을 깜빡이다가 여왕을 테이밍한 사람이 그렇게 적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엘라의 질문에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웜의 여왕을 테이밍하는 사례는 꽤 많다고 말해주었다.
“웜을 억압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육식을 하지 않으니 사람을 공격할 이유가 없고 땅에 영양분만 제대로 공급이 이어진다면 웜은 한 지역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곳에 상주하니 적당히 위치만 알 수 있을 정도로만 계약을 맺고, 억압하지 않으니 정신력의 소모가 그렇게 크지 않다.
일을 시킨다고 해도 웜을 통제하는 일이나 땅을 갈아달라는 일이니 협상만 제대로 잘 한다면 한 명만 있어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안 그러면 대형 농원을 지닌 사람은 하나 같이 초월적인 정신력을 지닌 테이머로 가득 찬 마경이라는 건데…….
그건 아무래도 말이 안 되지 않냐면서 웃는 미스트.
엘라는 미스트의 말에 피식 웃다가 에일렌의 손에 손가락을 쥐어주고는 그렇다면 더더욱 도와줄 수 없다고 말했다.
“알아서 열심히 하라고 그래.”
“에에에……, 축제…….”
“……레이시가 조언을 하고 싶으면 막지는 않을게.”
엘라의 말에 우물쭈물 망설이는 레이시.
그러다가 레이시는 엘라의 옆에 앉아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엘라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뭔가 이유가 있겠죠. 그리고 미네르바가 말한대로 너무 관여하지 않기로 했거든요.”
“그래?”
레이시의 말에 조심스럽게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엘라.
엘라는 수고했다면서 물을 건네주었고, 레이시는 엘라가 건네준 물을 마시면서 눈을 깜빡이다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걸 마차 안에서 얌전히 바라봤다.
그리고 그렇게 멍하니 쉬는 첫 한시간은 그야말로 가시방석이 따로 없다고 생각하게 될 정도로 불편하기만 했었다.
에일렌은 귀엽고, 엘라는 부드러우며, 그 두 사람과 있는 건 가슴이 간질거렸지만……, 혼자서 아무 일도 안 하고 지켜보는 것은 꽤 양심이 찔렸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가고, 계속해서 사람들을 바라보던 레이시는 불편함만이 아니라 다른 감정도 느끼기 시작했다.
분명 힘든 일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행복하게 웃고 있다.
처음에는 영주끼리 안 싸우고 군대가 도와주러 와서 그렇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뭔가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았다.
뭐랄까…….
“으으응…….”
마을을 만들면서 기뻐하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엘라를 바라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시선에 싱긋 웃은 다음에 조금 자겠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다시 한번 창문 밖을 바라보다가 이내 배시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이마에 입을 맞춰준 다음 레이시와 함께 매트리스에 몸을 눕혔고, 레이시는 에일렌을 자기 가슴 위에 엎드리게 한 다음 팔베개를 해주는 엘라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그리고는 에일렌과 손장난을 치다가 이내 그대로 잠드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추고 같이 잠들었고, 다시 나른한 나날을 보내기 시작했다.
일어나서 책을 읽고, 에일렌과 놀아주고, 장난치고, 산책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자 레이시는 낮잠을 자기 전에 느꼈던 감정이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걸 점점 몸으로 깨닫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얼굴에 힘든 기색이 보였다면 도와줬겠지만, 사람들의 얼굴에는 힘든 기색보다는 행복하다는 빛이 강하게 머물고 있었고, 지금 도와준다면 자기가 그 사람들의 행복을 빼앗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몇 시간 동안 열심히 일한 다음 물을 마시면 더욱 맛있듯이, 지금 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건 마을을 원래대로 되돌렸다는 기쁨을 더욱 크게 맛보기 위한 노동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열심히 일하면서 자기에게 인사하는 사람에게 손을 흔들어주면서 엘라에게 엘라는 이런 걸 알고 있었냐고 물어봤다.
“음, 나도 경험으로 깨달은 거야. 적당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직접 해결하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불안해하더라고. 자기의 보금자리를 왕가에서 빼앗아가는 건 아닌가~라면서 말이야.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해서 화도 많이 냈었어.”
너무 과한 호의는 독이라고 말하면서 레이시를 바라보는 엘라.
엘라는 도와주는 쪽은 아무것도 아니더라도 도움을 받는 쪽은 그마저도 부채로 남으니 그 경계선을 최대한 빨리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주었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엘라에게 머리를 기댔다.
“뭐, 나도 마을 자체가 망가졌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개입하긴 했을 거야. 아마……, 적어도 공병대대와 구호물자가 오기 전까지는 말이야.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아니잖아? 레이시가 가르쳐주고 싶다는 테이머의 일은 조금 애매한 영역이라 고민했던 거고.”
“그렇구나. 으응……, 고마워요.”
“뭐, 그 녀석이 도와달라고 말하면 도와줘.”
“그럴게요.”
엘라의 말에 머리를 기대다가 에일렌이 울자 이유식을 먹여주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를 바라보면서 키득키득 웃다가 이내 다리를 절뚝거리는 테이머가 다가오자 에일렌과 이유식을 넘겨받더니 레이시에게 다녀오라고 말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배려에 고맙다며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테이머에게 미스트가 해준 말을 그대로 전해주는 레이시.
테이머는 레이시의 설명을 듣더니 고정관념이 깨진듯한 얼굴을 하더니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다시 일하러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힘내라며 손을 흔들어주다가 기왕 나온 김에 아샤와 마을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배설물을 모으는 장소를 만들고 그 배설물을 쉽게 옮길 수 있는 하수로를 만드는 군인들.
그리고 그 군인들과 함께 일하는 마을 남자들과 새참을 들고 물과 수건을 건네주는 마을 여자들.
레이시는 그 풍경을 보고는 오랜만에 전생의 농촌봉사 추억이 떠올라 배시시 웃으면서 아샤에게 팔짱을 꼈고, 아샤는 레이시의 팔짱에 얼굴을 붉히다가 조심스럽게 팔짱을 껴주면서 마을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을을 돌아다니던 레이시는 진이 달려오며 앞으로 며칠 뒤에 축제가 열릴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진을 축하해주었고, 진은 레이시의 말에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하다 자리를 떴다.
그러자 배시시 웃으면서 도와주길 잘했다고 말하는 레이시.
아샤는 레이시의 웃음에 똑같이 웃으면서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축제 때 뭘 먹고 싶은지 물어봤고, 레이시는 아샤의 질문에 고민하듯 아샤를 올려다봤다.
그러다가 레이시는 배시시 웃으면서 잘 모르겠다고 말하고는 미스트에게 물어보러 가자며 아샤의 팔을 잡아당겼고, 아샤는 레이시가 자기 팔을 잡아당기자 당황하다가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레이시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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