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7화 〉 대형 지렁이를 사육하는 방법1
* * *
“아! 저기입니다!”
새벽부터 걸어서 점심을 먹기 전에 도착한 레이시의 일행.
레이시는 자기를 안내해주던 사람이 기쁜 듯 소리를 지르자 수고했다면서 사과를 나눠주었고, 마을 사람은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지금 이럴 게 아니라 영주님에게 가야 한다고 말했다.
“진님께서는 성격이 조금 급하신 편이라 이상한 짓을 할지도 모릅니다!”
“네, 그럴게요. 엘라, 괜찮죠?”
“괜찮아. 축제가 열리려면 이 일을 해결해야 하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그럼 에일렌이 수박을 먹을 수 있도록 힘내볼까~.”
그러자 마차에서 나오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같이 힘내자면서 영주가 산다는 곳으로 마차를 몰았다.
그리고 그렇게 도착한 저택에서는 들어가기 전부터 고성이 오고 갔다.
“쿠르통님! 제발 여기에선 제가 희생할 수 있게 허락해주세요!”
“안 된다! 너는 앞으로 몇십 년은 마을을 이끌어야 하는 입장이다! 괜히 지금부터 무리하지 마라! 여기에서는 경험이 풍부한 내가 책임을 질 테니 너는 사람들이나 안심시켜라!”
“으응~, 이야기로 들었을 땐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실제로 보니까 달라?”
“아하하……,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조금 부담스러울지도?”
듣기로는 좋은 이야기로만 들렸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조금 부담스러운 다툼.
엘라와 미스트가 자기를 두고 연정 다툼을 거세게 했을 때가 떠올라 레이시는 엘라와 미스트를 동시에 놀렸고, 엘라와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움찔 떨면서도 지금은 안 그러니 다른 이야기나 하자며 헛기침했다.
그러자 웃음을 터트리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레이시는 잠시 고민하다가 미스트와 함께 먼저 들어가보겠다면서 엘라에게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했고, 엘라는 미스트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부탁한다고 말했다.
“저기, 실례합니다.”
“앗, 누구시죠? 외지인 같으신데 지금 여기에 들어오시면……. 지금 영주님들끼리 다투고 계셔서 상황이 안 좋아요.”
“저는 레이시 루피너스 남작, 이쪽은 미스트에요. 저희 둘 다 엘라 파우스트 오라토리엄 공주님의 전속 메이드에요. 저희는 류타 남작의 도움을 요청하는 말에 응하여 지원을 나왔고, 공무를 위해 움직이던 중 마을 사람들과 만났어요. 그래서 도움을 주러 왔습니다. 쿠르통 남작님과 진 남작님을 뵙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네……?”
“레이시, 문장.”
“아, 맞다. 죄송해요. 여기 엘라 공주님의 문장입니다.”
“그, 금방 불러오겠습니다!”
레이시가 문장을 건네주자 떨리는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받아들더니 이내 위로 뛰어 올라가는 사용인.
레이시는 그런 사용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배시시 웃으면서 몇 점이냐면서 미스트를 바라봤고, 미스트는 80점이라면서 레이시의 손을 잡았다.
“말투는 둘째치고 문장부터 보여주는 게 설득하기 편해요.”
“아하…….”
“물론 그거 외에는 잘하셨어요. 공주님의 풀네임을 말하는 것과 레이시의 작위를 말한 것이요. 아마 두 분도 싸우는 걸 멈추고 오시겠죠.”
싱긋 웃으면서 위를 가리키는 미스트.
그러자 순간적으로 싸우던 목소리가 뚝 끊기더니 이내 우당탕탕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이 아래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그 소리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계단이 보이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내려온 두 사람.
한 명은 적어도 60대를 넘겼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백발과 금발이 뒤섞인 머리칼을 하고 있었지만, 노인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는 덩치를 지녔고, 다른 한 명은 상대적으로 왜소하지만, 카리스마가 살아있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아마 노인이 쿠르통이고 젊은이가 진이겠지?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다시 한번 자기 이름을 말하면서 두 사람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쿠르통 남작님. 진 남작님. 저는 레이시 루피너스 남작입니다. 엘라 파우스트 오라토리엄 공주님의 자비로 부족한 몸이지만 메이드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온 이유는 두 분께 도움을 드리기 위해서이며 엘라 공주님께서는 이미 공병부대를 호출하였습니다. 중대 2개 규모의 공병부대이며 병사들이 소비할 물품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으응……, 그리고……, 아! 엘라 공주님께서는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두 분에게서 설명을 듣고 싶어합니다. 괜찮을까요?”
한 번에 긴 말을 해서일까?
레이시는 말하는 도중에도 숨을 고르고, 할 말을 조금 잊어버리기도 하면서 두 사람에게 엘라가 밖에서 기다리는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금방 준비하겠다면서 사이좋게 주방으로 달려갔고, 레이시는 이번 건 좀 실수 했다면서 가슴 위에 손을 올리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저에게 맡기셔도 되는데.”
“으응~ 다른 일에는 기대고 있으니까 이런 일에는 제가 힘을 내고 싶었어요.”
“후후, 힘내줘서 고마워요.”
“으으응, 근데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건 여전히 떨리네요. 좋은 사람들 같은데……, 솔직히 덩치에 쫄았어요.”
“레이시가 힘은 더 셀 거에요.”
“아, 알지만요.”
어색하게 웃으면서 시선을 돌리는 레이시.
레이시는 덩치에서 오는 위압감 때문이라며 어색하게 웃다가 엘라를 불러오겠다고 말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몰래 저택 안을 청소하면서 혹시 위험요인이 있는지 않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다음 집안의 사용인들과 함께 저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들어오는 엘라와 아샤.
엘라는 미스트가 안전하다고 말하자 수고했다고 말한 다음 자연스럽게 상석에 앉아서 다리를 꼬고 앉았고, 차를 준비해오던 쿠르통과 진은 엘라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면서 차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공주님을 뵙습니다!”
“공주님을 뵙습니다!”
“됐고, 일을 얼마나 조사했는지 말해. 그래야 내가 처리할 수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여기는 제가 발표하겠습니다!”
먼저 소리치는 근육질의 쿠르통.
엘라는 그런 쿠르통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빨리 말해보라고 말했고, 쿠르통은 칠판을 들고 오더니 종이를 여러 개 꺼내 칠판에 붙이기 시작했다.
“우선 웜의 숫자는 30마리쯤 됩니다. 이 정도면 대형 농원지가 아니라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그래. 여왕은?”
“네, 여왕의 존재도 확인되었습니다. 그래서 살충제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잘 했네. 애초에 살충제로 죽이면 땅에 독기가 생기니까. 그럼 우선 몇 가지 물어볼 게 있다. 거짓말 하지 말고 대답하도록.”
“알겠습니다!”
“각 마을의 위치를 말해라.”
“네! 제가 다스리는 마을이 여기 위에 있는 마을이고 진 남작이 다스리는 마을은 여기에 있는 마을입니다! 각 마을의 논밭의 크기는 이 정도이며 생활 반경은 여기에서 여기까지입니다!”
“흐으음…….”
의외로 가까운 마을.
엘라는 눈을 가늘게 뜨다가 두 사람의 관계가 왜 그렇게 가까운지, 그리고 왜 자기가 일방적으로 희생하려고 하는 거냐고 물어봤고, 진은 엘라의 질문에 왼손의 장갑을 벗더니 자신의 손가락을 보여줬다.
“쿠르통 남작님의 따님이신 앤필드 님과 제가 결혼한 사이입니다. 제 가문은 50년 전 있었던 사건으로 거의 멸문한 상황이었지만, 쿠르통 남작님께서 제 후견인이 되어주셔서 가까스로 마을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제가…….”
“그 이후의 이야기는 괜찮아. 이해했으니까.”
“아, 넷!”
“흠, 그렇다면…….”
눈을 가늘게 뜨더니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기 시작하는 엘라.
엘라는 한참을 암산하다가 머리가 복잡해졌는지 한숨을 내쉬면서 미스트를 불러 귓속말로 이것저것 물어봤고, 미스트는 엘라의 질문에 열심히 계산하더니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엘라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진을 가리키며 다시 입을 열며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진 남작은 쿠르통 남작의 데릴사위로 들어가도록. 이번 일로 귀족의 책임을 질 수 없게 된다면 굳이 가문을 되살리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겠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두 마을은 이제부터 한 마을이 된다. 두 마을 사이에 있는 가운데에 있는 빈 땅을 웜을 사육하는 곳으로 만들고 수로를 만들어 두 마을에서 나오는 오물을 처리하도록 만들지. 그러기 위해서 공병 중대를 불렀으니까. 마을 이름은……, 두 마을이 공통으로 여는 축제의 이름에서 따오도록. 이상. 두 사람은 각자의 마을의 사람들을 진정시키도록.”
어차피 두 마을 사람들이라면 마을이 병합되어 한 도시가 된다고 하더라도 큰 반발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쿠르통의 반응을 살폈지만, 쿠르통도 이 정도 일은 대충 예상했었는지 씁쓸한 얼굴을 하면서도 엘라의 조취를 이해한다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차를 마시면서 손등을 긁는 엘라.
엘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차로 돌아간 레이시에게 갔고, 레이시는 엘라가 돌아오자 이야기는 잘 끝났냐고 물어봤다.
“일은 잘 끝났어. 애초에 두 사람 다 내가 온 이상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대충 예상했겠지. 거기에다가 네가 오면서 농경지를 망가트리지 않고 처리할 수 있게 됐으니 두 사람은 불만이 없을 거야. 마을 사람들은 애초에 마을이 하나가 되든 둘이 되든 별로 신경 안 쓸 거고.”
“에헤헤, 그럼 저희도 힘내볼까요?”
“그래, 웜이 지금 자리 잡은 부분은 들어뒀으니까 따라와. 미스트는 아샤랑 같이 에일렌을 돌보고, 미네르바는 나비랑 같이 주변 정찰. 마차는 주차 해뒀으니까 하양이 타고 가자.”
레이시에게 가볍게 설명한 다음 일행의 역할을 나눠주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지시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하양이의 고삐를 풀어준 다음 하양이의 등에 올라탔고 하양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엘라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렇게 엘라가 자기 손을 붙잡자 레이시는 손에 힘을 주면서 엘라를 자기 앞에 태웠고, 엘라는 이제 꽤 익숙해졌다면서 레이시의 손을 붙잡고 웜을 어떻게 길들일 건지 물어봤다.
그러자 움찔 떨더니 어색하게 웃는 레이시.
레이시는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나비와 하양이와는 신기할 정도로 의사소통이 되니 그것으로 어떻게 되지 않겠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막무가내식의 레이시의 대답에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레이시라면 잘하겠지.”
“에헤헤, 열심히 할게요!”
“저기야.”
“네.”
엘라의 말에 하양이의 등에서 내리더니 하양이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레이시.
레이시는 미스트에게 들은 대로 웜이 좋아하는 음식을 꺼내서 땅에 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두더쥐가 땅을 헤집는 것처럼 땅을 헤집다가 울컥하고 올라오는 웜들.
레이시는 그 모습에 얼굴을 붉히면서 이게 정말로 되는 거였냐면서 황당하다는 얼굴을 했고, 엘라는 레이시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킥킥 웃었다.
“뭐, 동양에서는 그걸로 나비를 꾀어내는 녀석들도 있다니까. 참, 퀸 왔어.”
“아, 크다.”
소변으로 꾀어낼 수 있는 덩치 5m의 지렁이라니…….
순간 눈도 없고 콧구멍도 없는 그 모습에 레이시는 한참이나 멍때리며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고개를 좌우로 저은 다음 천천히 퀸에게 손을 뻗었다.
테이밍 스킬이 아닌 연정의 야차를 사용하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손가락 끝에 모으는 레이시.
웜의 여왕은 그런 레이시의 손길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조심스럽게 레이시의 손에 자신의 몸을 올려두었다.
“저기, 음, 대화……! 에, 이야기! 이야기를 해봐요!”
진심으로 하면 뭐든 되겠지.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머릿속으로 웜과 대화하는 상상을 하면서 웜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웜은 레이시의 손길에 몸을 비틀어대다가 사념파를 쏘아냈다.
[대화. 대화.]
“에? 된다?”
[나, 너, 대화한다.]
“아, 아앗!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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