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4화 〉 다음 행선지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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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의 무언가를 잘라내고 3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레이시는 마을 사람들을 달래주는 것에 꽤 익숙해져서 머리를 비운 채 미스트와 함께 마을 사람들의 인사를 받아주었고, 엘라와 아샤는 병상에서 회복한 지질학자와 함께 산사태를 대비한 공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4일째 되는 밤.
남작은 그동안 자기 마을 사람들을 달래줘서 고맙다면서 돼지와 소를 한 마리씩 잡아서 엘라에게 가져왔고, 레이시는 고기를 먹을 만큼만 받은 다음에 마을 사람들과 나누어 먹으라고 말한 다음 엘라와 검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안 가도 괜찮을까요?”
검성과 직접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검성과 엘라가 나눈 이야기를 전부 듣고 있었던 레이시.
그렇기에 레이시는 검성이 말했었던 말을 떠올리면서 가지 않아도 괜찮겠냐고 엘라에게 물어봤고, 엘라는 맥주를 마시다가 레이시를 바라봤다.
“뭐가?”
“왜……, 블루드의 자식이 있으니 왕궁에 가지 않으면 안 될 거라고 말했잖아요. 가봐야 하지 않을까요?”
“응? 굳이 갈 필요는 없어.”
“그치만……, 그러면 국왕님께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닐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블루드는 엘라를 부르고 있다.
그것만은 확실히 이해한 레이시는 왕궁에 돌아가지 않으면 블루드가 뭔가 이상한 짓을 할 거라면서 우물쭈물거렸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그러니까 괜히 더 가기 싫은 거라면서 키득키득 웃었다.
“그리고 아빠 걱정은 안 해도 괜찮아. 팔불출에다가 나사 하나는 빠진 것처럼 보여도 한 나라를 중립국 상태로 운영할 수 있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사람이니까. 거기에다가 아이야트 오라버니나 슈레이 언니가 있으니까 그 사람들이 도와줄거야.”
“그런가요…….”
“거기에다가 이번 일은 안 가는 게 정답이야.”
“네?”
“일부러 나를 도발하려고 부르는 건데 굳이 거기에 참석해서 도발 당할 필요가 없잖아. 솔직히 말해서 너를 무기로 삼아서 나를 도발하면 참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거든. 그러니까 여기에서 가지 않는 게 정답이야.”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웃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웃음에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왕궁의 알현실이 엉망이 되는 모습을 상상하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확실히 대화를 하지 못하게 마법을 난사하는 것보다는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 게 훨씬 나을지도…….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엘라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엘라는 레이시의 반응에 레이시에게 어디까지 알려주는 게 좋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마 검성의 목적은 자기를 도발해서 전쟁의 빌미를 만드는 것.
그래서 검성은 레이시를 공격하면서까지 자기를 도발했고, 그 과정에서 조금 실수해서 생각보다 일이 과격하게 나가서 당황해서 자기의 남성성을 잃게 되었다.
그것들이 딱히 비밀인 건 아니지만……, 전쟁과 관련된 이야기는 레이시에게 해주기 싫다.
전쟁은커녕 산적도 가능한 살려둔 채로 법의 심판을 받게 할 정도로 착한 레이시에게 그런 흉흉한 이야기를 해주기는 싫다.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잠시 망설였고, 레이시는 엘라의 망설임에 눈을 깜빡이다가 자기는 괜찮다며 싱긋 웃으며 전부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했다.
“무서운 이야기지만, 그걸 하려고 해서 그런 게 아니라 막기 위해서 하는 거잖아요? 그럼 들려주세요. 제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도와드릴게요.”
“……그래?”
“네.”
부드럽지만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엘라를 바라보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눈빛에 잠시 멍하니 있다가 강해진 레이시의 심상에 작게 웃다가 레이시의 뺨에 입을 맞춘 다음 설명을 시작했다.
“아마 검성의 목적은 너를 공격해서 나를 도발하는 게 목적이었을 거야. 그러면 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거든.”
“네? 왜요……? 그, 저를 먼저 공격한 건 검성이고 그러면 연맹국 쪽에서 먼저 전쟁을 건 게 되잖아요?”
“평범하게 생각하면 그렇지? 그런데 나는 전쟁에 참여해서는 안 되는 몸이라서.”
“네……?”
“스킬의 레어가 9 이상부터는 전쟁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협정을 맺었어. 그 이유는 그런 사람들이 전쟁에 들어가는 순간 서로가 멸망하는 게 확정이라서 그래.”
서로 싸워대는 두 사람 말고는 전부 죽어버리는 게 확정이라면 전쟁을 하는 의미가 없다.
전쟁에서 직접 뛰는 사람들이라면 혹시 또 모르겠지만, 적어도 윗사람들에게만큼은 그런 전쟁은 의미가 없다.
그렇기에 레어도가 9를 넘어가는 전투계 스킬을 지닌 사람들은 전쟁에 참여하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었고, 검성은 그 부분을 이용하려고 했다.
“내가 그 사람들을 지웠으면 검성은 그 부분을 이용해서 나를 규탄하면서 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고 했겠지.”
“네? 으으응……, 그럼 뭔가 이상한데요? 엘라가 그 사람들을 공격했으면 검성 씨는 유리했던 거잖아요……? 그 사람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딱히 병사들을 아끼는 것 같지도 않은데 왜 거기에서 무릎을 꿇었어요?”
“블루드가 일부러 정보를 안 준 건지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렇게 막무가내로 움직일 줄은 몰랐나 봐. 거기에다가 그때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명분은 내게 있었어.”
“네?”
“내 아내를 사기꾼으로 착각하고 건든 거잖아. 그런 다음 아샤가 널 지켜주면서 사실을 말해줬는데도 야차라고 깔보면서 내 성질을 건들었고. 그 상태에서 전쟁이 일어나서 내가 전쟁에 참여한다면 다른 나라들은 우리나라를 비난하는 척하기만 하고 군단을 국경에 배치할 뿐 움직이지 않았을 거야. 그러면 연맹국이 우리나라를 이길 수가 없어. 불굴의 장군이랑 연맹의 검성이 있던 말던 나랑 아샤 선에서 정리할 수 있고 연맹국은 내부 단합이 잘 되지 않을 테니까.”
“엘레오놀 공주님…….”
“그래, 엘레오놀이 다스리는 영역은 연맹국의 전쟁을 비판하고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할 거고 중립을 유지하고 있던 사람들은 엘레오놀과 불굴의 장군 사이에서 줄타기만 하다가 전쟁의 흐름을 보고 정하겠지. 그럼 전력의 절반이 없는 상태에서 전쟁을 하게 될 거야.”
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해했다는 레이시.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엘라와 아샤까지 전쟁에 참가할 수 있어서 전력이 원래보다 더 강한 상황인데 연맹국은 절반도 안 되는 힘으로 싸워야 했단 거죠?”
“응. 맞아. 그러니까 검성은 내가 당장에 전쟁할 기세로 막 나가니까 한 수 접을 수밖에 없었던 거야. 그런데 내가 지금 왕궁으로 돌아가서 검성과 이야기를 하면 검성에게 역전할 수 있는 빌미를 줄 수 있으니까 그냥 안 만나는 게 최선이야.”
기지개를 쭉 켜다가 미스트가 고기를 굽기 시작하자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자며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손길에 배시시 웃다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에일렌이 마차 안에서 말똥말똥한 눈으로 자기를 쳐다보자 쓰게 웃으면서 고기를 가져올 수 있겠냐고 물어보며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에 엘라는 쓰게 웃다가 미스트에게 다가가서 다음 목적지는 어디가 좋겠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엘라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엘라에게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물어봤다.
“글쎄……. 추천하는 장소 있어?”
“그러네요. 코스로 해도 괜찮을까요?”
“코스?”
“네, 여기에서 이렇게 쭉 돌다가 왕궁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지도를 펼치더니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하는 미스트.
미스트는 일과 휴식을 적당히 배분해서 일이 있는 곳 2곳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 1곳을 반복하면서 수도로 돌아갈 수 있는 루트를 그려주었고, 엘라는 미스트의 계획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 코스를 따르면 언제 수도로 돌아갈 수 있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미스트는 가을 중반부 쯤에는 도착할 것 같다고 말했고, 엘라는 미스트의 말에 검성이 어느 정도 수도에서 머물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국가의 귀빈이 왔고 여러 실례를 저질렀으니 그것을 사과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으음, 가을 중반부쯤에 가면 여유롭게 안 만나고 도망칠 수 있으려나?”
“네. 그럴 수 있을 거예요. 그런 다음 겨울로는 이 도시로 온천 여행을 가면 될 거예요. 그러면 특징이 다른 두 온천을 둘 다 맛볼 수 있을 거예요.”
“좋네. 그럼 그렇게 할까? 수도로는 내가 편지를 보낼게.”
“네, 감사합니다. 그럼 그렇게 준비할게요.”
엘라의 말에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필요한 것을 생각하며 요리를 준비하는 미스트.
엘라는 미스트의 대답에 수고하라고 말한 다음 에일렌과 노는 레이시에게 다가갔고, 레이시는 엘라가 다가오자 배시시 웃으면서 에일렌의 뺨을 쪼물쪼물거렸다.
“귀엽죠?”
“그러네.”
“고기는요?”
“고기는 좀 더 있어야 한데. 그것보다 레이시. 우리 일정 말인데.”
“네.”
“가을까지는 수도로 안 돌아가고 여기에서 이렇게 돌아다녀야 할 거 같아.”
“네? 으음……, 검성 때문에 그런가요?”
“응. 검성이 최대한 버틴다고 하면 가을까지는 버틸 테니까 그 전까지는 안 돌아가게. 조금은 갑갑할 수 있겠지만, 조금만 참아줄래?”
“에헤헤, 괜찮아요.”
공간 마법을 사용해서 만든 마차라서 겉보기와는 다르게 12평 정도 넓이를 지닌 마차.
이 정도면 전생에서 지냈었던 집보다 조금 컸기에 레이시는 괜찮다고 말했고, 엘라는 레이시의 대답에 레이시의 이마에 입을 맞춘 다음 에일렌의 이마에도 입을 맞춰주었다.
“에일렌~ 엘라 엄마 왔네~.”
“풉, 그게 뭐야? 레이시 마망?”
“으으응~.”
그런 엘라의 모습에 에일렌에게 엘라 엄마가 왔다면서 에일렌을 안아주는 레이시.
레이시는 에일렌에게 말을 가르치듯 에일렌에게 계속해서 ‘엘라 엄마.’라는 말을 반복했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너무 급하다면서 레이시가 ‘엘라 엄마.’라고 말할 때마다 ‘레이시 마망~.’이라고 말하면서 레이시를 놀리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내질 않을 애교가 잔뜩 섞인 엘라의 목소리.
레이시는 평소와 다른 엘라의 목소리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그만하라고 엘라를 콕콕 찔러댔고, 엘라는 레이시의 웃음에 레이시가 먼저 하지 않았냐면서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그러자 레이시는 아무튼 자기는 다르다면서 가볍게 투정을 부렸고, 미스트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흐뭇하게 웃으면서 지켜보다가 잘 구워진 고기를 얇게 썰어서 두 사람에게 들고 갔다.
“자, 여기 고기에요. 이건 에일렌이 먹을 수 있도록 기름을 빼고 뭉근하게 끓인 죽이고요.”
“고마워요오~. 안 식히고 먹여도 괜찮은 건가요?”
“네. 미지근하게 데워뒀으니까 금방 먹을 수 있을 거예요.”
미스트의 말에 죽을 한 입 먹어보는 레이시.
미스트의 말대로 약간은 미지근해서 에일렌도 무리 없이 먹을 수 있겠다 싶었던 레이시는 에일렌을 안아서 고기 죽을 먹여주었고, 걸음마를 걸으면서 배가 고파진 건지 에일렌은 레이시가 수저질을 해줄 때마다 연신 입을 오물거리면서 고기 죽을 꿀떡꿀떡 삼키기 시작했다.
“에헤헤, 잘 먹는다. 귀여워…….”
“자, 레이시도 먹어야지. 아앙~.”
“앗! 아앙~.”
에일렌이 죽을 먹는 걸 보고 배시시 웃고 있다가 엘라의 말에 입을 벌리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키득키득 웃다가 에일렌을 챙기는 건 좋지만, 무리는 하지 말라면서 고기를 조심스럽게 먹여주었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배시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엘라도 아앙~.”
“난 괜찮은데.”
“저, 에일렌에게 죽 먹여줘야 하는데.”
“하아……. 아, 아앙~”
레이시의 말에 앓는 소리를 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벌리고 고기를 받아먹는 엘라.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모습에 배시시 웃다가 에일렌이 가슴을 만지작거리자 알겠다면서 죽을 먹여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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